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엘리자베스 매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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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사진은 미합중국 육군 제10산악사단 근무 시절 상관인 폴 앳킨스 육군 정보상사에게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며 보낸 사진이다. 징역이 선고된 후에 그의 성별 정체성 문제가 알려졌으므로 2017년에 출소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찍힌 사진들은 모두 성전환 치료 이전의 모습이다.
'''Chelsea Elizabeth Manning'''. 개명 이전의 이름은 브래들리 에드워드 매닝(Bradley Edward Manning).
1987년 12월 17일 출생
미국의 내부고발자로, 이라크 전쟁등 미군 관련 기밀을 위키리크스에 제보한 사람이다.
2007년 미 육군에 입대, 정보병과 이병이 되어 10산악사단 2여단전투단 소속으로 근무하다 2009년 바그다드에 배치, 육군 정보분석병으로 일하면서 취급한 자료를 레이디 가가 동영상으로 위장해 IRC등으로 위키리크스와 접촉하여 넘겨주고, 또 우편과 드롭박스등으로 국무부 전문등의 기밀정보 파일을 누설하였다. 개중에는 미 육군 아파치 헬기가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1] 하는 영상을 비롯하여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군사일지 등 엄중한 자료가 많았으며, 국무부전문, 아프간 전쟁, 관타나모 만 미합중국 해군 기지 등의 기밀도 있었다.
2010년 5월 체포되었고, 2011년 3월 기소되어 2013년 35년형(8년 복역 후 가석방 가능)을 선고 받았다.
트랜스젠더로서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한다는 점에서 매일같이 성폭력에 시달릴 것이라 걱정 및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사실 매닝이 수감된 캔자스주의 포트 레븐워스 육군교도소는 가장 삼엄한 경계태세로 요주의 인물들만 관리하는 곳[2] 이므로 그런 형태와는 거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미 정부에게 매닝은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하기엔 너무 거물이기에''' 그 걱정은 기우일 뿐이다. 일단 앰네스티가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세계구급 인사인데다,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매닝과 가끔씩 면회하는 기자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예로부터 여성 수형자들은 모두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해군교도소에 군종 관계없이 수감되었던 것처럼 매닝 역시 이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미군에서는 묵묵무답이었다.
매닝의 생일 기념 시위 현장.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군대에서 고충을 겪은 매닝에게 심정적으로 지지를 보낸다. 다만 네이비 씰 역사상 최초의 트랜스젠더인 前 DEVGRU 대원 크리스틴 벡처럼 매닝에 대한 평가는 성별 정체성과는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이들도 꽤 있는 편.
2015년 4월 3일, 트위터를 시작했다. 직접 인터넷을 할 수 없어, 전화를 통해 지지자에게 의견을 말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물론 출소 이후에는 본인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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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매닝이 바라는 자화상. 전문 화가가 그린 것으로, 첼시 매닝 서포팅 네트워크에서 공개했다. 여성으로서의 사진은 가석방이나 사면 후에나 나올 수 있을 듯했지만, 소송을 통해 성전환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Cruel and unusual punishment)로서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을 확인받았기 때문에 가석방이나 사면이 되기 전에도 여성으로서의 사진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브래들리 매닝은 트랜스젠더로 성정체성 문제를 겪었으며, 기밀누설로 투옥된 이후 성전환치료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되었고, 개명만이 승인되어 공식적으로 첼시 엘리자베스 매닝이 되었다. 군에 복무할 때도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미군의 DADT 규정에 의해 공개하지 못하여 괴로움을 겪었다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에는 훈련병[3] 으로 강등되어 가석방(또는 출소)과 동시에 불명예 제대될 예정이다. 현역 복무 시절에도 성별 정체성 혼란으로 상담을 하다가 여군에 대한 폭력 사건으로 인해 상병에서 일병으로 강등되었다.
