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 공주/결혼소동

 



1. 개요
2.1. 2017년
2.1.1. 부정적인 여론
2.2. 2018년
2.2.1. 과도한 특혜 논란
2.3. 2019년
2.3.1. 갑작스러운 발표
2.3.2. 혼약 내정 강조
3.1. 2019년
3.2. 2020년
3.3. 2021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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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부터 마코 공주코무로 케이와 함께 일으킨 결혼 논란. 일본의 기준에서 비정상인 일반인 혼약남이 만들어낸 논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일본 내 궁내청, 황실, 국민 여론, 정부의 반응이 180도 변했다.

2. 헤이세이 시대



2.1. 2017년


2017년 5월 16일, 마코 공주가 조만간 약혼하여 2018년에 결혼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상대 남성은 국제기독교대학 동창인 동갑내기 코무로 케이다. 두 사람은 캠퍼스 커플로 만나 2012년부터 교제해 왔다.
케이는 도쿄도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히토츠바시 대학 대학원에 다니며 경영법무 공부도 하고 있다. 미국 어학연수 경험이 있고 토익이 950점일 정도로 영어도 잘 한다고 한다. 가나가와현에 있는 관광지인 쇼난(湘南) 에노시마에서 '바다의 왕자'라는 이름으로 홍보대사 활동을 한 경력도 있어, 일본 언론에서는 '마코 공주가 '바다의 왕자'와 약혼한다.'고도 보도했다. 케이의 아버지 코무로 토시카츠(小室敏勝)는 케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2년 3월[1]에 사망했고(자살),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사망했다. 그 이후로 케이는 외할아버지 카쿠다 쿠니미츠(角田國光), 어머니 코무로 카요(小室佳代)와 함께 살고 있다.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 부부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였고, 조부모인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도 손녀의 결혼을 허락했다. 마코 공주는 결혼 후 일본테니스협회 총재의 활동을 계속한다고 한다. 황실전범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면, 평민 남성과 결혼한 공주는 결혼 후 황족의 신분을 잃고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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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결혼 소식이 발표된 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이때 마코 공주를 좋아해왔다는 한 대학생이 '하지만 행복하다면 OK입니다'라는 소감을 남겼고, 여기서 보여준 표정과 따봉의 조합이 시너지를 일으켜 이 되었으며, 이후 많은 패러디의 소재가 되었다. 실제 영상, 패러디 모음. 해당 대학생의 발언은 유독 아이돌과 성우들의 연애 및 결혼 소식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오타쿠들에게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진정한 팬으로서 가져야 할 모범적인 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루리웹에서는 성우들의 결혼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댓글로 저 스샷이 꼭 올라올 정도.
이후 마코 공주의 결혼 연기 소식이 나온 뒤 한 언론에서 해당 대학생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다시 인터뷰를 했는데 "마코 님이 행복하다면 OK입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스키라도 타면서, 기분을 발산해주세요!" 한국어로 의역하면 대충 "스키라도 타면서 기분 푸세요" 정도의 의미로, 여전히 대인배스러운 대답을 남겼다. 인터뷰. 해당 대학생은 결혼 연기 소식을 본인이 속한 스키부의 대회가 끝난 뒤에 알았다고 한다.
후일 위 짤방의 인물은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에서 졸업식때 나와서 인터뷰했다.#

