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문화

 



1. 상세
2. 국민성
3. 언어
4. 스포츠
5. 예술
6. 문학
9. 종교
10. 성 문화
11. 기타


1. 상세


스페인은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기독교이슬람이 공존했던 역사의 영향으로 유럽 국가치고 특이하게도 곳곳에서 아랍 문화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명한 그라나다 토후국의 알함브라 궁전이라든지 세비야의 히랄다 탑과 알카사르 궁전 그리고 모스크교회로 개조한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등에서 서유럽 속에 녹아든 이슬람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런 탓에 아랍인계나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에게 '이슬람 유적이 없었다면 스페인은 관광 대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조롱을 받고는 한다.
스페인에서 '''알'''함브라, '''알'''카사르 등 '알'[1]로 시작하는 명칭과 단어들은 십중팔구 무어인의 유산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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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슬람이 별로 건드리지 못한 북부의 지역들(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레온, 나바라, 바스크 등)도 나름대로의 관광 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북부 지역은 켈트인들이 원래 살다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으로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라틴화된 곳들로 북부의 지역들은 아랍인투아레그인들이 쳐들어오긴 했으나 춥고 비 오는 날씨를 싫어하던 아랍인들은 비교적 하위계층으로 차별받던 투아레그 등 베르베르인들에게 이 지역을 맡겼고, 이 지역 베르베르인들은 결국 아스투리아스 등 토착 로마인 세력에 밀려버려 이 지역의 독립을 허용했으며 이는 레콩키스타의 기원이 되었다. 아스투리아스를 시작으로 기독교 왕국들이 북부에서 할거하면서 이슬람에 정복당한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 대한 재정복이 시작되었다.
특히 스페인 북부 지역을 순례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나름 유명하다. 이 곳은 대 야고보의 유해가 묻힌 곳으로 대 야고보는 스페인어산티아고라고 부르며[2] 성 야고보는 아랍인, 투아레그인을 몰아낼 때 '''무슬림 처단자''' 즉 마타모로스(Matamoros)[3],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때는 세미놀, 체로키, 치치멕, 아즈텍, 타이노 등 북아메리카아메리카 원주민들이나 남아메리카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인 잉카 등을 정복하며 '''아메리카 원주민 처단자''', 즉 마타인디오스(Mataindios)로 불렸다. 심지어 프랑코 정권 때는 일각에선 빨갱이 처단자인 마타로호스(Matarojos)로 부르려는 시도까지 하는 등 스페인인들의 수호성인 답게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레콩키스타와 신대륙 정복 등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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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지역은 이런 곡물 창고(Hórreo)들로도 유명하다. 나름 서민적이고 농촌적인 분위기가 있는 풍경들이며 원래 켈트인이 살던 곳이라 그런지 살짝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켈트인들이 사는 다른 서유럽과도 닮았다.

