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 더글러스
1. 개요
미국의 원로배우이자 성우, 영화 감독, 프로듀서.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의 아버지이다.
장수한 인물로, 무려 '''103세'''까지 장수하다 사망하였다.
2. 상세
제정 러시아(현 벨로루시 고멜) 유대계 미국인 이민자인 다니엘로비치 부부의 아들로, "이수르 다니엘로비치"라는 이름을 가지고 미국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먼저 이민을 간 형제가 신원 보증인이 되어 부부는 미국으로 이주를 했다. 그 형제가 사용하고 있던 "뎀스키"라는 성을 본받아 사용했는데, 커크도 "이지 뎀스키"라는 이름으로 자랐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에 들어가면서 현재의 이름인 커크 더글러스로 개명한다.
빈민가에 살면서 생계를 위해, 어린 시절 신문 배달부터 노점상, 정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학업에 힘썼다. 학비 대출을 이용하여 세인트 로렌스 대학교로 진학하여, 학비를 벌기 위해 정원사, 경비원 등으로 일을 했다. 그는 뛰어난 레슬링 선수였으며, 사육제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여름 동안 레슬링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꿈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라고 새삼 인식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츠에 입학하여, 그 재능을 꽃피워 특별 장학생이 되었다. 이때 클래스메이트였던 로렌 바콜은 이후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1년 징병되어, 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에 종군했다가, 1944년에 부상 때문에 제대했다.
1941년 졸업 공연으로 진행된 《봄이여 다시》(Spring Again)에서 노래하는 메신저 소년을 연기하며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제대 후 뉴욕에서 라디오를 중심으로 하는 일에 종사하고 무대에도 출연했지만, 로렌 바콜의 추천으로 1946년 영화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The Strange Love of Martha Ivers)로 영화에 데뷔했다.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에서 안드레이 역으로 출연했고, 더글러스는 무대를 할리우드로 옮겨 활약한다. 이후 강한 이미지를 남긴 여덟 번째 출연작 《챔피언》 이후로, 처음에는 내성적인 성격 배우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전사》는 아카데미상 편집상과 골든글로브 촬영상을 수상했고, 커크 본인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그리고 서부 영화 《죽음의 모래》(Along the Great Divide)'에 출연해 일약 스타덤에 등극했다.
그 후 1955년,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독립 프로덕션 '브라이나 컴퍼니'를 세웠고, 1960년, 자신이 주연하고, 제작, 총지휘를 맡아 제작비 1,200만 달러의 대작 《스파르타쿠스》를 만들었다. 이때 감독을 맡았던 스탠리 큐브릭을 두고 "스탠리 큐브릭은 능력있는 쓰레기(Stanley Kubrick is a talented Shit)"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진지한 역할이 어울리는 이미지 외에, 《해저 2만리》에서 보여준 가벼운 연기와 창세기의 TV 프로그램 《잭 베니 프로그램》으로 뮤지컬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1973년, 서부 영화 《내일없는 추격》에서 메가폰 역으로 주연을 맡았지만, 서부극 자체가 쇠퇴기에 있었기 때문에 큰 평가를 받지 못했다. 또한 같은 해 TV 뮤지컬 판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2] 에 주연을 했다.
1943년 11월 2일,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츠에서 만난 동창 여배우 다이애나 딜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장남은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 차남은 영화 《코카인 블루스》 등의 프로듀서 조얼 더글러스이다. 다이애나는 1951년 이혼 후 배우 활동을 계속하였고, 《벤 케이시》와 《플리퍼》 등의 TV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다.
1954년 5월 29일, 커크는 앤 바이든스와 결혼하여 다시 두 아들을 낳았다. 영화 프로듀서 피터 빈센트 더글러스와, TV 드라마 시리즈로 활약한 배우 에릭 더글러스를 낳았다. 하지만 에릭은 약물 과량 섭취에 의한 입원이나 비행기 내에서 분쟁에 의한 체포를 반복하다, 2004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1991년, 헬기 사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한동안 냉담했었던 유대교 신앙이 다시 깊어지게 되었다. 1996년, 뇌졸중을 앓으면서 언어 장애가 남아 있었지만, 2006년에도 종종 파티에 참석하여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2월, 가끔 아들 마이클 더글라스랑 같이 부자들끼리 외식을 한다. 참고로 이때 아들의 나이는 '''70세.'''
2011년, 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온 바 있다.
2014년 12월 2일, 누군가가 사망보고서를 실수로 낸 적이 있었다.
