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시범아파트

 



[image]
'''명칭'''
''시범아파트''
'''영문 명칭'''
Sibeom Apartment / Demonstration Apartment
'''종류'''
아파트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63로 45 (여의도동)[1]
'''최초 입주'''
1971년 12월
'''동수'''
24개동
'''층수'''
12층, 13층
'''세대수'''
1,578세대
'''주차대수'''
-
'''면적'''
60㎡, 79㎡, 118㎡, 156㎡
'''건설사'''
다수[2]
1. 개요
2. 연혁
3. 의의
4. 주변시설
5. 교통
5.1. 버스
5.2. 지하철
6. 기타


1. 개요


대한민국 최초의 단지형 고층 아파트이다.
여의도에 있는 시영 아파트[3] 단지. 1971년 10월 준공되었으며 12월 입주를 시작했다.

2. 연혁


1971년 발표된 여의도 종합 개발계획안에 의해 만들어졌다.
원래 여의도 개발계획은 택지를 조성, 민간에 팔아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고 여의도를 민자개발하겠다는 취치로 입안되었으나 택지를 사겠다는 업체가 없어 결국 계획을 변경, 서울특별시에서 먼저 고급 아파트를 지은 후 택지를 분양키로 한다.
또한 당시 시민아파트로 대표되던 부실시공 문제의 시정을 요하는 분위기로 인해, 이 아파트는 매우 튼튼히 지어지게 된다. 심지어 2000년대 이후 회현시범아파트가 노후화로 인해 안전진단에서 하위권을 기록해왔던 것과 달리 이 아파트는 안전진단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한 적이 없다!
입주 당시부터 엘리베이터[4], 에스컬레이터[5], 스팀난방 등의 생소했던 고급장비를 갖추었다. 또한 단지 내 어린이 공원 2개소와 분수대 등 조경 시설도 당시기준 최고급으로 갖추었으며 준공과 함께 고급 아파트로서 인식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시민아파트가 원래 서민을 위해 지어졌지만 의외로 중산층에게서 인기가 많았던 것과 달리, 시범아파트는 처음부터 중산층 이상을 타겟으로 노리고 분양한 것. 집값도 분양 당시 최소 200만원이 넘어갔고, 몇 달 후에는 그 두 배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참고로 1971년의 200만원은 일반직장인 수년치 봉급에 해당되는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는 거금이었다.
특이한점으로는 전용률이 100%라서 공공면적과 전용면적이 똑같다보니 실평수가 상당히 넓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35평짜리 아파트 기준으로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들은 집의 실평수와 복도,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을 다 포함한 공공면적이 118㎡(35평)면 집의 넓이만을 포함한 실평수인 전용면적은 84㎡(25평)이다. 그러나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118㎡의 전용면적도 118㎡이다.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서 전용면적이 118㎡정도 나오려면 45평정도는 되어야지 그정도 전용면적이 나온다. 즉 여의도 시범아파트 35평짜리가 다른 아파트 45평과 비슷한 넓이이다. 다만 설계가 아주 옛날 설계이고, 베란다 넓이도 넓기 때문에, 실제 들어가 보면 전용면적 만큼 넓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3. 의의


'''최초의 한국형 고층 아파트 단지'''로, 1970~80년대 한국형 아파트의 상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1970년대~80년대 우후죽순 지어진 판상형 고층아파트 단지의 원조이다.[6] 총 24개동에 1,578세대가 입주한 대단지로서[7], 복도형 통로, 엘리베이터, 냉/온수 급수와 스팀난방, 중앙난방, 마당식 거실 등의 이후의 한국 고층 아파트 단지를 특징짓는 여러 현대적 구조를 채택했으며, 이후 지어지는 많은 아파트들이 이를 복붙하였다.
엘리베이터, 급수, 난방은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는데, 그럴 것이 엘리베이터는 당시 정부서울청사백화점, 일부 고층건물에나 설치되는 고급 장비였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수도꼭지 한번 돌리면 냉수와 온수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거의 냉수샤워를 하던 당시에는 매우 신기하고 편리하기 그지없었다. 또 보일러를 땐 수증기로 난방을 했기에, 기존 아파트들이 차용했던 연탄난방보다 안전했고 편리했다. 가스중독으로 사망할 위험도 없었고, 시간이 되면 방이 데워지는 중앙난방 방식이라 일일이 연탄을 때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또한 여의도 발전에 있어 그 시초가 되었다. 모래사장뿐이던 여의도에 먼저 시범아파트를 짓고, 입주자들의 수요에 따라 주변마다 학교, 쇼핑센터, 라이프 시설 등이 입주하기 시작해서 결국은 지금의 여의도가 만들어진 것.

