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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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前 육군항공작전사령관을 역임 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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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태어났다. 배재고등학교(93회)를 졸업하고 1979년 육군사관학교 39기로 입학했으며 1983년에 대통령상(수석 졸업자)을 수상하며 임관했다.[2]
병과는 보병이며 직능[3] 은 작전이자 정책기획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합참 등지에서 근무한 탓에 김태영 장관 당시에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가 돌았다.[4] 노무현 정부에서 합참의장을 지낸 김관진 장관이 나온 뒤에 이러한 인사관행이 사라지면서 다시 작전 쪽으로 복귀했다.[5] 제12보병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을 지내다 2015년 4월 7일에 육사 39기로는 김용우 장군과 함께 2차로 중장으로 진급해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다.[6][7]
2.1. 사제 장비 금지령
전임 특전사령관인 전인범 장군이 특전사 장병들의 개인 장구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는 평을 듣는 것에 반해, 후임 사령관인 장경석 장군은 혹평을 받고 있다. 유명 밀리터리 포럼인 유용원의 군사세계라든가, 군사 블로거들의 개인 블로그에서도 이런 내용의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특전사의 사제 장구류 허가와 관련해서 전임 사령관 시절보다 빡빡해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 특전사가 사제 구입 장비는 금지시키고 공식 보급품만 쓰도록 결정한 이유
- 특전사 사제 장비 금지령, 30년째 같은 소총을 사용, 방탄복 비리, 군의 사기와 전투력을 생각하자
- 사제 장비 금지령 해제 청원 제안
- 특전사령부의 반박
- 조선일보
- 기사[8] 그리고 특전사에서 내놓은 그 금지 사유란 게 사제 장비를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위화감 조성 문제였다. 관급 구매가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미군처럼 환급도 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일방적인 사제 금지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으며, 기사 그 와중에 국군의 방탄복은 또 방산 비리에 휘말림으로써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한 가운데, 몇몇 특전맨들은 계속해서 사제 장비를 부착하였으며 그의 특전 사령관 임기가 끝나며 사제 장비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태양의 후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특전사에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현실의 특전사 장비 실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사제 장비는 여러 품목에서 금지되어 있고 보급품은 사제품에 비해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여론 때문인지 2016년 5월 5일 어린이날 무술 시범을 보인 1공수특전여단 대원들이 보급품과는 다른 방탄복을 입고 나온 것이 포착되었다. 그런데 이런건 무슨 여론 때문이 아니라 예전부터 특전사 대원들이 각종 사제품을 착용하고 나오는 건 늘 흔히 있어왔다. 어차피 몇 안 되는 밀덕들 대상이 아닌 군에 큰 관심없는 대중들이 대상인 행사에선 보급이든 사제든 통일성과 간지만 갖추면 높으신 분들이 좋아하면 좋아하지 싫어하진 않기 때문이다.
비단 이 문제뿐 아니라 수뇌부의 고지식한 각종 지침들의 많은 부분이 실제 각 일선 부대들에선 흐지부지되고 현실에 맞도록 융통성 있게 운용된다.
사제 장비 금지 사태에 대한 홍희범 편집장의 칼럼
2.1.1. 반론
한편, 모든 특전사 대원들이 사제 금지에 반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댓글 중에 사제 장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의 특전사 대원의 댓글이 있다. 즉, 특전사의 전투력 측정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것이다. 제일 피말리는 사격이 문제인데 태릉선수촌처럼 점수를 매긴 뒤 상대평가로 줄을 세워서 평가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될경우 옆팀과 점수가 벌어져서 측정에서 밀리게 된다면 자존심 및 실질적인 '''진급'''에 굉장히 큰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장기를 노리는 진급자들은 무슨 돈을 들여서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장비를 마구잡이로 사게 되는것이고 팀단위 측정을 위해 밑에 부하들까지 일괄적으로 사제장비 구매를 '''강요'''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이웃팀 간 사제장비 '''돈지랄 레이스'''가 벌어지게 되고 사령부 측은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장비 다 떼고 기계식 조준기 측정만 요구하게 된 것이다.
