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의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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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결투』는 자기 자신을 인간적으로 성장시켜준다.'''
'''비열함 같은 것 없이...칠흑의 의지를 지닌 살인은, 인간적으로 미숙한 나를 성스러운 영역까지 끌어올려준다.'''
'''그 곳까지 가지 않으면 안 돼. 『신성함』은 『수행』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거다...'''
'''『능력』에도 『목적』에도 거짓은 없다.'''
'''그럼 잘 부탁한다. 어쩌겠나? 정하는 것은 너희들이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등장하는 황금의 정신에 반대되는 용어이자 '구역질나는 사악함'과는 또 다른 용어.'''그 『눈빛』은... 링고가 꿰뚫어봤던 『칠흑의 의지』... 죠니는 모든 것에 쫓기고 있을 때, 그 어두운 면은 냉철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표정이다. 저건 살인자의 눈이다. 죠니는 모든 것을 버릴 셈이다. 그 『인간성』까지도.'''
죠죠의 기묘한 모험은 본래 마피아가 주인공인 황금의 바람에서조차 황금의 정신을 표방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 칠흑의 의지란 것은 죠죠 시리즈의 주요 악인들의 사상과 일견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대부분의 악역들의 사악함을 표현하는 바는 5부의 브루노 부차라티가 언급한 '구역질나는 사악함'이 더 정확하다. 현지인 일본의 죠죠러들은 이걸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황금의 정신'이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영웅(英雄)의 정신을 의미한다면 '칠흑의 의지'는 자신의 목적과 신념을 위해 투쟁하는 효웅(梟雄)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이나 명예를 중히 여겨 결투까지 빈번히 치른 전근대 유럽 귀족들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바가 있다.[1]
이 용어는 제7부 스틸 볼 런에 등장한 맨덤의 스탠드 유저 링고 로드어게인의 말에서 처음 등장했다. 링고는 칠흑의 의지를 가지고 벌인 공정한 결투가 자신을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것을 링고는 '''"남자의 세계"'''라고 표현했으며, 분명 반사회적이지만 오히려 "사회의 가치관"이 물러터진 쪽으로 변해가는 것이라고 평했다. 신념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살인 같은 악행을 불사하는 의지라 표현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것처럼 '''상대가 나를 죽이는 것 역시 정당하다''''는 전제 하에 승부를 벌인다는 것. 이 때문에 로드어게인은 고용주인 퍼니 밸런타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이로 체펠리를 '대응자'로 취급해 공격하지 않았다. 따라서 최소한 칠흑의 의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고한 약자를 희생시키지는 않는다.
바로 이 점에서 칠흑의 의지는 '구역질나는 사악함'과 차별화된다. '구역질나는 사악함'은 자신을 위해서 무고한 남을 이용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를 일컫는다. 바로 디오 브란도, 키라 요시카게, 디아볼로 등이 이러한 작자들로, 이들은 자신의 야욕, 쾌락, 안전, 이득을 위해 타인을 일방적으로 살해하고 학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가급적 자신은 안전한 곳에 버티고 서서 상대를 파괴하여 그 이득만을 빨아먹으려 하므로, 이들에게 타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거나 방해물이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칠흑의 의지'의 소유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강인한 신념을 가진 상대와의 공정한 대결을 추구하며, 다만 그 대결에 법률과 사회적 도덕에 의한 제한선('살인하지 말라')을 두지 않을 뿐이다.[2] 따라서 칠흑의 의지를 가진 자에게 상대는 '''자신이 극복해야 할 시련이며,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영혼을 고양해주는 존재'''가 된다.
한마디로 '구역질나는 사악함'이 '''착취(搾取)'''하고자 한다면, '칠흑의 의지'는 '''쟁취(爭取)'''를 추구한다, 구역질나는 사악함은 '''뒤에서 칼을 찔러서 운명을 결정'''하지만, 칠흑의 의지는 '''서로의 앞에서 모두 총을 뽑을 결투를 통해 운명을 결정'''한다. "나는 너를 욕하고 괴롭히고 때리고 죽여도 되지만 너는 내게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건 상상도 안 된다" 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상대 역시 자신을 죽이려 시도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칠흑의 의지의 특징이다. 굳이 따지자면, 5부에서 죠르노가 부차라티를 보며 평가한 '처리될 각오를 가지고 처리하는 인간'이 칠흑의 의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3]
그러나, 분명 구역질나는 사악함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엄연히 선을 넘는 행동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은 물론 도덕까지 무시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태도는 '''한 발짝만 삐끗해도 사악의 영역으로 굴러떨어지고 말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로드어게인과 함께 칠흑의 의지의 대표주자인 죠니 죠스타는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병을 전가한다는 '''악'''을 저질렀다가[4] 자기 자신이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선'을 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간은 결국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에 직면했을 때 '악'에 기울어지고 말 위태로움을 늘 내재하고 있기에 '''마냥 긍정할 수 있는 가치관이 결코 아님'''을 죠죠 시리즈는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탓에 8부에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으며 주제 자체도 다르다. 울트라 점프로 옮겨지고 나서 수위가 높아져도, 명색이 소년만화인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살인마저 긍정하는 가치관은 계속 표방되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5]
2. 작중 묘사
작중에서는 칠흑의 의지에 휩싸인 인물은 눈동자속 동공이 타오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래는 그런 묘사를 보인 캐릭터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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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니 죠스타는 죠죠임에도 불구하고 칠흑의 의지를 가진 모습이 작중에서 자주 나왔다.[7] 자이로 체펠리는 이에 대해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실제로 죠니는 죠죠치고는 상당히 범죄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해왔다.[8]
- 자이로도 링고 로드어게인이 등장하는 <남자의 세계> 편에서 링고에게 재도전할 때, 칠흑의 의지 특유의 눈동자를 보여주기도 했다.[9]
- 8부의 죠스케 또한 자신의 목적인 홀리를 위해 아케후 사토루를 살해할 수 있다고 고백할 때 보여준 적 있다.[10][11]
- 마메즈쿠 라이도 99화에서 아케후 사토루가 마메즈쿠 라이의 가문과 가업을 망쳤다고 고백하자, 다음 순간 눈에서 칠흑의 의지를 보인다.
