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대인

 


1. 개요
2. 설명
3. 영향력
3.1. 편견
3.1.1. 유대계 미국인들은 거의 다 성공한 상류층이다?
4. 여담
5. 인물
6. 관련 문서


1. 개요


영어: American Jews
히브리어: יהדות ארצות הברית
유대인의 민족 정체성을 보유하면서, 미국의 시민권을 보유하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 역사 초창기에는 네덜란드 출신 세파르딤[1] 유대인들이 많았으나 19세기 동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심해지면서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대거 이주한 것을 이유로 오늘날에는 아슈케나짐 유대인이 주류이다. 미국 전체 유대인 인구의 90~95% 정도가 아슈케나짐이다. 또한, 일부 미즈라흐 유대인들[2]페르시아계 유대인 등도 존재한다.
2015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 유대계 인구는 8,000,000~10,000,000 명이라고 한다.[3]

2. 설명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의 반유대주의 때문에 중유럽과 동유럽에 살던 많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1840년대 1만 5천여 명 정도에 불과했던 유대계 미국인 인구는 1880년대 25만여 명으로 급증하였으며, 1880년대부터 1914년 사이에 아슈케나짐 유대인 2백만여 명이 당시 러시아 제국 내에서 극심하던 반유대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하였다.[4] 이들 가운데는 주로 오늘날의 러시아 공화국에 해당하는 지역 외에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및 폴란드 동부, 리투아니아 출신이 많았으나, 반유대주의를 피해서 이민했던 영향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출신 지역에서 찾기 보다는 종교 정체성에서 찾았다.
홀로코스트가 발생하기 이전 독일, 프랑스 등의 유대인 엘리트 상당수가 미국으로 탈출하였으며 1970년대 소련에서 유대인의 이주를 허용하고 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구공산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소련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그러나 소련을 제외한 유럽 공산권 국가들은 홀로코스트 때문에 유대인이 극소수만 남아있던 상태라 1970년대 이후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대다수가 소련 유대인들이다. 공산권 붕괴 이전에는 공산권 국가들은 자국민의 이주를 쉽게 허가하지 않았지만 1970년대 말에도 소련은 일부 유대인들의 이주를 허가해 상당수의 소련 유대인들이 1970년대 말에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1979년 미국으로 이주했고 유대인인 레프 트로츠키의 손녀는 스탈린 시대에 살아남아 1979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모국어이자 일상 생활 용어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미국 유대인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히브리어, 이디시어 등은 종교적인 행사 등에서만 사용한다.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이디시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유대계 미국인 대다수는 자신을 미국 백인의 일원으로 생각하며[5], 상당수가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1940년대 이전에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의 후손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1970년대 이후 동유럽에서 이주한 이민 1세대 유대계 미국인들은 공화당 지지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소련 등 공산국가 시절 동구권의 국가 무신론으로 동구권의 유대교가 탄압을 받은 역사 때문이다. 정통파 유대인들도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정통파를 제외하면 공화당 지지율이 15%로 흑인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적으로 70%~80%의 유대인이 민주당을 지지하는데, 이는 히스패닉이나 아시안보다 높은 수치이다.

3. 영향력


'''미국의 비주류중 가장 막강한 영항력을 지닌 민족이다.''' 아무리 유대인이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해도 WASP로 대표되는 주류층을 넘을 순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WASP의 경우 워낙 규모가 크기에 주류를 아우르는 느슨한 개념으로 묶여있지 강한 민족의식에 묶여있지는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대계가 민족 집단으로는 유독 강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확실하다. 미국 유대인들은 규모의 경제 즉 미국의 큰 경제 규모가 거대한 수요를 바탕으로 현대 세계 문화 산업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계 미국인 공공정책협회인 AIPAC 행사는 부통령을 비롯해 상원의장, 하원의장을 비롯해 다수의 상.하원 의원들이 참여할 정도며 이로 인해 미국은 매년 이스라엘에 막대한 원조를 해 주고 있다.
유대계가 꽉 잡고 있는 분야가 금융, 정치 쪽 외에 미국 영화계, 할리우드이다. 영화사 중 많은 곳이 유대계가 설립한 곳이며, 감독, 배우, 제작자도 많기에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를테면 팀 로빈스멜 깁슨 같은 반 유대 성향 연기자는 헐리우드에서 발붙이기가 힘들었고, 시오니스트로 보이는 갤 가돗 같은 경우는 논란 후에도 멀쩡히 영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권이 트럼프와 친하게 지내며 우경화하자 리버럴 성향이 강한 헐리우드의 유대인들이 시오니즘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이스라엘군 지지 활동을 하기도 했던 나탈리 포트만은 네타냐후를 비판하며 유대인 시상식에 불참하기도 했고 갤 가돗도 이스라엘은 유대인만의 나라가 아니라며 시오니즘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들의 영향력 때문에 미국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스라엘이 대형사고를 치면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미국 정치권에 어마어마한 로비자금을 뿌리며 이스라엘의 대형사고를 수습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반유대주의가 꺾이고 차별이 시정된 시점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였다. 미국이 2차 대전에서 나치 독일을 격파하고 승리하는 과정에서 홀로코스트를 시행하는 야만스런 나치로부터 유대인들을 구원했다는, “정의로운 강대국 미국”이라는 애국주의적 사관이 보급되면서, 반유대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2차 대전 승전 이전의 미국에서는 유대인 학생의 명문대 입학을 입학사정관제 비슷한 방식으로 걸러내는 식의 차별을 가하곤 했다.

3.1. 편견


유대인/편견 및 음모론 문서 참고.

