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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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경상북도를 기반으로 무려 '''10여년째''' 활동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초대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다 2018년 2월 경북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서 대동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두 번의 대선 동안 경북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었고, 2017년에는 대구경북 당직자 중에서 유일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2. 활동
2.1. 정치 입문 전
경상북도 포항시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에서 과일, 해산물 도매상을 하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자매는 2남4녀의 육남매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 둘만 대학의 진학하고 누나들과 여동생은 일찍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도 중학생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위해 과일배달 리어카를 끌면서 죽도시장에서 '''오씨 아들'''로 통했으며 지금도 상인들이 반겨준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대동중학교와 대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6년 내내 반장을 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4.19혁명론'이라는 책을 보고 선생님께 '4.19는 의거인가요? 혁명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가 핀잔을 들었는데, '''정의'''라는 단어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영남대학교 철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인생 망친다'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집회 현장에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책자를 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 철학과 학생회장, 문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구경북지역대장까지 맡았다. 결국 탄압이 심하던 당시,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고 7개월 가량 도망다녔으나 붙잡혀 구속되었다. 몇달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3년에 특별복권되었으나 전과가 남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상경하여 한국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일했던 이력도 있다.
2.2. 정치 활동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예전 참여정부가 비난을 받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역사적 사명감을 가졌다고 하며 동서로 갈라진 지역주의 타파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여겼다고 한다. 이후로 김근태 전 의장의 권유로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정치에 투신하게 되었다.
2008년 포항시 북구 지역구에서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처음으로 출마했던 그였지만 첫 여론조사에서 2%대의 참담한 지지율을 받으며 낙심에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하여 본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병석 후보에 밀려 5.8%로 낙선하였고 이를 발판삼아 경북 지역에서 당세를 키우는 노력부터 다시 시작했다. 예컨대 그가 포항시 북구 지역위원장을 처음 맡았을 때 지역에서 당비 내는 당원이 수십명에 그쳤으나 현재는 자발적 권리당원이 1,0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노력은 2016년까지 총 4번의 도당위원장 당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결과로 돌아왔다. 지역 당원들이 민주당 경북도당의 성장에 대한 그의 기여를 높게 평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내 선거와는 달리 본선에서는 계속해서 고배를 마셨다.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유성찬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를 위해 불출마한 것을 제외하고,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낙선을 겪었다.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100% 환급받은 적이 없는데, 특히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선거 비용 전액 환급 기준 15%에 겨우 0.07%포인트가 모자랐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출신 무소속 박승호 후보에 표가 몰려 12.71% 득표에 그쳤다. 이후 2013년엔 제18대 대선 패배 이후 혼란스러웠던 민주통합당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 경북도당 위원장 선거에서는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김현권 의원을 누르고 도당위원장 4선에 성공했다.
2017년 제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경북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후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중 균형발전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2] 균형발전비서관이 일찌감치 사직해 공석인 상황에서 2018년 2월 1일 선포된 국가균형발전 비전 수립을 이끌었다. 직후 사직하여 2018년 2월 5일, 경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 재도전 선언을 했다.
2018년 4월 3일 경상북도지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바로 단수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상대 후보인 자유한국당의 이철우 후보에 밀려 34.3%로 낙선하였다. 하지만 경북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로써는 그나마 최선의 결과를 내었다. 이 기록은 역대 민주당계 정당 소속 경북지사 후보가 받은 득표율 최고치를 갱신한 것으로, 전 기록은 현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인 박명재가 2006년 4회 지선 당시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기록한 23.19%이다.
차후 총선이나 지방선거때 TK 지역 공천을 계속 고집한다는 전제 하에 그 지역에서 당선이 된다면, 이정현, 정운천, 김부겸, 오거돈, 송철호, 장세용 등에 이어 험지에서 당선된 인물로 기억이 될 것으로 이미 여겨지고 있다.
2020년 21대 총선 에서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선거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리고 해당 지역구가 민주당에서 '단수 후보자 선정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그대로 공천을 받아 경북지역에서 다섯번째로 도전을 하였으나 31.38%의 득표율로 미래통합당 김정재 후보에게 뒤져 이번에도 낙선하면서 결국 국회의원 선거로는 세번째, 지방선거까지 합치면 다섯번째로 낙선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와 달리 영남권에서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심한 것[3] 과 김정재가 지역구 관리를 꽤 충실히 했음에도 31.38%라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낙선 후, 한국도로공사시설관리 대표이사로 임명되었다
2.2.1. 당내 이력
많이 선거를 패배한 상황과는 달리, 민주당 내에서는 나름 크고 작은 역할들을 맡아왔다.
- 2008년~: 민주당 포항시 북구 지역위원장[A]
-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 경상북도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 2012년 5월~: 민주통합당 경북도당위원장 [A]
- 2013년: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
- 2013년 9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
-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무위원
-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 경상북도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 2017년: 문재인정부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3. 사건사고
경북도당위원장 경선을 앞둔 2016년 8월 4일 오후 10시 30분께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 지역위원회 간부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5만원 상당 음식물과 현금 5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정당법 위반으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관련기사 당세가 약한 경북지역 특성상 고생하는 지역위원회에 대한 격려 및 경비 지급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 여담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본인은 떨어졌음에도 30%의 지지율을 넘긴 것과 장세용이 구미시장이 됐으니 희망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 그만큼 장세용의 구미시장 당선이 엄청난 충격이었음을 반증하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