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자위왕
十八子爲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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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떠돌던 도참설에 기반한 소문.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 '''목자득국(木子得國)'''도 같은 의미로 이자겸의 난과 관련되어서 처음 언급된다. 그 내용은 '십팔자' 이름을 가진 사람은 왕이 된다는 뜻으로, 十八子(십팔자)를 합치면 李(이)가 되니 결국 이씨 가문에서 왕이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목자득국은 李를 木+子로 좀 덜 쪼갠 것인데, 이건 오행설과도 관련이 있다. 본래 동양에선 모든 왕조는 그 왕조에 부여된 오행의 순환관계에 따라 건국되고 망함을 반복한다는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 있었다. 즉 나무(木) → 불(火) → 흙(土) → 쇠(金) → 물(水) → 나무.. 이하 반복 순서. 옆나라 중국에서도 오행은 왕조 교체의 명분으로 흔히 언급되고 있었고[1] 신라는 김(金)씨 왕조였고 수도가 금성인 것처럼 금덕(金德)의 나라로 간주되었고, 그 신라를 교체한 고려는 수덕으로 간주되고 있었다.[2] 즉 고려 다음 왕조는 당연히 목(木)덕이어야 했으므로 나무 목 자가 나오도록 끼워맞춘 것이다..
이성계가 유명하긴 하지만, 사실 한참 전에도 이자겸, 이의민이 이 도참설에 기대 왕위 찬탈을 노렸으나 실패한 바 있었다. 고려 왕들은 이 소문을 두려워해 오얏나무
사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씨는 흔한 성씨였으므로 옆 동네에서도 이씨의 제왕이 십팔자 드립과 엮이는 일은 자주 있었다. 당나라의 이연, 후당의 이존욱, 틈왕 이자성 등. 베트남의 리 왕조의 창시자 리 타이 또 즉 이태조(李太祖)로 불리게 되는 리꽁우언도 이에 해당한다.
십팔자위왕 드립과 비슷한 것으로 조선 시대에 퍼진 정도령 전설이 있다. 조광조에 얽힌 야사의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것도 비슷한 형태. 주랑 초를 더하면 조(趙)가 되는데 이는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며, 나뭇잎에 이것이 써진 것을 가지고 조광조를 모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사는 아니다.[3]
사실 먼 훗날의 일이지만, 제국을 처음으로 선포한 대한제국 첫 황제 고종도 이씨,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이씨, 조선인민공화국 주석도 이씨,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이 재임하게 되면서 십팔자위왕 이야기는 근현대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나 어쨌다나.[4] 근데 어째 '''다 끝이 안좋다'''.
유럽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교황 레오 10세 시절에 로마에 "다음 교황은 가난한 가문 태생이지만 학식이 뛰어난 '아드리안'이라는 사람이다." 라는 소문이 퍼지자, 이 소문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믿은 아드리안 사울리 추기경이 교황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던 페트루치 추기경과 합세하여 교황을 암살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페트루치 추기경은 사형당하고 아드리안 사울리 추기경은 자진 망명하였다. 그 후 레오 10세가 말라리아로 죽자 후임 교황이 뽑혔는데, 정말로 "가난한 가문 태생이지만 학식이 뛰어난" 아드리안 플로렌츠 네달[5] 이라는 추기경이 하드리아노 6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즉위했다.
다만 이 경우는 '왕' 다운 왕이 아니었기에 십팔자위왕과 유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지 애매한데, 우선 하드리아누스 6세는 정말로 학식이 뛰어나 선출되었다기보다 유력한 후보들이 부딪친 끝에 몇 번이고 투표를 해도 승부가 나질 않자 '차라리 이러이러한 듣보가 있다던데, 얘를 뽑자' 라는 절충안이 나왔고. 그게 받아들여졌던 것.
