스릅스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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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하는 공화국. 갈등도 많고 민족도 달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는 별개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국명인 스릅스카(Српска)는 세르비아인(Срби)에 접미사 '-ска'가 붙은 형태의 단어로 '세르비아인의 땅'을 의미한다. 국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처음 국가를 세울 때부터 세르비아의 괴뢰국이었으며 2021년 지금도 사실상 세르비아의 괴뢰국 취급이다.
2. 역사
1980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사망을 시작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기 시작하자 그 공백을 틈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가 분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1991년 6월 25일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탈퇴하였다. 유고슬라비아군은 이들의 독립선언에 반발하여 침공하였다. 우선 슬로베니아를 침공하였는데 슬로베니아는 세르비아인이 적어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은 10일 만에 종결되었다. 크로아티아의 경우 연방의 지원을 받은 재(在)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2년 동안 전투가 지속되었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독립에 자극받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인들은 1992년 2월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유고슬라비아는 이를 보이콧하였다. 그러나 1992년 4월 5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끝내 독립을 선언하자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인들이 반발하여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유고연방의 핵심 국가인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를 지원하고, 크로아티아는 크로아티아계를 지원하며 내전에 개입하였다. 내전 기간 동안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은 연구에 따라 다르나 약 10~20만 명 학살되었으며 220만 명 가량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특히 무슬림들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양쪽에게 학살당했다.
결국 내전이 지속되자 서방의 중재하에 1995년 데이턴 평화협정(Dayton Agreement)이 맺어져 내전은 종식되었다.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은 보스니아 무슬림 및 크로아티아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계의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구성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계승되었다.
3. 국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가와 별개의 국가를 지정해 사용하고 있다. 현행 나의 공화국(Моја Република)은 2012년부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중앙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 절차를 완료한 노래로, 스릅스카 공화국의 국가로 사용할 수 있다. 스릅스카 공화국은 1992년 나라를 처음 세웠을 때는 라도반 카라지치의 스릅스카 공화국 독립 선언문에 곡조를 붙여서 국가로 썼다가, 1996년부터 2006년까지는 세르비아 국가[1] 를 그대로 스릅스카 공화국의 국가로 썼다. 그러다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헌법재판소에서 금지 결정[2] 을 받고 2008년 현행 <나의 공화국>을 지정하여 2012년 공인받았다.
4.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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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칸의 호랑이" 민병대 부대장 젤리코 라즈나토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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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릅스카군 최고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
유고 내전이 터지자 스릅스카의 세르비아계는 자체적인 민병대를 구성했다. 1992년에 구성되었는데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물론이고 본국 세르비아 그리고 정교회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자원병까지 몰려오면서 순식간에 '''8만 명 수준의 대군'''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거기다가 이들은 세르비아와 러시아로부터 보급 및 군사장비 지원을 받았고 M-84, T-55 등의 전차와 장갑차는 물론이고 심지어 2K12 KUB 지대공 미사일까지 운용하는 강력한 군사집단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사정이 좋지 않았던 크로아티아군과 보스니아 민병대들을 연달아 격파했고 심지어 유엔 평화유지군까지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놓고 공격까지 했다.''' 무기도 변변치 않았던 유엔 평화유지군은 강력한 기계화부대로 거듭난 스릅스카군 상대로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고 스릅스카군의 요구를 빈번히 들어줘야 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이러한 삽질 덕에 보스니아 내전이 더 큰 비극으로 발전했던 것.
스릅스카군은 크로아티아인과 보스니아인의 씨를 말리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거나 강간하고 다녔다.''' 사라예보 포위전에서는 스릅스카 민병대 저격수들이 보스니아 민간인들한테 총탄을 마구 날려댔으며 스레브레니차에서 '''8000 명 이상의 무슬림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집단학살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스릅스카군의 만행에 전세계가 경악했고 UN의 충분치 못한 대응에 비판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다보니 미국이 직접 발을 벗고 나섰고 1995년에 미군과 나토군 전력들이 스릅스카 민병대에 맹폭을 가해버린다. 기세등등하던 스릅스카 민병대는 나토군과 미군의 폭격에 큰 피해를 입었고 거기다가 미국으로부터 장비와 군사고문단 지원을 받은 덕에 피해를 수습하고 재무장을 한 크로아티아군이 스릅스카 민병대에 대반격을 가하면서 스릅스카 민병대는 점령한 보스니아 영토에서 물러나야 했다.
스릅스카군이 저지른 엄청난 학살과 만행때문에 스릅스카군의 주요 책임자들은 전범재판에 기소되었다. 당장 라트코 믈라디치는 국제전범재판소로 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그리고 유고 내전이 종식되면서 2005년, 이들의 규모는 4000명 수준으로 확 줄어들었고 2006년엔 보스니아군에 완전히 통합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는 상태이다. 여전히 분리주의자들은 있으며 심지어 총기로 무장한 준군사조직까지 구성했고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은 보스니아 정부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고 있어 EU에서는 제2의 보스니아 내전을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