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영화)
1. 개요
벤 애플렉 감독, 주연 영화.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 간신히 피신했던 6명의 인질들을 이란에서 빼내오기 위한 비밀 구출 작전인 '캐네디언 케이퍼 작전(Operation Canadian Caper)'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2. 예고편
3. 줄거리
1979년 11월 4일, 반미 시위가 격해진 끝에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은 성난 시위대에게 점령당한다.[1] 대사관 직원들 중 거리로 피신할 수 있었던 6명은 영국,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거절당한 후 캐나다 대사 관저로 급히 피신한다.
그나마 대사관 직원들이야 위협은 당해도 이란 입장에선 매우 유용한 인질이었으니 당장의 목숨은 보장받았지만, 문제는 이들 도망친 6명의 행방이었다. 아직 이란 시위대와 혁명정부 측에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지만, 만약 들킨다면 '미국 스파이라서 달아난 것'이란 구실로 즉결 처형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 이미 인질이 된 미국 대사관 직원들조차 이란은 모두 외교관이 아니라 스파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호메이니는 이들을 보호할 것을 명령했지만, 시위대는 "미국인들을 죽여 이란인들의 결의를 보여야 한다"고 날뛰는 상황이었다.
미 본토에서도 이 사건이 연일 뉴스에 오르며 국민적 관심사가 된다. 반 이란감정도 폭주하여 이란 대사관을 포위한 군중이 이란 국기를 불태우고 이란인들을 구타하기도 한다. 억양 문제로 이들을 캐나다인으로 위장시키는 것까지는 손쉽게 합의가 되었지만, 어떻게 빼낼까가 문제였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터키국경으로 이동한거나 교사나 식생학자로 위장하자는 다양한 작전들이 논의되지만 500km 거리에 있는 터키 국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2] 외국인 교사들이 축출된 상황에서 영어 교사로 위장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며, 한겨울에 식생을 연구하러 왔다는 것도 말이 안됐다. 이 와중에 CIA의 구출 전문요원 토니 멘데스(벤 애플렉)가 투입된다. 아내와 별거중인 토니는 우연히 아들의 안부를 묻는 전화에서 아들이 보던 영화 <혹성탈출>에서 힌트를 얻고 이란이 사막 지대인 것을 밀어붙여 작전을 입안 시킨다.
CIA 내에서도 회의적인 가운데, 상사의 지원으로 토니는 헐리우드의 연줄을 이용해 가짜 영화를 만드는 작전의 실무를 맡아 바로 헐리우드로 간다. 아카데미 분장상까지 받은바 있는 헐리우드 분장술의 대가 존 체임버스(존 굿맨)와의 친분으로 그는 가짜 영화 '아르고'를 만드는 작전을 실행시키고, 한물 갔다는 평가를 받는 제작자를 포섭하고 가짜 영화사를 차리고 기자 회견에 배우 포섭, 대본 리딩까지 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한다.
한편 캐나다 대사 관저에 머물던 인질들은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불안에 휩싸이고 캐나다 대사의 이란인 가정부 사하르가 손님이라고 온 사람들이 몇달이 지나도록 대사관 관저 바깥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자 의심을 품으면서 가정부가 밀고를 할지도 모른다는 급박한 상황이 된다. 게다가 혁명수비대는 소각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분쇄하는데에 그친 미국 대사관 비밀문서 조각들을 일일이 모아 여섯 명의 미국인들이 탈출한 것을 알아내고 수색을 시작한다.[3] 거기에 외교관들을 인질로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국제적 망신은 둘째치고 정치적으로 매우 궁지에 몰린 지미 카터 행정부는 난타를 당했으며 이로 인해 상부에선 하루빨리 작전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들어오고. 기자초청 대본 리딩까지 마친 후 토니는 바로 이란으로 날아간다. 캐나다 대사관에 피신한 대사관 직원들과 만나 그들을 영화 스탭으로 위장시키고 이란 문화부의 가이드(와 감찰)아래[4] 장소 로케이션을 간신히 마치고 다음 날 이란을 탈출한다는 기대에 부풀어있는데...[5]
