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라(예루살렘 왕국)
프랑스어: Sibylle (시빌)
라틴어: Sibylla (시빌라)
아랍어: سيبيلا (시빌라)
아모리 1세와 아녜스의 장녀로 보두앵 4세의 친누나였다. 그녀의 동생 보두앵 4세가 나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자 아버지 아모리 1세는 시빌라를 유럽의 좋은 집안과 결혼시켜 예루살렘 왕국의 후사를 도모하려 하였다. 프랑스에서 상스르의 에티엔(Étienne de Sancerre)라는 귀족이 이에 호응하여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왔으나, 오자마자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을 바꾸어 프랑스로 돌아가 버렸다. 1174년 아모리 1세가 죽자 보두앵 4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아직 어렸으므로 트리폴리의 레몽 3세가 섭정을 하였다. 1176년 보두앵 4세와 레몽은 시빌라를 아스칼론의 굴리엘모(기욤)라는 귀족과 약혼시켰는데, 굴리엘모는 프랑스 루이 7세와 신성 로마 제국 프리드리히 1세의 사촌이었다. 그 해 9월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시빌라는 야파와 아스칼론 백작부인의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굴리엘모는 이듬해 6월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고 유복자로 아들 보두앵을 남겼다.
이에 남편을 잃은 시빌라는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를 노리는 야심만만한 귀족들의 표적이 되었다. 친척인 플랑드르의 백작 필리프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자신의 가신과 시빌라를 결혼시키려 했으나, 예루살렘의 귀족 가문인 이벨린 가문이 이끄는 귀족회의에서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시빌라는 재혼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에 1180년 트리폴리의 레몽과 보에몽 3세는 예루살렘에 들어와 자신들의 의도대로 신랑감을 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남동생인 보두앵 4세는 외국에서 시빌라의 신랑감을 데려오는 것이 왕국에 군사적으로 도움이 되었기에 프랑스 필리프 2세 및 잉글랜드 헨리 2세와 연관이 있는 기 드 뤼지냥을 신랑감으로 정하고 결혼시켰다.
보두앵 4세는 처음에는 기를 신임하여 섭정으로 임명하고 많은 권한을 위임하였다. 그러나 기는 섭정을 수행하면서 르노 드 샤티용과 함께 이집트와 시리아를 오가는 대상(隊商)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것을 묵인하는 등 보두앵의 뜻에 많이 어긋나는 행동을 하였다. 이에 분노한 보두앵은 1183년 기를 섭정에서 짤라버리고 시빌라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 보두앵 5세를 공동 통치자로 세운 후 기와 시빌라의 결혼을 무효로 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던 중 보두앵 4세가 1185년 봄에 죽었다. 시빌라의 아들 보두앵 5세는 단독으로 왕이 되었고 레몽이 섭정, 에데사의 조슬랭 3세가 보호자가 되었다. 그러나 보두앵 5세도 건강이 좋지 않았고 1186년 여름 아크레에서 죽었다. 시빌라는 예루살렘 왕국의 후계자로서 단독으로 여왕이 되었다. 그러나 시빌라에게 반대하는 귀족 가문들이 꽤 있었고, 또 다른 상속자이자 시빌라의 이복동생 이사벨[2] 이 있었기 때문에 시빌라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새로운 남편을 구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왕위에 오르자마자 '''남편을 다시 기로 정해버리고 그를 공동왕으로 세웠다.'''
시빌라는 레몽과 이사벨 같은 반대파를 아우르고 자신의 지위를 보존했다. 당시 살라흐 앗 딘의 위협으로부터 왕국을 구하려고 애썼지만 기 드 뤼지냥과 레몽의 협력관계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1187년 7월 4일 하틴 전투에서 살라흐 앗 딘의 군대에 패배하고 기는 살라흐 앗 딘의 포로가 되었다. 살라흐 앗 딘은 단숨에 예루살렘 왕국의 나머지 영토를 점령하고 마지막 남은 성도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시빌라와 하틴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벨린의 발리앙은 예루살렘에서 방어전을 폈으나, 결국 10월 2일 예루살렘을 살라흐 앗 딘에게 넘겨주었다.
시빌라는 트리폴리로 쫓겨났으며, 살라흐 앗 딘은 1188년 기를 다마스쿠스에서 풀어주었다. 기와 시빌라는 다시 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예루살렘 왕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항구 도시인 티레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당시 티레를 지배하던 몬페라토의 코라도(Corrado del Monferrato)[3] 의 반대로 성 밖에서 머물게 되고 말았다. 기는 새로 발흥한 제3차 십자군 원정에 호응하여 아크레를 공격하였다.
이 공격은 거의 2년을 끌었고, 1190년 공격군의 진지를 휩쓴 전염병에 걸려 시빌라와 그의 어린 두 딸 알리스, 마리는 죽고 말았다. 시빌라의 사후,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를 놓고 시빌라의 이복동생이자 처제뻘인 이사벨[4] 과 기 드 뤼지냥이 대립했다. 결국 이사벨이 적법한 후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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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 메인 히로인으로 등장하지만, 영화 속의 모습은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작중 주인공인 이벨린의 발리앙과의 관계는 실제 역사에선 '''정적'''이었다. 위에 언급한 시빌라의 이복동생 이사벨은 바로 발리앙의 양녀였다. 이사벨의 친모인 마리아는 아모리 1세가 사망한 뒤 발리앙와 재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리앙은 양녀가 된 이사벨을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시빌라와 대립하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