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은정
1. 소개
아이돌 그룹 클레오의 前 멤버이자 원년 멤버.
1990년대 말의 1세대 걸그룹 막내 라인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인기를 자랑했고, 클레오가 해체된 지 오래 되었음에도 꾸준한 활동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최고의 인기 멤버였다.
1집부터 4집까지 팀의 막내이자 센터, 에이스로 맹활약했는데, 데뷔 이후로 선배인 S.E.S.와 핑클, 디바와 베이비복스 같은 1군 내지 1.5군의 거대 걸그룹 사이에서 클레오를 2군 중 대규모의 걸그룹으로 성장시킨 일등 공신이다. 워낙 독보적인 활약을 했던지라 2, 3세대 아이돌들 중에서 소녀가장으로 꼽히는 여러 걸그룹 멤버들의 까마득한 대선배이기도 하다.
원래는 핑클로 데뷔 준비 중이었다가 핑클 데뷔 한달 전에 개인적인 사정[3][4] 중도 하차하게 되었는데, 이때 '''후임으로 들어간 사람이 바로 이효리다.''' 때문에 당시 비화를 알고 있는 팬들은 채은정이 하차하지 않고 정식으로 데뷔했다면, 클레오에서 고생할 일 없이 핑클의 막내로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보다 순탄한 활동을 했을 것이라며 매우 안타까워한다. 게다가 클레오가 데뷔한 1999년은 핑클의 리즈 시절이었다.[5][6]*
2. 클레오 시절
1999년 1집으로 데뷔할 당시 고2(만 17세)로 귀엽고 청순한 외모로 남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여자 팬들의 비중도 상당히 높았다. 특히 무대에서는 흰 머리띠를 하고 나온 적이 많은데, 유난히 눈에 띄는 데다 특유의 비주얼이 제대로 시너지를 일으켜 활동 당시에 팀 내에서도 가장 청순한 이미지를 제대로 어필했다.[7] 당대 아이돌 중에서도 팀 내 비중이 유난히 컸는데, 실제 리더는 김하나였지만 소속사의 푸쉬를 집중적으로 받아서 1집 때는 아예 대놓고 채은정 원톱 체제로 밀어 주었다.
춤 실력도 팀 내 최고인 데다 작사 능력은 물론 비주얼 에이스에 힙합, 발라드, 댄스, 락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보이스까지 갖췄기 때문에, 다른 걸그룹의 에이스들과 견줘도 전혀 모자라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8] 특히 1집 타이틀곡인 '''Good time'''은 뮤직비디오부터 철저하게 채은정 중심으로 돌아가는 노래로, 상기한 것처럼 초창기의 청순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9]
그리고 1집 활동이 예상 이상의 큰 성공을 거둔 덕분에 2집을 준비할 수 있게 되면서 2군 걸그룹 중에서도 독보적인 팬덤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했던 멤버로 여초인 클레오 팬덤 내에서 남녀 팬의 비중이 거의 동등한 유일한 멤버였는데, 당연하지만 이때부터 탈퇴 전까지 클레오의 입덕 멤버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대에도 남아 있는 채은정 팬들의 80% 이상은 1999년 1집과 이듬해 2집 때 입덕한 골수 코어 팬들이다.
2집 때는 금발로 염색하면서 기존의 귀여운 이미지를 섹시하게 바꾸려는 시도가 보였지만, 세간의 반응은 여전히 '''귀엽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와는 별개로 1집보다는 훨씬 섹시해진 이미지를 어필하는데는 성공. 1집의 청순하고 예쁜 외모가 이 시기에 정점을 찍어 클레오 활동 역사상 최고의 비주얼로 회자될 정도로 급상승했다. 2집도 마찬가지로 집중 푸쉬를 받았는데, 타이틀곡인 '''Ready for love, Always in my heart, 모순'''에서도 센터를 차지했지만 리더인 김하나의 비중이 늘어나서 투톱 체제로 그룹이 운영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김하나와 자매가 아니냐'''는 질문이 나돌 정도로 둘의 이미지가 굉장히 비슷해졌다. 사실은 1집 때부터 둘이 너무 닮았다는 얘기가 있었고 2집 타이틀곡 모순 때부터 이게 너무 확실해지다 보니 발생한 대중들의 착각.[10]
어쨌든 2집의 대박 성공으로 그룹 생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다른 남자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 순위를 누렸고,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스캔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행인 점은 활동 당시에는 이렇다 할 구설수는 물론, 대형 기획사 소속의 다른 걸그룹들처럼 안티들한테 지독하게 시달리거나 한 적이 아예 없었고 그나마 소소하게 엮이는 사건조차도 큰 물의 없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3집 때도 무난히 인기를 유지해 나갔지만 이전과 달리 김하나가 원톱으로 나선 때라 인기가 약간 주춤한 편이었고, 이 때는 20대가 되기 전이라 이전보단 풋풋함이 사라졌다고 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래도 앨범 자체에서 비중은 높았고, 1, 2집 때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원숙함이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2001년 3집 활동이 2집 때보단 지지부진해서 복귀하는 데 2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
