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

 


[image]
'''이름'''
쥘 베른 (Jules Verne)
'''국적'''
프랑스 [image]
'''출생'''
1828년 2월 8일
프랑스 왕국 낭트
'''사망'''
1905년 3월 24일 (향년 77세)
프랑스 제3공화국 아미앵
'''직업'''
소설가
'''분야'''
공상 과학 소설, 모험 소설
'''대표작'''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지구에서 달까지
15소년 표류기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작품 목록(출간년도 순)


1. 개요


프랑스SF모험 소설가. SF 소설의 개척자로 후대의 과학소설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설적인 SF소설가이다.

2. 생애


원래 법학을 공부했지만 정작 그는 나중에 문학을 전공했다. 출생한 도시가 항구 도시인 낭트였던 탓인지 여행에 관심이 많았고[1] 이는 나중에 그의 작품들을 쓸 때 큰 보탬이 되었다.
1851년 지인의 경기구 설계도에서 영감을 받아 '기구 여행'이라는 작품을 쓰는데, 몇 년 후 이걸 출판사에 들고 갔더니 편집자였던 에첼이 너무 과학적이라서 재미가 없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에첼의 도움으로 이 작품을 수정하여 문학적인 재미를 더해서 '기구를 타고 5주간'이라는 작품으로 수정하여 1863년에 발표했고,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그 다음작으로 '20세기 파리'를 쓰지만 20세기 파리 자체가 염세주의적인 색체가 강한 작품인지라 에첼은 이게 출간하기에는 좋지 않은 작품이라고 여겨 결국 출간되지 않았고, 다음 해인 1864년에 '지구 속 여행'을, 1865년에는 지구에서 달까지를 연속 출간하면서 대히트를 치고, 이후로도 '경이의 모험'이라는 시리즈물로 엄청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54권이나 되는 작품들을 써냈다.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과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다루는 SF,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이 두가지 테마는 인간의 진보에 강한 확신을 품고 있던 당시 서구권에서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심지어 서구 제국의 진출에 고생하던 아시아권에서도 그의 작품들은 일종의 대리만족 내지는 추구해야 할 목표를 제시하는 작품으로 여겨졌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가 생각해 냈던 공상적 도구들의 일부는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보고온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21세기에 와서야 실용화되었을 정도니 그야말로 대단한 상상력이었던 셈이다.'''
그의 작품들의 인기는 그가 사망하고 100년이 넘은 지금도 시들지 않고 있다. '버니언'이라 불리는 베른 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그 중에 달 세계 여행은 '''세계 최초의 낭만주의 영화'''라는,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며 너무나도 유명한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몇 번이고 영화화되었는데 그 중에는 성룡이 주연으로 나온 상업영화도 있다. 2008년에는 지구 속 여행이라는 작품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
개중에는 달 세계 여행을 읽고 달에 가고 싶어서 로켓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또한, 해저 2만리의 주역 메카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얼마나 많은 매체로 등장했던가는 설명이 달리 필요없을 정도. 심지어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조차 그 이름을 썼을 정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다 필요없고 '''무지 재밌어서''' 아직까지 인기가 많다.
그리고 그 특유의 낙관론적 세계관[2] 덕분에 보면서 멜랑꼴리함을 느낄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쥘 베른 본인의 경우 말년으로 갈수록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생겨 사교성이 무척이나 떨어졌으며 사람과의 접촉도 거의 피하게 되었다. 때문에 말년의 작품들은 염세적이고 어두운 작품들이 많다.
사실 염세적이고 어두운 것이 그의 본 모습이다. 아래에도 나와 있지만, 사실은 그의 첫 작품은 미래의 파리를 묘사한 디스토피아적 소설 "20세기 파리" 였고, 너무나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130년 이상 묻혀야 했다. 그렇기에 일부에선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낙관론은 대중에게 잘 먹히도록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백 투 더 퓨쳐의 브라운 박사가 대표적인 버니언. 어렸을 때 해저 2만리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단다. 3편에서 과거의 인물이었던 클라라 클레이튼과 정식으로 결혼하고 아들들 이름을 쥘 베른에서 땄을 정도. 이때는 쥘 베른이 아닌 미국식 표기인 '''줄스 번''' 이라고 읽었다. 그래서 두 아이의 이름도 각각 "줄스"와 "번".
말년에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 1888년부터 10년 넘게 아미앵 시의회의 시의원으로 활동한다.
공상, 모험, SF 소설로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공상 소설의 아버지로 불렸던 그는 1905년 3월 24일 아미앵의 자택에서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 마들렌 묘지에 묻혔으며 그를 기념해 그가 살던 롱그빌 거리가 쥘 베른 거리로 바뀌었다.

