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군인)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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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대 지상작전사령관
김운용
金雲龍 | Kim Un-yong
'''
'''출생'''
1961년(64세)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4년 ~ 2019년
'''재임기간'''
제28대 제3야전군사령관
2017년 8월 9일 ~ 2018년 12월 31일
초대 지상작전사령관
2019년 1월 1일 ~ 2019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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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윤현경
'''자녀'''
슬하 1남 1녀
'''학력'''
용문고등학교 (졸업)
'''임관'''
육군사관학교 (40기)
'''최종계급'''
대장
'''주요보직'''
제3야전군사령관
제2군단장[21]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제3보병사단
제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제1보병사단 제12보병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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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마지막 제3야전군사령관이자 초대 지상작전사령관. 2019년 4월 16일부로 이임과 동시에 전역하였다.

2. 생애


경남 합천군 용주면 출신으로 서울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84년 육군사관학교 40기로 졸업 및 소위 임관했다.
병과는 보병이며, 제1보병사단 12연대장 역임. 합참 해외파병과장(대령) 당시[1] 2011년 1월의 아덴만 여명 작전 때도 이 직위에 있었는데, 당시 합참 내에서 작전 실시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였고[2] 다행히 대성공하면서 준장 진급을 했다.[3]
준장 진급 후에도 한참동안 이 직책으로 복무했다. 합참 민군심리전 차장, 제2작전사령부 작전처장을 역임하고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3보병사단[4],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5], 중장 진급 후 제2군단장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의 집권기였던 대위 시절 알자회의 군내 퇴출을 몇몇 동기들과 함께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했다.[6] 이후 전임 정부시절에 사단장 진출도 사실상 막차를 탔고 중장 진급도 좌절되는 듯 했지만, 잘 나가는 동기들인 서상국[7], 이순광[8], '''송유진'''[9]이 각종 사고로 낙마하면서 중장 진급을 2차에 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20년 8~9월에 있을 국방부 장관 및 고위 장성 인사에서, 국방부 장관 후보군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으나 서욱 육군 참모총장이 내정되면서 일단락되었다.[10]

2.1. 제3야전군사령관지상작전사령관


육사 40기 중 2차로 중장 진급하였고, 문재인 정부에서 동기인 김병주 장군과 같이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박찬주 장군 갑질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군 내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예하 지휘관 및 주요 직위자들을 교육할 때마다 옛날 군의 사고방식을 탈피해야 한다고 (예를 들면 불필요한 야근이나 조기출근 등) 주장하는 등, 고위장성으로서는 매우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춘 인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취임한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난 후 철원에서 제5포병여단 K-9 자주곡사포 폭발 사고로 2명 사망, 5명 부상이라는 대형사고가 터져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사고 부대는 제5군단 예하부대로 알려짐). 2017년 9월 26일 이전까지 직속부하인 5군단장수도군단장[11]은 본인의 1년 육사 선배, 7군단장은 본인의 육사 동기였으며[12], 사령관 취임 후에도 몇달간 군단장직을 유지했던 6군단장은 비육사 출신이지만 본인과 임관동기였다고...[13]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당시 부상당한 귀순자를 아덴만 때도 인연이 있던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학교병원으로 후송조치 했고 총격 당한 귀순병은 의식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12월 20일, 2019년 1월 1일 창설하는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초대 사령관으로 내정되었다.
그리고 2019년 4월 16일, 후임 제3보병사단장이자 비육사 출신 최초의 특수전사령관이었던 남영신 대장(학군 23기)에게 지상작전사령관을 이임하고 전역하였다.[14]