3. TVA 및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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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죠 TVA 1부 OP에 등장한 죠나단 죠스타에게서도 해당 묘사를 볼 수 있다. 작중 신사로써 부끄럽지만 원한을 풀기위해 디오를 살해하고 싶다고 말하는거 보면 확실히 죠나단 나름의 개인적인 의지가 있다. 칠흑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죠니가 일순 후의 세계의 죠나단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나 묘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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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죠 4부 TVA 한정으로 야마기시 유카코도 칠흑의 의지 특유의 눈동자를 보였다. 이 쪽도 자기 목적인 사랑을 위해 코이치를 험담한 코이치네 반장을 산 채로 태워 죽이려고 했다.[12] 코이치를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은것을 보면 확실히 칠흑의 의지가 있다.
- 마찬가지로 4부 TVA 한정으로 키라 요시카게가 하야토를 살해하고 바이츠 더 더스트가 발현해서 과거로 가기 직전에 눈동자가 칠흑의 의지 처럼 검게 불탄다. 키라는 페티쉬 충족을 위해 구역질나는 사악함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목적으로는 개인적으로 조용히 평온한 삶을 누리고프다는 의지가 있어 칠흑의 의지가 표현되었다.
- 마찬가지로 4부 TVA 한정으로 고양이풀 또한 환생 직후 카와지리 시노부에게 살해당한 사실을 떠올리고 눈동자가 불타는 묘사를 보인다.
- 공식은 아니지만 수치심 없는 퍼플 헤이즈에서 안젤리카 아타나시오에게서 비슷한 모습이 묘사된 바 있다.
4. 디아볼로의 대모험
죠니의 기억 디스크나 링고의 기억 디스크를 쓸 시 디스크에 칠흑의 오라가 붙는다. 칠흑의 오라가 깃든 디스크에는 장비창에서 별 표시가 붙으며, 압둘의 레드 바인드, 쥐덫의 함정 등 스탠드 강화치를 낮추는 공격에서 보호받는다. 다만 오오야나기 켄의 가위바위보 공격으로 인한 강화치 하락은 막지 못하며, 쥐의 공격을 맞으면 딱 한번 방어해준 뒤 칠흑의 오라가 사라진다.
[1] 현대인의 시점에서 보면, 헥토르는 황금의 정신을 지닌 영웅에 가깝고 아킬레우스는 칠흑의 의지를 지닌 효웅에 가깝다. 물론 당대 희랍의 가치관을 무시하고 현대적인 시선만 두고 보면 말이다.[2] 이를 니체의 위버멘쉬 철학과 유사하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같다고 보기 어렵다. 위버멘쉬가 철학적인 개념이기에 해석이 분분하지만,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입법자가 되려는 사상이기에, '개인의 신념이 사회의 가치관보다 우선한다'는 사례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차이는 자신이 따른 그 입법의 결과를 충분히 받아드릴 각오를 하기를 긍정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을 넘는 행위라도 그 말로를 긍정하고 받아드린다면 위버멘쉬가 맞으나, 죠니의 최후는 그와 반대된다.[3] 코드 기아스의 를르슈 람페르지의 말, "총을 쏴도 되는 건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 뿐이다!"와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4] 죠니가 칠흑의 의지를 가진 캐릭터기는 하지만 이 행동은 분명 칠흑의 의지보다는 구역질나는 사악에 가깝다. 유해는 죠니가 독점한 상태고, 아내의 불행이 '아무한테나' 옮겨가도 좋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이는 칠흑의 의지의 전제인 '상대에게 동등한 목적 추구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칠흑의 의지의 강령과는 어긋나 있다. 그러나 또 다르게 해석하자면, 자신의 목적 추구를 위하여 타인의 목적 추구하는 데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맹점을 지적하는 연출일지도 모른다.[5] 8부에서는 죠스케가 칠흑의 의지를 보이기는 했지만, 전부 상대가 먼저 죠스케의 소중한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죠스케는 사람이 아닌 존재만 죽였다.[6]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 죠죠에게서 칠흑의 의지가 묘사된 첫번째 장면이기도 하다.[7] 최종보스와의 결전 시를 제외하고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표정도 짓게 된다.[8] 8부 시점에서는 아예 성인의 유해를 사적으로 쓰려고 했다는 대목도 있다. 아내를 위해서라지만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난 부분. 그러나 여전히 죠죠는 죠죠라, 결국 이 행동은 죠니를 죽음으로 모는 결과를 불러왔다.[9] 결국 자이로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10] 다만 죠스케의 경우 홀리 죠스타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동시에 자신을 거둬준 히가시카타 가에 피해도 입히지 않으려 하는 등 상당히 개념찬 모습을 보여준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죠죠리온은 스틸 볼 런과 주제의식도 다르고 언급도 되지 않는다.[11] 오히려 여기서 8부의 죠스케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전 부의 죠죠는 자신이 선을 넘었음을 자각하는 장면이 있으나, 죠스케는 그런 자각조차 없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12] 다행히 오쿠야스가 더 핸드의 능력으로 구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