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탬포드 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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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스탬포드 브리지'''
Stamford Bridge
'''시공'''
1876년
'''준공'''
1877년 4월 28일
'''소재지'''
잉글랜드 런던
SW6 1HS 풀럼 로드
'''보수'''
1904~1905년, 1998년
'''경기장 규모'''
103 x 67 m[1]
'''좌석 규모'''
40,834석[2]
'''설계자'''
아치볼드 리치[3]
'''소유'''
첼시 피치 오너스 plc.
'''운영'''
첼시 FC
'''UEFA 등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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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시절의 스탬포드 브리지[4]
1. 개요
1.1. 명칭
1.2. 소유권
2. 역사
3. 구조
3.1. 관람석
3.2. 부대 시설
4. 기록
5. 위치와 교통
6. 구장 증축
7. 둘러보기


1. 개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팀인 첼시 FC의 홈 구장이다. 첼시 창단 이후 현재까지 변경없이 쭉 사용해온 유서깊은 구장이다.[5]

1.1. 명칭


가장 유력한 설은, 18세기에 발간된 지도에 의하면 당시엔 현재 동쪽 스탠드 뒤쪽으로 지나고 있는 철로를 따라 Stanford Creek라 불리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 개울엔 다리가 두 군데 놓여있었으며 그 중 현재 스탬포드 브리지가 있는 풀럼 로드쪽에 있는 다리가 Stanford Bridge (혹은 Little Chelsea Bridge) 라고 불렸으며[6] 경기장 명칭 역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침공하기 직전에 해럴드 2세가 노르웨이군을 궤멸시킨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는 이곳이 아니라 요크셔의 지명이다. Stamford 또는 Stanford 라는 이름은 중세영어로 Sandy Ford, 즉 모래사장이 있는 여울가를 의미하는 단어 Samforde 에서 현재의 형태로 변한것이기 때문에 같은 지명이 영국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1.2. 소유권


소유주인 첼시 피치 오너스 그룹은, 첼시 FC의 공동 창립자인 조셉 미어스의 손자이자 당시 구단의 회장이었던 브라이언 미어스[7] 와 이사진이었던 데이비드 미어스가 1984년 Marler Estates plc에 구장 소유권을 매각/양도했다가 1992년 당시 구단주였던 켄 베이츠[8]가 다시 구장 소유권을 사들이며 일단락된 일련의 사태를 겪은 뒤[9], 향후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구장 소유권이 넘어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1993년에 세워진 비영리 주식회사이다. 구단 경영진/소유자로부터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현 구단주 혹은 회장은 영항을 미칠 수 없다.[10] 현재 스탬포드 브리지의 경기장 자체를 비롯해 개찰구, 구장 명명권 역시 소유하고 있다.

2. 역사


1877년 개장 당시에는 트랙이 포함된 종합 경기장이었으며[11] 주로 LAC(런던 체육 동호회)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는 전혀 축구 경기장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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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04년에, 1982년까지 대대로 첼시의 회장을 지낸 미어스 가의 형제 거스, 조셉이 운동장을 사들였고 아치볼드 레이치에게 설계를 맡겨 재건축한 뒤 1905년에 재개장했다. 처음에는 지역 축구단인 풀럼에게 임대를 권유했으나 거절되었고,[13] 이것은 첼시가 창단되는 계기가 되었다.[14] 이렇게 재개장된 스탬포드 브리지는 10만 명 전후의 관객[15]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경기장이었으며, 이는 잉글랜드 전체에서 가장 큰 크리스탈 팰리스 FC 다음가는 규모였다. 1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20년부터 1922년까지 FA 컵 결승전을 치루기도 하였으며, 그 밖의 수 많은 경기들이 개최되었다.
이후 관중석 등의 자잘한 보수, 확장 공사가 있었고, 1970년대에 경기장 재건축 계획이 있었으나 예산 초과 및 당시의 경제불황으로 인해 재정이 박살나 동쪽 스탠드만 공사가 완료된 채 클럽이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1982년켄 베이츠[16]에게 단돈 1파운드에 인수되었다. 이 때 택지 개발업자에게 넘어간 스탬퍼드 브리지의 소유권은 장기간의 분쟁을 거쳐 클럽[17]으로 돌아왔다.
1984-85 시즌에는 경기장에 난입하는 관중과 훌리건들의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관중석과 피치 사이에 전기 철조망이 설치되었으나 보건 안전에 대한 런던 시의회의 염려로 인해 한번도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노후화되어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던 트랙을 없애고, 힐스버러 참사로 인해 개정된 안전 조치 법안에 따라 관중석 전체를 좌석식으로 바꾸고 지붕을 짓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현재의 형태에 이르게 되었다.

