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중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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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중국'''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3. 문화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스페인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중국과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의외로 교류가 많았던 편이다. 스페인 본토와 중국과의 교류는 제한적이었으나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스페인인의 유입은 얼마 되지 않았고,[1] 사실상 중국계 화교들을 중심으로 유지, 운영되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스페인에서 번지고 중국 해커들이 스페인 백신 기술을 절도했지만 오히려 중국 정부 차원에서 증거가 있음에도 적반하장으로 이를 발뺌하면서 스페인에서 반중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한 이후, 필리핀을 통해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스페인도 마카오와 새로 얻은 식민지 필리핀을 통해 중국 명나라와 많이 교역했으며 특히 명나라에 누에바에스파냐의 사카테카스와 포토시 은광에서 나는 이 갈레온 삼각무역을 통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명나라 경제와 조세제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날의 볼리비아에 해당하는 포토시에서 생산된 은은 오늘날 멕시코에 해당하는 아카풀코 항을 거쳐 마닐라로 운송된 이후, 명나라로 가서 상품 구매 대금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누에바에스파냐 즉 오늘날의 필리핀과 멕시코 각지에 대거 이주 정착했다. 필리핀에 이주정착한 중국인들은 갈레온 무역 루트를 따라 멕시코에도 정착하였으며, 종종 스페인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서 멕시코나 필리핀에서 데려온 중국인 하인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유명 해적 리마홍이 필리핀의 스페인인 정착지를 습격하고 마닐라 전투(1574년)까지 일어나면서 스페인은 중국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1603년에 마닐라에서 화교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스페인측에서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국인 사상자가 6만여 명에 달하였고, 1609년에는 화교들이 세금 인하를 요청하며 폭동을 일으켰다가 진압 과정에서 2만여 명이 중국인 사망하였다. 만약 영락제정화가 살아있던 시절이었다면 중국과 스페인이 대판 싸웠겠지만 당시 명나라 황제는 그 유명한 만력제였다. 1603년 학살 당시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우리 땅으로 온 중국인들이 반란 일으킬 것 같아서 몇만 명 정도 처형했으니 그렇게 알아두셈."이라고 말하자 조정에서는 누에바에스파냐 측에 "응 알았어." 정도로 대답하고 사건을 끝냈으며, 아예 명나라 조정을 만만하게 본 누에바에스파냐 관료들이 1603년 학살 이후 새로 들어온 중국인 노동자들을 또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자, 조정에서는 "여송(필리핀)에서 오래 거주한 사람들은 더 이상 명나라 백성이 아니다."라는 엉뚱한 대답을 하면서 누에바에스파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국계에 대한 반란 진압과 학살 이후에도 필리핀의 스페인인들은 중국인들을 계속 필리핀 마닐라로 이주하는 것을 받아줄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스페인인들이 퍼트린 질병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궤멸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필리핀에서는 열대 질병이 원주민보다 오히려 스페인인들에게 좀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중국인이라고 필리핀의 열대성 질병에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쪽은 죽는 속도보다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필리핀 현지 원주민들은 중국계나 아즈텍 원주민들의 경우와는 다르게 아예 돈 거래나 임금노동자 개념 자체를 잘 몰라서 생산성이 낮은데다가, 중국계가 식자율이 훨씬 더 높았고 결국 필리핀 식민지의 운영은 명목상은 스페인계가 사실상은 중국계 화교들의 힘으로 굴러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사를 반영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인구 상당수가 이베리아계 백인 남성과 원주민 여성 혼혈의 후손인 메스티소인 것과 다르게, 오늘날 필리핀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유럽계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평균 3%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며, 동아시아계 조상을 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스페인측은 명나라와 갈등이 생기면서 중국을 정복한다는 계획까지 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만주족청나라가 들어서고 남명 견제를 위해 해금 정책을 실시하자 잠깐 교류가 주춤하기도 했으나 강희제가 대만 섬 수복으로 해금령을 풀자 다시 교역이 활발해졌다. 보통 마카오와 마닐라, 그리고 아카풀코의 산디에고 연안 요새[2]를 잇는 방식으로 교역했다.
19세기까지 중국과 스페인간의 교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중남미와 필리핀을 통해 자주 이뤄졌다. 그리고 푸젠 성광동 성 출신 화인들이 대거 스페인 식민지인 필리핀이나 라틴아메리카 등으로 이주했고 대부분 멕시코, 페루, 쿠바, 칠레, 파나마 등에 정착한다.

