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계 기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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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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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있는 시리아의 기독교인들
1. 개요
기독교를 믿는 아랍인. 아랍인 기독교도, 기독교 아랍인이라고도 한다. 아랍에서 대대로 거주하고 있고, 아랍인이라는 특성에서 정체성을 찾는 기독교인들을 말한다.
이슬람은 비교적 늦게 발흥[1] 했으며, 원래 중동은 이슬람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기독교의 발상지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따라서 이들은 초대 교회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다.
2. 종파
아랍계 기독교인들이 주로 속해있는 교회들은 아래와 같다.
아래 교회의 신자들은 넓은 범위로는 아랍계 기독교인들로 분류되지만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 마론파 - 스스로를 페니키아인의 후예라고 여긴다.[2]
- 아시리아인 교회 - 아람어를 보존하고 있다는 긍지가 강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아람어를 보급한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후예에서 찾는다.
- 아시리아 동방교회
- 칼데아 가톨릭
- 동방 고대교회
- 시리아 정교회 - 동로마 제국 시절 헬레니즘화되었던 그리고 사실상 초기 기독교 역사를 주도했던 시리아 안티오크 시민들의 후예라는 정체성이 강하다. 원래는 네스토리우스파와 교리 차이로 서로 갈등하던 사이였으나 근현대 민족주의의 부흥 이후 아시리아인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 시리아 가톨릭 - 오스만 제국 시절 베네치아, 제노바 상인들과 접촉하던 시리아 정교회 신도 일부가 교황수위권을 인정한 경우. 역시 교파 차이로 갈등이 있으나 오늘날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서 아시리아인 정체성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 콥트 정교회 : 콥트 기독교 역시 세속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고대 이집트인의 후예라는 정체성이 강하고, 근본주의 성향은 자신들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참된 후예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다. 콥트교에서 현재도 모세를 콥트인의 대표적인 예언자로 기념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3. 오해
흔히 '''아랍 = 중동 = 이슬람'''이라고 셋을 동치시키는 오류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셋은 아주 다르다.''' 아랍인은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고, 중동은 정의에 따라 다르지만 언어권이 다른 이란(페르시아어)이나 터키(터키어) 혹은 더 확장되기도 한다. 이슬람교는 오히려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나 파키스탄, 인도(!)[3] 등 오히려 비중동권에 신자가 더 많다.
4.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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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해 연안의 아랍계 기독교인 규모
사실 이들도 다양한 분류이다. 종파도 다르고, 생각보다 넓은 지역에 분포해 있다. 주요 종파는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동방 가톨릭 교회이다. 그 외에 현대에는 개신교 종파들과 라틴 전례 가톨릭도 추가되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의외로 다양한 종파가 있다...
레바논, 시리아 등 레반트 지역과 이라크에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및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자도 있긴 한데 이들은 아랍인이 아닌 아르메니아인이라 제외한다. 물론 모어는 아랍어이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의 영향을 받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로 개종한 경우라면 아랍계 기독교인에 해당한다. 실제로 현대 아르메니아인 중에는 아르메니아화된 비아르메니아인(아랍인, 이란인, 아제르바이잔인 등)의 후손들이 존재한다.
4.1. 레바논
레바논은 중동에서 기독교인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로 40% 이상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에 프랑스가 마론파 기독교인들만의 나라를 세워서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을 견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4][5] 레바논 전인구의 21%는 동방 가톨릭의 일파인 마론파 신자이며 레바논 대통령은 반드시 마론파 신자여야 한다. 인구의 8%는 정교회, 5%는 다른 동방 가톨릭의 일파인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을, 1%는 개신교를 믿는다.
4.2. 시리아
1960년 이후 시리아 정부가 종교별 인구통계를 내놓지 않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정교회 신자가 가장 많긴 한데, 시리아 가톨릭, 마론파,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동북부를 중심으로 시리아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등 다른 종파들도 존재한다.