또한 다른 문제가 있다면 사제 장비의 출처가 아주 불분명하다는 점도 있다. 대부분의 옵틱이나 도트들은 미국에서 구매 시도시 ITAR 제한 때문에 구입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는 미군 방출품을 불법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후자가 문제가 되는데 미군이 안 쓰는 불용품을 방출한 것이라도 국내법상 무단 구매시 처벌 대상이다. 물론 유럽쪽에서 광학 장비를 구매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문제가 배율 있는 광학 장비는 총포법에 걸리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방판 장비의 경우 군납과 달리 개인 구매의 경우 해당 방탄판이 진짜 구매할 때 보증한 방탄 level인지 증빙이 불가능하다. 관급 구매로 정식으로 구매할 경우 반드시 실탄과 국제 규격에 따른 검증 절차를 밟지만 사제의 경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법리 해석과 부대운영차원에서 보면 사제 장비 금지는 단순하게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이것은 법과 제도를 손질해서 해결해야할 문제로 장군 한사람이 어찌할 것이 아니다. 특히 법적문제는 애초에 장군이 아니라 군대 자체에서 자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군대에서 법을 고칠 수는 없지 않은가?
한때 장경석 장군이 특전사령관 부임 전 UDT/SEAL 제식화기 자율화 안건 논의 때 제식화기 자율화에 찬성한 제독에게 "(군대에)놀러왔어?!"라며 소리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윽박지르는 어조로 말하는 것은 특히 타군 장성이 대상이라면 그 장군이나 제독 개인 뿐 아니라 소속된 군종 자체를 모욕하는 행위도 되므로 있을 수 없는 일로서 헛소문으로 확인되었다.
2.2. 알고보면 능력자?
대령 때 합참 합동작전과장[9][10] 에 보임될만큼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 하필 정권교체가 되면서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일반 대령들까지 불똥이 튀어서 졸지에 준장진급에서 미끄러짐과 동시에 한직인 육군3사관학교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냥 버리기에는 능력이 아까웠는지 1년후 준장진급을 시켰다.
2차로 소장진급후 12사단장 시절에는 GOP 철책을 과학화장비로 교체하는 사업을 했는데 산악지형의 애로사항을 극복하기위해 상급부대와 업체를 설득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모든 철책에 차량진입이 가능토록 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하면 히말라야 봉우리에 헬기장을 만드는것과 비슷한 난이도이다. 이로서 철책에 상황이 발생하면 차량화된 부대가 신속투입이 가능해졌다. 강원도 인제 산골짜기에 아무도 관심없을때 몇십년을 내다본 것이다.
또한, 항공작전사령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는데 비대해진 군수처조직을 경량화시켜 정책 및 행정업무에 집중하고 항공기정비를 전담하는 항공정비여단을 창설시킨것. 또한 참모부의 비대한 편성을 슬림화하고 각 항공여단 편제를 강화시켰다.
참고로 특전사 사제장비 금지령으로 37기 선배인 전인범 장군과 다소간에 다른 길을 택했다. 후폭풍이 엄청났던 것은 덤이다.
다만, 금지령은 다소 할 말이 있는게 사령관으로 부임후 예하 부대를 방문했는데 하사 월급이 200만원에 불과하나 장비 구입에 무려 250만원 이상을 썼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게다가 부대별 전투력측정 및 평가에서 장비빨로 돈을 쳐바른 부대의 성적이 높았던 것. 이러니 부대별 사비로 장비구입을 강요하는 폐단이 심각했다. 전인범 사령관이 “나라에서 장비를 사주기는 제한되니 보급품으로 나오기전까지 사제품을 허용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진 셈. 또한 사제장비의 상당수가 비공인 제품으로 충격에 약해져서 파손되기 십상이었던것은 덤. 이를 극복하고자 국방규격의 튼튼한 보급품을 확보하기위해 소요 제기를 해준것은 물론이다. 그게 몇년지나 2020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게 문제지. 이 문제는 결국 돈이 없으니 사제장비를 묵인해주겠다는 야전형 전인범사령관과 제대로 된 보급품을 주겠으니 기다리라는 정책형 장경석사령관의 마인드 차이를 내막으로 볼 수있다.
요즘 신형보급품 도입으로 이끈 정책입안을 하였지만 이런 효과가 나타나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리니 당분간은 욕을 먹을수 밖에 없었던 것을 감수한 셈이다.