4. 주변시설


단지 동쪽에 63빌딩이 있다. 상가측 정문서 횡단보도 하나 바로 건너면 된다.
앞에는 한강공원이 있고, 뒤에는 삼익아파트와 은하맨션, 그 주변에 상가가 있다.
단지 서쪽으로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너면 여의도초등학교, 여의도중학교, 여의도여자고등학교가 있으며, 횡단보도를 한 번 더 건너면 여의도고등학교가 있다.
이렇게 학교가 옹기종기, 그것도 가까이 모인 건 서울시교육청서 실시한 특수학군제의 영향 때문이다.

5. 교통



5.1. 버스



5.2. 지하철


역세권으로 보기에는 살짝 거리가 있다. 그리고 대단지라서 동에 따라 지하철 역 체감거리가 다르다.

6. 기타


아파트에 설치된 엘레베이터와 시범 아케이드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당시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당시 에스컬레이터는 서울 시내 최고급 백화점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며, 다른 동네에서 이 움직이는 계단을 타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였다. 엘레베이터 역시 당시엔 생소한 물건으로, 입주민들이 작동법을 알 수 없어 모든 엘레베이터에 싹싹한 엘레베이터 승무원(제복을 입은 젊은 여성들)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전체 24개동에 3교대 근무 인원을 배치해야 했으므로 수도 많았다(총 98명을 뽑았다고 한다). 물론 모든 입주민들이 엘레베이터를 스스로 작동할 수 있게 된 후에는 엘레베이터 승무원들은 모두 철수.
단지 내에는 자유어린이공원과 평화어린이공원이라는 놀이터가 있다. 또한 조성한지 50여년이 되는 관계로 단지내의 나무들이 매우 크다. 조성 당시에도 어느 정도 크기의 묘목을 식재했으므로 지금으로서는 수령 60년을 넘는 셈. 어느 정도냐면 큰 나무들은 7층 높이까지 올라온다.
지은 지 50년이 되도록 재건축되지 않았지만, 아직도 수요가 많을 정도로 아파트는 튼튼한 것 같다. 게다가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 사업성도 떨어진다. 2008년재건축 계획이 잡힌 적 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튼튼하다고는 하지만 몇몇 구조는 지금 기준으로 매우 구식인데 특히나 집수정이 요즘 같이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는것이 아니라 지하에 시멘트로 지어져서 지금은 거의 늪 수준으로 상태가 좋지않다. 집수정도 별로인데 배관도 안좋아서 정수기는 필수이다.
2016년 들어 재건축 추진에 변동이 생겼다. 신탁 방식으로, 한국자산신탁에서 입찰해 주민 96%의 동의를 얻어서 재건축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2017년 5월 17일 그야말로 쥐도새도 모르게 D등급[8] 으로 안전진단 통과가 되었는데, 메가톤급 분양시장이 될 수 있는데 비해 너무 조용히 통과되었다. 다만 2021년 시점에서도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황.
김민석 영등포 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1] 여의도동 50[2] 삼부토건, 현대건설, 부국건설, 대림산업, 한국건업, 건설산업, 모양건설[3] 다만 여기서 '시영'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진 않다, 서울시에서 이 아파트 단지에 소유권을 행사하거나 운영에 관여하는 바는 없기 때문. 서울시에서 초기 건설과 분양을 맡았을 뿐이다. 물론 SH공사와도 전혀 관계 없다.[4] 엘리베이터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야 있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주요 대도시에서나 볼수있던 그것도 아무건물이 아니라 호텔, 백화점, 일부 고층건물과 관공서에서나 볼수있었던 매우 비싼 장비였다. 엘리베이터가 구경거리가 되는것은 당연지사였다.[5] 단지 내 상가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다.[6] 최초의 10층대 아파트는 1968년에 준공된 힐탑아파트지만 외인아파트라 한국형 아파트와는 거리가 꽤 있었고, 단일동 아파트였다. 그 외에도 시범아파트 보다 먼저 지어진 10층 이상의 층수를 가진 아파트들이 간혹 있었지만, 단지 개념이 아니라 개별 건물 개념에 머물렀다. 예를 들어 세운(현대, 대림, 삼풍, 진양)상가, 낙원아파트도 단지식이 아니라 단일동으로 구성되어 있다.[7] 현재 기준으로도 작은 단지는 아니다[8] 건물 구조 안전상의 문제는 크지 않으나, 배관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D등급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