2.1.1. 부정적인 여론


일본에서는 상류층 가정이 아닌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코무로 케이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부자도 아니고 비정규직인데 결혼해도 괜찮을까?' 라는 반응이 있다. 정식 사원이 아니라 대학원에 다니며 1주일에 2~3일만 근무하는 비정규직이다. 이 결혼을 못마땅해하는 일부 네티즌들은, 대놓고 아르바이트프리터#s-2족이네 할 정도다. 또한 케이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걸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단순히 한부모 가정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케이 아버지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점과 자살 이유에 대한 여러 가지 루머 때문이다.
사야코 공주는 남편 구로다 요시키(黑田慶樹)도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살인적인 도쿄의 집값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코 공주의 예비신랑 코무로 케이는 집안이 그렇게 부유하지도 않고, 본인도 비정규직으로 1년 정도 일했을 뿐이라 돈이 일절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마코 공주가 황실로부터 받는 지참금은 대부분 집값으로 탕진되고 그 뒤엔 남는 게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평민이라 해도 결국 주택을 마련하고 나면 돈이 없어서 평범한 사람들처럼 절약하며 살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황실에서 특별하게 자란 마코 공주가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지가 문제가 된다.
참고로 황거와 가까운 치요다구 지역의 신축 맨션 분양가는 이미 평당 500만엔을 훌쩍 넘어 600만엔에 근접해버린 상태다. 즉 20평대 맨션만 구입하려 해도 1억 따위(?)는 그대로 증발해버린다. 마코가 사야코와 같은 천황의 친자녀는 아니라 결혼 후에도 황거를 자주 들락거릴 일은 없다 쳐도, 갈수록 황실 인원이 줄어드는 현 상황에서 공무의 분담, 특히 여성 미야케 창설 등을 고려하면 치요다를 벗어나 마냥 집값 싼 곳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프라이버시나 경호 문제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어느 정도 클래스가 있는 고급 맨션을 택할 수밖에 없다. 즉 황실의 결혼 지참금이 대폭 상향되지 않는다면 이제는 공주의 지참금만으로는 턱도 없고, 결혼 상대 남성도 집과 신혼 살림 마련에 상당한 돈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17년 8월에는 마코 공주가 논란의 국제기독교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 입학 이후 학교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왔다. 기사.
이 기사에 따르면, 6월 대학원 학기말에 비교문화 전공의 대학원생들이 모두 소속되어 있는 학회 마지막 미팅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5~6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은 단촐한 미팅이 끝나가는 찰나에 갑자기 마코 공주가 나타나 스스로를 '유령 학생'이라고 소개했다고 하며, 심지어 학생들 중에는 마코 공주와 함께 수업을 들었다는 학생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가장 수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황족으로서의 공무'의 경우, 학기 중에는 공무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갑작스럽게 잡히게 된 결혼 준비 등으로 바빴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으나, 저렇게 불성실하게 대학원 생활을 할 거라면 왜 굳이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했는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9월 3일 오전, 마코 공주와 케이는 천황 내외가 거주하는 궁전인 고쿄(황거)를 방문한 다음 공식으로 약혼을 발표하였다.