2. 국민성


느긋한 국민성으로 유명하지만 이 사람들도 운전대만 잡으면 그런 거 없다. 느긋한 국민성이라는 것도 사실 없어도 여유 있는 척 하는 카스티야, 그냥 사는 것이 춤과 여흥인 안달루시아 같은 곳이지 예전부터 상업이 발달했던 카탈루냐 사람들은 되려 깍쟁이, 명예 독일놈 등의 소리를 듣는 등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가장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크게 역사적 지방을 갈리시아,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바스크, 카탈루냐, 북부 산악 지방으로 나누어서 본다면 그 역사적 지방마다 사회적 성향도 크게 다른 편이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중심인 카스티야 사람들은 다른 지방보다 더 기사도적 자긍심이나 엄숙함이 강하다고 말하고 안달루시아는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길거리 창문마다 시끄럽게 소리지르며 수다 떠는 '''뜨거운 남유럽'''의 분위기가 강한 반면 상업이 발달한 카탈루냐는 오히려 프랑스와 가까우며 나머지 지역들과는 전혀 다르고 언어나 문화가 포르투갈에 더 가까운 갈리시아인들은 비슷하게 되려 차분하고 소박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농담조로 예비 독재자들이라는[4] 소리를 듣고 나바라-바스크 지방의 바스크인들은 나머지 이베리아 반도인들에 비해 엄숙하고 무뚝뚝한 사람들이란 선입견이 있고 아라곤의 경우 험준하고 투박한 산사람들로 통한다.
물론 전부 다 반은 농담조로 하는 일반화니 너무 진지하게 듣지는 말자.
이 때문인지 전통 음악도 생각보다 다양하다. 스페인 북부는 우리가 흔히 스페인 하면 생각하는 플라멩코식의 음악이 아닌 오히려 켈트 음악에 더 가까운 스타일을 띤다. 사실 당연한 것이 스페인 북부에 켈트족이 살았기 때문이다?이베리아인들과도 혼혈이 있었으므로 아일랜드스코틀랜드의 그것과 거의 똑같으나 크기가 좀 작고 톤이 더 날카로운, 스페인어로 '가이따 (gaita)라 부르는 백파이프를 비롯한 켈트 문화가 꽤 남아있고, 이런 켈트 문화 자취가 남아 있는 갈리시아, 아스뚜리아스, 깐따브리아 북부 3개 지방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브르타뉴 같은 북서부 유럽의 켈트 문화권과도 전통 음악 콘서트, 게일어 학회 같은 문화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게다가 관광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남부 안달루시아, 카스티야 지방은 과거 아프리카 출신 투아레그아랍인에 지배당한지라 무어 이슬람교 문화를 크게 홍보하는 것에 대한 북부 지방들의 대항마로서도 켈트 문화, 고고학을 밀어주는 편이다. 스페인 북부는 원래 켈트인들의 땅이었다가 나중에 로마의 갈리아 원정으로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으며 당연히 켈트 문화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이들은 나중에 들어온 고트족들과도 자신을 구분하며, 아랍인들은 춥고 비 오는 북부로는 가지 않아 전통이 고스란히 유지될 수 있어서 레콩키스타도 북부 지역에서 출발했다.
카탈루냐아랍인들이 차지했다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축출당해 바르셀로나 백작령이 된 과거 덕분에 프랑스와 오히려 분위기가 비슷하며 나머지 스페인과는 이질적이다. 괜히 카탈루냐 독립을 주장하던 게 아니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인 시에스타(siesta)는 점심시간에 자는 낮잠 또는 휴식 시간을 말하는데 보통 점심 시간을 2시간 정도로 길게 잡아 식사 외에 사교, 휴식 등을 취한다. 사실 자는 사람보다는 나와서 노는 사람이 더 많다. '스페인의 무더운 날씨 + 이것을 이겨내기 위한 에너지 소모를 보충하기 위한 많은 식사량 = 식곤증'이라는 공식으로 이쪽 지역과 구 식민지 지역 등에서는 보편화된 풍습이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한 습관인 셈이다. 그래서 집안 잔치나 결혼식 피로연 같은 행사도 저녁에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스페인 정부에서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적으로 2006년도에 관공서의 시에스타를 금지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의 대도시라면 몰라도 조금만 지방으로 나가면 시에스타는 아직도 굳건히 지키는 면이라 아직도 가게마다 오후 1시~2시에서 4시~5시 정도 사이에는 칼 같이 문을 닫고 역사적 명승 고적 같은 관광지도 문을 닫을 정도로 음식점도 커피, 와인 등의 음료수만 마실 수 있게 바텐더 1명만 일하고 주방은 문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주의해야 한다.
대개 아침 10시 전에는 웬만한 가게들은 문을 안 여는 반면 밤 7시 이후에서 10시 사이까지 기본으로 영업하는 곳들이 많다.[5]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의 대도시에는 주말만 되면 밤 12시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일가족 다 나와서 저녁 먹으러 가는 모습도 흔하다. 실제 스페인은 영국보다 서쪽에 있지만 중부 유럽 표준시를 쓰기 때문에 영국보다 1시간이 빠르다. 게다가 서머타임까지 실시되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일출은 여름철 오전 7시 이후로 크게 늦춰진다. 같은 경우 일몰 역시 오후 9시로 늦어지는 만큼, 대도시 일부 식당은 밤 12시까지도 영업하고 술집은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여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크리스마스, 부활절, 성주간[6] 같은 축제 계절이면 세비야 같은 곳에서는 동네 사람들 모두 자정에 저녁 먹으러 나와서 새벽 3시~5시 쯤에 본격적으로 놀고 아침 7시~8시 해가 뜰 즈음에야 추로스와 코코아로 해장을 하고 집에 자러 들어가 그날 저녁에 일어나 다시 저 짓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도 적잖게 볼 수 있다. 비단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모두 멋있게 풀 빳빳하게 먹인 양복이나 허리와 가슴 깊게 패인 드레스 입고 나와서 밤 새도록 축제를 즐긴다. 이런 문화를 즐기는 사람에게야 더 할 나위 없이 즐거운 곳이지만 생활이 규칙적이고 시끌벅적한 것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벽 6시까지 동네 애들이 폭죽 터뜨리며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는 저런 축제 주간의 세비야, 말라가, 카디스는 그야말로 쥐약이니 여행 갈 사람이라면 미리 조사를 해 두어 봉변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7]
동네 주점 문화가 크게 발달되어 있어서 길목마다 음식도 팔고 도 팔고 커피도 파는 주점들이 있고 밤낮을 안 가리고 손님들이 있어 하루종일 수다 떨고 한잔 하고 논다. 비단 주점뿐만이 아니라 여가 행위도 대부분 집 밖에서 하고 집 안은 그냥 잠 자고 밥 먹고 TV보는 곳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3.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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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언어사용실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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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의 언어 사용의 대략적인 역사적 변화
이베리아 반도는 인문학적, 역사/비교언어학적 관점에선 로망스 어군의 언어 발달 역사의 살아있는 박물관도 같은 보고요, 정치학적 관점에선 "사투리가 군대와 정부를 가지게 되면 언어가 된다"는 명제의 산증인인 고유어와 그 사회적, 정치적 의미가 얼마나 시끄러워질 수 있는가 그대로 보여주는 산증인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전국 공용어는 흔히 스페인어라고 하는 카스티야어(castellano)다. 스페인 바깥에서는 '스페인어'라고 하지만 스페인은 본래 연합 왕국에서 시작한 국가인 만큼 지역색이 강하고 각 지역이 서로 다른 언어를 써 왔다. 스페인의 각 자치 지방(comunidad autónoma)은 전국 공용어인 카스티야어와 함께 다른 언어를 지방 단위 공용어로 지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몇몇 지방이 그 지역의 언어를 지역 단위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다음의 언어들이 지방 단위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 castellano(카스티야어): 유일한 전국 단위 공용어.
  • galego/gallego(갈리시아어): 갈리시아 자치 지방의 공용어. 포르투갈어의 방언으로도 취급될 정도로 매우 비슷하다. 중세까지만 해도 한 언어였다.
  • euskara/vasco(바스크어): 바스크 자치 지방, 나바라 자치 지방 바스크어 사용 지역의 공용어. 스페인 내의 나머지 언어들은 모두 로망스어군으로 같은 계통의 언어지만 바스크어는 계통이 밝혀지지 않은 고립어다. 때문에 언어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 català/catalán(카탈루냐어): 카탈루냐 자치 지방, 발레아레스 제도 자치 지방의 공용어. 사실 카탈루냐어가 국가 단위 공용어인 나라로 유일하게 안도라가 있지만 안도라가 워낙에 작은 관계로 카탈루냐어 사용자가 가장 많은 곳은 스페인이다. 분리 독립 운동마저 있는 카탈루냐에서는 공항 등의 기반 시설 안내판에도 카탈루냐어(노란색 강조, 큰 글씨): 영어(흰색, 작은 글씨): 카스티야어(노란색 강조, 큰 이탤릭체 글씨) 순서대로 쓰여있어 여행객들을 혼란하게 만들기 일쑤다. 라틴어 계열 언어 중 하나인 옥시타니아 어권 지역이다. 그래서 카탈루냐어는 프랑스어에서 볼 수 있는 세디유(ç)가 쓰이는 반면 일반 스페인어에 있는 ñ는 ny로 풀어서 쓰는 차이점이 있다.
  • valencià/valenciano(발렌시아어): 발렌시아 자치 지방의 공용어다. 카탈루냐어와 큰 차이점은 없다고 하나 카탈루냐 지방과는 약간 다른 카탈루냐어를 쓰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카탈루냐어가 아닌 '발렌시아어'가 공용어로 제정되어 있고 맞춤법도 카탈루냐의 카탈루냐어와는 조금 다르다.
  • aranés(아란어): 카탈루냐 북서부 국경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로 오크어의 일종이고 카탈루냐 자치 지방의 공용어다. 그러나 화자 수는 극히 적다.
크게 보면 현대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고유성을 인정 받는 '역사적 민족 집단' (nacionalidades historicas)의 '국어'로 인정 받는건 우리가 아는 그 스페인어인 카스티야어, 일상에서 의미가 통하는 차원에선 같은 언어라 봐도 될만큼 가까운 포르투갈-갈리시아어, 역사적 대 카탈루냐 공동체 (paisos catalans)의 보편 언어였던 카탈루냐/발렌시아어[8], 상술한 로망스어군의 동질성에 하나도 해당 안되는 바스크어 크게 4가지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원래 처음부터 이런 분류가 딱딱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중세 초기의 불가타 로망스어가 수백, 수천년에 걸쳐 분화와 발전을 겪으며 레온어, 아라곤어 같은 몇몇 지역 언어는 사멸 수준으로 모어 화자가 사라졌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문화적 연속성으로 고유어 보존이 쉬웠던 갈리시아,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언어구조가 확 달라 원래 이런 걱정 전혀 안해도 되는 바스크어권, 근대 들어 경제, 상업적 부흥을 겪으며 지역 지식인들의 집중 투자와 케어로 문예부흥을 겪은 카탈루냐어가 유의미한 집단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지방 고유어를 적지 않게 썼고, 언어적으론 카스티야어권이지만 지방 문화, 지역 정체성으론 확고하게 다르다고 선을 긋는 아스투리아스, 레온 지방 가서 "당신네들은 지역 고유어 없음?"이라 물으면 "원래부터 아스투르-레온어는 카스티야어의 사투리 수준에 불과했다", "확실한 독자 언어인데 정치적으로 소외된거다", "고유어 없다니 뭔 소리냐 우리 레온 사람이 하는 말이 레온어다" 등 엄청나게 다양한 대답과 복잡미묘한 지역 정체성에 관한 썰을 들을 수 있다.
소수의 각종 방언도 공용어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그 지방에서 지위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색이 대단히 강해서 언어 분화의 정도가 상당히 크고 이 차이를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페인어 이외에도 메이저 3개 지역 공용어(카탈루냐어, 바스크어, 갈리시아어)에 대한 방송국들이 다 있을 정도다. 갈리시아 지역의 CRTVG#, 바스크 지역의 EiTB#, 카탈루냐 주 지역의 TV3# 등. TV3는 축구 유니폼에도 있어서 많이 보이는 채널이다.
영어 구사율은 그리스를 제외한 다수의 다른 남유럽 국가들이나 동유럽 국가들이 그렇듯이 비영어권 게르만 국가인 네덜란드, 북유럽(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스페인어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모국어 화자 수는 영어를 추월하고 있어서 자국어만 알아도 전세계 어디에나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영어 구사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라고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스페인어 통용되는 전 세계 땅 면적 자체는 넒어도 특정 문화권, 대륙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몰라서 외국어를 잘 안배울까. 사실 외부 방문객들이 여전히 종종 지적하는 관광대국치곤 영 곤란한 스페인인들의 영어 공포증은 스페인인들이 딱히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프랑코 정권의 문화적 유산인 점이 더 크다.
애초에 나머지 유럽과 비슷하게 스페인 식자층은 옛날에는 라틴-그리스 고전어, 근현대와선 영어, 프랑스어도 어느정도 구사하는게 당연한 소양이었는데, 한창 텔레비전을 비롯한 현대 국제적 대중매체가 한창 성장하던 시절 스페인을 다스리던 프랑코 정권은 특히 반대파 구 공화파 잔당 망명객들이 많이 정착한 미국, 중남미,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의도적으로 폐쇄주의를 밀었고, 정권 말기에 가서 관광산업이 성장하자 오히려 한동안은 이렇게 '해외의 나쁜물'에서 스페인 대중을 분리시키려는 시도는 독재자가 죽을때까지 더 심했다. 당시 스페인에 수입되던 해외영화는 무조건 더빙을 강요당하던게 가장 대표적인 예. 영어 정도는 대부분 어느정도 구사하는 현대 유럽인들의 외국어 학습을 책임지는게 어린시절 부터 '''자막으로''' 보고자라온 영미권 영화, 티비쇼인걸 생각하면 이런 일련의 정책들은 현대까지도 상당히 골치아픈 유산을 남긴 셈이다.
한국에서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에 비해서 우선 순위가 크게 밀리지만 스페인이 아메리카에 워낙 방대한 식민지를 구축한 덕에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4억이 넘고 미국히스패닉까지 합치면 더 오른다. 미국 내에 2020년까지 히스패닉의 숫자가 4천만 명가량 될 것으로 추정되고 이미 히스패닉 전용 방송국과 마켓이 형성되어 있다.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중국어에 이어 2번째로 많고 제2화자 수까지 합치면 5억 5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구사 가능한 언어다. 이렇게 스페인어는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이 있는 언어로 특히 아메리카 대륙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배워보는 것도 좋다.
스페인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각 지역의 언어의 영향을 받아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고 발음에서 차이가 있는 편이다.(카탈루냐 지역에서는 끝의 -dad가 카탈루냐어의 영향으로 -dat으로 바뀌는 것, 바스크 지역에서 k표기가 자주 보이는 것 등) 그리고 스페인 본토와 중남미쪽의 표현이 다른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기본적으로는 같은 스페인어기 때문에 대화는 통한다.
스페인도 과거에 알안달루스시절에 안달루시아 아랍어라는 아랍어 방언이 사용된 적이 있었지만, 아랍인들이 추방되면서 소멸되었다. 지정학적 가까움으로 인해 그나마 현대 마그레브 아랍어 방언에서 옛 안달루스 아랍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거라 추측된다. 그리고 모사라베들이 썼던 모사라베어라는 언어도 알안달루스 시절에 사용되었다. 모사라베어는 무슬림들의 이베리아 통치 시절 피정복민인 모사라베들이 쓰던 언어인데, 안달루스 로망스어라는 학술 용어로도 알려져있다. 모어 화자야 현대 들어와서 당연히 없지만 고대 말, 중세 초의 속 로망스어가 근현대 스페인어로 진화하는 긴 역사적 과정 와중 얼마나, 어떤 식으로 아랍어의 영향을 받았는가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서 학문적 가치가 높다. 그리고 이디시어독어의 관계 비슷무리하게 쓰는건 히브리 문자를 써도 입말은 현대 카스티야어와 연속성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이베리아 반도 세파르딤 유대인들의 고유어인 라디노어도 마찬가지로 문화인류사, 유대민족사 관점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4.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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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이렇지만 실제로는 스페인 관광청#에서조차 투우에 관한 내용을 찾기 힘들다.
대체적으로 스페인 하면 투우로 상당히 유명하지만 투우는 최근 동물 보호 논란과 경기 자체의 위험성 등으로 인해 인기가 예전보다 퇴색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각 국가의 전통적 행위에 대해서는 EU의 규제를 따르지 않아도 좋다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다시 조금씩 부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단적인 예로 최근 통계 조사에 따르면 스페인 여성의 신랑감 1순위가 의사, 변호사였고 2순위가 투우사였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 투우는 보편적인 스포츠가 아니라서 투우 관람 말고도 여러가지 할 것도 많고 막상 여행을 가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박물관 견학이 아닌 실제 경기 관람은 현지인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다. 현대 들어와서 투우는 대도시의 젊은 사람들은 오히려 자국의 부끄러운 폐습이라며 진저리치는 반면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중심의 시골 농촌의 고령층들은 오히려 요새 젊은놈들, 도시놈들이 우리 문화를 억압하려 든다하며 절대 사수하려고 드는, 현지인들이 별로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은 민감한 사회문화적 논란거리에 더 가깝다. 다른 국가에서 오는 유럽인들도 이것을 알아서 스페인 하면 따뜻한 날씨와 해변을 생각하지 투우를 보러오지는 않는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카탈루냐 지방 정부 차원에서 투우를 금지해서 해당되지 않는다.
축구의 경우는 자국 리그인 라리가(프리메라 리가, 특히 엘 클라시코)가 전세계 축구 리그 중에서도 수위권을 다툴 정도로 유명한데 국대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강팀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운이 따라주지 않아 항상 고배를 마시는 비운의 팀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티키타카 전술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08년, 2012년 유로컵 우승을 연속 차지하며 한때 말이 필요 없는 최강국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 탈락[9]하는 이변을 보이며 황금기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평이 많았는데 최근 유로 2020 예선을 거치며 옛 명성을 되찾으려 부활하는 중이다. 브라질만큼은 아니지만 이 국가도 일반인들이 축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편이다. 축구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조.
실내 축구인 풋살도 세계적인 강호로 축구 월드컵보다 먼저 풋살 월드컵을 연이어 우승했을 정도다. 2000, 2004 FIFA풋살 월드컵 연속 우승 국가고 6회 2008 풋살 월드컵에서는 개최국 브라질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해 준우승했다. 그래서 피파 풋살 랭킹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 2012년 11월에 태국에서 열린 7회 풋살 월드컵에서도 5승 1무(1무는 이란에게 비긴 1:1) 무패 행진으로 결승에 진출해 또 브라질과 결승에서 격돌하게 되었는데 2-3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또 준우승했다.
농구도 잘한다. 국제농구연맹(FIBA)선정 세계 농구리그 랭킹으로도 몇 해째 줄곧 2위(1위는 알다시피 NBA)다. 흔히 알고 있는 대개의 프리메라 리가 축구팀은 농구팀도 함께 운영[10]하고 있고 농구 선수들이 등장하는 광고도 거리에서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 스페인 농구 국가대표팀 참조할 것.
배구도 축구, 농구에 비해 덜 알려져 있을 뿐 세계무대에서 굵직한 활약을 남긴 바 있다.
골프테니스는 국민 스포츠 대접. 강수량이 부족한 국가임에도 테니스장과 골프장 잔디를 유지하는데 쓰는 스프링클러를 아깝다 생각하지 않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골프는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유명하고, 테니스로는 '황제' 로저 페더러세르비아의 테니스 영웅 노박 조코비치와 왕좌를 놓고 다투는 먼치킨 라파엘 나달을 비롯해 총 4명의 세계 랭킹 1위가 배출되었다. 남자부의 카를로스 모야,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여자는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가 있다.
특이한 점은 스페인만큼은 유독 클레이코트 스페셜리스트가 많다는 것. 위에 언급된 이유로 물 부족에 늘 시달리는 이유도 있다 보니 대부분의 테니스 코트가 클레이코트고 그래서 클레이코트에 강한 선수들이 주로 나온다. 당연히 자국 최대 대회인 마드리드 마스터즈 역시 클레이코트. 윔블던 결승전 같은 큰 경기 때에는 거리에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 밖에도 배구도 상당한 강호다.[11]
도로사이클 강국으로도 유명하다. 3대 그랑뚜르중에 하나인 부엘타 아 에스파냐[12]의 개최 국가고 과거에는 페데리코 바하몬테스, 80년대에는 페드로 델가도, 90년대에는 미겔 인두라인, 0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알베르토 콘타도르라는 사이클계의 거물들을 배출한 국가로 유명하다. 현역 선수로는 알베르토 콘타도르, 사무엘 산체스, 알레한드로 발바르데와 같은 클라이머들로 유명하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없지만 모터스포츠도 강국. F1페르난도 알론소모토 GP의 호르헤 로렌조, 다니엘 페드로사가 유명하다. F1의 경우 스페인 선수 중 페르난도 알론소 혼자 독보적으로 잘하는 수준이지만 모토 GP같은 경우 이탈리아, 스페인 선수들이 쌈싸먹는 곳이다. 2013 시즌 최연소 챔피언인 마크 마르케즈가 스페인 선수고 2014 시즌 무려 6연속 폴포지션을 먹은 미친 실력을 보여 준 국가다. WRC의 전설 중 한명인 카를로스 사인츠도 이 국가 사람이다. 그의 아들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F1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있고 현재 스쿠데리아 페라리 소속이다[13]
반면 피레네 산맥이라는 산지를 끼고 있음에도 동계 스포츠는 매우 약한 편.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에서 알파인 스키 금메달,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역시 알파인 스키 동메달을 제외하고는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이 전무하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30년 만에 알파인 스키 3관왕을 배출했으나 그 장본인인 독일에서 귀화한 요한 뮐레크(Johann Mühlegg)는 약물 복용이 적발되면서 메달을 모조리 박탈당했다. 참고로 삿포로 금메달리스트인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즈 오초아(Francisco Fernandez Ochoa)와 알베르빌 동메달리스트인 블랑카 페르난데즈 오초아(Blanca Fernandez Ochoa)는 부녀 지간이다. 그러다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와 피겨 스케이팅(하비에르 페르난데스)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26년만에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기쁨을 누렸다.