4.3.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지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기독교인 중 약 78% 가까이는 아랍계 기독교인이다.[6] 이스라엘 제 3의 도시 하이파가 아랍 기독교인이 많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는 의외로 소수고 대부분은 비잔틴 전례를 따르는 정교회 신도이다.)와 가톨릭(로마 가톨릭과 동방 가톨릭 합쳐서) 신자가 반반 정도로 평가된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은 주민 대다수가 아랍계 기독교인으로 시장은 기독교인만 할 수 있는데 시장이 정교회인이면 부시장은 가톨릭교인이고, 그 반대도 또한 성립한다.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전쟁 이후 상당수의 팔레스타인인 기독교인들이 요르단으로 피난을 가기고 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아랍계 기독교인 중 60%가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이라고 한다.
4.4. 이집트
이집트는 아랍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로 이집트 기독교인의 95%는 콥트 정교회를 믿는다.[7] 그 외 정교회와 콥트 가톨릭 신자도 있다.
4.5. 이라크
이라크는 아랍 국가이긴 하지만 정작 이라크 기독교인의 대부분은 아랍인이 아니고, 아람어를 모어로 구사하는 아시리아인이며 아시리아 동방교회, 칼데아 가톨릭 같은 종파를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아랍계 기독교인 통계에서는 제외되는 일이 많으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라크, 터키 모두 아랍계 기독교인 인구는 각 1만 명 남짓이라고 본다. [8] 이들은 이라크뿐 아니라 터키 남동부와, 이란 서북부에도 분포한다.
4.6. 그 외
그 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바레인 등지에도 아랍계 기독교인이 있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민의 자격 자체가 무슬림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비국민취급받는다.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땅에 살던 기독교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이후 세속주의 성향 이슬람교 국가나 기독교 국가로 망명하는 경우가 많았다.[9]
5. 성향
이들의 본산지인 중동에서는 이슬람이 다수를 차지하기도 하고 제국시절에도 일단 법적으로는 세금만 내면 동일한 권리를 누리도록 규정된데다가, 현지 세속주의 정권에서 기독교인에 대해서 어느정도 보호조치를 해주기때문에 이들은 현지 정부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중동 특성상 공권력이 약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단속을 안 하거나 못하다 보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되기 쉬우며 법의 보호를 제대로 못 받는 처지다. 따라서 신분증에 무슬림이라고 표기해 놓고는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변 무슬림들과도 잘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피해서 지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해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무슬림의 순진함을 보면 무슬림을 향한 증오를 터트리는 경우도 있다. 이들도 백인이고 평범하게 살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아랍계라고 판명할 수 없다. 물어보지 않거나, 이들이 다니는 교회를 가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 신앙심 정도도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거의 냉담자 수준에서 근본주의 성향까지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물론 레바논 내전시 이스라엘과 손을 잡았던 마론파 민병대도 있지만, 이제는 국경이 굳건히 닫힌 상황이며, 이스라엘 출입시 레바논 입국이 거부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면서 기독교인들도 전쟁터에 나가 피를 보았으며, 심지어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도 있으니 좋은 입장으로 볼 수 없다. 이게 당연한 일인게, '''이스라엘의 기독교인은 대부분 아랍 민족이다.''' 이스라엘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 탄압국가이기도 하고. 레바논 내전 당시 마론파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사실 서로 다 알거 다 알고 이용해 먹은 지극히 실리적인 관계였지, 무슨 종교, 민족적 관점에서 연대 의식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물론 이건 반대편 팔레스타인/좌파 무장단체와 시리아와의 관계도 똑같았다.
서방 기독교와의 관계는 미묘하다. 오리엔트 정교회 교인들은 칼케돈 공의회에서 축출된 이후 로마(비잔티움) 정교회와 십자군 카톨릭에 의해 여러 번 탄압당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앙금이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최근에야 가톨릭 교회 및 정교회와의 대화가 시도되고 있는 정도. 양대 보편교회에서 이들이 단성론이 아닌 합성론을 믿고 있다고 인정했고, 어쨌거나 신성과 인성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등 관점 차이만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 교황의 수위권에 들어간 동방 가톨릭 교회도 있으며, 교회 일치를 위해 대화가 빈번히 시도되고 있다. 중동의 정세가 불안정해져 그나마 사도 전승 등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진전이 많이 된 상황이다.