탈출 전날 델타 포스가 개입되어 군사적 옵션으로 인질들을 구출하는 계획이 짜이면서 6인을 빼내는 계획은 백지화된다.[6] 미국 정부는 만약 캐나다 대사관에 숨어있던 외교관 6명이 이란인들에게 처형된다면 이란만 국제적 나쁜놈이 되겠지만, CIA의 작전 하에 촬영스탭으로 위장해서 달아나던 외교관 6명이 들켜서 처형되는 건 국가적 망신이라면서 이왕 죽을 거면 앉아서 죽으란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멘데즈는 고심끝에 모든 책임을 지고 작전을 재개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6인과 함께 공항으로 향하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멘데즈의 상관 역시 상부에게 강력히 항의하여 작전을 재개시킨다. 그러나 이 계획을 다시 재가동 시키려면 대통령의 허가가 필요한 상황. 절차를 밟아 연락하기엔 이미 공항으로 향하고 있는 멘데즈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상황이 매우 급박한지라,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사칭하여 비서실장과 접촉한 다음에 급히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작전 인가를 받아 취소된 비행기표를 다시 준비하고 멘데즈 일행이 테헤란 공항에서 가까스로 표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출국 과정에서 공항에서 보관하는 입국증이 없어 잠시 곤경에 빠지지만 이것은 미리 대비했던 부분이라 어느정도 우기면서, 이란 문화부의 초청장을 보여주어 통과할 수 있었다. 혁명수비대의 추궁에는 준비한 영화 소품과 대본[7] , 그리고 영화제작를 다룬 신문기사들을 보여주고 미국 스튜디오 명함을 건네주어 전화를 해보라며 어느정도 의심을 푼다. 혁명수비대 대장이 미국의 스튜디오에 전화해서 확인 전화를 하려 했는데 스튜디오는 CIA의 명령에 따라 이미 즉각해체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천만다행으로 제작자들이 퇴거하지 않고 뒤풀이로 술을 마시고 돌아와 아슬아슬하게 전화를 받아 확인을 해준 덕에 혁명수비대의 의심을 풀 수 있었다.
때마침 혁명수비대 본부는 일일이 맞춰본 문서를 통해 캐나다인 영화제작자라고 돌아다니던 자들이 사실 미국 외교관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캐나다 대사 관저를 급습하지만 이미 대사 부부와 수행무관, 가정부까지 모두 떠난 후였고 허탕만 친다. 이에 혁명수비대는 공항에 전화하여 비행기의 출발을 막으려 하고 하지만 멘데즈 일행은 간발의 차이로 비행기를 타고 이란을 떠났고, 이란 상공을 떠났으니 주류를 마실 수 있다는 안내방송에 환호한다.
한편 배신자로 의심되던 가정부 사하르는 혁명수비대의 추궁에도 손님들은 모두 이틀전에 온 캐나다인들이며 모두 이란의 친구라고 주장하여 혁명수비대로부터 관저가 수색당하는 것을 막았고 캐나다 대사 켄 테일러 부부와 퀘벡 출신 수행 무관과 함께 이란을 탈출하여 이라크로 간다.
미국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이고 모든 공은 남은 인질들에 대한 보복을 막기 위해 전적으로 캐나다의 단독 행위로 공표된다. 이란은 주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 보복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미 캐나다인들은 다 떠난 후라서 공갈포에 불과했다. 토니는 비밀리에 훈장을 수여받고 별거중이던 아내와 재회한다.
4. 평가
일반적인 첩보 스릴러와는 달리 카체이스, 격투, 폭발, 총격전, 첨단 장비, 두뇌 싸움 등 시각적인 볼거리나 과장스러운 요소가 일절 없으며,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청난 반전은 커녕 매우 직선적이고 간결명료한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 단순한 스토리와 컴팩트한 연출만으로 상당한 극적 긴장감과 영화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높이 평가받은 가장 큰 요인.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8] 각색상, 편집상, 3개 부문을 수상한 것은 물론 골든 글로브, BAFTA 등 그외 다양한 유명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업계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았다. 다만 의외로 당시 오스카 레이스 기간 동안 벤 애플렉이 감독상을 쓸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카데미에선 감독상 부문에 후보도 오르지 못하였다.[9][10]
5. 흥행
4,45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 1억 3,60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2억 3,23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초대박과 동시에 대부분의 평론가에게 극찬을 받아 흥행과 비평이라는 2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영화가 되었다.