2015년 2월 13일, 미국 법원으로부터 호르몬 대체 요법을 허락 받았다.영문기사
2016년 9월, 단식 투쟁 끝에 육군으로부터 '''성전환 수술''' 허락을 받았다는 변호인의 발표가 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육군에서 7월 자살시도를 이유로 징계심의에 회부할 것이라 발표되었다. 몇 년간의 독방 감금 및 형기 연장이 검토 중인데, 이미 이전의 독방 감금 때문에 심각한 PTSD에 시달리고 있는 매닝으로서는 수술은 둘째치고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어서 앰네스티, 많은 성소수자와 진보인사들의 성토가 줄을 잇는 중. 9월 말, 결국 2주간의 독방 처분을 받고 수감된 뒤... 10월 3일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며칠마다 한번씩 전화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듣고 전화로 트위터도 하던 매닝의 연락이 이렇게 오랫동안 끊기는건 굉장히 이례적이라 많은 지지자들이 걱정하였다. 11일에 다시 연락이 됐는데, 일주일 간 독방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4]
한편으로, 매닝의 문제가 좀 심각하게 묻히고 있다는 주장이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매닝이 수감된 죄목인 아파치의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범죄 폭로에 있어 성소수자들의 의견이 합치되질 않기도 했고, 매닝이 감옥에서 커밍아웃한 것을 그냥 관심 끌려는 것으로만 여기는 이들도 있고, 아예 군알못(...) 퀴어들이 매닝의 처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질 못하는 등 매닝의 처지가 성소수자 커뮤니티 전반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질 못했다는 것. 오히려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이후에는 이슬람공포증 때문에 무슬림 조지는 것을 방해한 매닝을 까는 자들마저 나올 지경이니... 사실상 매닝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경우는 트랜스젠더 단체들이 주를 이룬다.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각종 사회 이슈에 민감한 다수의 성소수자 단체들이 정작 매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아예 매닝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태가 나타났던 바 있다.
첼시 매닝과 그를 지지하는 단체측은 미국 대통령에게 사면을 해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35년동안 내부 고발자에 부정적인 대통령만 집권할 가능성은 낮으니 , 8년을 채우고 나면 사면이나 가석방을 통해 형기를 채우기 전에 출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그게 몇년이 될 지 몰라서 그렇지.
2017년 새해가 밝으며 시작된 오바마의 마지막 20일에 걸쳐 지지자들은 더욱 가열차고 절박한 구명 운동을 벌였다. 막말로 20일까지 석방 못되면 못해도 4년을 더 남자 감방에서 썩게 생겼으니(...) 1월 13일에는 '''줄리언 어산지가 "매닝을 석방시키면 미국으로 가겠다!"'''는 폭탄선언까지 내놨다.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짐 빼기 전에 마지막 검토 대상으로 삼고는 있다지만 지지자들은 1주일 남은 1월 13일에도 석방이 확정되지 않은 마당에 실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참고로 도널드 트럼프의 국가안보부보좌관 내정자인 K.T. 맥팔랜드는 매닝에 대해 '''처형'''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현지시간으로 1월 17일,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3일 전'''에 사면조치를 내려서 5월 17일에 석방된다.[5] 정치적으로 보면 사실상 오바마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마지막 빅엿을 선사한 꼴인데, 이걸 엎어버렸다가는 안그래도 성소수자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는 트럼프의 이미지가 더 골로 갈 것이라 번복될 가능성은 적다는 점에서 묘수가 아닐 수 없다. 매닝의 입장에서도 개인의 건강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면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실로 절박한 상황에 내린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 결국 5월에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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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8일''', 출소 후 하루만에 인스타그램, 트위터에 공개한 첫 사진. 공개 1시간도 안되어 트위터에서만 2500리트윗을 돌파했다. 수감 전과 달라진 외모의 변화 못지 않게 수년의 옥고 또한 엿볼 수 있는 사진이다.
석방되고 나서는 보그지 화보를 찍는 등 여자로써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는 중이라는 듯하다.
2019년 3월, 연방법원이 매닝이 유출한 군사기밀 자료를 폭로한 위키릭스를 재판에 회부하기 위한 비공개 연방대배심을 소집하고 매닝에게 증인으로 출석하라 통지했는데, 비공개 법정에서의 증언을 거부하자 법정모독죄로 구금되었다. 다시 독방 수감 조치를 받는등 고생길이 열렸다. 변호인단은 매닝의 고생 전력과 건강을 고려하여 가택연금 선으로 처벌 수위를 낮출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감에서 풀려나기 위해선 대배심이 종료되거나 매닝이 증언을 해야 하는데, 둘다 근시일 내로는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라... (기사)위키리크스한국 2019년 5월 9일 대배심이 종료되어 구금에서 풀려났으나 연방대배심이 재차 소집되고 매닝 역시 다시금 소환될 예정이라 고생길은 끝나지 않았다.(@xychelsea 트윗) 결국 5월 16일 대배심이 재차 소집됨과 동시에 증언을 거부하여 다시 구금되었고, 연방법원은 매닝에게 벌금까지 부과[6] 하기에 이르렀다. (@xychelsea 트윗)
오른쪽 사진은 미합중국 육군 제10산악사단 근무 시절 상관인 폴 앳킨스 육군 정보상사에게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며 보낸 사진이다. 징역이 선고된 후에 그의 성별 정체성 문제가 알려졌으므로 2017년에 출소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찍힌 사진들은 모두 성전환 치료 이전의 모습이다.
1. 개요
'''Chelsea Elizabeth Manning'''. 개명 이전의 이름은 브래들리 에드워드 매닝(Bradley Edward Manning).
