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정치인)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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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남 순천시·곡성군)'''
제19대
김선동[15]

'''제19대
이정현'''

''선거구 개편''
'''이정현'''[A]
정인화[16]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남 순천시)'''
''선거구 개편''
'''이정현'''[A]

'''제20대
이정현'''

''선거구 분구''
소병철[17]
서동용[18]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이명박 정부'''
''' 박근혜 정부 '''
6대
이달곤

''' 초대
이정현 '''

2대
박준우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박근혜 정부'''
초대
이남기

''' 2대
이정현 '''

3대
윤두현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이름'''
이정현 (李貞鉉)
'''출생'''
1958년 9월 1일 (66세)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본관'''
성주 이씨 문열공파 27세손
'''학력'''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신체'''
165cm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
'''형제자매'''
이재주/장귀옥 슬하의 3남 1녀 중 장남
'''가족'''
배우자 김민경, 이소정, 아들 이곤요
'''소속 정당'''
''' '''[1]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8, 19, 20
'''약력'''
제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제19대 국회의원(전남 순천시·곡성군)
새누리당 최고위원
제20대 국회의원(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대표
'''링크'''
유튜브 블로그[2]
1. 개요
4. 기타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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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새누리당 대표 겸 現 3선 친박 중에서도 진박 국회의원이다. 18대 비례의원이었으며 이후 19대(곡성-순천 보궐) 및 20대(순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친박계로 일명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당 대표에서 사임 후 2017년 1월 16일 새누리당을 탈당하였다. 현재는 무소속이다.
한때는 거대 보수정당의 대표이자 김부겸, 정운천과 함께[3]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 중 하나였으나, 친박 중에 진박이였으며 박근혜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다 결국 주군몰락과 함께 산화해 버린 인물이다.

2. 일생




3. 논란 및 비판사항




4. 기타


  •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시대에도 2G폰을 계속 쓰면서 휴대전화를 처음 개통했을 때의 018 번호를 그대로 유지해 왔다. 인맥 관리 차원에서 과거 번호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는데, 실제로 2G폰이 도청, 감청이나 해킹당할 위험이 낮아 정치인을 비롯한 국가 고위 관리직 종사자나 일부 경찰들도 2G폰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충성문자 사건 때문에 결국 전화번호를 바꿨다. 단, 기존에도 스마트폰을 쓰던 과거 기사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2G폰만 쭉 썼던 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바쁘고 연락하거나 올 곳이 많은 날이 자주 있는 여건상, 일반적으로 핸드폰을 목적에 따라 여러 대 쓰는 경우가 꽤 있다.
  • 그가 당 대표가 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만 해도, 정계에선 인생의 승리자의 예시로 쓰일 만한 정치인으로 남을 뻔했다. 노력이란 개념을 초월한 도전정신도 그렇고,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호남 출신의 영남+보수 기반 정당의 당 대표라는 점도 그렇고... 고연령층 중에선 이런 사태가 일어나자 그에 대해 인간적인 동정을 느끼는 사람도 소수지만 있다. 단순히 그가 그녀를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그의 인생의 도전이 정말 큰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사심 가득한 야망이었던 건지는 진실은 저 너머에.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대우도 못 받고 빌빌대고 있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박근혜였던지라 박근혜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결국 부역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는 없다.[4]
  •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처음으로 제출한 법안이 "공직인사 지역차별금지법" 이정현 개인으로서도 성과를 보지 않고 단지 개인의 지역 출신에 따른 차별에 한을 크게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란이 많은 인물이라서 그렇지 차별을 금지하자는 해당 법의 취지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후 행보들이 뒤틀려서 그렇지....
  • 선거 전략이 굉장히 집중적이었다. 유세를 하면 적어도 마을에서 몇시간씩 머물렀으며 잠도 사람들과 같이 자고 식사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제공해 준 식사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소통 했다고 한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청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물도 새누리당 지지율이 고작 9%(비례대표)에 불과한 순천 지역에서 스스로 44.5%의 득표를 일궈낸 것은 오랫동안 노력해온 이정현 본인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지역의 지지가 맞다고 답변하였다. 도시와 시골의 선거 전략은 상당히 다른데 이정현은 시골의 선거 전략에 대해 아주 제대로 이해는 했다고 평가 받는다. 실제로 이후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해당 분석을 했다.
  • 초기에 선거는 아주 어려웠는데 선거 명함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서 면전 앞에다가 뿌려버렸다고 한다.
  • 보수 정당 소속이고 친박이지만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5]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새누리당 당대표 경선에서 "공수부대 앞에, 탱크 앞에 1만 명도 아니고 10만 명도 아니고 수십만명이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불의에 대한 항거도 있었지만 인사에, 지역 발전에, 많은 것에 소외 받고 있는 (광주) 사람들의 가슴속에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탱크도 무섭지 않게 (돼) 그 앞에 서는 비극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 비판을 조금 받기는 했지만. 같은 당 소속이었던 김무성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6] 그리고 이정현의 고향이 전라남도인 데다가 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다녔기 때문에 5.18을 인정하는 것이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다.
  • 지금도 적지 않은 수의 정치 관계자들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정현 의원이 논란을 많이 야기한 것은 맞지만 지역을 위해 했던 노력만큼은 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본인 소속구뿐 아니라 주변 지역 예산 감축에 굉장히 민감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친이계와 고성이 자주 오갔는데 이정현 태도가 워낙 강경해서 친이계에서 본인 선거구과 인지도를 챙기려고 한다고 비아냥 거리면서도 마지못해 물러났다고 한다. 아예 주변 지역 시장, 군수들도 예산에서 충돌이나 감축이 생길 경우 이정현을 찾아갔을 정도.
  • 냉면을 상당히 좋아한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이정현이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되고 열린 여당 지도부 만찬 때 청와대에서 캐비어, 송로버섯 같은 고급요리와 같이 이정현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냉면까지 준비해주었다. 이를 보고 '대통령의 잔칫상에 서민의 음식이 나왔다'라면서 의미 부여를 하는 해석도 있었다.
  • 자신이 옛날에 복무했던 군부대를 방문했는데, 저녁에 정신교육 일환으로 강당에서 해당 장병들에게 연설을 했다. 이때 해당 장병들에게 "내가 와서 싫었다는 사람들은 솔직하게 손 들어!"라고 말했지만, 정작 장병들이 손을 들었다간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짜증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왜 이렇게 용기가 없어!"라고 병사들에게 일갈한 게 논란이 되었다.
  • 지역구인 순천, 곡성을 버리고 서울 무소속출마를 내비쳤다. 주변 반응은 당선 안 될 거 같아 도망간다는 분위기지만, 상대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이 자신이 큰 표차로 꺽었던 서갑원, 노관규이기 때문에 딱히 피한다는 것도 아닌 듯하다.
  • 거위의 꿈 인순이 버전을 컬러링으로 사용했다. 호남출 신인 데다가 오랜 세월을 비주류로 살아왔던 그의 정치 인생을 살펴보면 짠한 부분이긴 한데, 이상한 줄을 타면서 제대로 빛이 바랬다.
  • 목소리가 상당히 굵고 좋은 편이다.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4 - 1990
정계 입문