서방 선교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이다. 괜히 이들이 현지에서 선교사 활동을 금지하는데에 동의한 것이 아니다. 무슬림 개종시키는 것 못지 않게 힘들기 때문이다
6. 역사
아랍 기독교도들의 시작은 기독교의 시작과 거의 같다. 로마 제국에서 제일 먼저 기독교가 번성했던 지역이 바로 안티오크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 속주 일대였다. 이슬람 이전 기독교를 받아들여 신봉한 가산 왕국, 라흠 왕국과도 같은 기독교 아랍 왕국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다 보니 동로마 제국의 중앙교회에서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동로마 제국과 갈등하다 오히려 신흥 이슬람 세력에게 고작 수천 병사로 입성을 허용한 이집트를 비롯해서,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배자를 바꿨다. 처음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변종 기독교이자 중앙교회보다 더 좋은 친구라고 여겨서 이랬던 것이었으나, '''수 세기 후 이슬람 교리가 기독교, 유대교와의 구분을 강조하게 되면서 상황이 완전 바뀐다.''' 사실 초기에는 무슬림 칼리프들도 세금만 잘내면 기독교인과 무슬림간의 법적인 권리를 동동하게 규정했을 정도로 기독교인들을 존중해주기도 했고 이슬람 제국에서 내는 세금이 동로마 제국보다 세금이 적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딱히 오산이라고만 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차차 지나자, 지배자들은 지즈야[10] 를 올렸고, 농어촌의 경제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할 수밖에 없었다.[11] 지즈야는 돈으로 내야 했는데, 도회지 주민 기준으로는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자급자족하는 농민 입장에서 현물 대신 돈으로 세금을 내라는 말은, 수확물을 팔아 돈을 구입해서 세금을 납부하라는 이중의 부담을 의미했다. 게다가 이들이 무슬림과 결혼하려면 제약이 따랐다. 무슬림 남성 - 기독교 여성 결합은 허용했지만, 그 반대는 불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십자군 시기까지는 과반수 이상이 기독교 신자였지만 이후 감소가 빨라졌다. 십자군을 같은 기독교 신자라고 환영했지만 오히려 십자군은 이들을 이단으로 여기고 있어, 교황수위권을 강요하면서 갈등을 빚었고 초기에는 십자군한테 학살당하기까지 한다. 투르코폴레스가 유럽계 십자군보다 지위가 낮아 겸상이 불가능했던 것을 봐도 알 수있듯이 십자군 전쟁 시절에 아랍계 기독교인들은 같은 기독교 국가에서조차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십자군 이후로 이슬람에 의한 강압적인 탄압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독교인들은 도시의 부유한 상공업자들로 기반이 강하고 아주 정예화 된 사람들 뿐이었다.
정통 칼리프를 대신해 지배한 오스만 제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초창기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보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입장이었고 밀레트 제도로 기독교인에게 어느 정도 법적인 자치를 허용해주었기에 차별을 받아도 그렇게 심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 말기에 조금 말이 달라졌는데 오스만 제국이 서방의 압박으로 종교에 따른 차별을 서류상 철폐한 것. 지즈야도 없어졌고, 직접적인 차별 또한 많이 사라졌다. 물론 이것만으로 천국이 열린 것은 아니다. 오스만 제국은 그 대신으로 민족별로 차별을 하여, 그리스인과 같은 발칸 반도 원주민들에게는 이들로 구성된 파나리오테스라는 귀족 계층이 형성될 정도로 엄청난 특혜를 주었지만, 아랍인들에게는 종교에 관계없이 차별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대부분의 아랍인들이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국에 협력하여 오스만 제국의 붕괴에 크게 일조했다. 그 결과로 중동 지역에는 이라크 왕국, 시리아 왕국, 레바논 공화국 등의 수많은 아랍인 국가가 생겨나서, 그 주권을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측으로부터 공인받게 되었다.
