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신지

 

[image]
'''FC 류큐 No.7 '''
'''오노 신지 (小野 伸二 / Shinji Ono)'''
'''생년월일'''
1979년 9월 27일 (45세)
'''국적'''
[image] 일본
'''출신지'''
시즈오카현 누마즈시
'''포지션'''
미드필더
'''신체 조건'''
175cm, 76kg
'''프로입단'''
1998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입단
'''소속팀'''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1998~2001)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1~2005)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06~2007)
VfL 보훔 (2007~2009)
시미즈 에스펄스 (2010~2012)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 (2012~2014)
콘사도레 삿포로 (2014~2019)
FC 류큐 (2019~2020)
콘사도레 삿포로 (2021~)
'''국가대표'''
56경기 6골
'''2002년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판즈이(던디 FC)

'''오노 신지(페예노르트)'''

메흐디 마다바키아(함부르크 SV)
1. 개요
2. 선수 경력
3. 기록
3.1. 대회 기록


1. 개요


일본축구 선수. 현재 FC 류큐에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한 때''' 일본 축구계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 선수로, 뛰어난 테크닉과 정확한 패스로 붙은 "천재"라는 별명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한창 전성기 때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나카타 히데토시가 부재할 때 대신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기도 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이지만, 상황에 따라 수비형 미드필더나 측면 미드필더도 볼 수 있다. "일본축구의 미래" 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로 일본 축구계의 기대가 대단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전성기가 매우 짧아 아쉬웠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는 하부리그지만 지속적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던 선수 중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단 4명'''의 선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1]

2. 선수 경력


중학교 시절부터 시즈오카현의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가 축구를 배웠으며, 1993년 일본 15세 이하 국가대표팀을 시작으로 16세와 17세 이하 국가대표팀에 포함되며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1998년 우라와 레즈에 입단해 프로 무대를 밟았으며, 입단 첫 해에 27경기에 출전해서 9골을 기록해 그 해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8년에 18세의 나이로 처음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그 해 열린 한일전에도 출전했으며, 당시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이후 1999년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FIFA 청소년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아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FIFA 기술위원회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11'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999년 올림픽 예선 경기 도중 무릎 부상을 입었으며, 핵심 선수를 잃은 우라와 레즈는 결국 시즌이 끝난 이후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감을 잃고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 2000 시드니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었다. 당시 여러 클럽에서 이적 제의가 있었지만, 소속팀과의 의리를 지키고자 잔류했다. 결국 성공적인 재활훈련을 끝마치고 부활하는 데 성공했으며, 강등된지 1시즌만에 다시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이후 2000년 AFC 아시안컵에 발탁되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A매치 첫 골을 터뜨렸으며,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해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득점에 성공하는 등 주전으로 맹활약해 유럽 구단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회가 끝난 이후 이적료 4억 5천만 엔에 네덜란드 에레디비시페예노르트 로테르담과 계약해 유럽 무대에 진출했으며, 이적 첫 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UEFA 컵 결승에서 욘 달 토마손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팀의 UEFA 컵 우승에 공헌하며 일본 축구 선수 역사상 첫 유럽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 2003년 재계약에 성공했으며,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출전하였다.
하지만 2004년 말 왼쪽 말목에 부상을 입었으며, 이후 하향세를 타 팀에서 오노 신지를 타 팀으로 이적시키기로 결심했는데, 문제는 그 때 언급된 팀들이 FC 바르셀로나아스날 FC, 에버튼 FC 등이였단 거다.(...) 그리고 실제로는 볼턴 원더러스와 협상했으나, 결국 결렬되어 팀에 잔류하게 되었다.
이후 2006년 자신의 친정팀인 우라와 레즈로 복귀했으나, 잦은 부상으로 여기에서도 교체 횟수가 잦아지는 등 지속적인 하향세를 보였다. 그래도 2006 FIFA 월드컵에는 출전했으나, 월드컵 이후에는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8년 갑자기 VfL 보훔으로 이적한다는 뜬금포가 터졌고, 결국 이적이 확정되어 유럽 무대에 재진출했다. 입단 이후 베르더 브레멘과의 데뷔전에서 2어시스트를 기록해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지만, 데뷔전 활약 이후 부상으로 잦은 부침에 시달렸다.
2010년 J리그 복귀를 선언했으며, 여러 클럽들이 관심을 보인 가운데 시미즈 에스펄스를 선택했다. 비록 2010 FIFA 월드컵에는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일본이 네덜란드에 이길 수 있다는 격려를 하기도 했다.(...)[2]
페예노르트 시절 송종국과 한솥밥을 먹으며 한국과 인연을 맺기도 했으며, 2007년 이천수가 페예노르트로 이적할 때 오노 신지와 비교되기도 했다.

3. 기록



3.1. 대회 기록




[1] 나머지 3명은 잔루이지 부폰, 후세인 압둘가니, 이토 테루요시[2] 그 때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이 오노 신지가 페예노르트에 있었을 당시 감독이었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