5. 예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답게 여러 예술 작품이 많은 국가다. 가장 유명한 화가들만 나열해도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고야를 거쳐 20세기에 들어서도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같은 미술사에 빠질 수 없는 쟁쟁한 이름들이 포함된다.
건축에서는 페르시아와 비잔틴의 그리스 건축물의 영향을 받은 오랜 이슬람의 영향으로 다른 서유럽 국가와는 색다른 전통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지간한 규모의 도시마다 중심부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고딕 양식의 성당들도 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 현대 건축가로는 바르셀로나의 아이콘적 존재인 안토니 가우디를 빼놓을 수 없다.
안토니 가우디는 카탈루냐 전통양식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아르누보 기법에 고딕,로마네스크 양식과 자신이 눈으로 경험한 자연풍경을 조합하여 독특한 그 만의 양식을 창조했다. 가우디를 비롯해 도미니크 이 몬테다르[14], 조셉 푸이그이 카다필크 등 이러한 독특한 스페인만의 모더니즘 건축을 추구한 학파들을 '''Modernista '''라 부른다. 바르셀로나멜리야등지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바르셀로나 한 도시에만 무려 '''9개의 세계문화유산'''이 등록되어 있고, 이중 7개가 가우디의 작품이다. 그야말로 바르셀로나의 밥줄로 입장료로만 거둬들이는 수익만 웬만한 대기업에 버금간다.
또한 애니메이션 강국이기도 하다. 한국의 EBS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애니메이션 '곰돌이와 비키의 모험', '미운 오리 새끼 페오'를 제작한 Neptuno Films#가 이 국가의 대표적인 회사다. 고스트 메신저에 참여할 뻔했고 그 외 국산 애니메이션 빼꼼과 '비키와 조니', '알렉스의 모험' 등을 이 국가와 공동 제작했다. '링스 어드벤쳐', '엘시드' 같은 극장판 애니메이션들도 꾸준히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복권 산업이 매우 활성화된 국가인데 특히 엘 고르드는 1763년부터 발행된 역사가 긴 복권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고 여름과 겨울 2차례에 걸쳐서 추첨된다. 이 복권은 한 장을 구입하는데 20유로로 상당히 비싼 편이고 1등 당첨 금액이 적은 편이지만 숫자가 5자리인데다가 같은 번호의 복권이 천 수백장씩 발행되기 때문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높고 3등과 4등 당첨 금액도 상당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아서 가족이나 친지들끼리 이 복권을 사는 것이 일상이다. 그리고 마을, 도시, 직장, 동호회에서 수십-수만장 단위로 엘 고르도를 공동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서 예산이 없어서 빌빌대던 지자체가 갑자기 부유한 지자체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다고. 물론 당첨 안 되면 그대로 꽝이다. 엘 고르도 복권이 대표적인 복권이기는 해도 엘 고르도 복권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엘니뇨 복권, 축구 복권, 로또도 있고 전 유럽 단위로 발행해서 1등 당첨 액수가 어마어마하기로 유명한 유로밀리언 복권도 있다. 2011년에는 카스티야의 한 소도시의 시장이 시의 경제가 하도 어려워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시장 개인의 돈으로 50유로 상당의 유로밀리언을 구입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당첨에는 실패했다고. 물론 여기에는 '시장인 내가 복권을 사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습니다'를 홍보하기 위한 의도도 있을 수 있다.