3. 여담


  • 휘하에서 군생활을 한 장병들이 군장병들의 편의와 복지를 신경써주던 상관이었다고 평하는 등 평판이 좋다. 실례로 12연대장[15]시절 간부식당이 아닌 병사식당에서 종종 식사를 할 때가 있었는데 그 후에 급양관리관이 영내출입금지가 되고 식사의 질이 확 올라갔다. 그리고 간부식당에서도 이전까지는 연대장이 도착해야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시정해 개별적으로 식사를 하게하는 등 군 내 인권과 장병복지를 신경쓰던 덕장이었다.
  • 특히 상벌에 확실한 면이 있어 장병들이 매우 좋아했으며 사격과 훈련, 대비태세등 작전에 임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군 생활 중 자기개발에도 성과를 낸 병사들은 그 수에 관계없이 포상을 받아 김운용 대장이 눈 앞에 나타나면 말 그대로 병사들은 온 몸에 생기가 돌며 전투력이 수직 상승하는 버프를 받곤 했다고. 전설급의 일화가 있는데 의무대대 잠시 들렸다가 진료 대기 중 책을 읽고 있던 병사와 독서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자리를 뜨며 포상을 주고 떠났다. 또 있는데 12연대장 시절 GOP에 파견된 4.2인치 박격포 소대가 대대장의 야간비사격임무에서 미진한 모습을 보이자 크게 질책을 받아서 비사격과정을 대대 불침번부터 당직분대장까지 모두 동원하는 체제로 바뀌었는데 그 다음 날 당시 연대장이었던 김운용 대장이 강림...당시 대대에서 운용하던 60mm 와 81mm는 크게 질책을 받았는데 4.2'는 초기대응 30초 소대전체투입 1분 30초를 끊어버리는 맹활약을 보였다...그 뒤 다음 날 아침 소대원 전체 24명에게 포상이 나왔다. 또 3사단장시절 병사로 근무했던 위키러에 의하면 전역 전날 사단에서 전역병 행사를 할 때 한 명씩 악수해주고 경례하는 상황이었는데 병사가 "형님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경례를 하니 뒤에 있던 참모들은 당황했지만 웃으며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라고 하시며 경례를 받아줬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비 육사 최초 특전사령관으로 간 후임이 포상휴가에 인색한 모습을 보며 비교가 되기도 했다.
  • 군 인권과 관련하여 이를 지키지 않는 간부들은 과감히 징계하기도 하였다. 지작사령관 시절 워라밸(work and life-balance, 일과 여가의 양립)[16]을 지키지 않는 대령급 과장을 보직해임을 시킨 적이 있다.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불필요한 야근을 했다는 이유라고 한다.
  • 추가적으로 3사단장 시절 아들이 3사단에서 취사병으로 있었는데 단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 2군단장 시절에는 쉬지 않고 전방부대와 소통 (면담 및 회의) 하느라 예하 사단장뿐 아니라 주변부대도 허구한날 불려다녔다. 군단 내부에서도 간부들의 업무보고 때 정말 잔인하리만큼 철저하게 맘에 안 드는 점을 지적하시거나 때때로 고성까지 내지르시는 등, 이전 고현수 중장(학군사관 20기)에 비해 사령부의 분위기가 한동안 굉장히 빡빡해졌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틈틈이 업무보고 때 병사들 대우에 관해 언급하셔서 그런지 병사들 사이에선 평가가 상당히 좋았던 편.[17]
  • 대장 진급 시기를 앞두고 박찬주 대장의 갑질 사건이 워낙 군 내외에서 큰 물의를 일으키다보니, 청와대에서 능력과 더불어 인품을 중점적으로 봤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결과, 위와 같이 주위 평판이 좋은 김운용 대장도 대장 진급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을 받는다.
  • 디시인사이드 백골부대 갤러리에서 언급되길 당연히 대장 다실 만한 분이라고 칭송이 이어졌다고(...)[18]
  • 처는 윤용남 전 합참의장의 동갑내기 사촌 윤종호 예비역 소장(육사도 윤용남과 동기이다.)의 장녀 윤현경이다. 처와 윤현숙은 8촌 관계이다. 여담으로 처제가 혼성그룹 ZAM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윤현숙인 줄 알려져 있었으나...윤현숙의 아버지[19]와 김운용 대장의 장인[20]이 동명이인이어서 잘못 알려진 것으로 둘은 서로 육촌지간이다.

