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

 

1. 힌두교의 여신
2.1. 끔찍함
2.2. 원인
2.3. 논쟁
2.3.1. 존치 측의 주장과 반박
2.4. 타국의 유사 사례
2.5. 관련 문서
3. 작곡가 에릭 사티
4. 영화 매트릭스의 태양 관리자
5. 불교의 수행 방법 사티


1. 힌두교의 여신


सती
시바의 첫 부인이자 다크샤 신의 딸.
남편 시바와 불화가 있었던 다크샤가 시바를 모욕하자 분노한 나머지 희생제의 불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에 크게 분노한 시바는 세상을 한 번 멸망시킬 뻔했다가 상심해 고행에 들어갔고, 한편 사티는 히마바트의 딸 파르바티로 환생한다.
아래 항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아래 악습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2. 인도악습


Sati
사티는 남편이 죽어서 시체를 화장할 때 아내가 불 속에 뛰어들어 남편의 시체와 함께 불타는 풍습이다.
이 악습은 위의 여신의 이름을 땄다는 이야기와 다르게 또 다른 설이 있다. 라마야나의 주인공인 라마(비슈누의 화신)이 자신의 아내 시타가 악마의 왕에게 끌려가 다시 돌아왔으나, 그곳에서 알지도 못하는 자신의 아들들이 와서 자신을 라마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이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인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자신이 다른 이의 아이를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해 순결을 증명할 길이 없는 시타가 불 속에 들어가 자신의 순결을 증명했다는 설이다.

2.1. 끔찍함


심각한 가부장제 사회인 인도에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은 여성들에게 큰 재앙이나 다름 없다. 과부는 친척들로부터 가문의 남성들 중 한 명과 동침할 것을 강요당했다. 왜냐하면 남편이 사망할 경우 그 재산이 전부 아내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는 남편을 잡아먹었다면서 낙인이 찍혀 일평생을 집안에서만 살아야 한다. 힌두교 관습에 따라 과부들은 재혼도 못하며, 다른 남성을 유혹해서는 안 된다면서 머리카락을 전부 깎아서 대머리인 채로 있어야 하고, 장신구를 걸치는 것과 하얀 옷 외에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 것 또한 금지한다.
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감금과 멸시를 당하며 사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사티는 매우 끔찍한 풍습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불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반항이 심해서 환각제를 먹인 채 기둥에 묶는다고 할 정도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도 이걸 반영했는지 아우다 부인은 아편에 취해있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화장이 밀폐된 공간이 아닌 바깥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시신이 불타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과부는 길면 10시간이 넘도록 숨이 끊어질 때까지 불태워지게 된다. 그녀들은 처음에 온몸이 불타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지만 전신이 3도 화상으로 뒤덮이고 신경이 죽어있을 때쯤이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며, 그렇게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서서히 지켜보다가 생을 마감한다. 테러리스트가 행하는 처형이나 독재국가의 정치범 처형 정도를 제외하면, 사우디아라비아중국처럼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적은 국가에서조차 사형수를 최대한 고통 없이 죽인다는 점에서 몹시 잔혹하다고 할 수 있다.

2.2. 원인


친척들이 자신들의 가족인데도 과부가 된 여자에게 사티를 종용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다. 사티를 행한 여자는 여신으로 승격돼서 사원이 지어지고 친척들은 막대한 기부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친정과 시가(媤家) 양쪽에 엄청난 부가 보장되니 그들이 합심해서 집안에 과부가 생기면 곧바로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가족을 산 채로 불태우는 인면수심의 행태가 나타난다.
또 사티를 주관하는 브라만들도 결탁되어 있었다. 과부에게 더욱 화려하고 비싼 장신구를 착용하고 순사할 것을 권장했는데, 사티가 끝난 후 재 속에서 그 장신구를 챙길 수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부패도 같이 나타났다.