2020년 2월 6일 (현지날짜 2월 5일), 10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3. 논란
3.1. 성범죄 주장
제임스 딘과 이유 없는 반항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배우 나탈리 우드가 아역배우이던 16세 때에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사람이 커크 더글러스'''이다. 나탈리 우드가 성폭행 당했다는 것과 그 상대가 유력 배우라는 것만 알려져 있고, 상대 이름은 불명이었는데, 익명의 업계관계자[3] 가 이 사람이 커크 더글러스라고 폭로한 것. 그리고 유족들은 '''해당 범인이 죽으면''' 그 때 공개하겠다고 공식적 발표를 미루는 중이다.일요신문
2020년 2월 6일 10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나탈리 우드와 연관된 사건의 발표가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는 중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현지에서는 단역 배우였던 진 스팽글러 실종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스팽글러 실종 당시 지갑에서 커크라는 이름과 메모가 나왔기 때문. 메모 내용은 "커크: 더 이상 기다릴수 없다. 스콧 박사를 만나러 가야 되겠다. 어머니가 없을때 하는게 가장 잘 될 것이다 Can't wait any longer, Going to see Dr. Scott. It will work best this way while mother is away."였다. 스팽글러는 커크 더글라스와 함께 Young Man with a Horn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출처
4. 대표작
1세기를 사신 분인데 출연작이 당연히 이 정도는 아니다. 굵직한 배역 위주로 나열된 것이며, 나머지는 링크 참조할 것. #
- OK 목장의 결투 - 독 홀리데이
- 우정의 건맨[4] - 해리 H. 홀랜드
- 영광의 길 - Col. Dax
- 스파르타쿠스 - 스파타커스
- 서부로 가는 길 - 윌리엄 J. 태들락
- 최후의 카운트다운 - 매튜 옐란드
- 더글라스 패밀리[5] - 미첼 그롬버그
- 해저 2만리#s-6 - 네드 랜드
- 율리시즈(영화) - 오디세우스
5. 기타
- 스탠 리처럼 성우도 겸했는데 심슨 가족에서 시즌 7 에피소드 18에 거지 할아버지로 나왔다. 배역 이름은 체스터 제인 램윅 (Chester J. Lampwick)이다. 1996년 3월 17일에 이 에피소드가 나왔다. 이때 커크 더글라스의 나이는 딱 80세로 단역으로 나오는 준 포레이(1917~2017)보다 1살 많다. 비록 이순재처럼 딱 1번 했지만, 전설의 배우 답게 좋은연기 보여주었다. 각국의 원로인 일본의 노자와 마사코하고는 20살이나 더 많아 그노자와 마사코한테 삼촌 나이가 된다.
- 2016년 12월 9일 100세 생일을 맞았다. 전 세계 최고령 주조연급으로 활약한 주요 배우들 가운데 미국의 예술가인 루디 톰슨(1910년생)[7] , 르니 드뇌브(1911년생)[8] , 노먼 로이드(1914년생)[9] ,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1916년 7월생)[10] , 마샤 헌트(1917년생) 다음으로 100세 이상의 고령자였으며, 인도 최고령 배우 딜립 쿠마르, 영국 왕실의 최연장자 부부로 불리우는 필립 마운트배튼-엘리자베스 2세, 최장수 미국 대통령인 지미 카터, 중화인민공화국 최고령 주석인 장쩌민, 국내 인물로는 최고령 연예인 송해, 현재 활동중인 최고령 정치인 김수한, 신영균, 정재철보다 나이가 많았다. 참고로 역사적 인물 중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윤동주보다 나이가 많다.
- 유산은 재단에 기부하였다.#
[1] 37679일.[2] 작곡 : 라이오넬 바트[3] 이 사람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공식적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4] 영어 제목은 DRAW![5] 아들과 전 부인 다이에나 딜과 같이 가족 전원 출연.[6] 같이 언급되는 배우가 리처드 위드마크인데 이 사람도 1914년에 태어나 2008년에 사망. 94살까지 장수했다. 정작 시인 김수영은 196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한창 활동할 나이일 48세로 사망했다.[7]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 출신 직업 애니메이터 2020년 7월 22일 110세 생일을 맞이했다.[8] 프랑스의 배우이자 카트린 드뇌브의 어머니.[9]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교장선생님으로 나온 배우.[10] 2020년 7월 26일에 10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11] 이 중 이시모리 탓코우와 이완호는 배우 본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