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구름
''' 坂の上の雲 '''
일본 시대 중 메이지 유신 직후부터 러일전쟁 승리까지를 그려낸 시바 료타로의 장편 역사소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산케이 신문에 연재하였으며 연재 기간에 맞춰 6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1978년에는 문고판으로 8권이 출판되었다.
러시아 해군을 격파하는데 일조한 유능한 해군 장교 '아키야마 사네유키', 육상전투에서 활약한 기병 장교 '아키야마 요시후루',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인 '마사오카 시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 시대 자체'''. 아키야마가 존경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근대화의 아이콘으로 나온다.
시바 료타로는 이 시기를 '''매우 낙천적인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근대화 속도를 보여줬고,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를 꺾어 동아시아에서 독보적 위치에 선데다 대만을 차지하고, 나아가 마지막 적수인 러시아 제국을 러일전쟁에서 세계가 깜짝 놀란 승리를 거두기까지 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이 시대로 말미암아 조선을 강탈하고 거대한 일본제국을 건설하는 토대를 이뤘다는 점에서, 일본인 스스로 보기에 이보다 더 신나는 시절은 좀처럼 없었을 것이다.[1] 물론 얼마 안가 벌어진 다이쇼 데모크라시 같은걸 보면 일반 민중들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영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만 음모와 악행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일본 근대사에서 일본인들이 그나마 '''그림자 없이''' 회상할 수 있는 시기에 속하는 시대 중 하나긴 했다. 물론 알고보면 이 시대도 중간에 세이난 전쟁, 류큐 처분 등 사건사고가 많던 시기긴 했지만... 특히 러일전쟁은 양측 다 엄청난 사상자를 낸 '''상처 뿐인 영광'''이기도 했다.
사실 이 소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시기 일본 육군과 일본 해군에서 복무한 형제 주인공을 통해 일본이 전쟁을 발판으로 근대국가로 성장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 학계에서는 "침략전쟁의 성격을 은폐하고 미화한 책"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또한, 김응교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일본 우익사관의 근저에 있는 것이 시바 료타로"라며 "한국과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한 나라이고 일본은 성공한 나라라는 점을 대비하는 것이 시바 료타로 역사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바 료타로는 이 소설을 통해 메이지 시대를 '앞만 보고 가는' 체질이었다고 기술하면서, 이 소설로 현대 일본인들의 기운을 북돋아주고자 하였다. 상당히 잘 쓰여진 역사 소설이며, 특히 러일전쟁 부분은 박진감이 넘치게 묘사되었다.
시바 료타로는 러일전쟁 이후의 시대도 소설로 쓰려고 하였으나 자료 조사 도중에 포기하였다. 시바 료타로가 역사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경험한 전쟁 체험이었고, 자신이 체험한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만일 내가 쇼와 시대를 소설로 쓰게 되면, 제정신을 잃고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러일전쟁 다음에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등인데, 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내세울 만한 일본인들이 죄다 음흉하고 악랄한 인물들 뿐이니... 밝고 진취적인 인물상을 좋아하는 시바에게는 곤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이 소설 이후의 일본인들(특히 쇼와 시대)은 메이지 시대의 번영을 '''먹어치웠다'''고 묘사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1991~2년에 명문각이라는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하였으나 절판된지 오래다.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정발은 아닌 듯 하고, 해적판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식민지화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번역 출판할 생각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광고도 하고 대학교 도서실에도 들어오는 등 꽤나 많이 발행된 듯 하다.
이 작품은 동서문화사의 소설 대망의 마지막 시리즈다. 현 시점에서 시장에 유통되는 유일한 번역본으로 34권부터 36권까지다. 국내에서는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해되는데, 사실 <대망>은 여러 소설의 모음집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중 첫번째 수록작품일 뿐이다.
청일전쟁과 관련하여 이상한 소리가 나돌고 있는데, 그 근원을 추적하면 대개가 이 <언덕 위의 구름>과 연관되어 있다. 그 이상한 소리를 대충 요약하면 '일본은 청나라의 위협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조선을 침탈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계속해서 제국주의화 되었다'는 요지이다.
이게 왜 말이 안 되냐면, 이미 청일전쟁 이전부터 제국주의의 기운이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청일전쟁이 개전된 것이 1894년이고, 그 이전인 1885년부터 참모차장 가와카미가 기밀 수집을 하는 등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하는데, 1879년에 류큐 병탄이 일어나고, 1874년에 대만 침공이 벌어졌다. 그리고 대만 침공에 따라 오키나와를 먹었음을 청으로부터 사실상 승인받는다.[2]
1879년의 류큐 병탄 때, 류큐 제도는 이때까지만 해도 청과 일본의 양국에 조공을 바치는 독립국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합병될 위기에 처하자 청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청이 무시하면서 합병이 되어버렸다.
또한 강화도 조약의 경우도 운요호 사건의 배경에서 보여지듯 강제성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미 1860년대부터 정한론이 대두되어 이후 1880년대까지 꾸준히 주장되어 오는 등, 일본의 대륙침략과 제국주의 기질은 청일전쟁 전부터 뿌리 깊게 내려오고 있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공백기에 방영한 3부작(총 13회) 드라마.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시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언덕 위의 구름(드라마) 문서 참조.
1. 시바 료타로의 장편 소설
일본 시대 중 메이지 유신 직후부터 러일전쟁 승리까지를 그려낸 시바 료타로의 장편 역사소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산케이 신문에 연재하였으며 연재 기간에 맞춰 6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1978년에는 문고판으로 8권이 출판되었다.