2.3. 논쟁


이렇듯 끔찍한 악습이기 때문에 몇 번을 금해지고 행해지기를 반복하였다.
16세기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금하였으나 그가 사망한 후 다시 행해졌다. 1829년 동인도 회사의 총독 벤틱 경이 금지했으나, 인도의 도시 중 하나인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 성 벽면에는 1843년 마하라자 만 싱 왕의 장례식에 그의 15명의 아내들이 사티로 죽기 전 남긴 손바닥 도장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로 사티는 만연했다.
정부 또한 힌두교도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2,00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사티의 폐지에 뜸 들이다가 선교사들이 굽히지 않고 열성적으로 폐지 운동을 한 끝에 비로소 1829년 법으로 사티를 금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악질적인 사티 풍습이 폐지된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몇몇 힌두교 단체에서는 사티 제도의 폐지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시골에서는 사티 풍습으로 죄 없는 과부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지고 있다.
영국BBC 보도에 따르면 이런 일도 있었다. 2006년 8월 22일 인도의 마드야 프라데시주의 툴시푸르 마을에서 열린 프렘 나라얀이라는 남성의 장례식에서 사망자의 아내인 자나크리니라는 40대 여성이 불에 뛰어 들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건을 끔찍하게 여기기는커녕 사티를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죽은 여자가 불에 뛰어든 현장에서 종교 의식을 행하고, 과부가 불에 탄 후 남은 재를 만져보기 위해 몰려들면서 때 아닌 관광 특수까지 누렸다는 것이다.

2.3.1. 존치 측의 주장과 반박


힌두교에서는 사티가 과부들이 자진해서 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위와 같이 그렇지 않고 강제적인 경우가 훨씬 많다. 기독교 선교사 윌리엄 캐리라는 사람이 1802년 한 해 동안 조사한 결과 인도의 캘커타 지방 주위 50km 반경 안으로 438명의 과부가 사티 풍습에 의해 희생되었다.[1] 그의 조사 자료는 훗날 사티 제도 폐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몇몇 극단적인 지도자들은 "사티가 없어지면 여자들이 남편의 생명을 취하려 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 남편을 죽여서 재산을 가로채는 꽃뱀이 될 거란 주장이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세계 다른 곳에서도 생명보험을 노리고 살해하는 등의 보험사기가 일어나긴 해도, 정말로 돈을 목적으로 살인이 일어난다면 정말 그러한지 조사해서 처벌하면 될 일이지, 이러한 악습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인도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에서는 사티 같은 풍습 없이도 저런 주장 따위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꽃뱀의 비율이 적다. 오히려 현 인도의 남녀차별의 실태를 생각해보면 사티가 없어진들 아내가 과연 남편을 살해할 엄두를 낼 수 있을까? 위에서도 보듯 남편이 그냥 죽어도 아내 탓으로 몰면서 마구 심한 대우를 하는 게 현실인데, 사티 하나 없어진다고 저런 주장을 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 뿐이다.
이는 전형적으로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뒤집어서 생각해서 이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의 아내가 죽었을 때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겠나?"라고 물었을 때 실제로 그렇게 대답하고 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기는 하기 싫은 주제에 남에게는 강요하는 행위는 악행에 지나지 않는다. 위에 나온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과부를 희생시켜 자기네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걸 합리화하기 위해 여자들이 남편의 생명을 취하려 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피해자는 힘 없는 과부고 가해자는 힘 있는 친척, 브라만 등등이니 당연히 제대로 된 개선이 되지 않을 수밖에.
유럽에서도 이런 끔찍한 풍습을 잘 알고 있었는지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인도 여행의 한 파트에서 등장한다. 그 과정이 매우 상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강제적'''임을 아우다 부인의 입과 포그 일행의 생각으로 나타내었다. 그리고 육군 준장 크로마티의 증언으로 사티를 당하지 않을 시 어떻게 될 지도 상당히 상세히 나와 있다. 오죽했으면 그 기계 같던 포그가 자신의 여행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아우다 부인을 구하려고 나섰을까.