6. 실제 사건과의 차이
영화에서는 6명의 인질 구출이 거의 CIA의 공로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 캐나다 정부의 역할이 훨씬 컸다. 사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CNN 인터뷰에서 "영화는 훌륭했지만, 실제로 작전 아이디어 및 실행에 있어 캐나다의 비중은 90%였다. 진짜 영웅은 벤 애플랙 감독이 연기한 CIA 요원이 아니라 전체 작전을 지휘했던 캐나다 대사 켄 테일러였다."라고 밝혔으며, 테일러 자신도 "실제로 인질 6명을 책임진 것은 캐나다였고, CIA는 파트너 역할이었다."고 말하면서도 "근데 뭐 영화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한다."라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벤 애플렉 감독은 "실화가 아니라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라 각색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는 진실은 아니더라도 진실에 가까운 묘사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입으로만 여러분을 사랑한다, 감사드린다, 존경한다, 빚을 졌다고 하면서 실제로 자기 목을 걸기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외교적 입장과 생명을 걸고 6명의 인질을 숨겨준다. 그게 옳은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인질들이 구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영국과 뉴질랜드 대사관이 탈출한 인질들을 돕기를 거부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내치기는커녕 캐나다와 함께 도와줬다. 6명은 처음에 영국 대사관에서 숨겨주다가 캐나다 대사관이 더 안전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옮겨진 것이며, 뉴질랜드 대사관은 캐나다 대사관까지 위험해지면 인질들을 숨겨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두었고 탈출시에는 공항까지 인질들을 차로 데려다주는 위험을 무릅썼다. 때문에 영국과 뉴질랜드 관련 인물들은 이에 대해 이 영화를 격하게 비난했다. 심지어 억류되 었다가 탈출한 인질 6명 중 한명이 었던 밥 앤더스 외교관은 영화를 보고 "영국과 뉴질랜드 외교관들은 우리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우리는 항상 그들의 선의와 희생에 감사하며 살고 있고 영화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봐 걱정된다."라는 우려까지 표했다. 애플렉 감독은 "인질들이 오갈데 없는 상황을 연출해야 했다. 누군가를 깎아내릴 의도는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분명히 심각한 왜곡이다.
인질들이 겪었던 위기 상황은 대부분 픽션이다.
- 토니 멘데스와 인질들은 영화 답사를 위장해 시장에 간 적이 없다.
- 취리히 행 티켓은 영화와는 달리 현장에서 별 문제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 영화에서는 백악관이 델타포스의 군사개입을 밀어붙이며 탈출 직전 작전이 취소될 뻔하다가 멘데즈의 상관이 작전 속행을 주장해서 아슬아슬하게 승인된다. 하지만 실제 작전이 지연된 일은 제출된 직후 30분 뿐이었고, 그것도 멘데즈가 이란으로 출발하기 전이었다.
- 공항에서 정체가 발각될 뻔 하면서 겪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은 모두 픽션. 실제로는 별 일 없이 통과했다.
- 비행기 이륙 직전 경비대들이 뒤늦게 인질들의 탑승을 알아채고 자동차로 쫓아오는 장면도 그런 거 없었다. 이른 시각 오전 5시 30분 비행기 편이라서 이란 경비대가 거의 없었다고.
7. 기타
- 제작은 조지 클루니와 벤 애플렉 감독이 공동으로 맡았다. 클루니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미국 영화계 인물 중에 클루니만큼 미국의 현대사에 관심을 갖는 인물은 드물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클루니는 미국 현대사의 이야기를 영화에 주로 다루는 편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분장감독 존 체임버스(존 굿맨)는 실존인물로, 크레딧에도 나오듯이 영화 혹성탈출로 아카데미 분장상(당시에는 공로상으로 분류)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이 사건 이후에 CIA로부터 공로상(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을 받는다.
- 등장인물인 레스터 시겔 (알란 아킨)은 가상인물이다. 그의 전체적인 인물상은 체임버스의 동료였던 로버트 시델과 워너브라더스의 창립자인 잭 워너를 섞은 것이라고 한다.
- 아르고 작전은 빌 클린턴 정부에 와서야 정보가 공개되었다. 97년에 토니 요원은 CIA 훈장을 돌려받았다. 비밀리에 행해진 작전이기에 훈장수여도 비밀이라 어디 내걸수도 없으니 기밀기록으로만 남고 훈장 자체는 반납했던 것.
- 토니 요원은 2001년에 존 챔버스가 죽기 전까지 친하게 지냈다. 또한 토니 요원은 다시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으며 메릴랜드에 살다가 2019년 1월 파킨슨 병으로 별세했다.
- 토니 요원은 CIA 역대 최고의 요원 50인에 뽑혔다. 영화 마지막에 실제 카터 대통령의 육성을 삽입해 알려준다.