러시아 해군을 격파하는데 일조한 유능한 해군 장교 '아키야마 사네유키', 육상전투에서 활약한 기병 장교 '아키야마 요시후루',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인 '마사오카 시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 시대 자체'''. 아키야마가 존경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근대화의 아이콘으로 나온다.
시바 료타로는 이 시기를 '''매우 낙천적인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근대화 속도를 보여줬고,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를 꺾어 동아시아에서 독보적 위치에 선데다 대만을 차지하고, 나아가 마지막 적수인 러시아 제국을 러일전쟁에서 세계가 깜짝 놀란 승리를 거두기까지 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이 시대로 말미암아 조선을 강탈하고 거대한 일본제국을 건설하는 토대를 이뤘다는 점에서, 일본인 스스로 보기에 이보다 더 신나는 시절은 좀처럼 없었을 것이다.[1] 물론 얼마 안가 벌어진 다이쇼 데모크라시 같은걸 보면 일반 민중들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영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만 음모와 악행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일본 근대사에서 일본인들이 그나마 '''그림자 없이''' 회상할 수 있는 시기에 속하는 시대 중 하나긴 했다. 물론 알고보면 이 시대도 중간에 세이난 전쟁, 류큐 처분 등 사건사고가 많던 시기긴 했지만... 특히 러일전쟁은 양측 다 엄청난 사상자를 낸 '''상처 뿐인 영광'''이기도 했다.
사실 이 소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시기 일본 육군과 일본 해군에서 복무한 형제 주인공을 통해 일본이 전쟁을 발판으로 근대국가로 성장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 학계에서는 "침략전쟁의 성격을 은폐하고 미화한 책"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또한, 김응교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일본 우익사관의 근저에 있는 것이 시바 료타로"라며 "한국과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한 나라이고 일본은 성공한 나라라는 점을 대비하는 것이 시바 료타로 역사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바 료타로는 이 소설을 통해 메이지 시대를 '앞만 보고 가는' 체질이었다고 기술하면서, 이 소설로 현대 일본인들의 기운을 북돋아주고자 하였다. 상당히 잘 쓰여진 역사 소설이며, 특히 러일전쟁 부분은 박진감이 넘치게 묘사되었다.
시바 료타로는 러일전쟁 이후의 시대도 소설로 쓰려고 하였으나 자료 조사 도중에 포기하였다. 시바 료타로가 역사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경험한 전쟁 체험이었고, 자신이 체험한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만일 내가 쇼와 시대를 소설로 쓰게 되면, 제정신을 잃고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러일전쟁 다음에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등인데, 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내세울 만한 일본인들이 죄다 음흉하고 악랄한 인물들 뿐이니... 밝고 진취적인 인물상을 좋아하는 시바에게는 곤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이 소설 이후의 일본인들(특히 쇼와 시대)은 메이지 시대의 번영을 '''먹어치웠다'''고 묘사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1991~2년에 명문각이라는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하였으나 절판된지 오래다.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정발은 아닌 듯 하고, 해적판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식민지화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번역 출판할 생각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광고도 하고 대학교 도서실에도 들어오는 등 꽤나 많이 발행된 듯 하다.
이 작품은 동서문화사의 소설 대망의 마지막 시리즈다. 현 시점에서 시장에 유통되는 유일한 번역본으로 34권부터 36권까지다. 국내에서는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해되는데, 사실 <대망>은 여러 소설의 모음집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중 첫번째 수록작품일 뿐이다.
1.1. 논란
청일전쟁과 관련하여 이상한 소리가 나돌고 있는데, 그 근원을 추적하면 대개가 이 <언덕 위의 구름>과 연관되어 있다. 그 이상한 소리를 대충 요약하면 '일본은 청나라의 위협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조선을 침탈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계속해서 제국주의화 되었다'는 요지이다.
이게 왜 말이 안 되냐면, 이미 청일전쟁 이전부터 제국주의의 기운이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청일전쟁이 개전된 것이 1894년이고, 그 이전인 1885년부터 참모차장 가와카미가 기밀 수집을 하는 등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하는데, 1879년에 류큐 병탄이 일어나고, 1874년에 대만 침공이 벌어졌다. 그리고 대만 침공에 따라 오키나와를 먹었음을 청으로부터 사실상 승인받는다.[2]
1879년의 류큐 병탄 때, 류큐 제도는 이때까지만 해도 청과 일본의 양국에 조공을 바치는 독립국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합병될 위기에 처하자 청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청이 무시하면서 합병이 되어버렸다.
또한 강화도 조약의 경우도 운요호 사건의 배경에서 보여지듯 강제성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미 1860년대부터 정한론이 대두되어 이후 1880년대까지 꾸준히 주장되어 오는 등, 일본의 대륙침략과 제국주의 기질은 청일전쟁 전부터 뿌리 깊게 내려오고 있었다.
2. NHK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
2009년부터 2011년까지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공백기에 방영한 3부작(총 13회) 드라마.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시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언덕 위의 구름(드라마) 문서 참조.
[1] 그러나 야스히코 요시카즈 같은 작가는 이 시기의 그림자를 그린 왕도의 개를 집필, 바로 이 즈음(정확히는 청일전쟁)이 '근대 국가 일본은 대체 언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2] 대만침공의 명분은 오키나와 혹은 류큐 사람이 대만 현지에서 피살된 것이었다. 이걸 두고 일본이 자국인이 죽은 것으로 보고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즉, 이 사람을 류큐 왕국인으로 보느냐 오키나와인으로 보느냐 여부는 사실상 청이 오키나와 합병을 인정한 것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었다. 결국 이 시점에서 일본은 대만에서 철수하고 대신 청 측이 일본측에 배상을 하여 사실상 오키나와는 일본땅임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