2.4. 타국의 유사 사례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었다. 나라에서 여자들의 정절을 강조하기 위해 수절을 잘하거나 죽은 남편을 따라 자결한 부인들을 기리는 열녀문을 세워주는 등의 사업을 하자, 과부를 희생해서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시가와 친가의 사람들이 과부에게 자살을 직접적으로 강요하거나 혹은 직접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하는 사례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열녀문의 의미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켜냈다는 것이지만, 그 후로는 열녀문을 세우면서 조정에서 열녀문을 세워주는 조건으로 열녀로 뽑힌 이들의 존경과 가문의 영광이 직결되는 것도 있지만 열녀를 배출한 마을은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경우가 많아, 가문이나 마을에서 열녀로 뽑히기 위해서 일부러 자살로 위장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등의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사티처럼 애당초 나라에서 자살을 권장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굳이 폐단이 아니라도 악질이었다.
중국의 어떤 지방에서는 과부들이 단체로 자살했을 때 그녀들을 묻어주는데, 이를 축제처럼 진행하기도 하였다. 동아시아 교과서에서도 수록된 내용.
참파동남아시아 국가에도 전파된 적이 있다. 이 풍습과 관련된 이야기로 13세기에 베트남 대월국 황제 영종공주를 참파 왕에게 시집 보냈는데, 참파 왕이 죽자 공주가 사티를 피해 베트남으로 도망가고, 이로 인해 베트남과 참파가 전쟁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참고 1, 참고 2.

2.5. 관련 문서


  • 순장
  • 순사
  • 힌두교
  • 80일간의 세계일주 - 쥘 베른의 소설.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 일행이 인도 여행을 하던 중에 사티로 죽을 뻔한 아우다라는 여자를[2] 구출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가 포그는 인간미가, 파스파르투는 재능이 돋보이는 대목인데, 포그는 자신의 여행 일정에 시간이 남는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구해주자고 했는데 같이 가고 있던 크로마티 준장은 "당신도 인간적인 면이 있군요."라고 할 정도였고, 파스파르투는 왕의 시신으로 분장해서 아우다 부인을 구출해낸다. 크로마티 준장은 인도에서 오래 지냈기에 사티라는 풍습에 대해 알고 있었다.
  • 주방에서 타죽은 부인
  • 인신공양
  • 페미사이드

3. 작곡가 에릭 사티


Éric Satie, (1866~1926)
프랑스의 작곡가로, 대중에게는 '짐노페디'로 유명하다. '벡사시옹'이라는 골 때리는 작곡으로 다시 한 번 유명해졌다. 자세한 내용은 에릭 알프레드 레슬리 사티 참고.

4. 영화 매트릭스의 태양 관리자


오라클 관련 설정에서 존재하다가 매트릭스 3 레볼루션에서 처음 실제 조연으로 잠시 출연하는 배역.
외모는 인도계 유색인 여자아이이다. 매트릭스 시스템의 태양을 관리하는 프로세스로서 존재하다가 역할과 함께 사라져 리콜될 뻔하지만, 메르빈지언에 의해 존재가 유지되는 것으로 설정된다. 아버지 라마 칸드라, 어머니 카멜라와 함께 오라클의 존재 위기 사건과 엮여 있는 존재로 나온다.

5. 불교의 수행 방법 사티



[1] 윌리엄 캐리는 영국 출신 선교사로, 구두 수선공이었다가 인도에서 대학 교수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기독교에서는 근대 선교사역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 사람들이 윌리엄 캐리, 조쉬아 마쉬먼, 윌리엄 워드를 일컬어 "세람포르의 삼총사"라 부를 정도로 유명했다 한다.[2] 분델칸트 자치령의 왕의 아내였는데, 사실 강제적인 결혼이었는 데다가 결혼 후 석 달만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