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대표대회
全国人民代表大会
National People's Congress

상무위원장
리잔수(栗战书)
대표자 수
약 2,800명[1]
개최빈도
연 1회
개최일시
매년 3월 5일
임기
5년
개최장소
인민대회당(人民大会堂)
홈페이지
http://www.npc.gov.cn/
약칭
전인대
1. 개요
2. 역할
3. 역사
4. 전국인민대표자
5.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6. 지방의 인민대표대회
7. 타국과의 비교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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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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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최고권력기관이자 중국의 입법부, 행정부 역할을 한다. 일반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집행도 동시에 수행한다.
매년 3월 5일에 수도 베이징에 위치한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되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함께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권력기구이다. 현재 상무위원장은 리잔수(栗战书)이며, 임기 5년의 대표 2,800여 명이 소속되어 있다.

2. 역할


이 기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헌법 수정, 법률 제정과 국가요직 임명이다. 국가업무를 이끌어갈 국가 주석 및 부주석, 국무원상무위원회는 이 기구를 통해 구성한다. 그 외에 국민경제와 사회발전계획, 국가예산과 결산의 심사비준, 각 성, 자치구와 직할시 구분의 비준, 선전포고 결정을 한다. 임기는 5년이며 매년 1회 개최되고 그 밖의 의안은 상무위원회가 처리한다. 상무위원회는 상설기관으로서 폐회기간 중에 헌법개정, 국가주석, 국무원 총리, 군사위 주석 선출 등을 제외한 전인대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한다. 그리고 상무위원회 위원은 국가행정기관, 사법 또는 검찰기관업무 겸직을 금지한다. 상무위원회에서는 전인대 폐회 기간동안 전인대에서 발인한 법률(홍콩 기본법, 마카오 기본법 포함)에 대한 보완, 보충, 수정, 해석과 더불어 주요 공직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으며, 동원령, 계엄령의 선포 권한을 가진다.
이렇게 쓰여 있으니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공산당과 국무원에서 결정한 사안에 도장 찍어주는 사실상 거수기 기관에 가깝다. 일단 전인대를 구성하는 대표위원부터 직선제가 아닌 공산당원이나 지방의원들의 간접선거로 선출되며, 이 과정에서 민심이 반영될 확률은 매우 낮다.
이견이 있거나 논쟁적인 일에 대해 논의한다 해도, 전인대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계파 수장이나 주요 구성원끼리 미리 합의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데다가 전인대가 한국의 국회처럼 상설적으로 열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인대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일이 많지 않다. 싼샤 댐 건설동의안을 처리했을 당시에 반대표와 기권표가 1/3이나 나왔다는 것이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을 정도이니 일처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수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rubber stamp(거수기를 뜻하는 영어단어)라는 비아냥 섞인 표현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전인대 내에서도 민주당파라 해서 야당의원들이 상당수 있고, 이들이 회기때 정부인사들의 부패를 비판하기는 한다. 그러나 선거 제도가 직선제도 아니고, 공산당의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에서 실질적으로 이들이 뭘 제대로 할수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붙는다면 말 그대로 코렁탕 확정이기도 하고.
이렇게 전인대가 사실상 거수기다 보니 3,000명에 가까운 인민대표들 중에서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사진에도 안 찍히겠다, 아예 자리에 엎어져서 주무시는 장면이 뒤쪽 라인으로 찾아간 외국 기자들에 의해 사진으로 찍히기도 한다.
그 외에도 중국의 최고 지도자에 해당하는 국가주석, 군사위원회 주석을 선출하며, 총리와 검찰원장, 최고인민법원장 등을 임명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인선하고 이를 추인하는 형태로 기능한다.[2]
매해 3월 5일 개최되는 회의에서는 중국의 헌법, 법률에 대한 해석과 함께 제정, 심의하는 일과 연례 예산안의 상정 및 최종 심의를 담당한다.

3. 역사


1954년 9월 제1기 회의를 개최하여 류사오치를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선출한다. 이후 3월에 정례회의를 계최하면서, 정협과 함께 양회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1959년에는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마오쩌둥이 국가주석에서 물러나자, 류사오치를 국가주석으로 선출한다.

4. 전국인민대표자



성 및 자치구 인민대표대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되며, 그 외에도 인민해방군에서 별도로 대표들을 선출한다. 한족, 소수민족, 인민해방군 군인, 재외동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2980명을 선출하여 5년 동안 재직하게 한다.
특이한 것은 농촌의 구성원 비율을 도시의 구성원 비율의 수 배 정도로 규정하고 있는 점인데, 이는 중국 공산당이 만들어질 때 지지기반이 농부들이었기 때문이다.
일국양제로 내정에 대해 자치를 보장받은 홍콩마카오에서도 전인대에 대표자를 파견하는데, 이들 지역에는 인민대표대회가 없기 때문에 별도의 선거인단을 꾸려 전국인민대표를 선출한다. 홍콩 반환, 마카오 반환 이전에도 중국은 홍콩, 마카오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했기에 명목상 홍콩, 마카오를 지역구로 두는 전국인민대표자(이 때는 광둥성 전국인민대표자의 일부였다)를 선출했다. 마찬가지 원리로 실질통치하지 못하는 타이완성 대표들도 있는데 대만에서 망명한 사람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선출한다.

