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계 미국인

 


1. 개요
2. 역사
3. 문화
3.1. 언어
3.2. 종교
3.3. 리틀 우크라이나
4. 인물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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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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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계 미국인'''은 미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또는 우크라이나인 후손들이다. 미국내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들인 97만여 명2009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계 미국 유대인 인구를 제외하면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 인구보다 적은 편이다.

2. 역사


우크라이나인들의 본격적인 미국 이주 역사는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이후로 시작되었다. 19세기에 서부 갈리치아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전 지역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에, 러시아 제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당시 주어졌던 유대인들에 대한 특혜를 대폭 축소하고, 반유대주의를 조장했는데 그 여파로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반대로 서부 갈리치아 일대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시절 극악한 농노 착취가 그대로 이어졌고, 빈곤과 기근에 시달리던 갈리치아의 우크라이나인 농민 상당수가 캐나다로 이주했으며, 일부는 미국 북동부 지역으로 이민하였다.
당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들로 분류되는 경우가 흔했고, 이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의 일부로 미국에 이주했다. 다만 캐나다와 다르게 우크라이나계 이민자 중에는 유대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늘날 미국 유대인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이민해 왔으나 이들 대다수는 스스로 우크라이나계라는 정체성이 없으므로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통계에는 잘 포함되지 않는다.[1] 이를테면 밥 딜런 같은 경우가 있다.
이 외에도 흑해 독일인들도 포함되었다. 러시아 제국내의 유대인과 독일계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부의 유대인 박해, 종교박해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소련이 출범하자 우크라이나 본토에서 직접 이주한 경우는 적었지만, 폴란드나 다른 유럽국가들을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는 많이 있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된 뒤,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공식 수교했다.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던 유대인이나 개신교 신도 상당수가 미국으로 추가로 대거 이민하였다. 2016년 통계 조사 결과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중 34만 5천여 명은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나왔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경제 상황이 영 안 좋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훨씬 높은 미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늘고 있다. 다만 미국으로 이민하는 경우는 체스 선수, 스포츠 스타, 유명 배우, 유명 피아노 연주자 등등에 한정되는데, 이는 미국이 근로 소득은 높아도 서유럽에 비해 공교육과 치안, 공공의료가 엉망이라 일반적인 우크라이나인들 입장에서 리스크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다만 이민 인구가 10만여 명(주로 유대인) 이상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 2018년 기준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인구는 1백만여 명을 넘었다고 한다.

3. 문화



3.1. 언어


미국내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어, 이디시어영어를 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3.2. 종교


상당수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들은 정교회를 믿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서쪽 출신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후손들의 경우,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을 믿는 경우도 4만여 명에 달하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인의 대다수는 엄연히 아슈케나지 유대인들로 유대교를 믿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들의 이민 비자 발급을 대단히 까다롭게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같은 유대인 친척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이상 아니면 이민이 매우 힘들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이주한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인 정체성 대신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정체성이 훨씬 강한 편이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은 소련 시절 교육의 영향 등으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외에도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정체성도 강한 편이라고 한다.

3.3. 리틀 우크라이나


뉴욕 맨하탄 이스트 빌리지에 리틀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의 우크라이나인 구역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문화 박물관을 중심으로 8만여 명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들이 거주한다고 한다.

4. 인물



5. 관련 문서


[1]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의 방언에 불과하다"는 어그로성 주장을 한 레프 트로츠키나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핵심 장본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라자리 카가노비치도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은 서로 상성이 매우 안 좋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