3. 구조



3.1. 관람석


  • 매튜 하딩 스탠드 (북쪽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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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인원: 10,884명
1996년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이사진 매튜 하딩을 따서 명명되었다. 하딩의 투자로 인해 1997-98 시즌에 이르러 해당 스탠드 공사가 완료될 수 있었다. 매튜 하딩은 첼시 팬들에게 여러모로 평판이 좋지 않았던 당시 회장 켄 베이츠의 대항마로써 크게 인기를 끌었으나 베이츠는 하딩의 이사회실 입회를 거부하는 등 하딩의 영향력을 제한하고자 노력했다. 2층 구조이며 시즌 티켓 홀더들 대부분을 수용하고 있다.
  • 동쪽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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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인원: 11,000명
가장 오래된 스탠드로, 3층 구조이며 터널, 더그아웃, 드레싱룸, 프레스센터, 컨퍼런스룸, 중계 부스등이 모두 여기에 있다. 한편 1970년대에 구단을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동쪽 스탠드를 짓다가 자재 부족, 건축업자들의 파업 등으로 예산이 겉잡을 수 없이 초과되기 시작해 이후 재정적 위기가 닥친 구단이 팔리거나, 구장 소유권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등 수많은 문제를 양산했다. 원래 1층이 어웨이 팬석이었으나 2005-06 시즌, 당시 매니저였던 주제 무리뉴의 요청으로 인해 옮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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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모습은 이러했다.
  • 셰드 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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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인원: 6,414명
피치 남쪽에 위치한 셰드 엔드는 1930년 리모델링 이후 일부분에만 지붕이 씌워진 것을 두고[18] 1960년대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19] 현재는 1994년, 법 개정으로 인해 입석이 허용되지 않게 되어 재건축한 이후[20] 원래의 모습은 잃었으나 이름만은 그대로 불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장 열렬한 서포터들이 자리잡아 응원가 소리가 가장 큰 스탠드였으나 1994년 이후 매튜 하딩 스탠드로 많은 팬들이 옮겨갔다.[21] 반면 2005-06 시즌 이후로 옮겨진 어웨이 팬석이 이곳 동쪽 코너에 위치해있다. 현재 2층 구조이다. 첼시의 응원가의 가사에 나오는 Shed가 바로 이곳
  • 서쪽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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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인원: 13,500명
1964년 부터 1965년, 1998년에 각각 새로 지어졌다. 넷 중 가장 큰 스탠드이며 3층+1층[22] 구조로, 가장 마지막으로 재건축이 완료된 스탠드이다.[23] 풀럼 로드에 위치한 정문으로 입장하게 되면 보이는 스탠드가 이것이다.

3.2. 부대 시설


  • 첼시 메가스토어
  • 박물관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개장하며 입장은 4시까지만 가능하다. 챔피언스 리그 경기일와 직전일에는 개장하지 않는다.
구장 투어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3시 사이에 30분 간격으로 있으며 1시간여 동안 드레싱룸, 경기장 터널, 프레스룸, 박물관 등을 견학한다. 경기일이나 챔피언스 리그 홈 경기 전날에는 투어가 열리지 않는다.
  • 드레싱룸
홈측의 드레싱룸은 빅클럽이란 위상에 걸맞게 넓고 평범무난한 편이지만, 어웨이측 드레싱룸은 원정팀을 골탕먹이기 위한 온갖 술수로 악명이 높다. 일단 옷을 걸 수 있는 고리가 매우 높은 곳에 달려있어 옷을 갈아입는 단계에서부터 원정팀 선수들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24] 또한 원정팀 드레싱룸에 달려있는 거울은 미묘한 오목거울이라 선수들이 거울 앞에 서면 실제보다 왜소하게 보인다는 모양. 그리고 감독이 전술지시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이트보드는 드레싱룸 출입문 바로 뒤쪽에 달려있어 문을 열면 문이 보드를 가려버리는 통에 사용할 수 없다. 경기장 관광 가이드마저 어웨이측 드레싱룸을 설명할 때 ‘만약 오늘 경기에서 첼시가 이긴다면 저 문 덕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는 식으로 말할 정도.