1987년 12월 17일 출생
미국의 내부고발자로, 이라크 전쟁등 미군 관련 기밀을 위키리크스에 제보한 사람이다.
2. 생애
2.1. 군복무
2007년 미 육군에 입대, 정보병과 이병이 되어 10산악사단 2여단전투단 소속으로 근무하다 2009년 바그다드에 배치, 육군 정보분석병으로 일하면서 취급한 자료를 레이디 가가 동영상으로 위장해 IRC등으로 위키리크스와 접촉하여 넘겨주고, 또 우편과 드롭박스등으로 국무부 전문등의 기밀정보 파일을 누설하였다. 개중에는 미 육군 아파치 헬기가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1] 하는 영상을 비롯하여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군사일지 등 엄중한 자료가 많았으며, 국무부전문, 아프간 전쟁, 관타나모 만 미합중국 해군 기지 등의 기밀도 있었다.
2010년 5월 체포되었고, 2011년 3월 기소되어 2013년 35년형(8년 복역 후 가석방 가능)을 선고 받았다.
2.2. 수감 생활
트랜스젠더로서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한다는 점에서 매일같이 성폭력에 시달릴 것이라 걱정 및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사실 매닝이 수감된 캔자스주의 포트 레븐워스 육군교도소는 가장 삼엄한 경계태세로 요주의 인물들만 관리하는 곳[2] 이므로 그런 형태와는 거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미 정부에게 매닝은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하기엔 너무 거물이기에''' 그 걱정은 기우일 뿐이다. 일단 앰네스티가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세계구급 인사인데다,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매닝과 가끔씩 면회하는 기자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예로부터 여성 수형자들은 모두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해군교도소에 군종 관계없이 수감되었던 것처럼 매닝 역시 이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미군에서는 묵묵무답이었다.
매닝의 생일 기념 시위 현장.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군대에서 고충을 겪은 매닝에게 심정적으로 지지를 보낸다. 다만 네이비 씰 역사상 최초의 트랜스젠더인 前 DEVGRU 대원 크리스틴 벡처럼 매닝에 대한 평가는 성별 정체성과는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이들도 꽤 있는 편.
2015년 4월 3일, 트위터를 시작했다. 직접 인터넷을 할 수 없어, 전화를 통해 지지자에게 의견을 말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물론 출소 이후에는 본인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2.3. 성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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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매닝이 바라는 자화상. 전문 화가가 그린 것으로, 첼시 매닝 서포팅 네트워크에서 공개했다. 여성으로서의 사진은 가석방이나 사면 후에나 나올 수 있을 듯했지만, 소송을 통해 성전환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Cruel and unusual punishment)로서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을 확인받았기 때문에 가석방이나 사면이 되기 전에도 여성으로서의 사진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브래들리 매닝은 트랜스젠더로 성정체성 문제를 겪었으며, 기밀누설로 투옥된 이후 성전환치료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되었고, 개명만이 승인되어 공식적으로 첼시 엘리자베스 매닝이 되었다. 군에 복무할 때도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미군의 DADT 규정에 의해 공개하지 못하여 괴로움을 겪었다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에는 훈련병[3] 으로 강등되어 가석방(또는 출소)과 동시에 불명예 제대될 예정이다. 현역 복무 시절에도 성별 정체성 혼란으로 상담을 하다가 여군에 대한 폭력 사건으로 인해 상병에서 일병으로 강등되었다.
2015년 2월 13일, 미국 법원으로부터 호르몬 대체 요법을 허락 받았다.영문기사
2016년 9월, 단식 투쟁 끝에 육군으로부터 '''성전환 수술''' 허락을 받았다는 변호인의 발표가 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육군에서 7월 자살시도를 이유로 징계심의에 회부할 것이라 발표되었다. 몇 년간의 독방 감금 및 형기 연장이 검토 중인데, 이미 이전의 독방 감금 때문에 심각한 PTSD에 시달리고 있는 매닝으로서는 수술은 둘째치고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어서 앰네스티, 많은 성소수자와 진보인사들의 성토가 줄을 잇는 중. 9월 말, 결국 2주간의 독방 처분을 받고 수감된 뒤... 10월 3일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며칠마다 한번씩 전화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듣고 전화로 트위터도 하던 매닝의 연락이 이렇게 오랫동안 끊기는건 굉장히 이례적이라 많은 지지자들이 걱정하였다. 11일에 다시 연락이 됐는데, 일주일 간 독방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4]
한편으로, 매닝의 문제가 좀 심각하게 묻히고 있다는 주장이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매닝이 수감된 죄목인 아파치의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범죄 폭로에 있어 성소수자들의 의견이 합치되질 않기도 했고, 매닝이 감옥에서 커밍아웃한 것을 그냥 관심 끌려는 것으로만 여기는 이들도 있고, 아예 군알못(...) 퀴어들이 매닝의 처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질 못하는 등 매닝의 처지가 성소수자 커뮤니티 전반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질 못했다는 것. 오히려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이후에는 이슬람공포증 때문에 무슬림 조지는 것을 방해한 매닝을 까는 자들마저 나올 지경이니... 사실상 매닝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경우는 트랜스젠더 단체들이 주를 이룬다.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각종 사회 이슈에 민감한 다수의 성소수자 단체들이 정작 매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아예 매닝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태가 나타났던 바 있다.