4집 활동은 2집 때의 전성기로 되돌아고자 하는 취지여서인지 이미지의 변신을 꾀하고자 기존의 긴 머리를 포기하고 은색 단발로 변신했는데, 이 컨셉이 꽤 먹혔는지 2집 때만큼이나 활동도 활발했고 이 시기에 예능 활동이 많이 늘어나면서 다시 한 번 인기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소속사의 '''누드 화보 촬영 강요'''라는 초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팀이 구설수에 휘말린 것도 모자라 그간 쌓여 왔던 팀 내외의 문제점으로 인해 팀을 탈퇴하게 되었다. 클레오 결성 이후 4년 동안 예능은 물론 무대에서도 채은정의 비중이 엄청났기 때문에 장난조로 '''채은정 그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는데, 그만큼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면서 팀의 인지도를 끌어올린 멤버라는 증거였다. 이는 '''현아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후배 포미닛과 비슷한 상황.[11]
그러나 거대 기획사 소속에다 엄청난 팬덤을 보유한 S.E.S.나 핑클, 베이비복스와 달리 클레오는 3군 중에서나 원톱이었지, 일단 지지 기반이 상당히 취약했다. 꽤 괜찮은 인기를 누렸고, 팬덤도 제법 큰 규모였기는 했으나 활동 기간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최고 인기 멤버인 채은정이 탈퇴하자마자 곧바로 그룹 활동은 물론 팬덤도 와해되어 버렸다.
결국 최후의 원년 멤버이자 리더인 김하나가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여 클레오를 다시 재편성했다. 그러나 채은정이 빠진 공백을 채우기엔 김하나는 물론 신 멤버의 역량이 모자란 수준이었고 추락해 버린 인지도와 팬덤의 와해,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에서 많이 밀렸기 때문에 금세 활동을 마무리했고, '''무기한 활동 중지''' 상태가 되었다. 결국 2006년에 팀 해체를 선언했다. 이때 영입된 마지막 멤버가 정예빈이란 예명으로 활동한 스포츠 아나운서 공서영이다.
3. 클레오 탈퇴 이후
팀을 탈퇴한 후 브랜뉴뮤직으로 소속사를 옮기며 2007년 2월, 무려 4년여 만에 솔로가수로 데뷔했다. 이때부터는 엔젤(Enjel)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라이머가 프로듀싱하여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나, 당시 회사가 신생 기획사다보니 프로모션도 많이 못 했고 반응 역시 그닥이었다. 물론 가창력 안무 모두 빠지지 않았고 클레오 시절부터 가장 인기가 높았으나, 2007년에는 긴 공백으로 인해 인지도가 완전히 추락한 상태에서 사실상 신인 대접을 받다 보니 실패로 끝났다.
이 때문에 예능 활동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는데, 엠넷의 '생방송 Hello 쳇(헬로쳇)'의 MC를 맡게 되었고[12]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고정 패널로 나오면서 오랜 기간 동안 TV에 얼굴을 내비쳤다. 클레오 시절부터 남달랐던 예능감과 입담 덕에 여러 매체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이 시절은 팬들에겐 다른 의미로 유명한데 바로 '''화보 발매''' 때문. 솔로 데뷔하면서 찍은 화보가 엄청 유명해지면서 인지도가 확 올라갔고, 여기에 클레오 시절 팬들의 지원사격도 한몫했다. 앨범 활동의 실패를 화보로 완전히 메워 버린 셈.
그렇게 활동을 지속하다가 갑자기 2009년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고 '치과 코디네이터'로 전업[13] 해서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듯했으나, 얼마 안 가서 지인과 함께 만든 쇼핑몰인 제이핏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어느 틈엔가 연예계에 복귀했다. 2011년에는 SBS플러스 '컴백쇼 톱10'을 통해 원년 멤버인 김하나, 박예은과 다시 뭉쳐서 클레오를 부활시키고 가요계 컴백을 선언했는데 단발성 복귀인지 아니면 예전의 클레오로 뭉쳐서 활약하는 것인지는 앞으로 프로그램을 지켜봐야 알 일이었으나, 컴백쇼는 얼마 못 가 조기 종영됐다. 아마 단발성 복귀였던 듯.