3.1.1. 유대계 미국인들은 거의 다 성공한 상류층이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미국 유대인이 800만 명이나 되는데 아무리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라고 해도 미국에 부자가 그렇게 많을 수는 없다.
물론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성공해 미국의 상류층이 된 것은 사실이다. 미국 인구내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 각종 요직이나 산업의 중심에서 유대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높다. 그러나 유대인 내에서도 성공은 소수의 몫이며 저소득층 저학력 유대계 미국인은 더 많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동유럽에서 이주한 이민 1세대~1.5세대 유대계 미국인들 중 크게 성공한 유대인은 세르게이 브린이 유일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극소수이고 다수가 빈곤층으로 살고 있다. 정통파 유대인들도 다수가 빈곤층으로 살고 있다. 유대인이 많은 도시인 뉴욕에는 상류층 유대인만 많은 것이 아니다. 저소득층 유대인은 더 많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에서 고학력의 대명사는 유대인이 아닌 아시아인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세대 유대인 중 크게 성공한 유대인은 거의 없어도 학력으로 전문직이나 교수가 되고 자녀들을 명문대에 보내 뉴욕 등 대도시에서 중산층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유대인은 많다. 그러나 학력만으로 중산층에 진입하는 능력으로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소수민족은 이제 유대인이 아닌 아시아인이다.
과거에는 미국 명문대의 유대인 학생 비율이 매우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1925년 하버드의 유대인 학생 비율은 25%였고 90년대까지 높은 비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아시아계 학생들의 비율이 높아졌고 유대인 학생의 비율은 크게 감소했다. 2010년대 하버드의 유대인 학생 비율은 13%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어퍼머티브 액션(AA)의 수혜를 받은 비율로, AA가 없는 칼텍은 하버드의 절반도 안된다.

4. 여담


'''입학사정관제가 '현대판 음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원래 입학사정관제 자체가 미국에서 반유대주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똑똑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학생들을 합법적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거기에다 떨어뜨려도 불공정하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 1920년대까지 성적순으로만 받던 미국 대학들이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20세기 초 당시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이민 온 유대인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대거 입학하게 되자[6] W.A.S.P.들의 합격률이 급감하고,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꼼수를 궁리하다 만든 것이다.#
동유럽 유대인 이민자 대부분 가난하기에 졸업 후 사회에 나간다 한 들 모교에 기부금 따윌 낼 리가 없고 오히려 학생때 그 특유의 향학열을 불태우며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독차지하니 대학들은 아무리 이들을 키워서 졸업시켜봐야 학교에 기여하는 것이 이후에도 전혀 없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교가 무슨 기부금이냐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있을텐데, 대학교도 땅파서 돈버는 거 아니다. 한국의 대학들도 수시 원서비를 노리고 파격적인 수시 전형으로 최대한 원서비 수익을 많이 뽑아내려는 연구를 진행하는 편이다. 한국은 대학교의 사립비중이 80%지만 사립대학교가 교육부로부터 재정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최소한 교육부의 통제선상에 있다. 하지만, 미국은 말그대로 사립대학교는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돈이 되는 신입생과 졸업생이 필요하다.
때문에 성적, 학문적 기여가 떨어지더라도 학교에 기부금을 많이 낼 수 있는 W.A.S.P. 상류층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외 리더십이나 봉사활동 같은 기준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중론. 리더십이야 럭비 열심히 하면 점수를 높게 주는 방식으로 책정하니 W.A.S.P.들에게 유리한 게 당연지사였다. 이러한 노골적인 차별이 사라지는 계기는 상술한 대로 2차대전 이후 홀로코스트를 목격한 미국인들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자성을 하고 미국 유대인들도 더 이상 당할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로비를 하면서부터이다. 다만 제도 자체의 프레임은 남아있어서 오늘날에는 해당 정책이 주로 중국계 미국인, 인도계 미국인 입학생들을 차별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7]
그러나 현재는 미국 유대인도 어퍼머티브 액션(AA)의 수혜를 받고 있으며, 역량이 떨어졌다는 방증(과거에 비해 한참 낮은 각종 경시대회 수상 비율[8])이 보임에도 AA가 있는 대학들에서 입학 비율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AA가 없는 칼텍 입학 비율과 비교해보면 수혜를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5. 인물



6. 관련 문서



[1] 스페인 출신 유대인들이 종교재판과 유대인 박해를 피해 상당수가 네덜란드로 이주하였었다.[2] 이쪽은 아랍계 미국인과 유대계 미국인으로 모두 분류된다.[3] #[4] 해당 기간동안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은 동유럽 전체 유대인 인구의 '''3분의 1'''에 달했다.[5] 사실 미국 인구 통계에서 미국 백인 집단에 아랍계 미국인, 이란계 미국인 등 중동인들도 포함된다. 미국 유대인의 소수 집단으로는 흑인 유대인, 히스패닉 유대인도 있다.[6]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 항목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7] 우리나라에서도 입학사정관제의 반유대주의적 기원이 알려지면서 여기에 대한 비판이 일었는데, 박근혜 정권 시절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이름만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꾸었다. 학생부종합전형 선발 인원을 대거 늘린 것은 덤...[8] ##[9]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서인지, 이스라엘 국적도 보유 중이다. 조부모님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희생자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홀로코스트 영화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한다고.[10] RationalWiki에 따르면 고보수주의로 분류되기도 함.[11] 그의 저서중에 진보는 정신병이다(Liberalism is a Mental Disorder)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12]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유대계 미국인이라고 한다.[13] 원래는 유대계 독일인이었으나, 1933년 나치당이 집권하자 미국으로 도망갔다.[14] 론리 아일랜드의 데뷔곡 Jizz in my pants 뮤비에서 요르마 타코니의 상대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