4. 기록


홈 최다 연속 무패 행진 기록을 가진 홈 구장이다. 2004년~2008년까지 주제 무리뉴 감독 시절부터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까지 홈 '''86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한 바 있다. 이는 2021년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최고 관중: 82,905명 (vs 1935년 10월 12일, 아스널 FC[25])
최저 관중: 3,000명 (vs 1906년, 링컨)
또한 1919 - 20, 1954 - 55 시즌에는 전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평균 관중을 기록했다.[26]
EPL 출범 이후 시즌별 평균 관중은 다음과 같다. (리그경기 기준)
1992–93: 18,755명
1993–94: 19,211명
1994–95: 21,062명
1995–96: 25,598명
1996–97: 27,617명
1997–98: 33,387명
1998–99: 34,571명
1999–00: 34,532명
2000–01: 34,700명
2001–02: 38,834명
2002–03: 39,784명
2003–04: 41,234명
2004–05: 41,870명
2005–06: 41,902명
2006–07: 41,909명
2007–08: 41,397명
2008–09: 41,590명
2009–10: 41,425명
2010–11: 41,435명
2011–12: 41,478명
2012–13: 41,462명
2013–14: 41,490명
2014–15: 41,546명
2015–16: 41,500명
2016–17: 41,508명
2017–18: 41,282명
2018–19: 40,43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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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위치와 교통


런던 풀럼지역에 위치한 스탬포드 브리지는 하이드 파크와 해롯 백화점에서 3km 정도, 버킹엄 궁전에서 5km 정도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런던 지하철 디스트릭트 선을 타고 풀럼 브로드웨이 역에서 접근 가능하며, 얼스 코트 역, 런던 오버그라운드, 네셔널 레일의 웨스트 브롬턴 역이나 임페리얼 워프 역과도 가깝다. 런던 버스를 이용할 경우, 11, 14, 211, 414, N11번의 월럼 그린 정거장, 혹은 28, 295, 391, 424, N28번의 풀럼 브로드웨이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6. 구장 증축