1990 - 1995
합당[7]

1995 - 1997
당명 변경

1997 - 2012
합당[8]

2012 - 2013
당명 변경

2013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13 - 2017
복당

2017 -
탈당[9]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광역시의회 광산 2)

2,686 (10.05%)
낙선 (2위)
[10]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서 을)

720 (1.03%)
낙선 (5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6,421,727 (37.48%)'''
'''당선 (22번)'''
'''초선'''[11]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서 을)

28,314 (39.70%)
낙선 (2위)
[12]
2014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전남 순천·곡성)

'''60,815 (49.43%)'''
'''당선 (1위)'''
'''재선'''[13]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순천)

'''66,981 (44.54%)'''
'''당선 (1위)'''
'''3선'''[14]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 을)

3,311 (3.53%)
낙선 (3위)


7. 둘러보기









[1] 2017년 1월 2일,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하였고, 이를 당에서 보류하였다가 1월 16일 수락됐다. 이후 복당설이 간간이 나오고 있으나 성사되지는 않고 있다.[2] 과거에 본인 명의의 다른 네이버 블로그가 있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후에 없앴다. 지금의 것은 2018년 말경에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3] 김부겸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대구에서 당선, 정운천은 당시 새누리당 소속으로 전북 전주에서 당선. 현재 정운천은 새로운보수당을 거쳐 미래한국당에 소속되어있다.[4] 재밌는건 아직도 순천시민 중 이정현이 무소속으로 나오면 뽑겠다는 사람이 자주 보인다. 이익을 떠나 지금까지 순천에 많은 돈을 이끌고 또 열심히 일을 한지라 이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시선이 많다.[5] 물론 보수 정당, 친박 정치인이 다 5.18을 비하하는건 아니긴 하지만.. [6] 이는 김무성이 민추협, 상도동 출신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배경.[7]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8]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9]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탈당[10] 당시 당선된 민주당 전갑길 후보가 89.94%를 얻었다.[11] 비례대표 당선자 마지막 번호였다.[12] 소선거구제 도입 후 광주광역시(직할시 시절 포함)에 출마한 보수정당 소속 후보들 중에 지방선거, 총선, 대선을 모두 통틀어서 2024-12-03 09:01:10까지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13] 전임자인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은 총포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14] 2017.1.16 새누리당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