2.2. 2018년


2018년 2월 6일, 원래 2018년 11월 4일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2020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 번 정해졌던 천황 일가의 결혼식 날짜가 변경된 경우는 지진 등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국민들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뜻을 보이기 위한 경우[2]밖에 없다는 걸 생각하면, 과연 진실은...
아니나 다를까, 일각에서는 케이의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금전 문제가 불거졌다. 케이의 어머니는 토시카츠와 사별한 후 한 남자와 교제하면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고, 그 돈을 생활비 및 아들 케이의 학비로 썼다고 한다. 그런데 헤어지게 되자 남자는 카요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카요는 그 돈은 증여받은 것이라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서 갈등이 생겼다. 이 일은 일본 언론에까지 보도되었다.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서 마코 공주의 결혼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궁내청은 '카요에 대한 보도가 결혼 연기와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보도된 것과는) 관련이 없다. 코무로 측 얘기인 만큼 발언을 자제하겠다.'고 하며 즉답을 피했다.
한편 카요가 예비 사돈인 일본 황실에 금전적 지원을 요청한다는 이야기, 코무로 일가가 신흥종교인지 사이비 종교인지를 믿는다는 루머도 있다. 이에 따라 결혼을 재고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인터넷에 퍼졌다. 2018년 2월 기준으로 미혼의 공주들이 6명[3]이나 더 있고, 이 사건에 대한 황실의 분위기에 따라 안 그래도 빡셀 차차기 천황의 결혼 역시 중압감이 더해질 게 뻔하기 때문에, 일본 황실로서는 첫 단추를 어떻게 꿰어나갈지 고민하는 상황.
하여간 이 일로 인해 마코 공주의 어머니 키코 비미치코 황후에게 단단히 찍혔다. 미치코 황후가 그 전부터도 손자손녀들 교육 문제로 키코 비를 좀 불신했다는데, 이젠 확실히 불신하는 상황이라는 것. 위기감을 느낀 키코 비는 그동안 불편하게 지냈던 황태자 부부에게 만나달라고 먼저 요청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연히 마코 공주의 결혼 및 히사히토의 승계 확정에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미치코 황후는 심지어 키코 비의 손에 키워지고 있는 히사히토까지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히사히토는 장래에 결혼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할머니 미치코 황후나 큰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는 엄청난 압박을 받아 사실상 잡혀오다시피 결혼한 데다, 시동생(후미히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낳으라며 모진 시집살이를 당했다. 그런데 히사히토가 성장했을 때는 사실상 히사히토가 유일한 젊은 남성 황족이 될 것이라 아들 출산에 대한 일본 황실궁내청의 압박이 더더욱 거세질 테니, 그에게 순순히 시집 올 상류층 여자가 있을지나 의문이다. 평범한 여자를 고르자니 황실의 자존심이 허락할지 의문이고. 신붓감으로 거론되는 여자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버리거나 얼른 결혼해버리는 추세가 훨씬 심할 거라 추정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구심을 잡아 히사히토를 좋은 여자와 결혼시켜서 만세일계를 이어가야 하는 중책을 맡아야 하는 키코 비가 결혼 관련 문제를 일으켰으니, 안 좋게 볼 수밖에 없다. 추가 보도에 따르면 어머니 키코 비는 코무로 일가와의 파혼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아버지 후미히토마코 공주의 편을 들고 있다(...)
2018년 6월 29일, 케이의 미국 유학 계획이 발표되었다. 올해 여름부터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지원[4]으로 포덤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며, 3년간 공부할 계획이다. 미국 변호사자격 취득을 목표로 한다고. 이에 따라 결혼이 더 미루어질 수 있다. 일본 황실궁내청은 '두 사람의 결혼 의사는 변함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으나, 두 사람 결혼에 워낙 말이 많으니 적당한 파혼 구실을 만들기, 혹은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려는 도피유학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끊임없이 잡음이 발생하는 마코 공주의 결혼 과정은, 비슷한 시기 결혼을 발표한 1살 위 칠촌 고모 아야코 공주와 대조적이다. 아야코 공주는 어머니 히사코 비가 소개한 모리야 케이(守谷慧)와 18년 10월에 순조롭게 결혼했다. 모리야 케이는 게이오기주쿠대학 졸업 후 일본의 3대 해운회사인[5] 닛폰유센(日本郵船)에서 근무하는, 아야코 공주보다 5살 연상인 남자이다. 그의 어머니 모리야 키미에(守谷季美枝)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했고,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해외에 나갔다가 국경 없는 의사회 사무국 자원봉사를 시작, 1997년 '국경 없는 아이들'이라는 NGO를 창설하여 해외에서 활발한 봉사활동[6]을 펼치다가 현지에서 풍토병을 얻어 사망했다.[7] 아버지 모리야 오사무(守谷治)는 도쿄대학을 졸업했고, 경제산업성 통상무역 전문 고위관료 출신이며, 정년퇴임 후에는 기업체에서 임원을 맡고 있다. 이처럼 본인과 부모 모두 탄탄한 위치이며, 황실 여성과 결혼하기에 적합한 인재라고 평가받았다.
그렇기에 '키코 비히사코 비처럼 자신이 아는 주변 지인들 중에서 적당한 남성을 골라 마코 공주와 엮어서 결혼시켰더라면, 마코 공주와 황실을 위해서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사사건건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일본의 극우 세력조차도, 코무로 케이와의 결혼을 무작정 승낙해서 황실의 체면에 먹칠을 한 키코 비와 황실을 비판하고 있다. 자신이나 자신의 집안 상황이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굳이 황족과 결혼하려고 한 코무로 케이에 대한 비난도 상당하다.
2018년 7월 중순, 마코 공주브라질 순방을 떠났다. 남미 지역 일본인 이민[8] 1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며, 기간은 무려 2주간이다. 명목은 일단 '공무'이지만, 일각에서는 '파혼 후 머리 식히러 해외에 바람 쐬러 다녀오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한다.
2018년 8월 4일 오후에는 코무로 케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키시노노미야 궁저를 방문해서, 브라질 순방에서 8월 2일 돌아온 마코 공주를 비롯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구성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2018년 여름 무렵 보도에 의하면, 마코 공주는 대학시절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대학 시절 친구들에게 "케이가 나 때문에 그런 힘든 일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후미히토의 53세 생일인 2018년 11월 30일에 열릴 기자회견에서, 향후 마코 공주의 결혼과 관련된 답변이 어떤 형태로든 있을 거라는 언론의 추측이 있다. 다만 후미히토 내외가 이 문제를 결론내기 위해서는 마코 공주와 대화가 필요한데, 이야기하려 하면 마코 공주가 입을 닫아 버리기 때문에 대화가 쉽지 않은 상황라고 한다. 여담으로 마코 공주는 아직도 코무로 케이와 연락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후미히토 친왕이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기뻐할 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황족의 결혼에 국민들의 납득 등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일본의 상징 천황제를 표기한 일본 헌법 때문이다. 제1조에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로부터 나온다.'라는 항목이 있다. 그렇기에 일본 황실은 최대한 국민들의 감정을 고려하여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보면, 그동안 후미히토가 큰딸을 편들고 있었기는 해도, 국민과 황실의 결혼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여론을 모른 척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정작 국민 여론은 '파혼'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9] 후미히토 입장에서는 맨 처음 자신의 견해와 결혼 반대 여론의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내 여론만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2.2.1. 과도한 특혜 논란


