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양부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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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계대원군의 본부인이자 철종의 적모(嫡母)이다. 대원군 부인 자격으로 부대부인 칭호를 받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임금의 생모가 아니다.'''
본관은 전주로, 고려시대에 상장군을 지낸 최순작과, 조선의 개국원종공신인 평도공 최유경의 후손이다.
2. 생애
1804년(순조 4년)에 한성부 동부 연지동(蓮池洞)에서 태어났다. 김좌근이 쓴 묘비명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가 병에 걸리자 식사도 거르고 직접 부모의 간병을 할 정도로 효녀였다고 한다.#
언제 전계대원군과 혼인했는지, 그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1827년(순조 27년)에 장남 이원경을 낳았고, 1830년(순조 30년) 전계대원군이 유배에서 풀리자 가족들과 함께 한성부 경행방으로 돌아와 살았다. 1840년(헌종 6년)에 사망했다. 향년 36세.[1]
3. 사후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군 하도면 중흥동에 묻혔다가 1856년(철종 7년)에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으로 이장하면서 전계대원군과 합장되었다. 묘비문은 1851년(철종 2년)에 당시 공조판서였던 김좌근이 짓고, 흥인군 이최응이 글씨를 썼다. 현재는 실전되었다.#
1849년(철종 즉위년) 의붓아들 철종이 즉위한 후 완양부부인을 거쳐 완양부대부인에 추증되었고, 더불어 친정 조상들과 형제들도 증직되었다.
4. 가족과 후손
슬하에 아들 이원경 하나만 두었다. 이원경은 전계대원군의 세 아들 중 장남이다. 1840년(헌종 6년)과 1841년(헌종 7년)에 연달아 부모를 잃었음에도[2] 평정심을 잃지 않고 두 이복동생들을 돌보며 그럭저럭 살다가 1844년(헌종 10년)에 민진용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1849년(철종 즉위년)에 철종이 왕이 된 뒤, 이원경은 복권되었고 회평군(懷平君)으로 추증되었다. 그러나 전계대원군 가문의 제사는 회평군이 아니라 의붓아들 영평군 이욱[3] 이 받들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영평군은 완양부대부인의 양자로 입적했다. 그래서 완양부대부인의 제사 역시 전계대원군과 마찬가지로 영평군과 그의 후손들이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