5.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전인대 소속으로 두고 있으며,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관한다. 전인대 의원들은 다른 직에 겸직해서 안되지만 상무위원회는 그런 것 없다. 중국 헌법과 관련해서 법률에 대한 해석 권한을 가지고 있다.[3] 대표적으로 1999년에 있었던 홍콩 국적법과 관련해서 가진 적 있다.#

6. 지방의 인민대표대회


중국에는 지방에서도 전국인민대표대회와 비슷한 기관이 있다. 그냥 '인민대표대회'라고 하며, 중국의 모든 법인격 행정구역(홍콩, 마카오 제외)에는 인민대표대회가 있는데 이는 한국의 지방의회에 상응하는 기관이다.
지방의 인민대표자는 향, 진, 시할구급에 대해 보통선거로 선출되며, 그 이상의 행정구역의 경우 하위 행정구역의 인민대표대회의 간접선거로 인민대표자가 선출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민대표자들이 그 지역 지방정부의 장(성장, 시장, 현장 등등)을 선출하고 이들을 소환할 권한도 갖는다.중국 헌법 101조
그리고 지방의 성위원회 당서기가 인민대표대회 주임을 겸직하는데 예외적으로 인구가 많은 곳에는 당 서기와 인민대표대회 주임을 별도로 둔다. 여당의 시도당 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이 지방의회나 시군구 의회의 의장을 겸직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들도 거의 대부분 중국공산당구색정당들 구성원으로써 중국공산당원인 지방정부 수장의 거수기노릇을 한다. 말단급 향, 진, 시할구급 인민대표대회의 경우 주민의 의사를 어느 정도 의식하는 편이라고 하나 승진이나 페널티를 무시할수 없다보니까 상위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향, 진, 시할구급 인민대표 중 주민 의사를 반영한 활동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오래지나지 않아서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견제를 받는다.

7. 타국과의 비교


선거방식이 민주집중제에 입각해 다른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와 꽤나 차이가 난다. 한국으로 치면 기초의원이 광역의원을 뽑고, 광역의원이 국회의원을 뽑는 식.[4] 이러한 형태라 항상 과반수 득표를 하는 후보들끼리 결국 최상의 집행권을 장악하게 된다. 설령 중국이 다당제로 전환하더라도 이러한 체제가 유지된다면 정당투표와 투표결과의 불비례성이 굉장히 크게 나타날 것이다.
이는 역사상의, 그리고 현재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특이한 사례이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수립될 때 공산당이란 이론적으로 관료기관이 아니라 혁명을 위한 전위정당일 뿐이고 각 지방의 평의회(소비에트)는 이론적으로 무당파적으로 입법행정권을 가진 지방자치기관으로 기능하는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공산당이 모든 걸 장악해버렸다. 중국은 아예 이 '장악된 뒤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공산당 주도 독재체제를 설립했다.
간선제 의회를 채택한 국가가 없지는 않지만 그런 국가들은 대부분이 간선제 의회를 상원으로 두고 직선제 의회를 하원으로 둔다던지의 보완을 행한다. 이 분야의 원조인 소련조차도 스탈린대숙청 직전에 즈다노프의 제의에 따라 민주집중제를 혁파하고 직선제는 물론 '공산당내 다자 후보 선거' 까지 도입하려 시도했다. 물론 대숙청으로 실패하긴 했지만 최고 소비에트의 직선제 자체는 소련이 망하는 그날까지 유지되었다. 하다못해 북한 최고인민회의도 실제 위상은 전인대만도 못하지만 일단 명목상으로는 직선제다(...)
묘하게도 조선인민공화국입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가 이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이름이 같은 것으로 오인받는다.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는 각 지방의 인민위원회에서 뽑힌 대표자들이 구성하는 입법기관으로, 간선제인 전인대와 원리는 같지만 시대와 개념이 많이 다르다. 전인대는 1954년에야 개최되었고,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는 1945년과 1946년에 한번씩만 열리고 미군정에 의해 해산되었다.

8. 관련 문서




[1] 원래는 약 3,000여 명을 뽑는다. 2017년 기준[2] 중국 정치는 마오쩌둥 사후 상무위원 7인이 합의 하에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실상의 과두정처럼 기능하다가 시진핑 독재 체재가 완성된 이후에는 다시 마오쩌둥 시대처럼 독재정으로 변화하였다.[3] 때문에 중국 판사들은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했다가는 징계를 받을 수 있다.[4] 물론 이런식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민주주의 국가가 없는것은 아니나(대표적으로 프랑스독일, 인도) 이 경우에는 상원의원만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