2018년 8월 7일 코무로 케이가 드디어 미국 포덤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문제는 미국으로 출국하는 코무로 케이의 주변에 황실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나타나서 취재진들을 제지했다는 것. 이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자 또 다시 '왜 고작 '혼약 예정자'에게 굳이 국민의 세금으로 경호원을 붙여야 하는가?' 하며 반발하는 여론이 강해졌다. 비판은 당연히 이러한 말도 안 되는 특혜[10]를 사주했을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정확하게는 키코 비를 향했다.
2018년 8월 8일, 코무로 케이가 미국으로 출국하자마자[11] 일본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키시노미야 부부가 '현 상황에서 노사이(納采) 의식[12][13]을 진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면서, 카요와 케이 모자(母子)에게 연기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궁내청 장관 야마모토 신이치로(山本信一郞)는 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해당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 중입니다. 필요한 지원은 실시할 것이며, 향후 일정은 양가가 대화를 통해서 결정할 것입니다.

궁내청 장관의 해명에 대하여 많은 일본인들은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다. 궁내청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 유독 궁내청 차원에서 제대로 된 의견도 못 내는 주제에, 일개 '약혼 예정자'에 대한 과도한 대우[14]를 계속하며 사건을 키우고 있기 때문.[15] 그래서 일부 일본 국민들은 이번 사건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 나머지 '천황제 무용론'과 '궁내청 무용론'까지 주장하기도 할 정도.
현지 시간으로 8월 13일, 코무로 케이포덤 대학교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시설 관람 등을 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동안의 비판 여론을 감안해서인지, 보도 영상에는 코무로가 대학 관계자로 보이는 미국인 1명과 함께 걸으며 직원이 열어준 문을 통해 대학 내부로 들어가는 장면만 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해당 대학 주변에는 현지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일본 언론들은 '코무로가 미국 로스쿨 동료들에게 키홀더 같은 소소한 선물을 주었다.', '코무로를 두고 핸섬가이라고 평가했다.'는 보도나 하며, 애써 별 일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워낙 코무로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일본 언론의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도 '궁내청이나 후미히토 일가의 여론 조작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들이 대부분.
한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코무로가 8월 4일 아키시노노미야 궁저를 방문했을 때, 코무로가 궁저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사전에 노출되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기자들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타츠미문으로 몰려들었는데, 후미히토는 더 이상의 관심을 피하기 위하여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타츠미문이 아닌 동궁고쇼 정문[16]을 통해서 코무로 케이가 들어오도록 했다. 문제는 이러한 것을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일절 알리지 않고 무단으로 진행[17]했다는 점.
후미히토 내외는 코무로 케이와 150여분 정도 대화했으며, 마코 공주와 결혼하기 위한 조건 2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확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것. 둘째는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채무 문제를 완전한 형태로 청산할 것이었다. 사실 키코 비가 입장을 바꾸어 결혼을 반대하게 된 이유도, 카요의 채무 문제 탓이 컸다.
카요의 채무 문제가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려지자, 키코 비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당사자인 카요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그때마다 카요는 '그것은 채무관계가 아니라 증여받은 것이기에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지만, 카요의 설명과는 달리 사건은 계속해서 커졌다. 심지어 카요가 황실에 지원을 요청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래서 키코 비는 '이런 여자가 내 딸의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결혼을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최근 후미히토는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하여 연말까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일본 황실 내에서도 민간에서처럼 '헤이세이 시대에 벌어진 일은 헤이세이 시대에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조성되어 있는 것과 연관 있어 보인다는 게 일간지 측의 추론.이 최종 결론에 따라서 앞으로의 방향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 때문에, 후미히토 일가는 천황 내외에게 와카를 제출하는 정례 행사도 빼먹었다. 황족들이 제출하는 와카를 통해서 천황 내외는 황족들의 소양 등을 점검한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셋째(히사히토) 임신을 발표하기 직전, 후미히토키코 비는 노골적으로 아기를 갖고 싶다고 노래하는 와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상태라면 노사이 의식을 하지 못한다.'고 코무로 모자에게 언급했다는 보도도, 궁내청포덤 대학교에 '코무로 케이는 마코 공주의 피앙세'라는 항목[18]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것도 모두 키코 비의 소행이라고 한다. 키코 비는 코무로 케이를 사윗감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나, 후미히토마코 공주의 편을 들어 결혼을 찬성하며 키코 비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키코 비는 남편에 맞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언론 등에 이야기를 흘린 것이라고 한다.
결국 2018년 11월 30일 후미히토의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후미히토는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는다면, 코무로 케이와의 노사이 의식은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일본 대부분의 반응은 "이럴 줄 알았다"면서 후미히토와 마코 공주를 비난하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2018년 12월 30일 영국 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을 보다못한 미치코 황후가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과연 미치코 황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해당 언론 보도에서 코무로의 포덤 대학에서의 생활은 변호사 면허가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과목을 듣거나, 교수와 맨투맨으로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을 위한 과외를 받는 등 특혜의 절정을 달리고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19] 일단은 해당 보도에 의하면 2019년 연초 아키시노미야 일가로부터 연하장이나 축하 전화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결혼 진전에 소식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 철없는 커플이 자연스럽게 헤어지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존재했지만...