또 선출 당시 스페인에 있던 하드리아노는 서둘러 로마로 가야 했지만, 프랑스나 스페인, 영국[6] 등이 신임 교황과 어떻게든 우호 관계를 쌓아두려는 생각에 '제 영토를 거쳐서 로마로 가셈. 알아들었음?' 하며 협박 아닌 협박을 넣었다. 결국 하드리아누스는 어느 영토도 거쳐가지 않음으로써 누구의 불만도 사지 않았는데,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 1522년 1월에 선출된 교황이 로마에 입성한 날은 8월 29일[7] . 그런 데다 다음 해 1523년 9월 14일에 죽어버렸으니, 교황으로서의 실질적인 치세는 '''1년 2주 정도에 불과.''' 게다가 죽기 전에 로마 시민들과 정책적으로 대립하였고 외교 등의 활동에서 무능함을 드러내보였기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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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고려시대에 떠돌던 도참설에 기반한 소문.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 '''목자득국(木子得國)'''도 같은 의미로 이자겸의 난과 관련되어서 처음 언급된다. 그 내용은 '십팔자' 이름을 가진 사람은 왕이 된다는 뜻으로, 十八子(십팔자)를 합치면 李(이)가 되니 결국 이씨 가문에서 왕이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목자득국은 李를 木+子로 좀 덜 쪼갠 것인데, 이건 오행설과도 관련이 있다. 본래 동양에선 모든 왕조는 그 왕조에 부여된 오행의 순환관계에 따라 건국되고 망함을 반복한다는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 있었다. 즉 나무(木) → 불(火) → 흙(土) → 쇠(金) → 물(水) → 나무.. 이하 반복 순서. 옆나라 중국에서도 오행은 왕조 교체의 명분으로 흔히 언급되고 있었고[1] 신라는 김(金)씨 왕조였고 수도가 금성인 것처럼 금덕(金德)의 나라로 간주되었고, 그 신라를 교체한 고려는 수덕으로 간주되고 있었다.[2] 즉 고려 다음 왕조는 당연히 목(木)덕이어야 했으므로 나무 목 자가 나오도록 끼워맞춘 것이다..
이성계가 유명하긴 하지만, 사실 한참 전에도 이자겸, 이의민이 이 도참설에 기대 왕위 찬탈을 노렸으나 실패한 바 있었다. 고려 왕들은 이 소문을 두려워해 오얏나무
[
李]
를 대량 벌채하는 등 기를 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의 왕이 됨으로써 소문은 어찌어찌 맞아 떨어졌다.2. 유사 사례
사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씨는 흔한 성씨였으므로 옆 동네에서도 이씨의 제왕이 십팔자 드립과 엮이는 일은 자주 있었다. 당나라의 이연, 후당의 이존욱, 틈왕 이자성 등. 베트남의 리 왕조의 창시자 리 타이 또 즉 이태조(李太祖)로 불리게 되는 리꽁우언도 이에 해당한다.
십팔자위왕 드립과 비슷한 것으로 조선 시대에 퍼진 정도령 전설이 있다. 조광조에 얽힌 야사의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것도 비슷한 형태. 주랑 초를 더하면 조(趙)가 되는데 이는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며, 나뭇잎에 이것이 써진 것을 가지고 조광조를 모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사는 아니다.[3]
사실 먼 훗날의 일이지만, 제국을 처음으로 선포한 대한제국 첫 황제 고종도 이씨,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이씨, 조선인민공화국 주석도 이씨,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이 재임하게 되면서 십팔자위왕 이야기는 근현대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나 어쨌다나.[4] 근데 어째 '''다 끝이 안좋다'''.
유럽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교황 레오 10세 시절에 로마에 "다음 교황은 가난한 가문 태생이지만 학식이 뛰어난 '아드리안'이라는 사람이다." 라는 소문이 퍼지자, 이 소문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믿은 아드리안 사울리 추기경이 교황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던 페트루치 추기경과 합세하여 교황을 암살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페트루치 추기경은 사형당하고 아드리안 사울리 추기경은 자진 망명하였다. 그 후 레오 10세가 말라리아로 죽자 후임 교황이 뽑혔는데, 정말로 "가난한 가문 태생이지만 학식이 뛰어난" 아드리안 플로렌츠 네달[5] 이라는 추기경이 하드리아노 6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즉위했다.
