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

 

1. 개요
2. 시작과 끝
3. 밝은 모습
3.1. 평화로운 국제관계
3.2. 민주주의와 여러 사상의 발전
3.3. 기술 발전
4. 어두운 이면
5. 이후
6. 타 지역의 유사 시기
6.1. 미국
6.2. 영국
6.3. 포르투갈
7. 기타
8. 드라마 청춘시대의 배경이 되는 집


1. 개요



1899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1900년의 파리

1900년의 베를린

1900년의 런던
Belle Époque.[1] 유럽사시대 구분 중 하나로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을 지닌 단어이다. 보통 19세기 말(세기말)부터 1차 대전 전까지(1914년) 전 유럽이 평화를 누리며[2] 경제와 문화가 발전한 시기를 말한다. 또한, 팍스 브리타니카의 시기인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결에서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시기까지를 포함하여 백년 평화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2. 시작과 끝


정확한 연도를 따지자면 벨 에포크의 끝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벨 에포크의 시작을 정확히 몇 년도로 잡는지는 역사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역사학자 도미니크 르준은 1896년으로 잡고(출처) 또다른 역사학자 도미니크 칼리파는 1900년으로 잡으며(출처), 크리스티 경매의 공식 웹사이트의 벨 에포크 시기 미술품 소개 페이지에서는 프랑스 제2제국의 붕괴(1870년)를 시작으로 잡고 있다.(크리스티 공식홈 소개 페이지)
어쨌든 모두 벨 에포크의 시작을 19세기 후반 이후로 잡고 있다는 것은 일치한다. 벨 에포크의 시작이 1815년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은 팍스 브리타니카(1815~1914[3])와 혼동한 것이다. 벨 에포크와 팍스 브리타니카는 1차 대전 발발 이전의 평화롭던 시기라는 것은 비슷하나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팍스 브리타니카는 정치외교적 의미가 강한 시대구분인데 비해 벨 에포크는 단순히 평화 뿐만 아니라 경제와 과학기술, 문화적 양식이나 스타일까지 포함한 의미의 시대구분이며 팍스 브리타니카보다 훨씬 짧은 기간을 지칭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두 시기 모두 역사상 전쟁이 별로 없는 평화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벨 에포크와 팍스 브리타니카 두 용어를 혼용하여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결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의 시기를 백년 평화라고 역사학계에서는 지칭한다.

3. 밝은 모습



3.1. 평화로운 국제관계


백년평화라고 지칭된 이 시기는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존속한 시기(1804 ~1918), 독일 제국이 존속한 시기(1871~1918)와 거의 일치한다. 이 시기의 평화가 메테르니히비스마르크의 외교적 능력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메테르니히는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후 유럽 대륙에 다시는 나폴레옹과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고 애쓴 인물이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형성된 체제를 빈 체제라고 불리워지며 백년평화의 토대가 된다.
비스마르크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4], 독일 제국 성립 후의 비스마르크는 식민지 확보에 대해서 회의적인 편이었던 데다가,[5] 아직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동시에 싸우기에는 독일의 힘이 부족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거나 최소한 대립관계는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썼다.[6]
이러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유럽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된 1815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 이전까지 약 100년 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도 전쟁은 있었지만 대부분 발칸 반도 등 동유럽이나 유럽이 아닌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서 일어났고 서유럽에서는 전쟁이 없었다. 있었다 해도 크림전쟁[7],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과 덴마크와의 전쟁[8], 보오전쟁, 보불전쟁 정도였으며, 다 합쳐도 44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3.2. 민주주의와 여러 사상의 발전


이 시기에 시민혁명이나 참정권 확대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2월 혁명, 영국에서 일어난 차티스트 운동이 있다.
또한,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꽃핀 시기이기도 했다. 그 결과, 1830년그리스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고[9], 독일과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분열된 상태를 끝내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 독일에서는 1834년프로이센 주도로 관세동맹이 체결되었으며, 1848년에 독일 통일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국민 의회가 개최되었고, 1867년북독일 연방이 결성되어 독일 통일의 기틀을 닦게 된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이 전개된다. 결국 1870년이탈리아의 통일이, 1871년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반면,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는 민족주의의 대두로 인해 위기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는 1867년헝가리와 대타협을 하여 이중 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만들게 된다.[10]
그리고 사회주의가 대두된 것도 이 시기이다. 당시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과 엄청난 빈부격차는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되는데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었다. 특히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사상을 총집대성하여 자본론을 집필하고, 공산당 선언을 만듦으로써 사회주의 사상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 각 국은 사회주의 사상가와 단체에 대해 엄청난 탄압을 가했으며,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11]
마지막으로, 이 시기는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기이기도 했으며, 일본이 근대화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 미국이 조용히 힘을 키워나간 시기이기도 했다.

