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필연
'''''Naming and Necessity'''''[1]
철학자 솔 크립키가 1970년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한 세 차례의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 한국어 번역은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인 정대현과 철학자 김영주가 공역하였으며, 2014년에 필로소픽에서 개정판이 출간됐다.
분량은 원문 기준으로 160쪽 정도이므로 길지 않지만, 20세기 분석철학 전통에서 언어철학, 형이상학, 심리철학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과학철학까지 속하는 여러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칸트부터 시작해 프레게, 러셀 그리고 동시대의 콰인과 데이빗 루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입장을 비판하는 논증을 제시하며, 그에 대한 크립키 자신의 경쟁 이론을 제시하고 또한 옹호한다.
데이빗 루이스의 1986년 저작 『세계의 다수성에 대하여』와 더불어 20세기 후반부터 2010년대 현재까지 철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전 중 하나다[2] . 많은 철학과 수업에서 언어철학이나 형이상학 교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를 두고 번역자 정대현은 개정판 옮긴이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흄 혹은 칸트 이래 전통적으로 참인 명제 가운데 특수한 사례는 선험적 혹은 필연적 참이라고 간주되었다. 크립키는 이를 각각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필연성 개념을 받아들일 경우 양화 양상 논리에서의 대물(de re) 양상과 대언(de dicto) 양상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대물 양상을 받아들일 경우 한 사물이 특정한 속성을 필연적으로 갖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적으로만 갖는지를 따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때 대상이 갖는 필연적 속성은 바로 그 대상의 '''본질적 속성'''이다.
필연적 속성 개념을 받아들일 경우, '8은 7보다 크다'는 필연적 참이지만 '태양계 행성의 수는 7보다 크다'는 우연적 참이다. 그런데 태양계 행성의 수가 바로 8인데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크립키는 언어 표현 "태양계 행성의 수"는 가능세계마다 그 가리키는 것이 달라질 수 있는 반면, 언어 표현 "8"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한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처럼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언어 표현을 두고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라고 부른다.
이름 혹은 고유명사는 대표적인 고정 지시어의 사례다. 즉 이름 "리처드 닉슨"은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한 인물을 가리키며, 진술 '리처드 닉슨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현실과는 다른 가능세계에 대한 진술이지만, 이 진술에서 말하는 닉슨은 현실의 닉슨과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이 보장된다.[9]
1강에서 제시된 것처럼 크립키는 '''본질적 속성'''을 대물 양상적 의미에서 사물이 필연적으로 갖는 속성으로 파악한다. 크립키는 본질적 속성의 예로 다음 두 가지 예를 든다:
1. 개요
철학자 솔 크립키가 1970년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한 세 차례의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 한국어 번역은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인 정대현과 철학자 김영주가 공역하였으며, 2014년에 필로소픽에서 개정판이 출간됐다.
분량은 원문 기준으로 160쪽 정도이므로 길지 않지만, 20세기 분석철학 전통에서 언어철학, 형이상학, 심리철학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과학철학까지 속하는 여러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칸트부터 시작해 프레게, 러셀 그리고 동시대의 콰인과 데이빗 루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입장을 비판하는 논증을 제시하며, 그에 대한 크립키 자신의 경쟁 이론을 제시하고 또한 옹호한다.
데이빗 루이스의 1986년 저작 『세계의 다수성에 대하여』와 더불어 20세기 후반부터 2010년대 현재까지 철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전 중 하나다[2] . 많은 철학과 수업에서 언어철학이나 형이상학 교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를 두고 번역자 정대현은 개정판 옮긴이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크립키의 《이름과 필연》은 철학계에서 이제 하나의 고전이 되었다. 이 책 [초판] 서두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이 “철학사에서 하나의 작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말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큰 분기점”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
2. 1강: 1970년 1월 20일
2.1. 선험성과 필연성 구분
흄 혹은 칸트 이래 전통적으로 참인 명제 가운데 특수한 사례는 선험적 혹은 필연적 참이라고 간주되었다. 크립키는 이를 각각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명제가 선험적(a priori) 참이다 iff#s-1 그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경험과 독립적으로 알 수 있다.