다만 이 경우는 '왕' 다운 왕이 아니었기에 십팔자위왕과 유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지 애매한데, 우선 하드리아누스 6세는 정말로 학식이 뛰어나 선출되었다기보다 유력한 후보들이 부딪친 끝에 몇 번이고 투표를 해도 승부가 나질 않자 '차라리 이러이러한 듣보가 있다던데, 얘를 뽑자' 라는 절충안이 나왔고. 그게 받아들여졌던 것.
또 선출 당시 스페인에 있던 하드리아노는 서둘러 로마로 가야 했지만, 프랑스나 스페인, 영국[6] 등이 신임 교황과 어떻게든 우호 관계를 쌓아두려는 생각에 '제 영토를 거쳐서 로마로 가셈. 알아들었음?' 하며 협박 아닌 협박을 넣었다. 결국 하드리아누스는 어느 영토도 거쳐가지 않음으로써 누구의 불만도 사지 않았는데,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 1522년 1월에 선출된 교황이 로마에 입성한 날은 8월 29일[7] . 그런 데다 다음 해 1523년 9월 14일에 죽어버렸으니, 교황으로서의 실질적인 치세는 '''1년 2주 정도에 불과.''' 게다가 죽기 전에 로마 시민들과 정책적으로 대립하였고 외교 등의 활동에서 무능함을 드러내보였기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3. 기타
- 단어 자체는 십팔자위왕이지만 잘못 읽으면 심히 민망해질 수 있으니 의미 상으로는 십팔자 위왕으로 띄어서 읽는다.
- 사극 무인시대에선 이고의 부하들이 '용손십이진 십팔자위왕(龍孫十二盡 十八子爲王)' 노래를 아이들에게 마를 주고 퍼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서동요를 따라한듯 보인다.
- 퓨전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위화도 회군 이후 아이들에게 의해 이 노래가 퍼트려지게 된다. 하륜이 이인겸의 이름을 팔아서 노래를 퍼트린다. 참고로 배우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명회 역을 했던 조희봉.
[1] 유명한 사례로 삼국지에서 화덕을 내세웠던 후한 왕조를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황건적의 슬로건 '창천이사 황천당립(蒼天已死 黃天當立)이다. 화생토의 원리로 화덕 다음은 토덕에 의한 나라가 들어선다는 원리이다. 비록 황건적은 실패했지만 이것은 헌제의 선양을 받은 조위에도 이어졌는데, 조비가 위를 세운 뒤 개원한 '황초(黃初)도 오행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후한이 촉한으로 계속 이어짐을 내세운 촉한은 염흥(炎興) 같이 화덕에 기반한 연호를 사용하기도 했다.[2] 궁예는 신라를 대체한다는 의미로 수덕만세(水德萬歲)라는 연호를 사용했고, 이후 왕건은 궁예가 세운 나라의 원래 이름이었던 고려를 그대로 이어받아 계속해서 수덕을 표방했으며, 훈요 10조에서 서경을 중시하라고 한 것도 평양이 수덕이 순조로운 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3] 심지어 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뭇잎에 주초위왕을 꿀로 써서 벌레가 해당부분만 갉아먹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꿀만 먹거나 나머지 부분도 임의대로 먹어치웠다.. 물론 수없이 많은 연습??을 한다면 성공했을지도...[4] 여담으로 이승만은 전주 이씨다. 다시 말하면 먼 조상이 이성계. 때문인지 이승만 본인은 주변에 누누이 자기가 양녕대군의 적손 혈통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외교론자인 그가 나름의 유리한 고지를 만들기 위해 떠벌린 속셈있는 행동이라는 평가도 있다.[5] 특이하게도 네덜란드 출신이었다. 비록 기간은 짧지만 이 나라 출신의 유일한 교황으로, 고향 위트레흐트에 은퇴 후에 살려던 집 이 존재한다.[6] 아직 영국 국교회 성립 이전이다.[7] 그나마도, 이전까지는 로마를 본 일이 없었다. 주 활동 무대는 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