2.3. 2019년



2.3.1. 갑작스러운 발표


여전히 마코 공주는 가족들의 결혼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고 있으며, 이제는 하다하다 1월 22~23일에 후미히토키코 비가 니이가타 개항 기념 공무를 위하여 출타하고 천황 부부가 1월 공무를 마치고 2월까지 요양 중일 때를 틈타, 코무로는 2019년 1월 22일에 대리 변호사를 통해서 A4 용지 1장 분량으로 문서를 공개했다.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앞으로 사건 수습에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내용을 두고 카요의 원 약혼자가 바로 반박하는 등, 관련 보도가 없어서 침전되었던 해당 사건이 다시 떠올랐다.
일본 국민들은 다시 한 번 분노하여 "빠른 시일 내 파혼을 하라"고 요구하며, 파혼을 거부하는 후미히토마코 공주를 강하게 비판했다. 코무로가 이러한 행동을 할 예정임을 마코 공주는 사전 통보를 받았지만 궁내청이나 후미히토 내외는 전달받지 못했다는 보도가 있어서, 두 사람 사이에서는 여전히 결혼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지만 궁내청이나 후미히토 내외와 의사소통을 하지는 않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2019년 1월 9일자 기사에 따르면 마코 공주는 아버지 후미히토와 공무와 관련된 대화는 나누고 있어도, 어머니 키코 비에 대해선 '결혼을 허락했는데 이제 와서 왜 그러냐'는 생각 때문에 불신이 점점 커져 일체의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는 중이라고 한다. 카코 공주 역시 결혼 문제에 대해 깊게 관여하지 않고 있고, 히사히토 또한 마코 공주와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 궁내청 관계자들 사이에서 결혼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는 와중에 마코 공주가 공무만큼은 진지하게 임하고 있어서 '웬만한 정신력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정신력이 이상한 데에서 발휘되니 문제지만, 공무는 여전히 똑바로 하는 모양.
일명 코무로 문서라고 불리는 이 문서로 인해 일본은 2주가 지나서도 떠들썩하며, 특히나 마코 공주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보도가 되자 비난의 정점을 달리고 있다. 이렇게까지 마코 공주가 전 일본 국민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강하게 고집하는 이유는 일반 사회에 대한 동경과 결혼 후 황실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크고, 가능하면 외국에 나가서 코무로 케이와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라는 게 일본 주간지들의 주요 추측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 문서의 기본 문체가 일반인이 아니라 황족들이 구사할 법한 문법과 그리고 문서 내 사용 단어들 중 하나에 마코 공주가 평상시에 자주 쓰던 표현까지 들어가 있어서, 코무로 문서가 마코 공주가 작성에 개입 혹은 수정을 해준 게 아닌가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거기에 해당 문서를 발표한 대리 변호인은 사태를 수습하는 게 아니라 사태를 키우는 듯한 발언[20]이 나오면서 해당 문서에 대한 파문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2.3.2. 혼약 내정 강조


