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표준시

 


1. 개요
2. 역사
3. 비공식 시간대
4. 기타


1. 개요


中國時區/中国时区. 중국의 시간대. 중국은 UTC에 8시간을 더한 시간대인 UTC+8 중국 표준시(China Standard Time, CST)를 쓴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UTC+8 시간대만을 사용한다.''' 이 시간대는 동경 120도 언저리에 있는 수도 베이징의 자연 시간대에 맞춘 것이다.
때문에 중국 서부인 티베트 자치구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실제 시간대와 공식 시간대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가령 동경 91도인 라싸의 실제 시간대는 UTC+6에 가깝고, 동경 75도인 카슈가르의 실제 시간대는 UTC+5에 가깝다. 다시 말하자면 라싸는 실제 시간보다 2시간, 카슈가르는 3시간이나 빠른 시간대를 쓰고 있는 셈.
이 때문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의 가장 큰 시간차는 중국(UTC+8) - 아프가니스탄(UTC+4.5)으로 '''3시간 30분''' 차이이다.
드넓은 국토에서 한 시간대만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흔히 하나의 중국 원칙이느니 하는 것들을 거론하지만 정설은 아니다. 그렇지만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할 경우에는 상하이증권거래소가 있는 동남부 연안지대 시간에 거래를 맞추고 시간대를 미국처럼 4개로 나누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지라 아예 변화 가능성이 없냐면 그것도 아니다.
2005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서부[1] 지방에 대한 UTC+7 도입이 제안된 바 있다.

2. 역사


중국의 표준 시간대 설정은 개화기로 표준시가 정해지기 시작하던 청나라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 세력이 청조가 쇠약해지자 아편전쟁 이후 중국 대륙을 침탈하면서 자신들이 차지한 조계를 위해 독자적으로 상하이, 샤먼, 칭다오, 광저우 등에 있던 조계의 시간대를 정했으며, 1902년에는 항구들 간의 교류를 위해 항구들끼리의 시간대를 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국지적인 것으로 중국 대륙 전역의 시간대를 규정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공식적인 첫 표준 시간대 설정은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선 1918년에 이루어졌다. 중국 대륙을 다스리고 있었던 중화민국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처럼 전국적으로 통일된 시간대를 쓰지 않고 5개의 표준 시간대를 설정했다.
이 지도는 중화민국의 1912년~1949년에 사용된 행정구역과 각 시구(時區)를 표시한 것인데, 가장 동쪽인 만주 일대는 UTC+8:30, 그 서쪽 바로 옆의 대부분의 지역이 UTC+8이고 거기서부터 서쪽으로 1시간씩 빼면 되며 가장 서쪽은 UTC+5:30이다. 그러나 당시 중화민국은 전 국토에 행정력을 미치지 못하는 반쪽짜리 국가여서 이게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독립국으로 놀았던 티베트같은 경우는 시간대에 대한 기록이 없다시피 해서 무슨 시간대를 썼는지 알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다가 국공내전으로 중화민국대만으로 쫓겨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1950년에 전국의 시간대를 베이징 기준인 UTC+8로 통일하여 지금에 이른다.
중화민국의 경우는 시간대가 지나치게 세밀해서 불편을 초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의 시차를 보면 실제 물리적인 시간과 무관하게 이웃나라의 시간대에 고정시켜 놓은 경우가 많다. 이는 표준 시간대를 너무 정확하고 세밀하게 정하면 이웃나라들과의 교류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물리적 시간과 1~2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 건 큰 문제가 없으니 그냥 인접국끼리 시간대를 통일하는 것이다. 하나의 시차를 강제해서 문제가 생기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정반대 상황이다.

