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모
1939년 서울에서 서울혜화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정인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1학년 때 4개월만에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차석으로 입학하였다.[1]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1963년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응용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를 취득했을 때가 만 23세 5개월인데, 이 기록은 55년 동안 한국인 최연소 박사 기록이었다.[2] 이후 귀국하여 각종 대학교의 총장 등을 지내다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임명되어 8개월 동안 재직했으며 훗날 김영삼이 집권한 1994년 다시 임명되어 2년을 지냈다.
2007년 참주인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대선 후보로 출마한다. 당초에는 원외정당이었으나 열린우리당 소속 김선미 의원이 입당하면서 문국현의 창조한국당과 같은 1석을 차지, 추첨을 통해 기호 7번을 얻었다. 하지만 문국현과는 달리 토론회에 초청받지도 못했으며, 결국 본인도 한계를 느꼈는지 막판에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며 하차하려 했으나, 이미 시한을 넘겨버렸고 덕분에 0.1% 정도라도 얻었다. 여담으로 17대 대선 후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문서가 작성된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서청원 등을 비롯한 친박 정치인들이 한나라당 공천 탈락에 반발해 참주인연합에 대거 입당하며 당을 사실상 강탈하자 참주인연합을 탈당하였다. 그리고 당권을 장악한 친박계는 새롭게 당명을 바꾸는데... 다름 아닌 '''친박연대''' 되시겠다.
이후 정계를 은퇴하고 현재는 한국전력공사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 외에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초빙 교수로 재직하며 종종 특강을 진행하곤 한다.
정치 성향은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를 이끌었던 서경석, CCC의 창립자인 김준곤 등과 함께 보수 성향의 개신교 단체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과거 박근혜의 과학기술정책 자문을 맡은 것#을 생각해 볼 때, 기독교 우파로 추정된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에서 연이어 보수 성향 정부의 장관을 역임한 점을 감안할 수 있겠지만, 그 점만으로 보수성향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3] . 참주인연합이 훗날 친박들에 의해 점령당했지만, 이는 자의보단 타의에 가까우므로 고려에 넣을 수 없다. 참주인연합에 입당했던 현역의원 1명이 열린우리당 출신인 걸 감안하면 중도같기도 하지만, 열린우리당 자체가 스펙트럼이 원체 넓은 정당이라 의미가 있을지...
창조과학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창조과학에 바탕한 과학 서적에 추천사를 작성하였고# #, 신앙 간증을 하면서 자신이 설립에 기여한 KAIST에서 한국창조과학회가 탄생했음에 감사함을 밝힌 적이 있다.#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때 순직한 김재익과 절친했다. 정근모는 개신교 신자였고, 김재익은 가톨릭 신자였다.[4] 정근모는 김재익을 전도하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는데, 각자 외국 출장을 앞두고서[5] 서로 만나서도 나랏일을 이야기하느라 결국 정근모는 김재익에게 "교회에 나오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고, 정근모는 김재익을 끝내 전도하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다만 엄연히 기독교에 속한 가톨릭 신자를 전도의 대상으로 봤다는 데서도, 정근모의 근본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1] 1951년 제1회 전국 국민학교(초등학교) 대상 국가고시에서 전국 수석,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고, 대입검정고시에서도 수석을 차지했다.[2] 2018년 유효정이 22세 8개월의 나이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서 생명공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드디어 기록이 경신되었다.[3] 분명 집권 여당의 성향에 가까운 인물들이 장관으로 입각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승만 정권하의 농림부 장관 조봉암, 참여정부 하의 국방부 장관 김장수 등 정치 성향이 다른 인물이 장관으로 입각하는 경우도 존재한다.[4] 김재익의 누나 김재순과 김재숙은 성심수녀회 소속의 수녀이다. 피천득의 수필인 인연에 등장하는 '김 수녀님'이 바로 김재순 수녀.[5] 정근모는 중국 상하이시, 김재익은 미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