- 그 명제를 경험에 의존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반댓말은 "후험적(a posteriori) 참".
- 명제가 필연적(necessary) 참이다 iff#s-1 그 명제가 반드시 참이다. 즉 거짓인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크립키는 선험성은 인식론적 개념이며 필연성은 형이상학적 개념이므로 둘은 다르다고 보았다. 더욱이 크립키는 선험성이 필연성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크립키는 '후험적 필연적 참'과 '선험적 우연적 참'이 있다고 보았다. 그 구체적 사례로 크립키가 드는 예문은 다음과 같다:* 논리학적 참: e.g. '사과가 빨갛다면, 사과는 빨갛다'
* '사과가 빨갛다면, 사과는 빨갛다'는 것이 참이라는 것은 굳이 실험이나 관찰 없이도 논리상항의 정의 덕분에 알 수 있으므로 선험적 참이다.
* 수학적 참: e.g. '1+1=2'
* '1+1=2'가 거짓이 되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하므로 필연적 참이다.
- 후험적 필연적 참: e.g. '샛별은 개밥바라기다', '물은 H2O다'
- 선험적 우연적 참: e.g. ‘파리에 있는 표준 미터 척도의 길이는 1미터이다’
- 1미터라는 단위는 정의상 파리에 있는 표준 미터의 길이다[5] . 따라서 "표준 미터"와 "1m"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기만 하다면 그 막대기의 길이를 굳이 제보지 않더라도(경험적인 검증없이) 위 명제가 참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선험적 참이다.
- 어쩌면 그 표준 미터 막대기의 길이가 달랐을 수도 있다. SI 단위 제정자들의 의뢰를 받은 장인이 깜빡 졸아서 이리듐 함량을 잘못 넣었다든지. 그렇다면 그때 표준 미터 막대기의 길이는 1m보다 짧거나 길었을 것이다[6] . 따라서 위 문장은 거짓인 것이 가능하며, 곧 우연적 참이다.[7]
2.2. 본질적 속성과 사물의 통세계적 동일성
필연성 개념을 받아들일 경우 양화 양상 논리에서의 대물(de re) 양상과 대언(de dicto) 양상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대물 양상을 받아들일 경우 한 사물이 특정한 속성을 필연적으로 갖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적으로만 갖는지를 따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때 대상이 갖는 필연적 속성은 바로 그 대상의 '''본질적 속성'''이다.
- 예. 자연수 8는 필연적으로 짝수다. 반면 8이 태양계 행성의 수라는 것은 우연적으로 참일 뿐이다. 따라서 <짝수임>은 8의 본질적 속성이다.
- 예. 현실 세계에서 리처드 닉슨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닉슨이 1968년 대선에서 패배하는 가능세계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분명히 현실세계의 닉슨과 그 가능세계의 닉슨이 수적으로 동일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 예. '닉슨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가능세계'를 상정하자. 이는 정의상 현실세계의 바로 그 닉슨이 현실과는 다른 속성을 띠는 가능세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세계의 닉슨과 해당 가능세계의 닉슨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사소하게 보장된다.
2.3. 이름의 고정지시어 분석
필연적 속성 개념을 받아들일 경우, '8은 7보다 크다'는 필연적 참이지만 '태양계 행성의 수는 7보다 크다'는 우연적 참이다. 그런데 태양계 행성의 수가 바로 8인데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크립키는 언어 표현 "태양계 행성의 수"는 가능세계마다 그 가리키는 것이 달라질 수 있는 반면, 언어 표현 "8"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한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처럼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언어 표현을 두고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라고 부른다.