여전히 마코 공주는 이해할 수 없는 고집과 정신으로 결혼을 고집 중에 그녀의 부모님에게 반발하며 혼약 내정을 강조 중이다.
2018년 11월 아키시노노미야 기자 회견에서 마코 공주는 일부러 "아직 결혼 전이므로..."를 강조하고, 코무로 케이는 유학 중인 포덤 대학교 포털 사이트에 '혼약 내정자'라는 문구를 입력했다.
2019년 2월 보도에 의하면, 올해 7월에 마코 공주는 남미를 순방할 예정이다. 작년에 갔던 브라질에 이어서 페루 등에도 방문할 예정인데, 그 순방을 핑계로 중간 기착지인 미국에서 코무로 케이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마 그때를 전후해서 케이와의 결혼에 대한 마코 공주의 열의가 커져서 지금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2019년 2월 이후 일본 언론들 사이에서는 "마코 공주가 최악의 경우 황실의 연을 모조리 끊어버리고 그대로 코무로 케이와 해외에서 결혼해서 사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황실전범에서 여성 황족의 결혼에 대한 항목이 없다는 점[21]과 만 15세 이상의 내친왕과 여왕은 본인의 의사에 의해서 황족 회의를 거쳐서 황적이탈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물론 마코 공주가 이걸 실제로 선택할 가능성보다는, 과거에도 아버지 후미히토가 "가와시마 키코와의 결혼을 허락받지 못하면, 황실을 떠나 키코와 결혼하여 외국에 나가 살겠다!!"면서 결혼을 강행한 걸 알고 있다는 게 언론 보도를 통해서 확인되었는데, 부모의 전례를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결혼을 강행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미히토는 "노사이 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고만 했지 직접적으로 파혼을 언급하지 않았고, 호적이 없는 일본 황족은 혼인신청서 제출을 하면 궁내청도 반대할 수 없다. 거기다 코무로 케이뉴욕에서 현지 변호사 자격을 딴다고 해도 대형 로펌이 많은 뉴욕에서 취업은 어렵겠지만, 대학대학원에서 미술과 문화재를 공부한 마코 공주는 일류 미술관박물관이 많은 뉴욕에서 쉽게 취업하고 코무로를 내조할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마코 공주가 원하는 황족 후 결혼 생활이 아니냐는 (은근히 비꼬는 듯한 내용의) 기사까지 나왔다.
2019년 3월 17일 보도에 의하면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거기에 최근에 케이의 어머니 카요가 죽은 남편 토시카츠와 시부모의 유산을 두고 폭력단 출신자를 대리인으로 삼아서 친족들과 싸웠다는 보도에 충격을 받아서 그동안 마코 공주가 코무로 집안에 대한 조사를 강하게 거부했고, 그러한 것을 이유로 혼약을 공표하기 전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혼약 예정자 코무로 케이 집안에 대한 조사를 요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한다. 즉,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 중 하나가 아키시노노미야 집안은 마코 공주의 혼약자 집안에 대한 조사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이번 보도를 통해서 풀리게 된 것이다.

2.3.3. 코무로 케이로스쿨 장학금 특혜 문제


코무로는 포덤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할 때, 전액 변제 의무가 없는 특별 장학금을 받아서 갔다. 이에 대해서 많은 일본 국민들은 코무로가 대학에 '마코 공주의 피앙세'라는 내용을 제출한 점[22]을 근거로 장학금 부정 수급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가 없었기에 다른 의혹들과 달리 그렇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4월 2번째 장학금 수여가 확정된 이후인 4월 15일,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도쿄대 법학부 수석에 재무성 관료 출신의 변호사의 이야기가 방송에 소개되었는데, 그런 인재조차도 미국 로스쿨 재학 당시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일절 받지 못하여 굉장히 고생했다고 한다.[23] 이는 미국의 로스쿨 제도가 졸업 후 돈을 많이 버는 프로페셔널 직장인을 양성하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순수학문(인문, 사회, 자연과학)과 이공계 응용과학(공학) 박사 과정 학생에게는 학비는 물론 무난하게 먹고 살 수 있을 수준의 생활비(stipend)[24]를 제공하지만, 어차피 졸업 후 돈을 잘 벌 확률이 높은 로스쿨, MBA, 메디컬 스쿨[25] 재학생에게는 기본적으로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코무로 케이는 별다른 어려움도 없이 생활하고 있고, 포덤 대학교 측은 장학금 신청 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무로에게 연락했다고 한다.[26] 방송에서는 이런 사실들을 공개하면서, "포덤 대학교 측이 학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부마로 거론되고 있는 코무로를 부당하게 입학시킨 게 아니냐?!" 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을 본 일본 국민들은 또 다시 분노를 터트렸다. 해당 방송 이후 궁내청에 "당장 코무로와의 혼약을 파기해라!!", "궁내청은 왜 황실을 이용하는 민간인을 보고 모르는 척하냐?" 등등의 항의 전화가 쇄도하였다고 한다.