2.2. 20세기


20세기에는 프랑코 정권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대만과의 관계만 유지했다. 프랑코 사후, 스페인측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했고 중국과 수교했다. 하지만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그러나 민간 차원에선 중화민국, 즉 대만과 교류가 많다.
이 시기에 상당수의 대만에서 화교들이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현지 사회에 기여를 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만 열심이고 빈민가 형성을 조장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수익을 올리기 쉬운 비좁은 단칸방 위주로 환기도 안 되게 집을 지어놓고 월세 받을 생각만 하기도 한다. 이러면 그 건물 주변에 마약 중독자들이나 무학자 난민들이 몰려오기 쉽다.)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스페인에서는 아직도 대만 중국 가리지 않고 중국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한 편

2.3. 21세기


현대에는 중국과의 교류가 많은 편이다. 스페인어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지만, 대개 멕시코식 스페인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중국도 스페인을 통해 중남미 국가들과 교류를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스페인내에도 중국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홍콩마카오에서는 스페인어 학습자가 많으며 특히 홍콩에서는 미국에서 출간된 영어 교재를 그대로 쓴다. 그래서 이쪽은 미국식으로 멕시코 스페인어가 표준이다.
홍콩에서는 홍콩 섬 남부 스탠리와 사이버포트 일대에 주로 스페인인들이 많이 산다. 마카오 역시 포르투갈이 지배했던 포어권이며 비슷한 언어인지라 스페인인들은 스페인어만 써도 마카오 여행이 가능하다. 더구나 마카오의 변호사, 의사 등은 대개 포르투갈인들이나 혼혈인 중국계 마카오인, 즉 마카니즈들이라 이들과 의사소통에서는 그대로 스페인어를 쓴다.
서방 국가들이 한 목소리로 비판하는 중국 공산당홍콩 탄압에 스페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제가 끼어있다 보니...
홍콩에는 캐세이패시픽항공마드리드바르셀로나에 직항을 데일리로 넣고, 스페인의 하늘을 찌르는 청년실업을 피해 홍콩에 건너와 일하는 스페인 사람도 아주 많다. 통상적 고정관념과 달리 홍콩에 건너오는 스페인 사람들은 비 중국계 외국인인지라 영어를 할줄 알아야 해서 영어 구사력이 뛰어나며 대개 금융업에 종사한다.
2019년에는 중국 축구선수 우레이에스파뇰에 입단하기도 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스페인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사망자와 확진자도 늘어남에 따라 반중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으며, 한 동안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2020년 3월 25일에 스페인은 중국으로부터 마스크와 검사키트를 유상으로 공급받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상으로 수입한 검사 키트의 신뢰도가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중국 해커들이 스페인 연구소의 코로나19 백신 자료를 훔쳤다.#

3. 문화 교류


전술했다시피 중국에서도 스페인어의 인기가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중국내에서 배우는 스페인어는 멕시코식 스페인어이다. 스페인과 중국을 잇는 노선이 많이 생겼고 중국인 관광객들도 스페인으로 관광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서도 스페인어 시험인 DELE시험이 치뤄지고 있고 스페인에서도 HSK가 실시되고 있다.
중국내에서도 스페인의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4. 관련 문서


[1] 오늘날 필리핀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유럽계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평균 3%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동아시아계 유전자가 훨씬 많았다.[2] 멕시코 영토였다가 미국으로 넘어간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 시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