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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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애란
'''출생'''
1964년 1월 1일 (60세)
평양직할시
'''국적'''
대한민국 [image]
'''약력'''
참조
'''정당'''

'''링크'''
이애란TV(유튜브)
1. 소개
2. 정치 활동
2.1. 2016년 이후
3. 선거 이력


1. 소개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요리연구가이자 정치인이다.
조모가 6.25 전쟁 당시 월남한 사실이 밝혀져 출신 성분에 불이익을 받았고 한지로 추방 당하였다. 수학에 두각을 드러내었고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출신 성분으로 인해 교사의 추천서를 받지 못해 북한 신의주경공업대학 발효공학과를 졸업, 량강도 혜산시 과학기술위원회에서 주류 생산 공장의 품질감독원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소설가 활동을 하던 친척이 쓴 소설이 문제가 되어 정치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하였고, 결국 생후 4개월 된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1997년 8월 탈북을 선택했다.[1]
이후 중국베트남을 경유하여 결국 남한 입국에 성공하였으나, 한창 IMF 한파를 겪던 남한에서 어떻게 정착해야 할지 고민했다. [2] 1999년 4월 한 생명보험사의 보험설계사로 취직하였다. 자존심이 강했던 이애란은 초기 보험설계사로서 영업을 하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였으나, 1년 만에 '프로급'으로 승진하는 등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였다. 이애란의 남한 사회 적응기는 연합뉴스 기사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3]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본격적으로 북한 음식 관련 사업을 시작하였다. 2000년 연말 사당동에 토끼고기 전문점 '씀바귀네'를 개업하였다.[4] 2009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탈북자 여성으로서 최초로 박사가 되었다.[5] 경인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신흥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2008년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설립, 한국에 북한 음식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능라밥상'이라는 북한 음식 전문점을 경영하는 등 탈북민으로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6][7]

2. 정치 활동


정치적으로는 2012년 2월 23일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에 반대하여 거리 시위를 직접 시작했으며[8] 단식 농성을 벌이는 등 북한 인권 운동에 나섰다.[9]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실향안보당[10]의 비례대표로 출마하였으나 당선에는 이르지 못하였다.[11]
이애란은 남한에서 탈북 여성, 초/중학생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등 탈북자들의 정착을 꾸준히 지원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기려, 2010년 3월 11일에는 미국 국무부에서 주는 '국제 용기 있는 여성상'을 수상하였다.[12]
이애란은 2014년 3월 31일 디지털 조선일보에 “[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의 북한 통신 8편] 북한 보위부의 ‘민생단’ 전술과 유우성 사건”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실었다. 이 원장은 이 칼럼에서 “(유우성이) 북한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상식 밖의 일”, “유우성은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점을 이용해 2만여 명 탈북자들의 신상명세서도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미 간첩으로 판명돼 법적 판결이 이뤄진 사건까지도 조작된 것이라고 뒤집으며 언론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는 등 유 씨를 간첩으로 단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4민사부는 판결문에서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허위 사실에 관한 정정보도 청구권이 인정된다”며 “디지틀조선은 명예훼손으로 인해 유 씨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디지털조선일보는 9일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사실 확인 결과, 유우성이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거나 북한 보위부에 탈북자의 신원정보를 전달하였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당시 유우성이 간첩으로 판명된 판결이 선고된 바 없으며 최종적으로 간첩 혐의에 대하여 무죄가 확정되었으므로, 이를 바로 잡는다”며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칼럼을 쓴 이 원장은 10일 유 씨를 간첩으로 단정한 것에 대해 “언론에 나온 것을 그냥 쓴 것”이라며 “그때 당시에 탈북자들 사이에서 여러 사람이 넘어갔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유 씨가 북한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고 주장한 근거를 묻자 “그 사람(유우성)이 (북한에) 왔다갔다고 동생이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대답했다. ‘국정원에 의한 강요된 자백이었다’고 설명하자 “강요받은 자백이었느냐”며 “내가 국정원이나 검찰에 가서 (사실인지) 물어볼 수 있겠느냐. 언론이 보도하니 다 밝혀졌겠거니 하고 쓴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2.1. 2016년 이후


2016년 11월 민중총궐기 맞불집회에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였다.# # 왜 탈북자가 이런 집회에 참여하냐면 대부분 탈북자는 잔혹한 북한정권의 탄압에 시달리다 탈출해서 남한으로 들어왔으므로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반북, 즉 한국에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탈북자 출신 조명철이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바 있기도 했고. 또한 국가정보원이 휴민트 확보 '''등의''' 목적으로 대북 활동에 가담하는 탈북자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정권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성향이 작용한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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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탈북자 3,000명을 데리고 집단 망명을 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며 초강수를 두었으나, 막상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엔 그냥 정미홍, 이광필 등이 그랬던 것처럼 SNS에서 변명만 하여 비웃음을 샀다. 전형적인 극우세력에 휘둘리는 탈북자의 행보를 걷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는 사례.
그러다가 2020년부터 김문수, 전광훈 등이 주도가 되어 창당한 자유통일당 대변인을 맡았다가 이후 자유통일당이 우리공화당과 합당하여 자유공화당이 된 후로 기독자유통일당으로 당적을 옮겨 다시 대변인이 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당 비례 1번을 받아 내심 기대를 품고 출마했지만 역시 득표율 부족으로 낙선하였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국민실향안보당
93,554 (0.5%)
낙선 (4번)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기독자유통일당
513,159 (1.8%)
낙선 (1번)

[1] 50인 휴먼다큐·47 탈북여성 국내 박사 1호 이애란 경인여대 겸임교수 - 경인일보, 2011년 1월 26일.[2] 북에서 온 보험 아줌마 - 이애란 - 탈북자동지회, 2004년 11월 18일.[3] 보험설계사로 성공한 탈북자 이애란씨 - 연합뉴스, 2000년 5월 18일.[4] 탈북자의 성공적인 사회적응 사례 - 한국일보, 2001년 2월 2일.[5] 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씨 - 연합뉴스, 2009년 1월 8일.[6] 한국관광공사 추천 맛집 ①능라밥상 - 한국관광공사 웹사이트, 2013년 3월 5일.[7] 다만 이애란이 보수 정치에 주도적으로 가담하다 보니 그의 식당은 사실상 극우 세력의 아지트로 기능하고 있다. 2018년에는 우파 미디어 뉴데일리에서 탈북자가 경영하는 식당이 좌파 세력에 위협받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탄핵 정국 이전인 2013년에는 반대로 민주당김한길 대표가 동 식당에서 실향민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는 것.[8]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1인 시위 1000일 - 국민일보, 2014년 11월 19일.[9] 북송반대 단식농성 탈북여성 이애란 교수 -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3월 15일.[10] 자유민주연합 국회의원 출신인 이건개가 독자적으로 창당한 정당이다. 당 이름만 봐도 알 수 알겠지만 이건개 본인도 실향민 출신이다.[11] 탈북자 출신 최초 국회의원 도전하는 이애란씨 - 데일리NK, 2008년 3월 28일.[12] 탈북 역경딛고 美국무부 상 받는 이애란박사 - 연합뉴스, 2010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