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축구선수)

 

'''지지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FIFA 월드컵 골든볼 1958'''



'''베스트팀'''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1958'''
'''1962'''

'''브라질의 前 축구감독'''
''' 이름 '''
'''지지'''
'''Didi'''
''' 본명 '''
바우지르 페레이라
Waldyr Pereira
''' 출생 '''
1928년 10월 8일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사망 '''
2001년 5월 12일 (향년 72세)
''' 국적 '''
브라질
''' 신체 '''
174cm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아메리카누 FC (1946)
CAL/바리리 (1946~1948)
마두레이라 EC (1948~1949)
'''플루미넨시 FC (1949~1956)'''
보타포구 FR (1957~1959)
레알 마드리드 CF (1959~1960)
보타포구 FR (1960~1962)
스포르팅 크리스탈 (1963)
상파울루 FC (1964)
보타포구 FR (1964~1965)
CD 베라크루스 (1965~1966)
상파울루 FC (1966)

''' 감독 '''
스포르팅 크리스탈 (1962~1963)
스포르팅 크리스탈 (1967~1968)
페루 대표팀 (1969~1970)
CA 리버 플레이트 (1971)
페네르바흐체 SK (1972~1975)
플루미넨시 FC (1975)
크루제이루 EC (1977)
알 아흘리 (1978~1981)
보타포구 FR (1981)
알리안사 리마 (1986)
''' 국가대표 '''
62경기 20골 (브라질 / 1952~1962)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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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축구선수 출신 감독. 1986년에 알리안사 리마 감독을 맡았다.
1958년 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대활약을 하며 브라질의 첫 번째 월드컵 우승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다음 월드컵 역시 주전으로 활약하며 쥘리메컵을 두 번이나 들어올린 선수이다.
클럽에서는 보타포구 FR에서 가린샤, 니우통 산투스 등의 동료들과 함께 활약했고 역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지지는 14세 때 심한 세균 감염으로 다리를 절단할 뻔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잘 회복되었고 아메리카누 FC, CAL/바리리, 마두레이라 EC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지지는 플루미넨시 FC에 입단한다. 플루미넨시 FC는 주립 리그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브라질 세리에 A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팀이었지만, 지지가 합류했을 때에는 리그 우승을 다투던 팀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지의 맹활약으로 1951년 리우 주립 리그를 제페, 5년만에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대부분의 브라질 팀을 비롯해 CA 페냐롤, 그리고 유럽 팀들이 참가한 현재의 FIFA 클럽 월드컵같은 대회인 코파 리우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1957년 보타포구 FR로 이적한 지지는 가린샤, 니우통 산투스와 함께 또 주립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맹활약을 이어나갔고, 결정적으로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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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와 함께'''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 CF에 합류한 지지는 팀의 중심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와 공존해야 했는데 이들과 사이가 나빴다. 유러피언컵에서도 부진했고, 리그에선 19경기 6골에 그쳤다.[2] 결국 유러피언컵 정상에 2번 오른 것에 만족하고 보타포구 FR로 복귀했다. 그 후 팀의 주립 리그 2연패,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의 강팀들이 붙는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이후 1966년에 상파울루 FC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image]
'''셀레상의 브레인'''
지지는 특히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1962 FIFA 월드컵 칠레등 3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이 중 뒤의 2의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르며 최고의 국대 커리어를 쌓았다.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펠레, 가린샤, 니우통 산투스, 마리우 자갈루 등 슈퍼스타들이 모인 브라질은 오스트리아, 소련을 격파하고 8강에 올랐고 웨일스펠레의 골로 잡아내며 4강에 올랐다. 이때까지 지지는 바바, 펠레, 마리우 자갈루 등의 공격진에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는 게임메이커로서 공격을 지휘했다. 4강전 프랑스와의 경기는 난타전이었고, 지지가 역전골을 기록, 펠레해트트릭까지 더해져 2:5 대승을 거두고 결승전에 진출한다. 그리고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홀름이 이끄는 개최국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 2:5 대승을 거두며, 마침내 우승을 차지한다.
[image]
'''줄리메컵을 들고있는 지지와 펠레'''
지지는 플레이 메이커로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이후 골든 볼이 만들어졌을 때 그 분을 제치고, 해당 대회의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 우승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미유럽에서 열린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대회이다. 하지만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1953년, 1957년, 1959년 3연준...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조별리그 1차전 체코슬로바키아전에서 펠레가 부상당한 이후부터 생긴 공백을 아마리우두, 가린샤와 함께 훌륭하게 메웠다. 지지는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맡았고 지투 역시 부담해야 할 부분이 넓어졌다. 조별리그 잉글랜드전에서는 당시 만 21세의 초짜였던 바비 무어와 그의 센터백 파트너 론 플라워스에게 축구 레슨을 제대로 시켜주면서 경기 내내 가지고 놀았다. 브라질은 순조롭게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요제프 마소푸스트가 이끄는 체코슬로바키아를 3:1로 격파하고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한다.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커리어를 정리하자면 월드컵에서의 우승 2회와 골든볼 수상,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3회로 최상급이라고 볼 수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당시의 여느 브라질 선수와 다르지 않게 체구가 작고 민첩한 선수이다. 이를 페인트 동작에 잘 활용했으며, 지지의 경우 엄청난 패스 능력과 창의적인 드리블 스킬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긴 기간동안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유명세를 떨쳤다 . 특히 공중에서 공을 발로 다루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으며, 빠르게 오는 공을 한 번의 감각적인 터치로 연결해 사방을 마킹하던 수비수들을 속이곤 했다.
일명 '사포' 라고 불리는 두 발로 공을 잡아 머리 위로 넘기는 볼 컨트롤 기술을 당시 선수들은 '디디 플레이' 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늘 날 많은 선수들이 즐겨 구사하는 '뚝 떨어지는 프리킥(Folha Seca)'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1] 중앙 미드필더[2] 그런데 그의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임을 감안하면 저 골기록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골기록들이 평생 저 수준이었으니 당시에는 브라질과 유럽의 실력차가 크지 않았다는 좋은 반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