6. 문학


최초의 근대 소설이자 스페인의 국민문학인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나라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문학사의 걸작이자 고전들 중 하나이다. 이 책은 '''2002년 노벨연구소가 주최한 전세계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책 1위'''로 뽑히기도 했다.

7. 영화



8. 요리


전반적으로 음식에 마늘, 올리브유, 토마토를 많이 사용하고 한국인 입맛에도 꽤 맞는 편. 이탈리아와 더불어 유럽에서 그나마 소비가 많은 국가[15]고 쌀 요리인 파에야한국에서도 유명하다.[16] 그리고 와인의 맛이 상당해 와인 생산량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스페인산 와인이 해외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데 스페인 사람들은 국내 소비가 너무 많아서 수출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한다. 술 소비량은 많지만 프랑스를 포함한 다른 남유럽 국가들처럼 공공장소에서 술에 취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한다. 술에 취한 사람이 있으면 외국인 관광객, 특히 영국이나 북유럽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현지인들은 그저 가볍게 맥주나 와인 한잔씩으로 1차 2차 3차 하면서 친한 사람들과 수다떠는 것을 좋아한다.
술안주 없이 술 마시는걸 알코올 중독자나 할만한 짓으로 보는 시선 또한 묘하게 한국과 닮은 면이 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식사 풍습인 타파스는 원래 한 종류의 요리가 아니라, 저렇게 술 마실때 곁들이기 좋은 본 식사로선 좀 가볍지만, 단순한 간식치곤 무거운 안주용 요리 종류 전반을 일컫는 단어이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같은 대도시들과 지방, 농촌 소도시들간의 생활 패턴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스페인 가정의 패턴화된 주말 저녁 보내는 방법은 밤 9시쯤에 저녁 먹으러 나와서 동네 식당에서 친구, 친지들과 한끼 먹은 다음 한 곳에 붙어있지 않고 그 동네에 있는 맛집, 좋아하는 주점 몇 개를 돌면서 한 장소에선 2, 3잔 정도만 마시고, 중간에 걸으면서 취한건 또 깨고 소화도 시킨 다음 다시 먹고 마시는걸 자정이나 새벽 1, 2시까지 반복하는게 전형적인 스페인식 주말 저녁 모습이다.[17]
맥주나 와인이 아닌 강한 도수의 증류주를 안주도 없이 한 자리에서 쭉 마시는건 현지어로는 '기리(guiri)'라 부르는[18] 돈만 많은 무례하고 천박한 영국, 독일, 미국 출신 관광객들이나 하는 짓거리로 인식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스페인 사람들은 분명 술과 음식에 열광하긴 하지만, 이것도 나름 세련되게 즐기는걸 숭상하지 탐식, 탐주 자체는 아주 못쓸 안좋은 외국 풍습으로 취급한다고 보면 되겠다.[19] 아직까지도 스페인 사회 생활은 여전히 이렇게 동네 주점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거 중심으로 돌아가니 단기 관광이 아니라 비즈니스나 학업으로 장기간 스페인 체류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현지식으로 노는 법에 익숙해 져서 나쁠거 없다.

