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봉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1942년 경상북도 대구부 (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2][3] 에서 태어났다. 대구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대통령비서실, 국무조정실 등에서 근무하였다. 내무부 근무 당시 승격되는 대구직할시에 6개 읍·면[4] 을 편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체육청소년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관선 대구직할시장을 역임하였다.
2. 대구직할시장 재임
1990년 박성달의 후임으로 대구직할시장으로 부임한 그는 재임 당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착공, 종합유통단지 추진, 서대구역의 전신인 서대구화물역 구상 등 나름의 업적을 남겼다.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경질설이 돌기도 했으나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나름의 업적도 있고 4선 국회의원을 지내 관선 시장임에도 인지도가 높은 축에 속한다.
3. 정치 활동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문희갑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달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민주연합 최재욱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7년 말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대구시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5] 그리고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박근혜의 대권 도전을 위한 친박 중진의 용퇴라고 평가받았지만...
같은 해 8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아무래도 본인의 건강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불출마를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