이름 혹은 고유명사는 대표적인 고정 지시어의 사례다. 즉 이름 "리처드 닉슨"은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한 인물을 가리키며, 진술 '리처드 닉슨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현실과는 다른 가능세계에 대한 진술이지만, 이 진술에서 말하는 닉슨은 현실의 닉슨과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이 보장된다.[9]
3. 2강: 1970년 1월 22일
3.1. 기술 이론 비판
3.2. 인과적 지시 이론
3.3. 동일성 진술 분석
4. 3강: 1970년 1월 29일
4.1. 본질주의 옹호
1강에서 제시된 것처럼 크립키는 '''본질적 속성'''을 대물 양상적 의미에서 사물이 필연적으로 갖는 속성으로 파악한다. 크립키는 본질적 속성의 예로 다음 두 가지 예를 든다:
- 기원(origin) 본질주의: 대상의 기원, 즉 대상이 유래한 발단 혹은 그 재료는 그 대상에 있어 본질적이다.
- 예1. <앨버트 윈저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자녀임> 혹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앨버트 윈저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사이에서 생겨난 수정란으로부터 비롯됨>은 엘리자베스 윈저에게 있어 본질적이다. 다른 수정란에서 생겨난 "엘리자베스"라는 여성이 윈저 부부에게 입양되어 영국 여왕이 되었다한들, 그는 엘리자베스 윈저는 아니다.
- 예2. 산에서 하나 나무를 패서 만든 책상이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대신 그 나무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던 같은 종의 나무를 패서 화학적으로 구별불가능할 정도로 질적으로 똑같은 책상를 만들었다고 해보자. 이 두 책상은 여전히 수적으로 다르다.
- 자연종(natural kind) 본질주의: 자연종 대상(예. 물, 호랑이)들이 띠는 내부적 구조는 그 대상들에게 있어 본질적이다.
- 예1. 물은 그 어떤 가능세계에서건 일산화이수소다. 일산화이수소와 똑같이 100도에서 비등하고 0도에서 응고하며, 투명하고,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등등 모든 외견적 특성에서 일치하지만 화학 구조가 다른 물질은 결코 물이 될 수 없다.
- 예2. 우린 고양이를 일정한 유전자 패턴 및 진화 계통을 띠는 포유류 동물로 파악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고양이"라고 부르며 집에서 키우거나 길거리에서 보던 개체들은 전부 다 악마가 탈을 뒤집어 쓴 것으로 밝혀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고양이는 사실 악마였다"는 것이 발견된 것인가? 크립키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사실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았다"이다.
4.2. 심신동일론 비판
[1] 엄격하게 번역하자면 "명명(命名)과 필연"으로 번역하는게 맞다. 일본어로는 "名指しと必然性", 표준중국어로는 "命名与必然性"로 번역된 바 있다.[2] https://kieranhealy.org/blog/archives/2013/06/19/lewis-and-the-women/[3] 경우에 따라서는 "우유적"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4] 다만 콰인은 '분석명제'라는 개념 자체를 의심했으므로 논란의 여지는 있다.[5] 물론 현재는 원자 단위에서 정의된 보다 정밀한 단위를 쓰지만 현재의 논증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6] 이때 전제는 지금 우리가 쓰는 어휘 "1m"가 반드시 우리 세계의 표준 미터 막대기의 길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즉 이때 어휘 "1m"는 이름과 동일한 방식으로 쓰인다. 자세한 사항은 이름의 고정지시어 분석 참조.[7] 이 논증에서 쓰인 예시는 '미터'였지만 다른 길이 단위나 무게, 넓이 단위에도 똑같이 적용가능하다.[8] 그런 점에서 크립키의 가능세계에 대한 이해는 "가능세계가 순수히 질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고 보는 데이빗 루이스의 견해와 충돌한다.[9] 한 가지 가능한 오해는 크립키의 주장을 한 대상이 모든 가능세계에서 하나의 이름으로만 불린다는 입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해다. 닉슨이 "리처드 닉슨"이 아니라 "마이클"이라고 불렸을 가능세계는 얼마든지 있다. "리처드 닉슨"이 고정지시어라는 주장은 오직 현실 세계에서의 "리처드 닉슨"이라는 이름이 모든 가능세계에 걸쳐 같은 인물을 가리킨다는 주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