3. 레이와 시대



3.1. 2019년


결국 모두의 우려대로 2019년 5월 1일, 마코 공주의 큰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가 신 천황으로 즉위하고 레이와 시대가 개막되었음에도,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질질 이어지고 있다.
그 덕분에 성년 황족으로서 퇴위 의식 및 신 천황 즉위 의식 그리고 5월 4일에 이루어질 신 천황 첫 일반 참관 행사[27]에도 참석할 예정인 것에 대해서 많은 일본 국민들이 상당한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상태.
하지만 TV에 출연하는 인물들 중에서는 마코 공주의 결혼 파기 요구에 대한 반발하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당연히 남 일이라고 막말하는 거 아니라는 등의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상황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유명인들에 의한 마코 공주에 대한 옹호론이 퍼지는 것에 대해서 코너에 몰린 후미히토 일가의 수작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한편 2019년에 들어서 마코 공주는 부모가 말을 걸면 아예 입을 닫아버리고, 카코 공주는 그런 언니를 적극적으로 편들고 키코 비에게 말 걸지 말라고 하며, 두 자매 모두 부모에게 항의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는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가 히사히토 때문에 남녀차별에 시달린 데다 부모가 간섭 또는 방임으로만 키웠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불만이 이번 사건으로 폭발해서 심하게 반항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카코 공주는 둘째라서 피해를 크게 봤다.
마코 공주는 고2 때 단독 공무를 할 정도로 간섭 받으며, 주변으로부터의 기대에 맞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반대로 카코 공주는 비교적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형제들에게 이리저리 치여 많은 피해를 보았다. 유학 중인 언니 대신 공무에 시달리고, 유학을 가고 싶어도 오랫동안 가지 못했다. 어찌어찌 유학을 갔지만, 언니의 결혼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계획하고 있던 1달간의 자유여행을 포기하고 바로 귀국해야 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부모님과 언니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해야만 했다. 자매 모두 불만이겠지만, 특히나 카코 공주 입장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2019년 5월 7일 코무로 케이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변호사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코무로는 변호사가 된다고 한 적 없고, 언론에서 착각한 것뿐이다. 현재 코무로는 러브 플랜을 짜고 있지만 무엇을 할지는 정해진 건 없다."는 등의 발언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일본 전체를 뒤집어버렸다. 이러한 사건이 터지게 되자 일본 국민들의 분노는 한층 강해진 상태이다. 물론 다음 날 변호사가 변명을 하긴 했지만, 그 변명도 제대로 된 게 아니다보니 일본인들의 화만 더욱 돋구어버렸다.
이러한 와중에, 2019년 5월 11일 마코 공주가 단독으로 공무에 참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본래 후미히토 부부가 맡아서 하다가 마코 공주에게 맡긴 3개의 공무 중 하나로, '녹색 감사제(みどりの感謝祭)'라는 행사였다. 그러자 야후 재팬 댓글 대부분은 "결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계속 공무를 하는 마코 공주의 두꺼운 낯짝에 대해서 질렸다!!"는 등 온갖 비난들을 쏟아내고 있다.
천황이 바뀌기 전에 결정된 마코 공주의 7월달 페루, 볼리비아 해외 방문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자 일본 국민들은 결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않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해외 여행이나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격분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과거 해외 방문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LA에서 지낼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 코무로와 밀회를 할 가능성[28]이 높으며, 이 과정에서 마코 공주가 코무로의 아이를 임신해서 결혼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 가능성을 제기한 과거 기사를 언급하면서, 그러한 보도대로 되지 않을지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
2019년 5월 21일 산토리 홀에서 열린 일본-헝가리 수교 150년 기념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부모님과 동생 카코 공주와 방문해서 들었는데, 이에 대한 일본 여론은 상당히 싸늘한 상태이며, 더더욱 해당 공연 사진에서 황사 즉위 이후 급속도로 지쳐보이는 아버지 후미히토 뒤에 앉은 마코 공주의 모습에 일본 국민들은 후안무치에도 정도가 있다면서, '어떤 의미에서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는 천생연분이 아닌가'라는 등 온갖 조롱과 비난을 받고 있다.
