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령

 

1. 한국사에 등장하는 신비의 인물
1.1. 개요
1.2. 정도령이라고 생각되거나 주장한 인물
1.3. 유사사례
1.4. 현대 창작물
1.5. 같이보기
2. 도령(都領)체제의 수장


1. 한국사에 등장하는 신비의 인물



1.1. 개요


정감록에 예언된 구원자로 나와 유명한 인물로 조선 중후기 민간에 유행하였다. 정씨라는 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기에 현대에서도 각종 선거철만 되면 정씨 성을 가진 정치인들이 가끔 정도령 드립을 써먹기도 하고, 실제로 정주영. 정몽준, 정동영 등 정씨 출신 유력 대권주자가 나올때 써먹기도 했다. 실제 당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정도령, 혹은 정진인으로 불리며 이씨 왕조를 끝내고 계룡산에 정씨 왕조를 세운다고 예언되었으나, 조선 왕조 멸망 후 100년도 더 지난 2020년 현재까지도 정씨가 왕(=대한민국 대통령, 주석)이 되지 못했다.

1.2. 정도령이라고 생각되거나 주장한 인물


조선 초기 개국 공신중 한사람인 정도전이 숙청된게 이 때문이 아닌가라는 설도 있긴 하지만 근거는 없다. 오히려 정감록의 저자로 정도전 혹은 정여립의 소문이 돈 것으로 볼 때 정도령의 성씨가 정씨인 것은 조선왕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패배자의 이미지가 차용된 것이라는 시각이 있긴 하다. 또 최근에는 대만에서 반청활동을 벌인 정씨 왕조정성공과 그의 아들 정경이 정도령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인조 말 조선에 퍼진 유언비어 중에 "정성공(또는 정경)이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나라에 항복한 조선을 징벌하러 함대를 이끌고 온다." 라는 유언비어가 있었던 것이 그 근거.
물론 자신이 "정도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과거에도, 그리고 심지어는 현대에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백백교 교주 전용해도 "전도령"이 "정도령"과 비슷하게 들린다는 점을 이용해서 자신이 정도령이라고 주장했다. 영생교 교주 조희성도 스스로가 정도령이라고 주장했다.


1.2.1. 출전



1.2.1.1. 정감록


정감록에서 이야기를 서술하는 정감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라고 설정돼 있고 정도령 역시 이 정감의 후손이라고 나오므로 연일 정씨일 것이다.[1]
정도령, 혹은 정진인으로 불리며 이씨 계룡산에서 조선의 이씨 왕조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고 정씨 왕조를 세운다고 예언되어있다.

1.2.1.2. 숙종실록


날이 저문 뒤에 이절(李梲)·유선기(兪選基) 등이 상변(上變) 하기를,

"어느 날 이영창(李榮昌)이 이절의 집에 와서 자면서 갑자기 묻기를, ‘그대가 장지(葬地)를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 스승을 가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스승이란 중은 바로 '''운부(雲浮)'''로서, 당시 나이 70세로 송조(宋朝)의 명신(名臣)이었던 왕조(汪藻)의 후손인데, 명나라가 망한 뒤 중국에서 표류하여 우리 나라에 도착하였으며, 머리를 깎고 금강산(金剛山)에 들어갔는데, 그 사람은 위로는 천문(天文)을 통달하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통찰하고 중간으로는 인사(人事)를 관찰하여 재주가 옛날의 공명(孔明)과 유기(劉基)에 밑돌지 않는다는 자였습니다. 그가 불경(佛經)을 승도(僧徒)들에게 가르쳤는데, 그 중에서 뛰어난 자로는 '''옥여(玉如)·일여(一如)·묘정(卯定)·대성(大聖)·법주(法主)''' 등 1백여 인을 얻어 그 술업(術業)을 전수(傳受)시키면서 팔도(八道)의 중들과 체결(締結)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장길산(張吉山)'''의 무리들과 결탁하고, 또 이른바 '''진인(眞人) 정(鄭)·최(崔)''' 두 사람을 얻어 먼저 우리 나라를 평정하여 정성(鄭姓)을 왕으로 세운 뒤에 중국을 공격하여 최성(崔姓)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중략)