러시아 석유 재벌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팀을 인수하면서 현실에서 리얼 FM드립이 최초로 나왔고 이후로 만수르와 같은 거물들이 축구 클럽을 인수하면서 골드 러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실제로 로만 역시 FM이 취미랜다. 흠좀무.
'''로만이 클럽을 아끼는 마음이 원체 커서''' 비단 선수단에 대한 입김뿐만 아니라 유스 클럽, 구장 증축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홈 구장인 스탬포드 브리지의 증축 또는 신축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다.
축구 월간지 베스트 일레븐 기사에 의하면, 첼시가 이젠 프리미어 리그 명문도 되었고 라이벌인 맨유나 아스날이 관중석 6만 석이 넘은 경기장으로 크게 확장하는 것을 보고 첼시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새로운 경기장을 지을 계획을 가졌다가 좌절당했다고 한다.
바로 현재 스탬포드 브리지 경기장을 로만이나 구단이 아닌 첼시 피치 오너스 그룹(첼시 경기장 소유자 그룹 : CPO)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첼시 FC란 이름 자체까지도 이들이 판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첼시가 다른 경기장으로 간다면 첼시라는 이름 자체를 내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고.
그렇다고 그들 주장대로 다른 경기장 안 가고 현재 스탬포드 브리지를 확장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 경기장이 자리잡은 곳이 런던에서도 땅값이 비싼 곳 가운데 하나라서[27] 새롭게 확장하자면 그 비용이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수준에 못지않게 든다고 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 토트넘도 약 3만 6천 석 정도의 관중석을 가진 경기장 화이트 하트 레인을 쓰고 있긴 했다. 그러나 토트넘은 새로운 경기장을 지었다. 스탬퍼드 브리지 확장이 어려운 이유를 분석한 글
급기야 2011년 10월 로만은 아예 첼시 피치 오너스 그룹 지분을 사서 경기장을 이전하려고 했지만, 주주 투표로 찬성률이 61%(총 75%의 찬성표가 나와야 인수 가능)에 그치면서 실패했다. '''게다가 이 자리에 나온 로만은 첼시 피치 오너스 주주들에게 온갖 야유와 휘파람 소리를 듣으며 무시당했다.'''
이와 반대로 '''더 여유로운''' 배경을 가진 맨시티가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계속 보강하고 경기장 주변을 아예 관련 공원 및 선수촌, 다양하게 만들려고 준비 다하고 (이미 땅도 척척 다 사들였다고 한다.) 교통까지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보면 알겠지만 철도선까지 만들어뒀기에 첼시 서포터들은 아주 부러울 듯. 맨시티 역시 첼시와 마찬가지로 구장이 구단 소유가 아니지만, 이는 로만보다 만수르가 더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28]구장의 소유주인 맨체스터에서 시설보강을 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드디어 증축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세한 상황은 나오지 않았지만 스탬포드 브리지를 6만 석으로 약 2만 석가량 증축하고 증축 공사 기간동안인 세 시즌동안 9만 명이 수용 가능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 경기장인 웸블리 스타디움이나 8만 2000명이 수용 가능한 잉글랜드 럭비 국가대표 전용 경기장인 트위크넘 스타디움을 임시 구장으로 사용하는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첼시측은 잉글랜드 럭비 협회(RFU)와 회담을 가진 상태라고...
하지만 2015년 9월 럭비 월드컵이 트위크넘에서 열리기 때문에 빨라도 16-17 시즌이나 돼야 가능할듯하다.
아무튼 영국 일간 데일리 미러에서 15일(현지시간) 첼시가 40,853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탬포드 브리지의 관중석을 약 60,000석 규모로 확장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첼시는 공사가 진행되는 3년간 스탬포드 브리지를 떠나 임대 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할 전망이다. 첼시가 임시 홈으로 사용될 경기장으로는 런던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과 트위크넘 스타디움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축 얘기가 나오고 꽤 오랜 시간동안 공식적인 허가가 나오지 않았는데 2017년 1월에 되어서야 해머스미스와 풀럼 의회에서 승인을 해줬다는 보도가 나왔다. '''5억 파운드''' 를 투자하여 약 60,000석 규모로 재건축 한다고 한다. 60,000석 규모로 증축되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올드 트래포드에 이어 2위권[29]의 규모에 해당된다.