[1] 합참 대령 보직 중에서 준장 진급률이 높은 보직 중의 하나다. 후임도 대장 진급에 성공했다.[2] 실패했으면 군을 떠날 수도 있었다. 참고로 후일 국방장관이 되는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은 작전 실행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3] 준장 2차 진급자다. 같은 해 준장 진급자는 1년 선배인 김용우(육사 39기), 1년 후배인 서욱(육사 41기) 장군이다.+서욱 장군의 기수는 임관 25년차에 준장이 배출 되는 기수인데 서욱 본인은 임관 26년차에 준장이 됐다.[4] 후임은 '''비육사 최초 특전사령관'''이자 現 지상작전사령관남영신 대장(학군사관 23기)으로 2019년 4월에 지상작전사령관도 남영신 대장이 후임으로 취임하였다.[5] 원래는 송유진이 내정되었으나 여군 성추행으로 긴급 체포되면서 급작스럽게 내정되었다고 한다. 해당 직책이 나름 요직인데 3군 모두 작전 글자가 붙은 지휘관, 참모 보직은 진급 필수 코스이며 육군 정작부장은 소장 보직이지만 사실상 중장(진)급이라 봐도 좋은 보직이다. 박정희도 여길 거쳐갔었고, 수많은 제1야전군사령관제3야전군사령관이 거쳐갔던 보직이다. 장준규(후일 육군참모총장)가 급히 특수전사령관에 진급하기 전에 거쳤던 자리다.[6] 그 것도 동기들과 함께 권영해 장관에게 항의까지 했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지상작전사령관 시절 부사령관이었던 조종설 중장이 알자회 출신이라는 것.[7] 22사단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 당시 사단장으로 있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보직 해임되고, 육군훈련소장으로 좌천된 후, 육군교육사 전투발전부장으로 영전해 2017년에 전역했다. 참고로 당시 육사 40기 선두 주자로서 임관 후 25년 만에 준장 진급한 엘리트였다. 다시 말해, 만으로 50대가 되기도 전에 준장으로 진급한 셈이다. 아무리 빨라도 대부분 50대 초반에 진급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굉장히 엘리트였다.[8] 28사단 윤 일병(의무병) 살인사건 당시 사단장으로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보직 해임되었다. 이후 한직인 국군복지단장으로 좌천당했다. 당시,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였던 권오성 대장은 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또한 당시 3야전군사령관 권혁순 대장 및 6군단장 이범수 중장(학군18기)도 더이상 영전하지 못하고 경질되었다.[9] 17사단장 시절 여군 하사에게 성추행을 저지르고 불명예 전역하였다.[10]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해군(송영무), 공군(정경두)에서 차례대로 국방부 장관을 배출했기 때문에 이번엔 육군이 유력하다. 예비역 장성들인 모종화, 박삼득도 후보들이다. 후보군으로 거론된 김유근은 일신상의 이유로 후보군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용우도 현재는 거론되지 않고 있다.[11] 직속 부하면서도 육사기수빨로 권고를 무시하는 추태를 보여서 국정감사에서 썰렸고 2018년 5월 군 장성인사로 조기교체당했다.[12] 그것도 중장 진급을 같이했다.[13] 3년 후인 2020년 9월, 본인의 군단장, 사령관 시절 직속부하였던 안준석(제15보병사단장, 제5군단장 역임)이 육사 1기수 선배인 김승겸, 김정수중장과 함께 대장 진급 후 지상작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육사 동기인 황대일 제1군단장과 비육사 출신 임관동기인 박상근 제3군단장(학군 25기)과 최진규 수도군단장(학사 9기)을 약 두달 반동안 지휘하게 되었다.[14] 남영신 대장은 2020년 9월 학군출신 최초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으며, 후임 지상작전사령관은 본인의 제2군단장, 지상작전사령관(구.제3야전군사령관) 시절 직속부하였던 안준석 대장(육사 43기)이 취임하였다.[15] 후임은 무려 공비를 때려잡고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김승겸 現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참고로 남영신 現 지상작전사령관과는 극과 극으로 김승겸 본인도 평판이 매우 좋았다.[16] 사회의 주 52시간, 불필요 야근 지양과도 관련있다.[17] 2군단장 시절 직속부하였던 김정수 제27보병사단장(육사 42기)과 안준석 제15보병사단장(육사 43기)은 중장을 거쳐 대장까지 진급하였다. 이중 안준석 대장은 2018년 11월 중장 진급 후 제5군단장에 부임하면서 재회에 성공하였다.[18] 그의 전임인 윤완선 예비역 소장(육사 38기)은 온갖 비난이 끊이질 않았다고(...) 결국 윤완선은 중장 진급에 실패하고 만다.[19] 윤종호, 尹鍾皓, 1949년생, 갑종장교, 육군 소장 예편[20] 윤종호, 尹鍾昊, 1940년생, 육사 19기, 육군 소장 예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