3.3. 기술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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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건설된 런던수정궁
이 시기에 엄청난 양의 혁신적인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과학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진보적 사상에 많은 이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책없는 낙관주의라고 탓하기도 뭐한게, '''수세식 화장실부터 전화, 무선통신, 철도와 자가용, 여객선,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의 초기형태가 이 시대에 만들어져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전쟁을 보고 자란 노인들이 자기 손자가 주말에 기차타고 바캉스를 가는 걸 보고 있으면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쥘 베른해저 2만리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소설이 바로 당시의 낙관주의를 반영한 좋은 예이다.

4. 어두운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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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극소수의 제국주의 열강들에게만 화려했던 시절이고 그들 휘하에 식민지배를 당했던 대다수의 피지배 약소국의 민중들은 전근대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노동계 역시 하루에 십수시간에 달하는 노동과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했음에도 주어지는 돈은 푼돈에 불과했고 이는 사회주의 운동의 원인이 되기도 하여 러시아 등지에서 반정부 혁명 등으로 나타난다.
식민지들은 서구 열강에게 자원을 강탈당하고 대신 종주국의 상품을 떠맡는 신세가 되었다.[12]한때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어 가족들을 부양하던 농부들은 서구 자본가나 매국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이 되거나 떠돌아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술과 아편의 제조 및 판매를 독점했듯이 돈이 되는 상품들은 서구 열강이 독점하는 사례 역시 있었다.[13]
식민지의 문화와 관습, 사상은 야만으로 묘사되었고 식민지인들은 외양이나 협력 여부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졌다. 당연히 미개하고 열등한 인종이 되는 이들은 서구 열강의 지배에 저항한 민족들이었다. 영국 인도청이 인도 내 민족들의 사진집을 발간한 적이 있는데 영국인들은 이 책에서 세포이 항쟁에 가담했던 민족들은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야만인이라 묘사한 반면 동인도회사에 호의적이고 세포이 항쟁에 가담하지 않은 민족들은 그나마 문명화된 민족으로 묘사하였다고 한다.[14] 이러한 유럽인들의 시각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파생된 사회진화론이 보편적인 기저 사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식민지들이 독립할 수 있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기존 식민제국들의 힘이 어느 정도 빠진 뒤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시절 상전이었던 유럽 국가들의 경제 문화적 영향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벨 에포크 시대 식민지에 드리운 어둠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15]
유럽 내에서도 노동자들에겐 매우 힘들었던 시기이며[16] 이 때문에 곳곳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발생하였다. 공산당 선언을 쓴 칼 마르크스 또한 이 당시 사람이다.
물론 이러한 가시적인 사회운동은 보통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당하곤 했다.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19세기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힘들기는 매한가지.

5. 이후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로 만들어진 최대, 최고급 여객선이 빙산에 충돌해 허무하게 침몰하여 탑승 인원의 2/3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벨 에포크의 분위기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2년만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뒤따른 세계 대공황제2차 세계 대전, 냉전 등으로 유럽은 완전히 박살난다. 사실 벨 에포크 시대가 지나간 이후 20세기에는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세계 대공황,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세계구급 재앙과 혼란이 한 번도 아니고 잇따라 터지면서 그 이전의 19세기 중반~후반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로 추억하는 경향이 있다.
제국주의는 한계에 다다르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쳐 몰락했으며, 그 뒤에 전성기를 맞이한 건 미국이었다. 이후 유럽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냉전을 거치며 세계 패권을 미국, 소련에게 내주고 완만한 정체기로 접어든 상태이다.

6. 타 지역의 유사 시기



6.1. 미국


유럽과 달리 미국은 전성기 시절이 약간 차이가 난다. 소위 말하는 광란의 20년대, 혹은 재즈 에이지에 해당하는데, 1918년 1차대전 종전 이후부터 1929년 세계 대공황이 터질 때까지를 지칭한다. 금주법으로 인해 알 카포네를 비롯한 마피아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해당 시대를 모티브로 한 SF, 판타지 작품들을 벨 에포크풍이 강한 스팀펑크와 구별하여 디젤펑크로 다루기도 한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부터 베트남 전쟁 전까지 소위 '황금시대'라는 번영기가 있는데, 상대쪽에선 소련이 있어 2차대전 이후 이 둘이 한창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던 냉전의 절정기이기도 하다. 이 당시엔 원자력이 전쟁을 끝낸 무기이자 첨단기술임과 동시에 세계를 끝장낼 공포이기도 해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고, 이를 반영한 아톰펑크라는 하위 파생장르도 나왔다.

6.2. 영국


영국에서는 벨 에포크보다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 등 군주의 재위기간으로 시대구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가끔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시대의 부분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쓰이는 단어가 좀 다를 뿐이지 사실상 동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6.3. 포르투갈


포르투갈에서는 이 시대의 대부분을 폰티스모(Fontismo)라 일컫는다.

