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지치
1. 개요
당태종 재위 시기 태평성대를 일컫는 성어. 연호가 정관(貞觀)이었던 데서 유래한다. 직역하면 정관의 치세.
2. 상세
당나라 2대 황제 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키며 즉위한 후 수양제의 학정과 수당 교체기의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고, 방현령과 두여회, 위징, 이정, 이세적 등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해 태평성대를 열게 되었다. 군사적으로도 장안을 위협하던 동돌궐을 멸하였고 토번과는 결혼 동맹을 맺어 국경을 평안케 하였다.
이러한 태종의 정치는 정관정요라는 책으로 정리되어 후세 당현종, 건륭제 등 황제들과 고려, 조선의 국왕과 일본 에도 시대의 쇼군들과 다이묘 그리고 역대 천황들도 즐겨 읽었다고 한다. 다만 고려의 공양왕이 정몽주에게 정관정요를 강독하게 했는데, 이때 윤소종이 이를 말리면서 "중흥 군주로서 요순과 삼대[1] 를 모범으로 삼아야지 당 태종은 따를 것이 못 된다"고 디스한 바 있다. 정관정요 대신《대학연의》(大學衍義)를 권했다고 하는데, 당태종을 춘추의리로 비판했던 성리학자 윤소종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어쨌든 태종이 이룩한 성장세는 그의 아들인 당고종 때까지 이어져 서돌궐, 백제, 고구려를 멸하고 서역을 평정하기에 이른다. 다만 말년에 가선 당태종도 초심을 잃고 해이해져 신하들의 간언도 귀찮아하는 등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개원지치를 연 당현종도 비슷한 테크를 탄거 보면 집안 내력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