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1932)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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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8-49대 내무부 장관
이상희
李相熙 | Lee Sang-hee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32년 1월 8일 (92세)
경상북도 성주군
'''본관'''
합천 이씨 목사공파 #, ##
'''재임기간'''
제6대 산림청장
1981년 6월 18일 ~ 1982년 5월 2일
제19대 대구직할시장
1982년 5월 3일 ~ 1985년 2월 20일
제18대 경상북도지사
1985년 2월 21일 ~ 1986년 1월 8일
제38대 내무부 차관
1986년 1월 9일 ~ 1987년 9월 14일
제48대 내무부 장관
1987년 9월 14일 ~ 1988년 2월 24일
제49대 내무부 장관
1988년 2월 25일 ~ 1988년 5월 7일
제22대 건설부 장관
1990년 9월 19일 ~ 1991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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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학력'''
고려대학교 (법학 / 학사)
경북대학교 (법학 / 석사)
'''경력'''
경상남도 진주시
전라북도·경상북도 부지사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대구직할시장
경상북도지사
내무부장관
한국토지공사·한국수자원공사 사장
건설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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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48-49대 내무부 장관.

2. 생애


1932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성주농업고등학교[1],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및 경북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대구 중앙상업고등학교[2] 교사로 근무하다가 1961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박정희 정권 때 관선 진주시장, 전라북도 부지사, 경상북도 부지사를 역임하였다.
전두환 정권 때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대구직할시장, 경상북도지사,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노태우 정권 때 한국토지공사 및 한국수자원공사 사장과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학교법인 영광학원(대구대학교) 이사장을 지냈으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덕률 대구광역시 교육감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2.1. 대구직할시장 재임


당초 2대 대구직할시장으론 허화평이 내정되었으나 허화평이 거절하면서 대구직할시장으로 임명됐다.
이상희 전 시장은 여러 업적을 남겨 관선 시장임에도 대구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고 평판이 좋은 축에 속한다.
재임 당시 나무를 많이 심었고[3], 팔공산 정비[4], 두류공원 조성[5]에도 크게 기여했고, 당시 달서구 용산1동[6]에 있었던 50사단수성구 만촌동 2군사령부 뒷편 그린벨트로 이전하고 그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당시 사령관과 합의하였으나, 사령관이 바뀌고 그도 경상북도지사로 이동하며 그 안이 백지화됐고, 이후 50사단은 1994년 북구 칠곡지구로 이전하고 그 부지는 용산지구 아파트단지로 개발됐다.#
지금처럼 대구광역시의 도로망이 체계적으로 잘 정비된 것도 그의 영향이 크다. 신천대로 역시 그가 처음 왕복 8차선에 녹지를 갖춘 형태로 구상했으며, 칠성시장 인근 구간은 지금처럼 고가도로 형태가 아닌, 시장을 정비하고 지상이나 지하도로로 계획하였다. 그는 후임 시장들이 계획을 취소하거나 축소할까봐 침산교 부근과 대백프라자 부근의 2개 구간을 서둘러 착공했지만 임기가 끝나고 계획이 축소된 것이 현재의 신천대로다.
퇴임 이후 대구 지역 언론들과 인터뷰에서는 강남 개발을 통해 서울의 중심을 흐르는 한강처럼 대구 역시 낙동강 서편 지역을 개발해 낙동강을 대구의 한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빼놓지 않고 있다.

3. 여담


애서가 중 한 명으로 자택 지하에 서고까지 두고 있으며, 대구광역시립 두류도서관에 72,200여권의 서적을 기증하기도 했다. 기증한 서적은 두류도서관 1층 자료실 내의 범사 이상희 문고에 비치되어 있다.
[1] 2003년 성주고등학교와 통합했다.[2]대구중앙고등학교.[3]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수준을 넘어 수종 하나하나를 신경쓰면서 심었다. 예를 들면 배롱나무를 심어 대구시민들의 기질을 부드럽게 바꾸려 했다던지..[4] 팔공산순환도로 건설 등.[5] 대구문화예술회관 입지 선정 및 계획, 성당못 정비 등. 이 외에도 현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 부지에 영빈관 조성을 구상했고, 성당못 서편의 유채꽃밭 부지 역시 공연장을 건설하려 부지 감정가까지 받아 놨으나 경북도지사로 발령나며 무산됐다.[6] 당시 행정구역으론 대구직할시 서구 용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