2.3. 알자회
그리고, 2016년 12월 22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5차 청문회에서 임호영 대장, 현 특수전사령관인 조종설 중장과 함께 육군 내 사조직인 알자회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진급 코스로 취급 받는 특전사령관으로 알자회 출신인 그가 임명 되었고, 후임자까지 알자회 출신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군내 인사에서 이런 악습이 아직까지 지속 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관련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경악하였다.
대선이 끝난후로 미뤄졌던 군 인사에서 알자회 폭로건으로 인해 대장 진급은 물건너갔다. 결국 동기이자 알자회 최초폭로 당사자 중 한명인 김용우가 참모총장으로 진급하였다.
요약하면 생도 시절부터 촉망받는 장교였는데 금동앗줄인줄 알았던 사조직에 가입했다가 적발되고[11] , 사조직 꼬리표로 진급에 불이익을 받게 된 상황에서 노력하여 나름 능력을 인정받아 진급 코스를 타 다시 금동앗줄을 붙잡은 듯 했으나, 노무현 정권에서 진급 코스를 탔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권 초기에 좌천당해 소외당하고, 정권 말기에 간신히 부활한 끝에 박근혜 정권에서 어둠의 손을 잡았지만 그것 역시 썩은 동앗줄이었다.
결국 2017년 9월 26일자로 육군항공작전사령관 자리에서 전역하였다. 당시 이취임식은 일절없었고, 얼마간은 부사령관(준장)이 직무대리하였다.
[1] 2010 미스코리아 선[2] 김용우, 제갈용준, 김완태 등이 이 기수에 해당한다. 김용우 장군은 국방부장관상(3등 졸업자)을 수상했다.[3] 보병, 포병과 같이 비교적 큰 병과의 장교들은 같은 병과 내에서도 인사, 군수, 정보, 작전 중에서 4가지 직능을 택해야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작전이 가장 좋은 대접을 받는다. [4] 합참 작전본부 작전처 합동작전과장을 지내다가 김태영 장관이 오면서 육군3사관학교로 직능과 무관한 부서로 이동했다. 사실 전작권 전환 등에 대비해서 작전 관련 업무를 많이 수행했다.[5] 그러나 이런 인사구제가 특정한 기수에 치중된 탓에 그 밑의 기수들은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관련기사[6] 이명박 정부 전반기에는 군 전체적으로 이전 정부의 색을 지워내는 작업이 강하게 이뤄졌다. 전 정권에서 국방부, 합참, 청와대에 파견 근무했던 사람들을 이른바 전 정권의 사람들로 봤고 진급이나 인사이동에서 불이익을 봤다고 볼 만한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7] 이런 인사정책은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태를 거치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합참의장을 지낸 김관진 장군이 장관으로 오면서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들어선 초기에 노무현 정부에서 군 수뇌부를 지낸 인물들이 안보 관련 요직(청와대 국가안보실장(김장수), 국방장관(김관진), 국정원장(남재준), 청와대 경호실장(박흥렬))을 차지하는 일로도 이어졌다.[8] 다 동일한 기사다. 각 페이지의 댓글 반응을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링크를 모두 걸었다.[9] 정승조(육사 32기), 이홍기(육사 33기), 신현돈(육사 35기), 김종배(육사 36기), 박철희(육사 41기), 김승겸(육사 42기), 안준석(육사 43기), 김홍석(육사 46기) 등 이 보직을 거쳐가면 모두 장군이 됐다. 합참 내에서 준장 진급률이 높은 보직은 합동작전과장, 해외파병과장, 합동화력과장직 등이 있다.[10] 원칙적으로는 육/해/공 모두 보임 가능하며 모두가 선망하는 보직이나 육군, 특히 육사 출신 중에서도 최고 능력자만이 보임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11] 적발이 된 가장 큰 이유가 장경석의 동기인 육사 39기생들이 최초로 수면위로 알자회를 고발하면서 김영삼 시절때 진급 누락을 그대로 당했다. 40기들은 아예 김운용(前 지상작전사령관)과 김병주(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가 앞장서서 군내에서 알자회를 퇴출하라고 권영해 국방장관한테 찾아가서 항의까지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