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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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의 연합군 군정기를 뜻한다. 오스트리아는 10년동안 군정 치하에 놓여 있었다.
2. 역사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 합병되어 있었다. 독일에 강제로 합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인들은 나치 독일에 적극 협조했다. 1943년 열린 모스크바 회담에서는 미국-영국-소련 3국이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이 무효고 전쟁 이후에 오스트리아를 독립시켜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비록 독일에 의해 끌려가긴 했지만 추축국 편에 참전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3월 29일, 소련군이 오스트리아 동부에 진입했으며 4월 13일 오스트리아의 최대 도시인 빈을 점령하고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카를 레너와 접촉했다. 소련은 오스트리아 또한 공산화시켜서 자국의 위성국으로 만들려고 망명한 오스트리아인 공산주의자에게 내각을 수립하게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4월 20일에는 레너에게 임시 정부를 수립하라 지시했고, 레너 내각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서방 연합국들은 오스트리아에 소련의 우방국이 수립될 것을 우려해 레너 내각을 승인하지 않았다. 레너 내각의 3분의 1 이상이 공산주의자였으며 내무인민위원회의 감시 하에 있었다.
한편 미군, 프랑스군, 영국군도 4월 말에서 5월 초에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서부를 점령한다. 그 해 7월 9일, 연합국은 점령 구역의 경계를 결정했고 빈은 베를린처럼 분할 점령되었다.
9월 12일, 4개국 군정 장관으로 이루어진 연합군 통제 위원회가 수립되었으며 총선거를 실시했다. 소련의 기대와는 다르게 오스트리아 공산당은 5%의 득표율을 얻은 반면 오스트리아 국민당-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연합은 90%의 득표율로 내각을 장악했다. 1946년에는 연합국들이 2차 통제 협정을 통해 오스트리아에 대한 지배를 약화시켰다. 1947년 8월 4일자 연합국 최고 사령부 지령(SCAPIN) 1757호에서는 오스트리아를 연합국, 중립국, 적성국 어느 한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특별 상대국으로 지정하였다.[2]
1950년에는 서방 연합국들이 군정 장관을 민간인 외교관으로 교체했으며 소련도 스탈린 사망 이후 교체하였다. 점령군의 규모도 1950년대에 와서 크게 줄였다.
1955년 7월 27일,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을 통해 완전히 독립했다. 조약은 오스트리아는 서독, 동독과 통일할 수 없고 생화학무기를 생산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 조약 발효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 군대는 오스트리아에서 철수했고 같은 해 10월 26일 오스트리아는 영세 중립국임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