3. 여담


  • 한반도에 최초로 소개된 SF 소설이 바로 쥘 베른의 작품들이다. 1907년 재일 유학생 박용희가 해저 2만리를 해저여행기담이란 제목으로 번안하여 학술지 태극학보(太極學報)에 연재하다 중단되었으며 1908년 신소설가 이해조가 인도 여왕의 유산을 철세계라는 단편으로 번안하여 연재했다. 한국 실정에 맞춰 이름 등을 전부 뜯어 고친 이 두 작품 이후 조금씩 해외 SF 소설의 번안본이 나오기 시작했다.[3]
  • 본 문서 상단에 언급한 일화인 '밀항을 시도하다 부모에게 잡히고, 앞으로는 꿈 속에서만 여행하겠다고 맹세했다'라는 일화는 와전된 이야기라는 설이 있다. 실제 쥘 베른은 세계 곳곳을 여행, 방문하는 것을 즐겼으며 생활이 안정되고 나서는 요트를 3대나 보유해 종종 항해 여행을 나갈 정도였다. 맹세가 사실이었다면 이는 모순되는 행보.
  • 쥘 베른의 아내 오노린 드비안은 이미 두 명의 딸을 둔 미망인이었으나, 친구 결혼식에서 본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결혼에 성공했다.
  • 가정사적으로 좀 불우했는데, 정신병에 걸린 조카가 발광하면서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을 뻔했으며 평생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었다.
  • 베른 빠돌이들 때문에 그의 작품들에 나오는 내용들 중 일부가 음모론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 다만 필력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소설들은 약간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문학적인 향취와 지금 시대상으로 보면 장르 소설에 쓰일 소재를 이만큼 접합시킨 것도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소재의 신선함과 거대한 스케일을 제외하면 줄거리 자체는 평이한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모험과 SF 양쪽 소재의 특성 때문이기는 하지만 현실 세계에 존재했다면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을 법한 엄청난 지식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등장한다. 물론 이런 점들을 결점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고, 하여간 그런 면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다른 작가들의 세계관과 크로스오버될 경우에는 좀 곤란하게 될 수도 있는데, 에드가 앨런 포우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 그가 덧붙인 뒷 이야기 빙원의 스핑크스는 쥘 베른이라는 네임밸류를 감안하고 보면 굉장히 실망스럽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의 후속작을 자처하는 작품도 하나 더 있는데 이건 다름아닌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필생의 역작인 광기의 산맥. 이 작픔과 비교가 되니 더욱 안습해진다.
  • 시중에서 쥘 베른의 작품을 찾아 읽길 원한다면 열림원에서 출판하고 전문 번역가 김석희 씨가 번역한 쥘 베른 컬렉션과 걸작선을 추천한다.
  • 2009 개정 교육과정 3학년 영어 교과서 Lesson 10: Imagine the Future[4] 본문이 바로 본인 소개와 해저 2만리, 서기 2889년, 지구에서 달까지로 되어있다.
  • 2010년 Castle in Transylvania라는 제목으로 그의 작품이 출판되었는데 책 커버에 따르면 최초의 언데드물이다.
  • 쥘 베른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스팀펑크 장르의 개척자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SF장르는 과학지식에 기반해서 예측된 미래세계를 상상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19세기 당시의 시대상을 기반으로 미래를 상상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스팀펑크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으니 스팀펑크의 선구자라고 여겨지게 된 것이다.