3. 비공식 시간대


신장 위구르 자치구베이징에서 한참 서쪽인 카자흐스탄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베이징 기준의 시간을 따르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연시간과는 2시간이나 차이가 나서 실제 생활리듬이 시간과 괴리되어 있다. 중국 서쪽 끝인 티베트 내의 카슈가르같은 경우는 일몰시각이 2020년 7월 1일 기준 22시 27분으로, 거의 실제로는 22시 42분까지는 조금 밝은 편이며 이에 반하여 일출시각은 2020년 1월 1일 기준 10시 16분으로, 10시가 되어서야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다.[2] 일단 이 지역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을 늦추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UTC+6을 비공식 시간대로 쓰기도 한다. 이 시간대를 우루무치 시간 혹은 신장 시간이라 하기도 한다.
이 비공식 시간대는 1986년에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민간 사무에서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비공식 시간대이며, 통신, 항공, 철도 분야는 현행 UTC+8을 쓰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정부와 자치구의 한족은 대체로 UTC+8을 고집하며, 따라서 UTC+6은 위구르족 위주로 사용된다. 2018년 9월에는 위구르 자치구에서 UTC+6을 썼다는 까닭으로 위구르인을 감금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케이스이고 현실적인 까닭 따위로 출퇴근 따위는 신장 시각인 UTC+6에 맞추고 공식 행사 따위는 UTC+8에 맞춘다. 생활 리듬 때문에 어쩔 수 없다.

4. 기타


  • 홍콩마카오중국 대륙과는 별도로 시간대를 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나 모두 중국 본토와 같은 시간대를 쓴다. 영국령 홍콩은 초기에 GMT+7:36:41라는 시간대를 사용했고[3], 현재처럼 GMT+8(UTC+8)을 채택한 것은 1904년이다. 마카오 역시 정식 포르투갈 영토가 된 19세기 말부터 GMT+8(UTC+8)을 사용했다. 이 둘은 베이징과 경도가 비슷해서 다른 시간대를 쓰면 오히려 손해다. UTC+8이 딱 생활리듬에 맞는 곳이다.
  • 중화민국의 실효지배 영토인 대만 섬에서는 일본 식민지 시절 타이완 민주국이 진압되고 일본이 일본본토와 식민지의 시간대를 제정하게 되면서 1896년 1월 부로 오키나와 서부와 함께 UTC+8을 썼다. 1937년 10월 UTC+9로 편입되었다가 1945년 9월 21일에 일제 패망 후 임시로 통치하던 대만총독부에서 서부 표준시를 복구해 UTC+8로 복귀되고, 중화민국에 편입되며 중화민국의 중원표준시로서 UTC+8을 사용하다가 2000년대에 국가표준시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 오늘날 대만에서는 대만 독립운동 세력을 위주로 중국과의 절연을 위해 UTC+9로 바꾸자는 운동이 있다. 북한의 UTC+8:30 변경, 한국의 UTC+8:30 변경 찬성 의견과 비슷한 맥락이다. 국민청원이 이루어진 적도 있는데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채택되지는 않았다. 대만도 홍콩, 마카오처럼 자연적인 시간대는 UTC+9보다 UTC+8에 더 가깝고 가장 상호 금융거래가 잦은 홍콩/싱가포르와 단절되므로 시간대를 바꾸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 중화민국 시절인 1945년에서 1948년 사이, 그리고 1986년에서 1991년 사이에 서머타임 제도가 잠깐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그렇듯 중국의 서머타임 제도는 실익이 극히 적어 폐지되었다. 홍콩마카오 역시 1980년대 이전까지 서머타임을 실시했으나 폐지하였고 다시 부활하지 않고 있다.
  • 동일 시간대를 쓰는 다른 주요 국가로 몽골,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이 있다.
[1] 충칭, 쓰촨성, 간쑤성, 산시성 서부 등. 티베트 자치구칭하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UTC+6 즉 중앙아시아 시간대에 가깝다.[2] 참고로 땅 넓은 나라는 공통으로 발생하는 문제로 미국앨라배마 주는 원래 미 동부시간대를 써야 하나 미 중부시간대를 끌어써서 겨울엔 해가 일찍 지고 여름엔 해가 늦게 지는 등 괴랄한 현상을 겪기도 한다.[3] 이를 경도로 환산하면 114.170833 °E인데, 이는 정확한 홍콩의 경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