9. 종교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가톨릭 문화권에 속해온 나라이다. 다만 서방권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세속화 현상을 스페인도 겪고 있으며, 막상 현대 한국인들이 현지 유학, 관광 가면 만날 일이 많은 사회적 자유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에 익숙한 전문직 계통의 다양한 문화에 익숙한 청년층에게는 이야기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스페인을 가톨릭 하나로만 이해한다면, 작금에 와선 유럽 최대 규모의 게이 프라이드 행사를 보수 우파 인민당까지도 지지하고[20],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강한지 하나도 설명이 안 된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이라는 국가 정체성은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서 아프리카베르베르인, 투아레그인, 아랍인 같은 이슬람교 세력과 대결해서 이들을 축출하는 레콩키스타를 거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슬람교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의 가톨릭 신앙을 철저히 고수하게 되었고, 가톨릭 신앙은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자 정통성 그 자체'''가 되었다. 게다가 마르틴 루터, 얀 후스의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 역시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에겐 종교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압박이었고 결국 그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에 더욱 매달리는 결과를 낳았다. 개신교 국가들 중 성공회의 종주국인 영국은 스페인의 해양 라이벌인 적국으로 자국 식민지를 영국이 하나둘씩 뺏어가기 시작했으며, 무적함대 역시 영국에 의해 격파당했다. 그리고 역시 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도 독립투쟁을 가열차게 벌인 끝에 독립해 버려 스페인에 대적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신교 국가들과 대치하는 이상 스페인은 더욱 가톨릭 신앙에 매달릴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가톨릭 교회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의미가 크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반교권주의, 급진적 세속주의도 강하게 생겨났다.
20세기 초반에는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왼쪽 끝에 있는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중도 성향의 공화주의 계열 정당까지 모두 반교권주의를 표방하며 친가톨릭 성향의 보수 정당들과 치열한 각을 새웠다. 스페인 제2공화국 당시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종종 반교회 폭동이 터질때마다 다른 나라에선 오히려 이런 극좌적 반교회주의를 중재할 법한 중도 공화주의자들도 '''마드리드에 있는 모든 성당 중 공화주의자 목숨 하나만큼의 가치 있는 성당은 없다'''[21]라고 과격한 발언을 하며 다른 사회, 경제적 문제에선 좌파와 대립하면서도 반교회 정책에선 뜻이 일치하곤 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회도 정치적으로 우경화가 심했고, 이런 갈등이 결국 1936년 스페인 내전이란 극단적인 형태로 폭발하면서 내전 초기 스페인 공화진영 후방은 거대한 규모의 성직자 학살과 성당 방화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복수심에 가득 찬 가톨릭 사제들은 공화주의자들을 공격하며 '''무어인들인 프랑코군 소속 북아프리카 식민지 병사들이 가톨릭 성전의 이름으로 스페인인 노동자들을 학살, 강간하는 걸 축복했다.''' 때문에 지금도 스페인 종교계에서 스페인 내전은 언급 자체를 꺼리는 흑역사가 되었다.
좌파 세속주의자들을 때려잡으면서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 정권은 이념 투쟁의 일환으로 아예 사회 복지나 공교육 같은 사회 안전망, 서비스 체계를 전적으로 가톨릭 교회에게 맡겼고, 겉보기로는 프랑코 정권 치하 교회는 17세기 수준의 사회 통제력과 존재감을 회복한듯 보였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민심 자체가 이탈해 버린 교회는 그 기반이 크게 약해졌고, 따라서 프랑코 정권 당시 교회는 정권의 조직적인 유아 납치 등 거대 조직의 비리에 휘둘리며 내부로 더욱 썩어갔다.
교회 내부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맞물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체적으로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프랑코 사후 스페인이 민주화가 되고, 다른 서유럽이 30년 일찍 누리던 현대 자본주의적 상업 소비문화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대한 사회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결국 가톨릭 교회의 입지는 민주화 이후 급격하게 떨어졌다.
프랑코 정권 당시에는 미사 참례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일요일 미사에 안 나오는 사람들은 그 지역 불순분자로 찍혔기에 강제로라도 성당들이 사람으로 가득찼던 반면 지금은 왠만한 스페인의 성당들은 다른 서유럽권처럼 노인들과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만 있고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나 꽉 차지 평소 일요일 미사에는 성당들 대부분이 텅텅 빈 게 태반이다. 스페인 인구의 80% 이상이 '''명목상''' 가톨릭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교회 출석률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정교분리 문제가 다른 서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더 이상 정치적 이슈도 못 되는 반면, 스페인에서는 이런 현대사적 배경 때문에 여전히 각종 사회적 의제나 여전히 교회의 지분이 큰 공교육 세속화 문제로 좌파, 중도 성향 정치인들과 교회가 서로 험악하게 싸우는 경우가 많다. 가령 스페인과 똑같이 가톨릭 종교권에 속해있는 다른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만 보더래도 교회나 정당 고위 지도부층이야 뭐라 하던간에 민간 차원에선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무솔리니 독재정권에 맞서 반파시스트 빨치산 투쟁을 같이 했던 공산주의자 뻬뽀네 읍장과 카톨릭 사제 돈 까밀로 신부의 이야기인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같은 대중매체의 인기 작품들도 나오고 있고 '총선, 지선에서 공산당 등 좌파계 정당들도 찍지만 성당도 잘 다니는', 정치적으로는 세속주의계과 종교계의 느슨한 공존이 일반적이었던 이탈리아[22], 스페인과 똑같이 파시즘 우파 독재정권의 통치를 받았지만 애초에 정치적 폭력은 훨씬 덜 심했고,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화된 이후에 가톨릭 교단의 정치 개입을 법률적으로 억제하여 민간 정치계와 종교계 간의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스페인의 이웃나라 포르투갈, 19세기 이후 세속주의 세력이 확실하게 승리했던 프랑스와는 달리, 스페인에서는 거리 민심을 양분하는 종교계와 좌익 대중정치가들과의 대립이 아직도 심각하다.
또한 근대 들어와서 가톨릭 교회와 민심 갈라먹기 문화 투쟁의 일환으로 페미니즘이나 LGBT 담론 또한 일찍부터 많이 발전한 편에 속한다. 이런 스페인의 사회적 세속주의, 진보주의 운동은 크게 보면 역시 20세기 초반 세속주의 좌파가 기존의 교육, 육아, 복지 같은 사회생활의 공동체적 안전망을 독점하고 있던 가톨릭 교회로부터 지분을 뺏어오기 위해 시작했던 일련의 사회 운동에서 기원을 두고 있으며, '''자유 연애''', '''동성애 양지화''', '''낙태 합법화''' 같은 가톨릭적 사회, 도덕 윤리에 정면으로 도전히는 의제들을 의식적으로 파왔다.
여성운동이 제도적인 참정권 같은 국가와 법의 틀에서 노는 서프러제트 운동에서 보다 심도 있게 생물학적, 심리적 여성성 자체를 탐구하며 이에 기반해 급진적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데 있어선 생리학자, 생물학자로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했던 암파로 포슈, 스페인 내전 당시 아나키스트 CNT 산하 자유 여성단 (Mujeres Libres) 창설자였던 루시아 사오르닐, 유럽 최초의 여성 장관 중 하나였으며 재임 당시 여성의 낙태 자유 결정권을 법제화했던 페데리카 몬세니 같은 스페인 내전 전후로 하여 스페인 급진 좌파, 특히 아나키스트들은 걸출한 페미니스트와 사회적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배출했다.[23]
때문에 스페인 영화나 문학을 살펴보면 급진적인 세속주의을 내세우며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가톨릭적 사회와 엄숙주의에 대들고 반항하는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대놓고 무신론자로 신성모독에 힘썼던 루이스 부뉴엘부터 시작해 누가 아이를 죽일 수 있는가? 같은 강렬한 반윤리적 호러 영화를 내놓았던 나르시소 이바녜즈 세라도르, 라 모비다 마드릴레냐 시기에 데뷔한 페드로 알모도바르나 소아성애와 강간 묘사를 다룬 유리 감옥으로 충격을 안긴 아우구스틴 빌라롱가가 대표적이다.
이만큼 가톨릭 교회의 무게가 스페인 역사에서 컸던 만큼 그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급진 세속주의 운동의 역사도 현대 스페인에선 굉장히 영향력 있기 때문에 가톨릭의 영향력은 예전같지 않으며 오늘날 스페인 교회는 오히려 제2공화국과 프랑코 정권의 유산 때문에 '프랑코 시절 때 물려받은 책임은 많은데 막상 미사에 꾸준히 나가면서 교무금 똑바로 내는 신자 수가 하도 줄어서 이를 감당할 재정, 인력은 안되는 많이 불쌍한 조직' 취급 받는 경향도 있는 편이다.
점차 늘어나는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아예 이슬람혐오증이 자체적인 정치 기반이 될만큼 커버려서 이에 기반한 메이저 극우 정당들이 전국적 존재감을 발휘하는 프랑스이탈리아에 비교하면 여전히 약한 수준이고[24], 이슬람에 대한 경계가 가톨릭 교회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스만 제국의 침략 이후로 근대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총든 무슬림들이 유럽 본토에 수백명 단위로 쏟아져 대규모 전시 강간을 저지른 역사적 경우가 이 스페인 내전기 국가군의 모로코 식민지병 운용이었던 만큼 일반적으론 우파의 의제인 반이슬람, 반이민자 정서도 스페인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현재 무신론은 예전과 달리 사회주의 보급의 영향으로[25] 꽤 커져서 적지 않는 편이라, 현직 정부 수반 페드로 산체스부터 공개적인 무신론자다. 산체스 총리는 사회노동당 출신 사회주의자이다. 스페인 내전에서도 소련이 후원하는 공화파와 기존 가톨릭을 수호하려는 보수 왕당파 간 피 튀기고 싸울 정도로 좌우익 갈등이 심했던지라, 10-20% 이상 상당수의 무신론자들이 있다.
스페인에서 가톨릭 원리주의는 구세대, 극우 꼴통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프랑코 정권'''을 방불케 하는지라[26] 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많다. 무신론자까진 되진 않더라도 가톨릭이 맘에 안 들어 성공회루터교, 복음주의 등 개신교로 갈아 타는 사람도 있다. 특히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부분도 개신교로 갈아타거나 무신론자가 되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이들 나라 출신 목회자들이 선교사로 들어오거나,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 계통 미국인 목회자들이 선교사로 목회를 돕고 현지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코의 팔랑헤 독재정권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던 1970년대 후반 교회와 사회의 변화에 대한 반발의 하나로 전통 가톨릭 운동이 스페인에도 들어왔는데, 이 중 일파는 아예 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하여 거룩한 얼굴의 팔마리아 그리스도교회를 창립했다. 이 종파 수장은 스스로 ''''가톨릭교회의 정통성을 계승한 교회의 교황''''임을 자칭한다. 이 교회의 신자들은 정말로 극우 성향일 가능성이 높은데, 아예 교단 차원에서 팔랑헤 창설자인 프리모 데 리베라를 성인으로 시성하여 공경하고 있다. 이 교회의 본부 역할을 하는 대성당은 안달루시아 지역 세비아 주의 작은 마을에 있으며, 나름 컬트적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는 차드, 말리, 모리타니 등 이슬람 서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난민 증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모로코와 스페인에 임시 정착한 뒤 나중에는 이웃한 타 서유럽 국가인 프랑스 그리고 더 나아가 영국으로 이주를 원하기 때문에 계속 대규모로 불법 이주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로 건너오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가는 것이나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폴란드로 건너오는 시리아, 이라크 난민들이 폴란드,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동유럽 그리고 거기서 다시 독일 이웃나라인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가는것과 똑같다. 이것은 스페인 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알제리, 튀니지에게도 상당한 곤욕이다. 현재는 난민 급증으로 인한 국경 통제 불능 현상을 최대한 막아보기 위해 스페인 경찰과 모로코 경찰이 엄청나게 애쓰는 중이다.
스페인 내의 이슬람교는 대부분이 북아프리카서아프리카아프리카 출신인 경우가 많지만, 최근 들어서면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도 소수지만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때 이베리아 반도 주민들 대다수가 무슬림이었던 시절도 있었음을 감안하면 조상의 이슬람 신앙을 후손 대에 되찾은 거라고 볼 수도 있다.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만 가더라도 중세 시대에서 비롯된 이슬람권의 문화적 유산이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런 문화적, 역사적 카스티야 중심 가톨릭 교권주의에 반발해서 정복 이전 알안달루스 문화에 심취하다 아예 개종해버리는 부류들도 가끔씩은 있는 모양. 이들은 IS나 알 카에다 같은 극단주의 이슬람에 동화될 우려에 경찰의 감시를 받기도 한다.[27]
스페인 내의 가톨릭 영향력이 줄어드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 다수 종교는 여전히 가톨릭이다.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통계에 의하면 2019년 스페인의 종교는 21.5%가 활동하는(Practicing) 가톨릭이며, 46.8%는 비활동이지만(Non-Practicing) 어쨌거나 가톨릭이며, 나머지는 무신론(12.5%), 불가지론(7.3%), 무관심하거나 믿지않음(8.1%), 무응답(1.2%), 기타 종교(2.6%)이다. 활동과 비활동을 전부 포함한 가톨릭 신자를 합치면 여전히 70%의 스페인 국민들이 가톨릭 신자라고 볼 수 있다. 개신교와 이슬람교의 신자가 증가한다고 한들 가톨릭 이외의 모든 종교는 '기타 종교'에 한꺼번에 묶일 정도로 그냥 비주류이며,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다른 통계에 의하면 무종교인의 비율에서 스페인은 프랑스, 독일, 영국보다 낮으며, 이웃 나라인 포르투갈과 비슷한 수준이다.
스페인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압도적으로 가톨릭 다수임을 생각한다면, 현대 스페인도 마치 가톨릭교회가 모든걸 좌우지하는 편견도 틀렸지만, 가톨릭을 '스페인에서는 극우들이나 믿는 종교' 쯤으로 단순화해서 파악하긴 어렵다. 프랑코 정권 시절 저질러진 박해는 그 규모와 범죄성이 워낙 커서 일반적인 가톨릭 신자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변명하는 역사지, 대놓고 당당하게 이를 옹호하는 건 남아 있는 신자들 기준에서도 막나가자는 소리다. 큰 성향은 정권 따라 갔어도 교회 내에서도 당장 눈앞에서 신부들 총살하던 좌익의 위협이 사라지자 독재 정권의 문제와 한계를 인식하고 저항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현재 스페인 사회에서 가톨릭의 위치는 근현대 들어서 큰 쇠락을 겪었으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적으로는 여전히 나름 중요하고 존재감이 강한 복잡한 대상이며 긴 세월동안 스페인이란 국가의 중심적인 정체성을 형성해온 종교이자 주요 사상으로서 단순한 일개 종교로 치부될 수준이 아닌, 개개인의 삶에 깊게 녹아들어있는 관습의 위치라서 부정하기 어렵다.
스페인에는 유대인들도 존재한다. 대다수는 종교만 유대교일 뿐 기독교를 믿는 토착 스페인인들과 언어·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세파르딤이지만 북아프리카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안달루시아에는 아랍어베르베르어가 모어인 미즈라힘도 거주한다. 전근대에 해외로 추방된 스페인 유대인의 후손들은 서유럽에 정착하여 세파르딤이 되거나 중동에 정착하여 미즈라힘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중부유럽·북유럽·동유럽에 정착하여 아슈케나짐에 동화되기도 했는데, 현대 스페인은 이들이 스페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허용하여 유대인들에 대한 유화책을 쓰고 있다.