4. 작품 목록(출간년도 순)


원제는 La journée d'un journaliste américain en 2889) 미래 시대를 예언하는 내용의 단편소설이다. 쥘 베른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으나, 그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아들인 미셸 베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 카르파티아의 성(1892)
  • 깃발을 바라보며(1896)
  • 세계의 지배자(1904)
  • 세상 끝의 등대 (1905)
Le Phare du bout du monde가 원제목으로 베른이 생전에 쓰던 여러 작품 중 하나로 죽은 뒤로 발견되어 출판되었다. 하지만, 베른은 이건 내가 썼어도 영 아니기에 출판하지 말라는 글을 적을 정도로 작가도 부끄럽게 여긴 소설이었는데 당시에도 베른의 졸작으로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1971년에 커크 더글러스율 브리너 주연으로 미국,스페인 등 여러 나라 합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져 평이나 흥행은 실패해 잊혀졌다. 한국에서는 그레이트 시맨이라는 제목으로 1972년 6월에 개봉했으며 1986년 크리스마스 특선 심야영화로 MBC에서 케이프혼의 등대라는 제목으로 더빙 방영되었다.
  • 20세기 파리(1994)
대학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한 청년이 비즈니스와 엔지니어링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취직한 기업에서는 실직당하고 군대에는 드론 뿐이라 입대도 거절당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수사학 교수 아버지의 죽음으로 사라지자 결국 빈곤 속에 죽어가는 이야기. 경제/경영학 논리와 하이테크놀러지로 가득한 가운데 인문학도가 취업난을 겪는 20~21세기의 사회를 19세기에 정확하게 예측한 소름돋는 작품. 원고 자체는 1863년에 쓰여져 쥘 베른의 초기작에 해당하지만, 에첼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된다며 거절해서 당시에는 출판되지 못했다.[5] 이후 작품 리스트에는 있었지만 원고가 유실된 작품이라 여겨져서 출간이 안 되고 있었는데, 1989년 증손자가 집을 팔기 위해 옛 금고를 치우던 중 밑바닥에 깔려 있던 이 작품의 원고를 발견, 1994년에 최초 출간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동년도에 바로 한림원에서 출간되었지만,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 영원한 아담(1910)은 아들 미셸 베른이 죽은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쓴 소설이다. 베른의 후기 작품 상당부분은 아들의 손이 꽤 많이 탔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그의 진짜 내용인지는 파악하기 힘든 게 많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로 세계가 멸망한후 아틀란티스 대륙이 올라와 거기서 문명이 일어났는데 그문명의 일원이 최후의 프랑스인이 남긴 기록을 보며 문명 진보의 순환을 보여준다.

[1] 실제로 '''사랑하는 사촌 누이에게 산호 목걸이를 선물하려고 밀항을 시도했다가 붙잡혀오는 해프닝'''도 있었을 정도. 이때 부모님에게 '''앞으로는 꿈속에서만 여행하겠다'''고 약속했다.[2] 19세기 말엽 서유럽의 '벨 에포크(= 좋은 시대)'를 참고하면 베른의 낙관주의을 형성시켜준 배경지식을 알 수 있다.[3] 최초의 순수 창작 SF 소설은 현재로선 김동인이 1929년에 발표한 K박사의 연구.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제법 되어 있는 일본, 중국의 경우 일본은 1900년 오시카와 슈로우가 쓴 <해저군함>, 중국은 1904년 발표된 작자 미상의 <달 식민지 이야기>라는 작품이 각각 최초의 SF로 일컬어진다.[4] 직역하면 '미래를 상상하다'라는 뜻이다.[5] 그런데 사실 러다이트 운동같이 모티브가 될 만한 사건은 충분히 있었다. 실제 당대 유럽의 노동환경이 매우 비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