- 이란 정부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아르고가 작품상 등을 수상하자 이를 비난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 미국 흥행은 제작비 4450만 달러로 미국에서만 1억 3055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해외 수익은 7710만 달러로 북미(미국, 캐나다)에 비해 아쉽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해외에서는 상반된 평도 있었는데 이라크 전쟁에 이어 이젠 이란까지 쳐들어가고자 만든 프로파간다 영화냐는 비아냥 섞인 소리도 있었다. 한편 이런 지적에 당연히 감독인 애플렉 감독은 불쾌해 했다.
- 실제 사건에서 사용된 가짜 영화는 로저 젤라즈니의 소설 신들의 사회 영화화 계획이 무산된 것을 토니 맨데스가 '아르고'로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컨셉트 아트와 콘티 작업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잭 커비.
- 주인공 일행이 타고 탈출하는 비행기는 스위스에어의 보잉 747이다. 하지만 실제 구출작전에 쓰인 기종은 DC-8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해당 항공기에 붙은 별명은 스위스의 지명을 딴 아르고(Aargau)였다.[11]
- 크리스 테리오 각본가와 벤 애플렉 감독은 2016년 3월에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다시 작업했다.
- 와이어드지에서 전직 CIA Chief of Disguise였던 조나 멘데즈가 역대 스파이물의 변장씬에 대해 얘기하는 영상을 만든 적이 있는데, 여기서도 당연히 언급되었다. 압권인 부분은 그녀가 영화를 소개하면서 밴 애플렉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제 남편, 토니 멘데즈 역을 맡았습니다.라고 하는 것. 성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녀는 실제로 토니 멘데즈의 아내였다. 영상 자체는 각 영화에 대해 짧게만 언급하다보니 자세한 얘기는 없지만, 실제 작전에 대해 살짝 언급하기는 한다.
[1]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에 입국한 이란의 옛 전제군주인 샤(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샤, 통칭 팔레비 국왕)의 송환을 요구하며 미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으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샤는 2차대전 와중에 국왕이 된 뒤 자주정책을 펴는 수상 모사데그를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축출한 다음에 서구화 정책으로 서방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만, 사치와 향락, 부정부패, 사바크로 대표되는 압재와 폭정을 일삼다가 1979년 초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에 의해 축출되고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암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과연 1년이 채 되지 않아 죽었다. 그는 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압재와 학살은 다 부하들이 잘못한 것이고 난 전혀 들은적도 없다"고 변명을 했지만 전제군주였던 그가 몰랐다는 것이 말이 안되고 자신은 몰랐단 변명은 나치 전범들도 달고 다니던 레퍼토리다.[2] 자동차는 무조건 검문하기 때문에 의심받지 않도록 자전거로 가면된다는 발상의 계획이었는데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이동거리가 문제였다 [3] 실제로 이란 지도부는 CIA 이란 지부가 파쇄한 문서를 양탄자 짜는 여인들이 짜맞추게 해서 그 내용을 복원, CIA의 공작기법에 대해 6권의 책을 냈다.[4] 처음에 만나자마자 일부러 영화에 대해 다르게 물어봐 함정질문을 던지고, 가이드 루트에 사진사를 심어놓아 촬영스탭이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전부 찍어두었다[5] 허락없이 사진을 찍자 상점 주인이 크게 화를 낸다. 원래 이란을 위시로 중앙아시아 문화권에선 허락없이 사진을 찍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주인의 아들이 샤의 폭정 때문에 죽임을 당했고 주인은 "내 아들은 샤가 쏜 미국 총에 죽었다!"라면서 직원들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쓴다. 이에 흥분한 군중들이 몰려들었고 공포에 질린 직원들과 이란 문화부 관계자는 우린 캐나다 사람들이다라고 외치면서 그 자리를 겨우 빠져나간다.[6] 일명 '독수리 발톱'(Eagle Claw)이라는 작전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듬해인 1980년 4월 특수부대원들을 수송하려던 헬기와 수송기가 충돌하는 대참극을 빚으며 제대로 된 작전도 못하고 실패했다.[7] 스토리보드의 그림을 보여주며 영화 플롯을 재미있게 풀어놓으며 수비대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보았다.[8] 참고로 시상자는 미셸 오바마 영부인이었다.[9] 골든 글로브 시상식, BAFTA, 미국 감독 조합상 등 메이저 시상식들에서 전부 감독상을 수상하였다.[10] 참고로 85회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사람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안 감독.[11] 다만 현지 발음은 '아라우'에 가까우며, 아인슈타인이 스위스에 이주한 후 교육과정을 이수했던 곳으로 나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