3. 출소 후
첼시 매닝과 그를 지지하는 단체측은 미국 대통령에게 사면을 해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35년동안 내부 고발자에 부정적인 대통령만 집권할 가능성은 낮으니 , 8년을 채우고 나면 사면이나 가석방을 통해 형기를 채우기 전에 출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그게 몇년이 될 지 몰라서 그렇지.
2017년 새해가 밝으며 시작된 오바마의 마지막 20일에 걸쳐 지지자들은 더욱 가열차고 절박한 구명 운동을 벌였다. 막말로 20일까지 석방 못되면 못해도 4년을 더 남자 감방에서 썩게 생겼으니(...) 1월 13일에는 '''줄리언 어산지가 "매닝을 석방시키면 미국으로 가겠다!"'''는 폭탄선언까지 내놨다.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짐 빼기 전에 마지막 검토 대상으로 삼고는 있다지만 지지자들은 1주일 남은 1월 13일에도 석방이 확정되지 않은 마당에 실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참고로 도널드 트럼프의 국가안보부보좌관 내정자인 K.T. 맥팔랜드는 매닝에 대해 '''처형'''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현지시간으로 1월 17일,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3일 전'''에 사면조치를 내려서 5월 17일에 석방된다.[5] 정치적으로 보면 사실상 오바마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마지막 빅엿을 선사한 꼴인데, 이걸 엎어버렸다가는 안그래도 성소수자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는 트럼프의 이미지가 더 골로 갈 것이라 번복될 가능성은 적다는 점에서 묘수가 아닐 수 없다. 매닝의 입장에서도 개인의 건강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면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실로 절박한 상황에 내린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 결국 5월에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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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8일''', 출소 후 하루만에 인스타그램, 트위터에 공개한 첫 사진. 공개 1시간도 안되어 트위터에서만 2500리트윗을 돌파했다. 수감 전과 달라진 외모의 변화 못지 않게 수년의 옥고 또한 엿볼 수 있는 사진이다.
석방되고 나서는 보그지 화보를 찍는 등 여자로써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는 중이라는 듯하다.
2019년 3월, 연방법원이 매닝이 유출한 군사기밀 자료를 폭로한 위키릭스를 재판에 회부하기 위한 비공개 연방대배심을 소집하고 매닝에게 증인으로 출석하라 통지했는데, 비공개 법정에서의 증언을 거부하자 법정모독죄로 구금되었다. 다시 독방 수감 조치를 받는등 고생길이 열렸다. 변호인단은 매닝의 고생 전력과 건강을 고려하여 가택연금 선으로 처벌 수위를 낮출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감에서 풀려나기 위해선 대배심이 종료되거나 매닝이 증언을 해야 하는데, 둘다 근시일 내로는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라... (기사)위키리크스한국 2019년 5월 9일 대배심이 종료되어 구금에서 풀려났으나 연방대배심이 재차 소집되고 매닝 역시 다시금 소환될 예정이라 고생길은 끝나지 않았다.(@xychelsea 트윗) 결국 5월 16일 대배심이 재차 소집됨과 동시에 증언을 거부하여 다시 구금되었고, 연방법원은 매닝에게 벌금까지 부과[6] 하기에 이르렀다. (@xychelsea 트윗)
[1] 이 영상에서 헬기 조종사들이 학살한 민간인들은 로이터 통신 소속 기자들과 이들을 구하러 온 일반 시민들이었다.더 가관인 건 헬기 조종사들이 이들을 학살해놓고 '나이스'라고 외쳤다는 것이다.[2] 포트후드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니달 하산이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곳이다.[3] 미군은 이등병 아래 계급으로서 훈련병 계급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다. 호봉도 마찬가지.[4] http://boingboing.net/2016/10/11/chelsea-manning-has-surfaced-a.html[5] https://www.nytimes.com/2017/01/17/us/politics/obama-commutes-bulk-of-chelsea-mannings-sentence.html[6] 구금기간 30일 이후부터 매일 벌금 500달러, 60일 이후부터 매일 벌금 1,000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