원년 멤버인 김하나, 박예은과는 팀 결성 초기부터 함께 했던 연예계 최고의 절친으로 유명하다. 다만 한현정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14] *
2009년 홍콩으로 건너가 2010년대 들어서는 국내보다는 중화권 위주로 활동을 전개하여 "걸스킹덤"이라고 하는 다국적 여성 걸그룹의 멤버로 활동하였다.[15] 그러다가 2014년 5월 8일에 인도네시아에서 비자 관련 문제로 10일간 구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팬들은 한현정 사건 이후로 노심초사하던 차에 설마 얘까지?라는 반응이었으나, 다행히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주최 측의 실수 때문에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이라 안도하였다.
그룹 활동을 마무리한 후에는 홍콩에서 한류 관련 공연기획이나 에이전시 등으로 일하다가, 2017년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가수로서의 커리어도 있고, 쇼핑몰 CEO나 화보 등도 유명하지만 클레오 시절 이후에도 가장 활발하게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클레오 멤버 중 가장 먼저 연예계에서 성공했고 대중들에게 각인된 인물이다.[16]
잠깐 활동을 정지한 시기를 빼면 활동 기간만 17년으로 동 시대에 전국 시대를 겪었던 다른 걸그룹 멤버들을 한 번에 알아볼 만큼 짬밥이 두둑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17] 그러면서도 나이에 비해 동안인 외모와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 8월에는 투야로 활동한 김지혜와 만난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슈가맨에서는 데뷔 이후로 쭉 따라다닌 성형 의혹을 장렬하게 셀프디스하면서 일축했는데, 아버지가 성형외과 의사였던 건 맞지만 멤버들이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걸 옆에서 듣고 있던 김하나가 제대로 살렸는데, '''우린 수술을 할지언정, 병원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며 제대로 자폭해 버렸다(...).[18]
2018년 1월 5일에는 TV조선 별별톡쇼에 패널로 출연하였는데 하필 이날 보도내용이 한현정의 50억 사기결혼이라는 식으로 자극적인 편집으로 이루어져 안 좋은 그림이 연출되기도 했다.
2020년 9월 6일 일요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은갈치라는 별명으로 출연했다. 1라운드에서 금수저에게 패배했다.
2020년 12월 17일 내일은 미스트롯2 첫 방송에 출연했으나, 심사위원들의 15개 올하트 중 8하트만 받아 탈락했다. 방영 전 실제녹화 후 인스타그램에 우울감과 좌절감을 토로했었는데 이때 탈락 때문인 것으로 본인이 밝혔다. 미스트롯 참가에 심기일전해서 실망감도 컸을듯. 다시 본업과 운동을 재개하며 밝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4. 여담
- 후배 아이돌 레인보우의 고우리가 채은정의 열성 팬이다. 채은정이 식신로드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고우리가 1집 타이틀곡인 Good time을 열창하면서 대선배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는데, 채은정도 흡족한 모습으로 후배를 바라보는 모습이 대단히 훈훈해서 이 에피소드는 클레오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편이다.[19] 사실 레인보우와 클레오 모두 뜰 수 있는 가능성은 물론 역량도 있었지만 정말 더럽게도 안 뜬 걸그룹의 대표였고, 둘 다 해체 수순을 밟았기 때문에 비슷한 행보를 보여주는 두 그룹의 팬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다만 1세대 걸그룹 멤버들 중에서도 상위권의 인기를 누렸고, 선후배간의 돈독한 모습을 보여준 정면이라 실로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 냈다.
- 대치동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강남 키드. 아버지 직업이 성형외과 의사라고 밝힌 점을 미루어보면 꽤 부유한 성장배경에서 자란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부친상을 당했다.