10. 성 문화


놀기 좋아하는 사람답게 성문화도 굉장히 개방적인 편이다. 젊은 세대 같은 경우 여성들이 성문화를 즐기는 것도 관대한 시선으로 보는 편이 많다. 또 스페인에는 유럽 최대의 포르노 회사인 PMC 그룹이 있고 대표적인 휴양지로 유명한 발레아레스 제도에는 유럽 각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유흥업소들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라는 면모와는 달리 동성애에도 매우 관대해 독일과 함께 세계에서 동성애에 가장 개방적인 국가로 꼽힌다. 2005년경 동성결혼 역시 합법화되었다. 다만 일단 결혼하면 배우자에게만 헌신하는 편이다. 기혼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서유럽에서 가장 열녀국가라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남자도 대동소이.
역사적으로도 스페인은 한면은 종교재판소가 담당하는 엄격한 가톨릭 사회 질서가 지배했지만, 다른 쪽은 16세기 초반부터 남녀간의 노골적인 성애와 자유 연애를 다룬 소설 라 셀레스티나가 히트쳤을 만큼 반대로 도덕 교과서 가르침은 쉬쉬하고 놀거 다 챙기는 유흥 문화도 강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의 부르주아들은 아예 성당에 나가서 경건하게 미사를 드린 다음에 오입질이든, 향락이든, 현대 들어와선 마약이든 즐길거 다 즐기는 문화가 일찍부터 정착해 있었고, 이런 근대적 향락 문화는 아예 나라 자체가 가톨릭교회와 각을 뜨던 제2 공화국 시절 본격적으로 성장했다가 프랑코 정권이란 단절기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80년대 라 모비다 마드릴레냐라고 부르는 20년 늦은 스페인판 68혁명때 다시 폭발하며 성장하면서 유흥과 관광의 나라 스페인이란 현재 이미지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사회, 문화적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마드리드에는 아예 구도심에서 바로 한두 블록 위에 츄에까 (Chueca)라고 불리는 서유럽 최대규모의 게이촌이 있다. 여긴 비단 동성애자들 뿐만 아니라 상술한 모비다 시절 언더그라운드 문화 자체가 발생한 곳이라 스페인 전역의 성소수자들과 언더그러운드 씬의 마음의 고향 쯤 되는 동네다. 오히려 여긴 너무 개발돼서 현대 와선 젠트리피케이션에 일조하는 부유한 성소수자 집단 관광형 문제의 온상이라고 비난 받을 수준. 실제로 매년 7월에 열리는 마드리드 게이 프라이드는 유럽, 아니 세계에서 가장 큰 성소수자 문화 축재 중 하나이고, 이 시절만 되면 전 유럽에서 몰려온 성소수자들이 마드리드, 특히 저 츄에카 지구에 몰려든다. 관광객형 범죄가 극심한 나라인 만큼 이 철만 되면 마찬가지로 돈 많은 영국, 독일인 게이 관광객들의 지갑을 노리고 전국의 소매치기, 사기꾼들이 몰려들며, 밤이 되면 각종 공연이나 노상 파티 통제한다고 마드리드 가장 중심지인 푸에르타 델 솔 광장 중심으로 통행이 봉쇄되는 날이 많으니 본인이 그 퀴어 문화 즐기러온 성소수자건, 아님 일반 관광객이든 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28]
OVA로 만들어진 야애니대악사를 지상파 방송에서 노모로 틀어준 사례도 있다. 심지어 틀어준 곳 이름도 '''La Sexta'''…[29]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고 바로 중단되었지만 말이다.#

