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석씨

 

'''충주 석씨(忠州 石氏)'''
[image]
'''관향'''
충청북도 충주시
'''시조'''
석린
'''중시조'''
석여명
'''집성촌'''
경기도 이천시, 충청북도 제천시, 경상남도 창녕군, 경상남도 함안군, 경상북도 경산시, 경상북도 성주군, 경상북도 청도군
'''인구'''
49,203명 (70위)[1]
'''홈페이지'''
충주홍주석씨대종회
1. 개요
2. 역사
3. 종파
4. 특이사항
5. 인물
6. 관련 항목


1. 개요


충청북도 충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석씨는 이 성씨다. 시조는 고려시대의 상장군 석린이다. 이 석씨 이외의 석씨는 월성 석씨가 있는데, 이들은 11,355명으로 훨씬 적다.

2. 역사


시조 석린은 출신이 불분명한 인물로, 무신정변 때 선봉장을 맡아 많은 문신을 죽여 공을 세운 뒤, 조위총의 난 진압에서 많은 활약을 해 상장군직에 올랐으니 권력 다툼에서 패배해 처형당했다. 이후로 종종 요직에 진출하면서 가문의 세를 유지했다. 가문이 명성을 얻는 것은 여말선초로, 5대손 석양선이 태조 이성계의 이모부가 된 것. 가문 전승에 의하면 이성계의 모친 의혜왕후는 일찍 죽었는데,[2] 이모와 이모부가 이성계를 각별히 돌보아 이성계조선을 세운 뒤에도 그 은덕을 잊지 않아 석양선을 홍양부원군에 봉했다. 이 인연으로 창녕군에는 이성계가 내린 편지를 모신 어필각이 있다. 그런데 재밌게도 석양선의 둘째 손자인 석여명은 고려의 충신으로 석여명의 대에 고려가 멸망했는데, 석양선과 인연이 있는데다 학식과 위풍이 높기로 명성 있던 석여명을 이성계가 불렀으나 석여명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천명하며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 후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앉은 후 다시 석여명을 불렀는데, 한성부판윤 겸 집현전 제학이라는 높은 관직을 제안했으나 역시 거절했다. 그러자 분노한 이방원이 석여명을 충주에 안치시켰는데, 석여명은 끝까지 버티다 충주에서 죽었다. 석여명을 전후로 석씨가 본격적으로 갈라지는데, 조선 왕조에서 한성판윤을 지낸 석여명의 형 석수명은 아예 본관을 홍주[3]로 옮겨 분관했고, 석여명의 세 아들로부터 충주 석씨의 종파가 갈라졌다. 첫째 석문수는 예조참판을 지냈고, 동생인 석문현은 이천현, 막내 석문성은 직제학을 지냈다. 석문성은 젊은 시절 공민왕 대의 왜구 토벌전에도 종군하여 승전한 전력이 있다. 이후 조선에서는 심심찮게 고위 관직을 내며 대단한 대가문까진 아니더라도 명문가의 지위를 유지했고, 각 지방의 집성촌도 지역에 영향력을 강하게 끼치는 곳으로 성장했다.

3. 종파


종파는 총 12개이다.
석여명의 형 석수명의 장남 석균에서 나오는 구 홍주 석씨가 판윤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첫째 석문수의 자손이 참판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둘째 석문현의 자손이 참의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첫째 아들 석인정의 자손이 모정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둘째 아들 석의정의 첫째 아들 석사진의 자손이 병사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둘째 아들 석의정의 둘째 아들 석사성의 자손이 통덕랑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둘째 아들 석의정의 셋째 아들 석사화의 자손이 방어사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둘째 아들 석의정의 넷째 아들 석옥점의 자손이 선전관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둘째 아들 석의정의 다섯째 아들 석옥진의 자손이 첨정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셋째 아들 석예정의 자손이 현감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넷째 아들 석지정의 자손이 승지공파가 되었다.
석여명의 셋째 석문성의 다섯째 아들 석신성의 자손이 한림공파가 되었다.

4. 특이사항


시조 석린이 출세하기 전까진 정체불명의 인물이라 여러 말이 많다. 고려사에선 일반 천민으로 기록하는 반면, 가문에서는 중국에서 왔다는 설을 밀고 있고, 심지어 오호십육국 시대 후조의 황가라는 설까지 있다. 또 월성 석씨의 잃어버린 후예라는 말도 있는데, 기록 부족으로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성씨가 정말 드문 듯 하면서도 주변을 찾아보면 한명쯤은 있는 성씨. 다만 경북 남부(대구 포함), 경남 북부에선 생각보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성씨다.

5. 인물


석린, 무신정권 유력자.
석경, 조선시대 유명 화가로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의 제자.
석창문, 정미의병 의병장
석창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석창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석주명, 일제강점기의 명망 높은 나비 연구가
석주선, 복식 연구가. 석주명의 여동생.
석현준, 프랑스 리그 2 트루아 AC에서 뛰고 있는 축구 선수.
석주일, 유명 농구선수이자 방송인
석진욱,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의 레전드 수비수이자 안산 OK금융그룹 읏맨의 감독,
석동현, 법조인 겸 정치인
석광렬, 요절한 90년대 하이틴 스타
석해균,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능숙한 대처로 작전을 도운 삼호주얼리 호의 선장.

6. 관련 항목



[1] 2015년 기준[2] 의혜왕후의 생몰년도는 불명이다.[3] 현재의 홍성군. 지금은 충주석씨와 다시 합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