6.4. 일본의 다이쇼 로망


일본의 경우는 다이쇼 시대가 벨 에포크와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르고 하이칼라(ハイカラ)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서양 문물의 전파 등으로 일본과 서구 문물이 뒤섞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대로 묘사된다.
다이쇼 시기의 풍요는 1차 세계대전전간기의 호황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산업혁명을 진행한 시기는 에도 막부 말기나 메이지 유신 때가 아니라, 청일전쟁으로 막대한 배상금 수입을 확정지을 때를 전후해서였다. 그만큼 세계 경제에 편입되는 시기도 늦었고, 그때 이후로 러일전쟁 부채를 갚아나가며 세계대공황 이전까지 국내외적으로 경제와 인구가 성장할 여지가 충분히 많았다.[17] 그리고 그러면서 전쟁도 쉬고 덴노가 바뀐 김에 정치사회적으로도 한숨 돌렸을 때가 다이쇼때. 일본 초기의 현실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
물론 어디까지나 이런 자유로운 사조와 별개로 식민지에 대한 지배력이나 처우는 실질적인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인도도 후진적인 자민다르를 기반으로 한 토지제도를 오히려 강화시켰듯이, 조선도 경찰 인력과 조선주둔군을 늘리고, 치안유지법 제정과 조선총독부 훈령 강화를 통해 조선인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일본 창작물에서는 이 시기를 추억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른바 다이쇼 로망이다. 2010년대 말 들어 한국 쪽에서 다이쇼 로망 묘사에 반발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7. 기타


스팀펑크 작품은 대개 벨 에포크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특유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인 경우가 많다.[18]

8. 드라마 청춘시대의 배경이 되는 집


2016년 JTBC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주인공들인 하메들이 사는 집으로 연남동에 위치. 유래는 당연히 위에서 소개한 벨 에포크이다. 드라마 제목과 잘 맞아 떨어지는 명칭이기도 하다.
실제론 겉모습만 빌려오고 내부는 세트장 촬영. 실 용도는 한방 카페(...)와 한의원이다.

[1] 혹은 관사를 붙여서 La Belle Époque라고 한다.[2] 물론 이 시기에도 전쟁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 전쟁은 유럽의 변방인 발칸반도에서 벌어지거나 미서전쟁이나 러일전쟁처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 국가와 다른 대륙국가가 맞붙은 사례가 있었을 뿐 유럽 대륙이 주 전장인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그나마도 1-2년안에 전쟁이 마무리 되었다.[3] 대표적으로 옥스포드 영어사전과 함께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권위있는 영어사전인 웹스터 영어사전에서 팍스 브리타니카를 1815년에서 1914년 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출처[4] 그의 주도하에 덴마크와의 전쟁, 보오전쟁, 보불전쟁이 치뤄졌다.[5] 이러한 통찰은 매우 옳았다. 이미 이 시기에 식민지 확보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들이는 비용이 더 큰 상태였기 때문이다(식민주의/영향 참고).[6] 특히 비스마르크가 중점적으로 신경을 썼던 것이 영국, 러시아와의 관계였다. 그는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가 독일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영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신경써서 프랑스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만약 두 나라와 동시에 적대국이 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영국과 러시아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손을 잡을 것이고, 이는 육상으로는 프랑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해상으로는 영국과 근접해 있었던 당시 독일의 특성상 양면전선이 형성되어 독일에게 매우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었다.[7] 전장은 동유럽에 위치한 크림반도였지만, 서유럽 국가인 영국, 프랑스, 샤르데냐 왕국이 참전했다.[8]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영유권을 놓고 프로이센과 덴마크가 전쟁을 벌였고, 이때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를 전쟁에 끌여들였다. 결국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이 덴마크에게 승리를 거둬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프로이센의 영토가 되었고, 지금도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독일의 영토로 되어있다.[9] 이 과정에서 유럽 각국의 지원을 받았다.[10]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으며,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구성원 간의 긴장과 발칸반도 위기가 겹쳐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되고 여기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전하여 멸망하게 된다.[11] 대표적인 사례가 비스마르크가 주도하여 실시한 사회보장제도이다.[12]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1884년 베를린 회담 이후 라이베리아와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분할되었다.[13] 송정남,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 개발 - 1885년에서 1930년까지 -〉, 《부산사학》 제38집, 2000. 사실 이 사례는 더 심각한게 경제 자립을 위해 베트남인들에게 술과 마약을 강매했다.[14] 이광수, 〈‘야만인 만들기’와 ‘문명인 따라 하기’〉, 《역사와 세계》 제49집, 2016[15] 오늘날까지 식민지 출신 국가들 중에서 지배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라는 한국이나 중국 같은 일부 예외들 밖에 없다.[16] 그래도 '''그나마''' 벨 에포크 이전 시기보다는 또 상향되었고 발전한 시기기도 하다.[17] 그리고 조선은 처음부터 그 인구를 부양할 쌀 산지로 점 찍은 상태였다. 나중에 가면 조선 전체의 인프라를 일본 수준으로 고치며 일본인을 조선으로 식민하고 조선인을 만주로 식민하려는 계획으로 바뀌지만.[18] 20세기 말의 세기말 감성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펑크와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