그러나 2018년 5월 19일에 있었던 FA 결승전 첼시 vs 맨유의 경기에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영국 정부가 비자 갱신을 하지 않아 경기장에 오지 못했다. 로만의 비자 갱신이 더뎌진 건 사실 로만 개인의 문제 때문은 아니고, 정치적 문제 때문인데 2018년 3월 영국과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였던 세르게이 스크리팔이란 사람이 영국에서 독살됐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 보수당 정부는 사건의 배후로 푸틴 정권을 지목하고는 대 러시아 제재에 나서면서 러시아 정부에 우호적인 사업가들에 대하여 까칠하게 다루면서 그 중에 한명인 로만이 걸린 것. 로만은 러시아 국적이 영국 입국에 훼방이 된다고 이스라엘 국적까지 얻어냈지만 여전히 러시아 국적을 유지할 수 밖에 없기에 제제를 당해 분노한 로만은 이런 나라에 미쳤다고 1조원을 들여야할 경기장에다가 내 돈을 쓸 이유가 없다며 경기장 증축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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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2.6 x 73.2 야드[2] 최고 수용 인원은 1935년 10월 12일 리그 경기 vs 아스널 FC와의 경기에서 기록된 82,905명. 당시에는 입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록이다.[3] 이외에 풀럼의 홈 구장인 크레이븐 코티지, 셀틱의 홈 구장인 셀틱 파크, 레인저스의 홈 구장인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홈 구장인 햄던 파크 등을 설계하였다.[4] 현재는 첼시의 유니폼 스폰서가 나이키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좌석에 새겨진 아디다스 로고는 사라지고 나이키 로고가생겼다.[5] 이러한 이유로 스탬포드 브리지가 갖는 의미가 첼시 FC에게 워낙 각별하기 때문에, 아래 구장 증축 항목에 나오듯 홈구장을 옮기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6] 나머지 하나는 첼시 항목에서 볼 수 있는 킹스 로드쪽에 있었는데, 이 다리는 Stanbridge라고 불렸다 한다.[7] 브라이언 미어스는 아래에 명시된 구장 재개발을 추진했던 사람이기도 해서, 첼시 팬들에겐 원수나 다름없게 되었다.[8] 당시 첼시 팬들은 임대 계약이 끝나는 1989년이 되면 축구 경기장이 아닌 다른것으로 재개발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으며, 1987년에 베이츠가 직접 'Save the Bridge' 캠페인으로 모금 운동을 펼치는 등 복잡한 상황이었다.[9] 이 때 소유권은 Cabra Estates plc로 넘어간 상태였는데, 이들이 파산함으로써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하위 기관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켄 베이츠는 이를 사들인 것이다.[10] 이 때문에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장 확장 공사를 이유로 스탬포드 브리지를 사들이려고 했을 때 큰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11] 이로 인해 관람석과 피치 사이의 거리가 20미터 가까이 되었다.[12] 20세기 초반 스탬포드 브리지 전경.[13] 재건축 설계를 맡은 아치볼드 레이치는 바로 직전에 풀럼의 홈구장인 크레이븐 코티지의 재건축 역시 맡았는데, 스탬포드 브리지의 동쪽 사이드를 크레이븐 코티지의 조니 헤인스 스탠드와 똑같이 만들었고 이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인해 풀럼은 스탬포드 브리지로 이사오는 것을 거부했다.[14] 이것이 첼시가 해머스미스-풀럼 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첼시로 명명된 이유이다. 이미 같은 지역엔 풀럼이 있고, 경기장은 이미 지어져 있으니... 창단 당시엔 스탬포드 브리지 FC와 같은 이름도 제안되었다고 한다.[15] 공식적으로 수용인원이 10만 명이었다고 한다.[16]리즈 유나이티드 회장[17] 정확히 말하면 첼시 피치 오너스 그룹[18] 그러니까 [image] 이런 식으로.[19] 이전엔 풀럼 로드 엔드라고 불렸다.[20] 재개장은 1997년[21] 2010년대 전후 들어서 다시 열렬한 분위기로 되어가고 있다.[22] VIP석/임원석[23] 2001년 8월 19일 프랭크 램파드, 윌리엄 갈라스, 부데바인 젠덴, 에마뉘엘 프티가 데뷔 경기를 치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리그 경기에서 완전 개장.[24] 상대팀 선수들의 허리, 무릎, 햄스트링, 아킬레스건에 피로를 축적시킬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고 관광 가이드는 말한다.[25] 국내 경기 기준, 국외 경기를 포함하면 1945년 디나모 모스크바와의 친선 경기에서 10만 명이 넘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26] 19-20시즌에 전 잉글랜드 클럽 가운데 최초로 4만 명 이상의 평균 관중을 기록했다.[27] 스탬포드 브리지의 소재지인 풀럼이 부자동네로 유명하다. 꽤 많은 연예인들과 정, 재계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많은 수가 풀럼 FC 또는 첼시 FC의 팬이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구같은 동네.[28]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확장과 보강에는 맨시티의 자금이 아닌 맨체스터 시의 자금이 투자된다.[29]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 에티하드 스타디움(증축 예정),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런던 스타디움, 안필드(증축 예정)와 비슷한 6만 석급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