이렇게 독립한 아랍인 국가들 중에서는 레바논이 아랍인 기독교도들의 국가가 되었지만[12] , 아랍인들의 대다수는 이슬람교도인 관계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독립을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절대다수가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신자들인 아시리아인[13] 들은 레바논의 선례를 따라서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독립 공화국을 세우고자 했으나, 이를 두려워한 이라크 왕실에 의해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학살을 당했고, 아시리아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총대주교가 현지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주교좌를 미국의 시카고로 이전하면서 망명했을 정도로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는 유대교 신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래는 공산주의 성향의 몇몇 정치인들이나, 홀로코스트를 피해 중동 지역으로 달아난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영향으로 인해 세속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했으나, 몇 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반(反) 아랍 성향이 짙어짐에 따라 급속도로 우경화가 진행되면서[14] 기독교인들이 대대적인 박해를 받는 지경에 놓였다. 일례로 예수의 탄생지로도 유명하며, 한때는 전체 인구의 90%가 기독교 신자였던 베들레헴[15] 도 제3차 중동전쟁 이후로는 이스라엘 정부의 박해로 인해 절반 가까이 되는 수가 유대교로 개종해버렸을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21세기 들어서는 중동 지역이 이슬람 근본주의의 온상이 되면서, 중동권 기독교인들의 대다수가 고향을 떠나 유럽이나, 아메리카 등으로 이민을 가기도 하여 기독교 신자의 수가 날로 줄고 있는 실정이다. 모국에 그대로 남은 이들도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일이 잦아졌고, 나머지도 대부분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음지로 숨어드는 상황이다. 더욱이 2014년에서 2019년 초까지는 희대의 살인마 집단인 ISIL까지 나타나서 기독교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을 일삼는 통에, 스스로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7. 현지 상황
나라마다 다르지만 공식적으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에서 기독교도의 비중은 10%를 차지한다. 물론 탄압을 피해서 무슬림으로 가장하는 경우도 많고,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이 개종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제 비율은 저것보다 많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비율상으로는 낮지만, 절대적인 숫자로는 수천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레바논 이외에 지역에서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존망 또한 밝지 않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무슬림에 비해 낮은 출산율 : 아무래도 이들은 천 년 이상의 이슬람의 홍수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정예화될 수밖에 없었다.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고, 소득 수준 또한 상대적으로 높다.[16] 하지만 출산율은 교육 수준 및 소득 수준과 반비례 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탄압 밖아서 스트레스 레벨이 높아서 그럴 수도 있다.
2.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직간접적인 탄압 : 지즈야도 없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데, 아직까지도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이슬람을 최상의 종교로 여겨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전제되어 있어서, 이슬람에 대한 모독과 개종시도가 금지되어 있다.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건 합법이지만, 그 반대는 불법이다.[17] 그리고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 기독교인 아내를 취하는 건 합법이나 그 반대는 불법이다(...) 게다가 직접적인 탄압 완화에는 서방의 압박이 크게 작용하였기에, 모두는 아니어도 상당수 무슬림에게 이들은 서방과 우호적이라서 '서방의 앞잡이'로 찍혀서 시선이 좋지 않다.
3. 이슬람 극단주의의 난동 : '''가장 큰 요인'''. '서방의 대한 반감'이 증가해서[18] 기독교의 가치가 탄압받고 있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이 이슬람 극단주의를 제대로 근절을 못하고, 심지어는 조장하다 보니 이게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세속정권에 가까웠던 사담 후세인 정권이 급격히 붕괴한 후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에게 헬게이트가 열렸다. 당시 이라크 내 기독교인이 130만 가량으로 측정되었는데, 전쟁 이후 이라크 난민중 80%가량이 기독교인이었을 정도이다.[19] 이라크 기독교계 국회의원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의한 헬게이트가 없었다면 지금(2016년)쯤 이라크 기독교인은 200만을 돌파했을 것이라고 한다.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튀니지, 레바논, 모로코에서는 세속적인 군부나 헌법, 정부로 인해 '간신히' 보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럼에도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공격받는데다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4. 위의 요소의 결합으로 인한 인구 유출 : 안타깝게도 1000년 이상의 이슬람의 홍수를 버티고 나서 고향을 등지는 기독교인들이 많다.[20] 수많은 세월에 걸친 탄압보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난동으로 늘어난 직간접적 탄압이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현재 갑자기 뛰쳐나온 ISIS가 활개치며 기독교 아랍인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성)노예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입지는 더 좁아지고있다.
게다가 아랍계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동정적으로만 보는 세계의 시각을 마냥 좋아하지는 않는다. 동정적으로만 보지,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니 아랍계 기독교인 입장에선 그런 시각을 좋게 볼 수가 없다.