11. 기타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유독 많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 중에 매일 깔끔하게 면도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보면 된다.[30] 다만 가톨릭 사제들만큼은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수염을 깎는다. 그리고 탈모가 일찍 찾아와서 삭발을 하는 사람도 많다.
유럽 국가 아니랄까봐 담배를 길에서 피우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한국과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으로 사실상 '''지붕만 없으면 모든곳이 흡연구역'''이다. 길거리나 횡단보도를 걸어가면서 피는건 기본에 아이를 옆에 끼고 대놓고 담배를 피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길거리에 재떨이도 많이 배치되어 있으니 흡연자들에게는 천국인 나라다. 다만 거의 모든 실내는 금연이다. 대도시들의 경우 밤 10시 넘으면 카페, 주점들이 셔터를 한 반틈만 내리고 건물 안에선 막상 불빛이 여전히 켜져 있고 안에선 담배 냄새가 모락모락 풍겨 나오는 곳들이 많은데, 바로 '서류상으론 영업시간 끝났으니 여긴 이제 개인 공간이요'라 눈가림 아웅해놓고 평소에 그 주점 들락날락하는 단골과 사장, 점원 친구들끼리만 모여서 술마시고 실내 흡연 가능하게 재떨이 꺼내 놓는 타임이란 뜻이다. 물론 이것도 동네 주점, 술집이 점점 사라지고 대규모 프랜차이즈 업소들이 장악해가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선 갈수록 찾기 힘든 풍경이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 대부분이 한국보다 흡연에 훨씬 관대하다. 당장 담배값부터 스페인의 경우 담배 1갑에 4.75유로, 즉 6천원 정도 가격이고, 평균 소득이 더 높은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 나라들도 1갑에 8천원 정도가 일반적이다. 유로화 가격에 평균 임금 수준이 도저히 못따라가는 고질적인 남유럽 문제에 시달리는 스페인인들은 그나마 이것도 비싸다고 미리 말려진 공장제 담배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중년들의 상징이고, 경제위기 이후 자란 청년층은 훨씬 더 싼 직접 말아피는 담배를 훨씬 더 많이 피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문화인데, 작은 지갑처럼 생긴 키트를 열면 안에 담뱃잎, 필터, 종이가 분리되어 있다. 종이를 펴고, 담뱃잎을 조금 덜어 필터 옆에 놓고 말은 다음 우표처럼 침을 살짝 바르면 얇은 담배가 완성된다. 이 키트 하나로 엄청난 수의 개피가 제조 가능하며, 작기 때문에 한번에 흡연량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매번 제조하기 귀찮은 사람들은 몇개씩 한번에 만들어 놓기도 한다. 이런 흡연 관련 경제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국이나 동아시아 가서 평소대로 주머니에서 말린 생담배잎 꺼내 종이에 말다가 대마초 피는걸로 오인 받아 난감했던 이야기도 해외 여행을 자주 가는 젊은이들 사이엔 흔한 경험담인 모양.[31]
윗나라 프랑스 못지 않게 여기도 청년층 사이엔 오덕 문화의 힘도 강하다. 크레용 신짱의 경우 비교적 일찍 현지 상륙해서 프랑코 정권 이후 사회적 자유화의 물결을 타이밍 좋게 타고 올라 반쯤은 국민 애니메이션 취급 받고 있으며,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의 경우 키 좀 작고 눈썹이 좀만 짙다면 애칭으로 바로 그 주인공인 '신짱'이라 별명 붙을 때도 많다.
막상 본국인 일본이나 바로 옆나라 한국에서도 그리 대중적인 작품은 아닌 캡틴 츠바사도 비슷한 시기 타이밍이 어찌 잘 맞게 들어왔는지 오히려 스페인에서 엄청난 인기와 대중적 인지도를 갈구하며 당장 그 위대한 이니에스타 본인을 포함하여 수많은 80-90년대에 자란 어린 축구 소년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90년대에 자란 남자애들이 드래곤볼에 수백만 단위로 꺼벅 죽어나간건 여기도 마찬가지고, 소위 원나블을 필두로한 메이저 AAA급 소년 만화에서 부터 매니악한 성인 주제 애니메이션까지 청년층 한정으로 하면 그 비참하기 그지 없는 평균 인터넷 속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활발한 덕질 커뮤니티가 활성되 있다. 게다가 이건 프랑스, 벨기에도 비슷한 점이지만, 이 동네에선 오덕 문화가 히키코모리, 각종 네덕질, 이런 저런 오타쿠들이 저지른 사회적 사고와 상관 없이 80년대 말-90년대 초에 한순간에 이국의 참신한 문화로 급격하게 들어왔다 보니 한미일 삼국 오덕들의 숙명인 덕후-인싸간의 유별 의식, 상호간 질시도 훨씬 적은 편이다.