5. 관련 문서
[1] 치과 코디네이터 전업으로 잠시 은퇴.[2] 추상미, 조현재 소속.[3] 맥심 코리아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핑클의 '루비' 녹음 도중 프로듀서의 잔소리에 '''너무 열이 받아서 욕을 하는 바람에''' 짤렸다고 한다. 나이도 어리고 철없던 시절의 일이라 그런지 그간 내막을 전혀 알리지 않았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대단히 후회되는 일이라면서 아쉬움을 보였다. 이후 각종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비화를 알리기도 했으나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밝힐때는 욕설이 아닌 나태함으로 인해 제명됐다고 순화했다.[4] 이 인터뷰는 과거 옥주현이 KBS 상상플러스에 나와 결성 비화를 말하며 알려지기는 했다. 다만 누구라고 지칭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채은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5] 만약 채은정이 그대로 남아서 핑클로 데뷔했다면, 즉 이효리가 합류하지 않았다면 성유리와 더불어 1990년대 걸그룹 막내라인의 끝판왕이자 전례없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6] 참고로 2007년에 옥주현이 이미 KBS2 '상상플러스'에 출연해 핑클 데뷔조였던 연습생이 녹음실에서 욕설을 하다가 탈퇴당했었는데 이후 유명 걸그룹의 보컬이 돼 있더라는 일화를 얘기해서 논란이 됐던 바 있다. 그리고 10년 뒤 본인 스스로 그 당사자라고 인터뷰한 셈.[7] 클레오는 1999년 당시에 활동하던 걸그룹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팬덤이 여초였는데, 그 시기엔 연중 행사나 다름없는 걸그룹 안티들의 테러를 아예 당하지 않았고 그런 행위를 할 만한 안티조차도 없었던 굉장히 보기 드문 걸그룹이다. 팬클럽이 2군 중에서는 대규모였지만 다른 걸그룹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규모가 작고 화력도 빈약해서 그런지 동시대에 활동하던 다른 팬클럽들과는 마찰이 없었고, 팀 자체도 활동 기간 내내 대형 사건사고나 스캔들 하나 없이 조용히 지내서인지 둘 다 평판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8] 보컬 면에서는 다른 걸그룹의 메인보컬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1집에서는 목에 무리가 가는 창법을 많이 구사했고 힘겨운 노래들이 꽤나 많은 편이었다. 이 약점은 2집에서 극복되었고 이 시기부터는 전 곡을 무리없이 소화하게 되었다.[9] 이때의 순수한 이미지 덕분에 1세대 걸그룹의 비주얼 라인으로 당당하게 올라서게 되었다.[10] 이 점은 슈가맨에서도 그대로 언급되었다. 김하나는 가까이에서 보면 전혀 안 닮았지만, 당시엔 메이크업이 천편일률적이라 자연스럽게 닮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11] 슈가맨에 출연했을 때 "나는 힙합을 하고 싶었는데 클레오에서는 그럴 수 없어서 따로 힙합 음악을 하고 싶어서 나왔다"라며 탈퇴 이유를 밝혔다. 라이머랑 같이 작업한 것만 보아도 그런 듯.[12] 정확하게는 그룹 탈퇴 후 솔로 데뷔 전인 공백기였던 2005년에 MC를 맡았으며 채은정의 후임 MC로 당시 데뷔하지 않고 sm 연습생 신분이었던 소녀시대의 수영이 2006년부터 맡게 되었다.[13] 치아미백 광고물 모델로 치과 광고물에 등장한다. 이때는 본명으로 나오는 듯.[14] 엑스포츠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에 살 때 한현정은 지하철로 불과 2시간 거리인 광저우에 살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어서 만나지 못했고 슈가맨 출연 후에 50억 사기 사건 등 속깊은 얘기를 하고 싶어 연락처를 알아봤지만 아무도 알지 못해서 결국 연락을 못했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볼 때 사이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15] 생각보다 벌이가 상당해서 걸스킹덤 활동 1년 만에 벌어들인 수입이 가요계 활동으로 얻은 수입보다도 훨씬 많았다고 한다.[16] 중도 합류한 공서영의 경우는 5집 한정 멤버로 다른 분야로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클레오 활동은 잠깐의 추억 정도로 회상하는 데만 그치고 있다. 물론 1999년 데뷔 당시부터 있던 팬들은 공서영의 클레오 시절 얘기를 들으면 코웃음을 칠 정도로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허나 사생활 문제로 자폭한 한현정이나 1집만 활동하고 탈퇴한 박예은에 비하면 마지막 멤버로서 마무리한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슈가맨에 공서영이 합류한 형태로 등장하면서 단발성이긴 하나 클레오의 4기 체제를 재현해 내어 감동한 팬들이 많았다. 이 덕분에 10여 년 이상 따라다닌 공서영에 대한 안 좋은 시선도 클레오 팬들 사이에서 완전히 사라져 3기 겸 4기 멤버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17] 슈가맨에 출연했을 때 키스의 멤버들을 보자마자 얼굴을 기억한 건 물론이고 심지어 "여자이니까"의 안무까지도 꿰고 있었다.[18] 사실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김하나도 예능감이나 순발력은 굉장히 뛰어난 편에 속한다.[19] 둘은 나이 차이가 6년밖에 안 나지만 채은정은 1999년에 만 17세로 데뷔했고, 고우리는 2009년 만 21세로 데뷔하여 데뷔 연차는 10년이나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