물론 아랍계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은 이슬람권에게도 전혀 좋은게 아닌데 가뜩이나 광신과 불관용, 테러로 악명 높은 판국에 이 사람들에게 잔혹한 탄압을 하니 이슬람의 이미지가 갈수록 국제 사회에서 나쁘게 찍히고 있는 것이다. 비이슬람권에서는 아랍계 기독교인을 탄압하는것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커지고 있다.
이란계 미국인 언론인인 레자 아슬란은 중동에서 가속화되는 기독교인의 유출은 중근동의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무슬림에게도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슬란 본인이 무슬림인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말하는데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21]
즉 이들이 대면한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서방에서 개입하면 이슬람 극단주의에 기름을 붓는 것일 뿐이라, 기독교인들도 원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방관하자니 이슬람 극단주의가 저절로 가라 앉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8. 다른 대륙으로의 이민
근대에 교통수단의 발달과 오스만 제국의 막장화로[22] 다른 대륙으로 떠나는 기독교인들도 발생했다. 유럽,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으며, 때문에 아메리카의 아랍계들은 기독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아랍이라면 이슬람을 떠올리는 대중이 당황스러워하는 점. 부분적으로 아랍계인 경우만 합쳐도 이들의 인구는 수천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다만 (무슬림을 포함해서) 근대의 아랍인들은 북미보다는 중남미로 더 많이 이주했기 때문에 미국 정계에서 힘을 쓰는 경우가 별로 없다보니 한국에서는 존재감이 옅다. 반면에 중남미에서는 카를로스 메넴이나 미셰우 테메르, 나이브 부켈레처럼 대통령으로 선출된적도 있고, 칠레에서는 팔레스티노라는 축구팀도 존재하며 코카콜라 칠레지사도 아랍계가 소유할 정도로 나름대로 위세가 있는 편이다. 특히 팔레스타인계 기독교인 이민자가 칠레에서 힘 좀 쓰는 편이다.
오스만 제국의 붕괴로 이슬람 제국이 수많은 이슬람 국가로 분열된데다, 세속주의 이념이 약화되고 사우디식 와하비즘이 확산되면서 중동 지역은 이슬람 극단주의 난동으로 이 현상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
9. 인물들
- 낸시 아즈람
- 브리짓 가브리엘
- 미셸 아플라크
[1] 물론 무슬림한테는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좋다. 이들의 사고방식에서는 이슬람은 창시된 게 아니라 우주가 창조될 때부터 있어 왔고, 신의 가르침을 전달할 예언자들이 많이 내려왔으나, 왜곡되거나 잘못 전달되었고, 이를 무함마드가 복원한 것이기 때문.[2] 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실제로도 고대 페니키아인의 혈통을 상당부분 이어받은 것으로 밝혀졌다.[3] 비율(%)은 10%대로 힌두교도의 80%보다는 낮지만, 인도의 인구 수가 워낙 많아 억대에 이르며 의외로 많이 무시당하는 최다 이슬람 국가이다. 물론 10~20%면 한국의 그리스도인처럼 상당수를 차지하는 비율로 흔히 볼 수가 있다.[4]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수니파의 칼리프를 겸했던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1차 대전의 참전 명분으로 지하드를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있던 프랑스 정부가 똑같은 일이 생기는 것을 막고자, 중동에 기독교 국가를 신설하려고 했다. 마침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이 기독교가 다수인 지역이었으므로, 프랑스의 이해에는 딱 맞았다. 참고로 같은 시기에 대다수가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파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신자였던 아시리아인들이 레바논의 사례를 들어서 독립을 요구했지만, 국제사회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했고 곧 아시리아 일대가 제2의 레바논이 되리라고 우려한 아랍계 무슬림들이 적지 않은 수의 아시리아인을 학살하여 이들의 독립을 좌절시켰다.[5] 하지만 프랑스는 레바논의 기독교인들에게 좋은 일만 시켜준 것은 아니었는데 레바논 기독교인들이 주도하던 레바논의 독립운동 움직임을 억누르기 위해 무슬림들이 많이 거주하는 베카 계곡 일대를 레바논의 강역으로 편입시켰다(전통적인 레바논 일대는 베이루트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트리폴리, 남쪽으로는 시돈까지로 지금의 레바논 영토보다 훨씬 작았다). 그 결과 레바논 인구의 80%를 차지하던 기독교도의 수는 무슬림의 수와 엇비슷해 졌으며 이는 독립 이후 레바논 내전이라는 재앙의 씨앗이 된다.[6] 나머지는 러시아 등 동유럽에서 이주해온 러시아 정교회 신도들이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등에서 파견한 성직자들이다. 