임금이 또 국청(鞫廳)에 하교(下敎)하기를,

"극적(劇賊)[2]

장길산(張吉山)은 날래고 사납기가 견줄 데가 없다. 여러 도(道)로 왕래(往來)하여 그 무리들이 번성한데, 벌써 10년이 지났으나,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양덕(陽德)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체포하려고 포위하였지만 끝내 잡지 못하였으니, 역시 그 음흉(陰凶)함을 알 만하다. 지금 이영창(李榮昌)의 초사(招辭)를 관찰하니, 더욱 통탄스럽다. 여러 도(道)에 은밀히 신칙(申飭)하여 있는 곳을 상세하게 정탐하게 하고, 별도로 군사를 징발해서 체포하여 뒷날의 근심을 없애는 것도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 1월 10일 임술 3번째기사 / 반역 모의에 관련된 이절·유선기 등은 복주되고 이익화·장영우 등은 귀양 보내다

운부의 난과 장길산과 관련하여 정진인(鄭眞人)의 기사가 있다.

1.2.1.3. 이세경본풀이


이름은 정수남이로 자청비에게 반해서 속이려다 오히려 살해당하고(...)[3] 다시 살아나서 한동안 거지처럼 지내다 자청비가 불쌍히 여겨 부하로 삼아 하경신이 된다[4]
이 인물이 주는 교훈을 들어보자면,
  •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게 함부로 덤비다간 피본다.
  • 인맥을 잘 쌓아두면 팔자가 바뀐다.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자청비의 역하렘 구성원 중 하나(...)
여담이지만 나름대로 출생의 비밀이 있다. 지나가던 스님이 자기 절에 불공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청비의 부모가 불공 드리러 가는 길에 마주친 지나가던 스님 2가 그 절 부처님보다 자기 절 부처님이 더 영험하다고 해서 부모는 불공 드릴 절을 바꿨는데, 절에서 자청비의 부모를 기다리던 지나가던 스님 1은 그들이 절을 바꾼 것을 알고 화가 나서 자기 절 부처님에게 점지하려던 아들을 그 집 종에게 주라고 빌고, 그때부터 자청비 집의 종 정술데기(혹은 정수덕이)의 배가 갑자기 불러오더니 자청비와 한 날 한 시에 정수남이 운명이 뒤바뀐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1.3. 유사사례


앞선 왕조인 고려시대에는 십팔자위왕이란 비기가 왕조 내내 떠돌았었다. 이는 이씨가 왕씨를 몰아내고 왕이 된다는 예언으로 이자겸, 이의방, 이의민, 이인임의 이씨 권신들이 있었고 결국 이성계로 실현되었다. 또한 조씨가 왕이 된다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것도 있었다.

1.4. 현대 창작물



1.5. 같이보기




2. 도령(都領)체제의 수장


경술국치 이후 연해주에 세워진 대한광복군정부 "정도령(正都領)"으로 이상설, "부도령(副都領)"으로 이동휘가 당선된 바 있다.
[1] 다만 모든 본에서 정감이 정몽주의 후손이라고 쓰여있지는 않으므로 이것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2] 범죄의 규모가 큰 도둑이라는 의미이다.[3] 다른 버전에서는 게으름을 피고 있으니까 자청비가 일 안 하냐고 갈구었고, 소와 씨앗을 주면 일하겠다고 해서 주었는데 오히려 일하지 않고 자버리는 바람에, 소들은 봄볕에 죽어버린 데다 씨앗도 안 뿌려서 그걸 본 자청비는 열받았고, 그걸 본 정수남은 문도령이 안와서 열받았다고 생각해서 문도령을 봤다고 거짓말을 쳐서, 자청비를 희롱했다가 자청비의 꾀에 넘어가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 후 자청비는 일할 몸종 죽였다고 부모한테 쫒겨났다라는 버전이 있다.[4] 다른 구전으로는 계속 죽어있다가 자청비가 서천꽃밭에서 문도령 살리려고 가져왔던 꽃 중 환생꽃과 회초리 세번 휘들려 살려내어서 하경신 되었다는 버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