[1]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아랍어 관사다.[2] 산티아고는 그 외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 필리핀 마닐라의 산티아고 요새, 쿠바 제2도시인 산티아고 데 쿠바 등 여러 지명에 쓰인다.[3] 스페인어로 mata는 죽이다, moros는 무슬림을 뜻한다. 즉 말그대로 무슬림 처단자.[4] 프란시스코 프랑코, 피델 카스트로의 가족, 권위적이고 무능하다고 욕 먹었던 마리아노 라호이 전 스페인 총리 등이 다 갈리시아 출신이라 그렇다.[5] 바 같은 경우는 새벽까지도 한다.[6] 부활절 직전의 1주일[7] 페리야를 비롯한 며칠 내지 몇주간의 축제기간에만 그럴 뿐, 평소에 저러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8] 역시 의미 통하는걸로 보면 둘 다 똑같은 언어다... 다만 이 언어를 문화언어역사적으론 카탈루냐와 뿌리를 공유하지만 정치적, 지역적으론 다르다고 주장하는 발렌시아에서 '카탈루냐어'라 부르면 죽창 맞을 수도 있어서 정치적 올바름에 따라 발렌시어라라 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부터 지역간 언어 관련 정치 문제가 스페인에서 얼마나 민감한 주제인지 짐작할 수 있다.[9] 호주만 이겼을 뿐 칠레네덜란드한테는 모두 졌다. 특히 네덜란드에게는 5:1로 졌다.[10] 농구에서도 엘 클라시코 더비가 알아준다. FC 바르셀로나 같은 경우는 2009~2010 유럽 농구 챔피언스리그 및 자국리그까지 더블로 우승했다.[11] 유럽 배구 선수권 대회가 FIFA 월드컵 예선만큼이나 경쟁률이 높아서 자칫 잘못하다가 순위권에서 멀어지는 일도 파다하다. 러시아, 이탈리아, 세르비아, 폴란드 정도가 늘 상위권 자리를 유지하고 그 나머지를 프랑스, 독일, 핀란드, 스페인 등이 돌아가면서 경쟁하는 판국. 게다가 터키나 그리스 같은 국가들도 약체급이라도 해도 종종 도깨비팀으로 저력을 보이기에 무시 못한다.[12] 3대 그랑뚜르중에서 가장 험난한 산악 코스를 자랑한다.[13] 그리고 페르난도 알론소는 2021년에 알피느 F1 팀에서 다시 복귀한다[14] 가우디의 스승격인 인물로 카탈루냐 음악당과 산 파우 병원이 그의 작품이다. 이 또한 세계문화유산.[15] 익숙한 식재료 중 하나일 뿐 주식은 아니다.[16] 발렌시아카탈루냐 지방을 제외하면 그저 다양한 지역 요리 중 하나일 뿐이지만 관광 식당에서는 찾기가 어렵지 않다. 참고로 흔히 해물 볶음밥으로 오해를 받곤 하는데 파에야는 절대 해물 볶음밥이 아니다. 볶음밥은 다 된 밥을 재료와 함께 팬에서 볶는 요리지만 파에야는 넓은 팬에 주 재료와 생쌀을 볶다가 caldo 육수를 넣어서 끓여서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밥을 짓는 것에 가까운 요리다.[17] 이전에는 새벽 5시나 6시까지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이 이런 생활패턴을 무한 반복한다고 나와있으나 축제기간이나 클럽이나 늦은 시간까지 여는 대도시권 주점말고는 평소에 저렇게까지 오래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매일같이 새벽 내내 마시고 놀 수 있는 문화는 24시간 유흥이 발달한 한국과 약간의 동아시아 지역을 빼면 서구권에선 드문 케이스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클럽이나 새벽 주점문화는 스페인만의 문화가 아니라 전 세계 보편적이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붐비는 한국의 먹자 골목이나 클럽 주변거리를 생각해보면 편하다. 그리고 밤새 마시고 노는걸 즐기는 연령대도 20대~30대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이건 전 세대가 즐기는 문화는 아니라는 얘기. '한국의 중노년들이 매주 새벽 내내 노는 경우가 흔한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편하다.[18] 대충 스테레오타입은 스페인어 한마디도 할 줄 모르고, 영어 안통한다고 승질부리고, 스페인 문화나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예절도 없이 태양, 해변, 미인, 피에스타 같은 얄팍한 쾌락만 즐기려고 드는 북유럽인이다.[19] 같은 라틴 계통포르투갈, 프랑스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하다.[20] 적어도 마드리드 지역당 수준으론 그렇다. 카스티야-레온 같은 아직도 사회문화적으로도 보수적인 지방에선 전형적인 보수적 스탠스를 유지하지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같은 거대 도시 지역당 차원에선 인민당이 시정부 여당 차지하고 있어도 여전히 시청 건물에 프라이드철 무지개 깃발 건다해도 반대하지 않는다. 마드리드 프라이드 시즌에 들어오는 어마무시한 전 유럽 게이 관광객 숫자를 고려할 때 이거 건드리려고 하면 바로 규모 불문한 지역 관광업 종사자 모두한테 작살난다.[21] 발언의 출처는 일각에선 초대 대통령 니세테-알칼라 자모라였다고도 하고, 중도 공화주의 정당 거두였던 알레한드로 레로라는 말도 있다.[22] 반대로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산업화가 상대적으로 느렸으며, 카톨릭 교회의 역사적 영향력이 막대하고, 이에 반발한 좌익, 자유주의계의 급진 반교권주의도 강했던 라틴 문화권이란 큰 역사적 배경도 공유하는 만큼,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 보여주는 20세기 이탈리아 사회의 갈등상은 스페인하고도 나름 비슷한면도 많다. 대충 작중에서 까밀로 신부님이랑 뻬뽀네 읍장이 투닥거리면서도 결국 화해하며 마을을 위해 같이 일하는게 아니라 진짜 서로를 증오하며 총으로 쏴죽이려고 들고 마을 전체가 서로 인민재판에 서북청년단질 사이좋게 주고받는 막장 스토리로 떨어진게(...) 스페인의 경우라고도 말할수 있다[23] 암파로 포슈 박사의 아버지인 군의관 호세 포슈는 반대로 36년 쿠데타 당시 적극 참여했던 골수 우익 프랑코주의자 장군이여서 내전이 궤도에 오르고 딸이 나머지 아나키스트들과 프랑스 망명행에 오를 때 프랑코에게 "가정교육을 잘못해서 딸이 빨간물 먹은 걸 한 번만 특별한 기회를 주시면, 잘 타일러 사람을 바꾸어 놓겠으니 한 번만 안전한 스페인 귀국을 보장해 달라"란 식으로 절절한 편지를 보낸 게 남아있다. 전쟁 이전 부녀관계도 한편으론 여자애가 어딜 고등교육, 과학자냐 전형적인 보수적인 군인 가부장스런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기 딸이 그 시절에 대학갈만큼 영특하다는 사실에 대단히 복잡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스페인 현지에서도 페미니스트, 성생리학자로서의 업적 외에도 근현대사와 내전의 비극을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화자된다.[24] 기껏해야 2018-19년 총선 이후로 떠오른 VOX도 사실 그 본질을 따지고 보면 이슬람보다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대해 훨씬 더 자극받은 극우 정당이고, 그 기반도 면밀하게 따져보면 옛날부터 카탈루냐 부르주아들에게 "저 동네는 아랍인의 피가 섞여서 게으르고 미개하다"는 드립의 집중적인 피해자였던 안달루시아, 무르시아의 지역 정당에 가깝다.[25] 스페인 내전의 원인이 저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공화파와 가톨릭 지주가 주축인 보수파의 대결이었다.[26] 스페인의 경우 어쨌든 역사적 전통적 절대 다수의 민족 종교는 가톨릭이 맞고, 당장 문화유산에서부터 일상 생활까지 가톨릭 문화가 침투해있다 보니 이런 정치적 교권주의자 입장에선 '''"스페인 국민은 가톨릭 민족이고,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비국민이다!!"'''라고 주장하기 쉬운 조건이다. 실제로 이게 프랑코 정권 시기 공식 관점이기도 했고, 민족 국가의식이 형성된 16-17세기의 관점에선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저 명제를 19세기, 20세기에도 쿠데타군이 총칼로 새운 독재 정권이란 형태로 강요했다는 거지...[27]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레콩키스타 이후 이베리아 반도 각 나라를 카스티야 위주로 묶으며 생긴 나라다. 그래서 이웃 포르투갈이 단일 공동체인것과 달리 스페인은 사촌나라 이탈리아나 과거 유고슬라비아 처럼 각 지방 정체성이 화끈하게 다르고, 카스티야인을 싫어하는 타지인들도 많다. 안달루시아는 카스티야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스페인에 편입되는 와중 피정복 무어인들은 다수가 강제개종당한 소작농 무산계급으로 떨어지고, 산티아고, 알칸타라, 칼라트라바 기사단 같은 기독교 정복자들이 지주로 군림하며 지배계층을 형성했던 지방이라 카탈루냐 못지않게 카스티야를 싫어한다. 하지만 반대로 근대화 과정에서 대규모로 카탈루냐의 산업 도시에서 국내 이민자층을 형성하며 토착 카탈루냐인 부르주아들에게 "아랍의 피가 섞여서 게을러 터진 잡종들"이란 식으로 멸시도 받았기 때문에 카탈루냐 분리주의에 가장 거품 물고 반응하는 곳도 안달루시아다. 지역적 역학 관계가 이리 복잡하니 현대의 카탈루냐 문제도 단순한 한 지방의 불만을 넘어 스페인 전국적인 논쟁과 여론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다.[28] 덥긴 더워도 건조해서 그늘만 찾으면 살만하다는 지중해식 여름도 프랑코 정권 후기 시절 날림으로 개발해 놓은 마드리드 시가지의 콘크리트 복사열 때문에 적어도 마드리드 시내에서는 헛소리이다. 여기다 유명 관광지의 여름철 특수까지 합쳐 놓으면 어리버리하고 아무대나 멈춰 서서 사진 찍어대는 관광객 인파열까지 합치면 제대로 쪄 죽는다. 이런 여건 때문에 여름의 성수기인 해당 프라이드 시즌은 마드리드 현지인들에게는 본격적으로 시내 떠나서 친척들 사는 시골로 도망치는 국내 휴가철로 인식되고, 특별히 해당 시즌에 개최되는 게이 프라이드나 다른 목적이 없는 여행객들에게는 피해야할 철로 인식된다.[29] 물론 스페인어로 '6번째' 채널이라는 의미니까 Sex의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6번째로 개국한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이니까. 별개의 회사였으나 나중에 스페인 제1민영 방송사인 Antena 3한테 인수된다.[30] 이는 무어인의 영향일 수도 있다. 무어인이 믿었던 이슬람교는 수염을 기르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페인이 모로코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스페인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었던 식민지가 모로코인 만큼, 근현대에는 무어인 문명의 후예인 모로코의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31] 대마초 흡연자야 미국이나 유럽이나 많지만, 미국 대부분 주에선 거대 담배 회사 로비로 세금 폭탄을 먹여 말아피는 담배라고 딱히 공장제 담배보다 싸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래서 미국에서 여전히 뭔가 흡연자가 직접 종이로 쪼물딱거리면서 말아 피는건 거의 대부분 대마초나 다른 마약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