이라크 등에서 피난온 아시리아인 난민의 경우 이스라엘 내에서 아랍인으로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통계에 따라 아랍인으로 분류될 때도 있다.[7] 콥트 정교회 신도들은 원래 콥트어가 모어였기에 아랍계 기독교인으로 보진 않았으나, 지금에 와서는 이들도 이집트식 아랍어 구어체를 쓰기에 아랍계 기독교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여기가 숫자가 가장 많다. 다만 영어 위키피디아의 아랍계 기독교인 항목에는 콥트교인의 수가 누락되어 있다...가 추가되었다[8] 다만 아시리아인들도 대부분 아랍어를 구사할 줄은 알고, 이라크인과 외관상 차이는 없다. 아랍계 미국인통계에는 아시리아인도 포함되기는 한다.[9]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나 비수니파 무슬림(시아파,수피즘 등)들 또한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땅을 떠나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경우가 많았다.[10] 이슬람권에서 이교도에게 부과했던 세금. 항목 참조.[11] 사실 이것도 시대별로 다르기는 해서 오스만 제국때는 보통은 자유민 남성을 대상으로 징수했으며, 여자나 노예, 60세 이상 노인, 병자는 지즈야 징수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되었으며 자유민 남성이라도 소득증명을 하면 안내도록 되어있고, 농노의 경우에는 영주가 대신 내도록 규정되어있었다. 다만 일정수준의 소득이 있는 농부의 경우에는 내야했는데 내는것이 귀찮기 그지 없던데다가 따로 세금을 내는것이 달가운 일이 아니고, 군대에 가서라도 무슬림으로 개종하는것이 오스만 제국 초기에는 큰 이익이었기 때문에 출세를 노리고 무슬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12] 레바논은 현재도 인구의 상당수가 동방 가톨릭의 한 일파인 마론파 기독교 신자다.[13] 이들은 엄밀하게 말해 아랍어가 아닌 아람어를 모어로 쓰기 때문에 아랍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참고로 고대 중동의 역사에 나오는 그 아시리아의 후예들이며, 스스로도 아랍인과는 별개의 민족으로 인식한다.[14] 절대다수의 아랍인 무슬림들이 기독교 신자는 물론, 유대인들에게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겠다며 무작정 현지인들과의 충돌도 불사한 것도 한몫을 하지만, 아민 알 후세이니와 같은 친(親) 나치 성향의 극우 무슬림들이 극렬 반유대주의자인 아돌프 히틀러의 선동에 넘어가서 고의로 반유대주의 여론을 부추긴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여, 현재까지도 유대인과 아랍인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제1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이 패한 뒤에 중동 각지에 살던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모국에서 추방당했으며, 제3차 중동전쟁의 패전 이후로는 그 분풀이의 일환으로 예멘에서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당연히 이는 유대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스라엘의 분노를 샀기 때문에, 가뜩이나 극심했던 반(反) 아랍인 여론이 더욱 극심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15] 베들레헴의 기독교 신자들의 절반 이상은 정교회 신자이며, 두번째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종파가 바로 가톨릭이다.[16] 실제 레바논에서 기독교인들 중에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많다.[17]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지하게 어렵다. 개종한 사람들이 괜히 해외로 탈출하는게 아니다.[18] 반대로 서방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증가하고 있다.[19] 당장 후세인의 최측근이었던 타리크 아지즈가 기독교인이었다.[20] 이는 아랍계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이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처럼 비아랍권 기독교인들도 같은 처지라서 이들도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이 많다.[21] 물론 아슬란 본인은 초창기에 복음주의 개신교에 다닌 바가 있고 신학을 전공하다 이슬람으로 원복한 특이한 경우이다. 하지만, 부인이 기독교인이고 자녀들에게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는다. 즉 지극히 정상적인 무슬림이다. [22] 왜냐면 말기에 오스만 제국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지방들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심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