2019년 5월 22일 레이와 들어서 첫 지방 공무로 나가노현 단독 방문했는데, 사진에서 살이 찐 걸 두고 분명 작년에 후미히토 내외가 마코 공주가 밥을 잘 먹지 않는 것 같다고 했는데 볼 때마다 살 찐 것처럼 보이는 것이나, 2019년 5월 들어오면서 후미히토 일가의 공무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29] 및 나가노현 단독 공무 과정에서 마코 공주의 초등학생도 할 법한 발언 등을 거론하면서, 결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뻔뻔하게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서 코무로 케이에게 줄 돈 마련하려고 돌아다니냐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사건에 관심이 있고 심각성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야후 재팬에 들어가서 후미히토 일가나 코무로 케이에 대해 일본어로 검색하여 기사나 리얼타임(실시간) 항목에서 번역기를 돌려보자. 기사의 부정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웬만한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 수도 몇백 단위는 기본으로 넘기고, 댓글 내용도 긍정 또는 저들 일가를 옹호하는 내용은 일절 보이지 않고, 부정적인 내용의 댓글에 달리는 공감수도 '''천 단위가 허다하고 심지어 몇몇 기사들은 만 단위가 넘어간다(...)''' 이미 복수의 언론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코 공주의 여성 천황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무려 80%가 넘어간다. 참고로, 히사히토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이코 공주의 천황 등극 지지율이 60% 정도였다. 그야말로 이 사건을 시작으로 후미히토 일가의 숨겨진 면들이 드러나고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거기다 히사히토 살해미수 사건[30]에 이어 아버지 후미히토는 정신적 충격이 심해서 수면제우울증 약 복용까지 하고 있는 상태라서, 사실상 '쓸데 없는 고집 하나 때문에 집안 전체를 파괴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2019년 6월 들어서 후미히토키코 비는 마코 공주가 코무로의 이기적인 태도에 위화감을 가져 파혼하길 바란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황실 전담 기자에 의하면 키코 비는 히사히토를 차기 천황 후계자로서 잘 양육하는 것을 임무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이 히사히토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코 공주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젠가 황실을 떠나서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결혼만은 부모님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의사가 강하며, 그러한 생각 때문에 자신의 아집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키코 비는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를 구 황족이나 구 화족과 혼인시켜서 여성 미야케를 창설해 히사히토를 계속 돕게 하려고자 하는데[31], 부모의 규제와 막대한 수준의 공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하는 마코 공주는 부모는 물론 약 27년동안 쭉 해온 엄청난 공무에 계속 얽매이는 게 싫기 때문에 계속 반항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언니보다 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카코 공주는 더 심할 것으로 보이며, 언니 편을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매와 키코 비의 생각 차이가 결혼 문제에도 불구하고 모녀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마코 공주는 7월 초 폴란드 등을 방문한 부모님 뒤를 이어서 7월 9일부터 2주간 볼라비아, 페루를 공식 방문하며, 그 뒤를 이어서 히사히토와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는 8월 초 부탄으로 사적인 가족 여행을 공무로 포장해서 가며 그 뒤에 카코 공주도 해외 공무를 한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여전히 일본 여론은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은 천황 내외보다 먼저 해외 공무를 핑계로 여행을 하지 말고 우선 가장 큰 문제인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부터 제대로 해결하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한편 코무로 케이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방학이 되어도 일본으로 귀국하지 않는다고 하며, 거기에 여름방학 기간 중 마코 공주는 남미 순방을 마치고 1~2일 정도를 미국에 체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서 모두의 우려대로 미국에서 두 사람의 재회가 예상된다.
6월 22일, 마코 공주가 코무로와의 결혼 연기되기 전에 계획했던 제국호텔에서의 결혼식, 피로연을 포기하고 대신 모교 채플에서 결혼식을 할 생각으로 스케줄을 조정해서 동창생 결혼식에 참석했다. 실제로 만일 채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코무로와 결혼했을 때, 빌리는 데 억 소리 나는 곳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보다 130만엔 정도면 임대가 가능한 모교 채플에서 하는 게 국민들의 반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한데,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황실 경제 회의에서 여성 황족이 결혼으로 하강할 때 품위유지비 차원에서 가지고 가는 금액은 최대치만 정해져있을 뿐 최저치는 설정되지 않았기에, 해당 회의에서 마코 공주의 지참금을 "1엔"으로 정해도 법적 문제가 없다. 참고로 해당 경제회의 참석 인원들은 내각 총리대신, 재무대신, 궁내청 장관, 회계조사원 원장, 상하원 의장 및 부의장들 총 8명으로 구성되는데, 일본 의원 내각제이기에 대부분 정치인들이기에 만일 마코 공주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로 코무로 케이와 결혼을 강행할 경우, 이들이 자기네들의 정치 생명을 걸고서 마코 공주에게 1억엔을 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7월 3일 기사에 의하면 마코 공주가 21일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일본으로 가는 여객기 환승 대기를 위하여 하룻밤 숙박할 예정인데, 만일 로스앤젤레스에 숙박할 경우 코무로가 대학 재학 시절 여러 가지 면에서 도와주었고, 이후 마코 공주와도 안면이 있는 현지 거주 일본인 여성 변호사를 통해 코무로 케이와 밀회를 가질 것 같다는 추측이 나왔다. 참고로 이후 기사에 의하면 여름방학이 시작된 이래로 코무로는 일본 취재진들을 용케 따돌리고 기숙사를 나와서 어딘가에 있으며, 기자들은 현재 코무로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 중이라고 한다.
7월 5일 기사에 의하면 그녀의 부모님인 아키시노노미야 부부가 폴란드 등 해외 공무를 간 기간을 틈타서 코무로 케이와 종전보다 더 빈번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빈번해진 연락은 마코 공주의 공무 복귀 과정에서 코무로와의 밀회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7월 5일 해외 공무를 앞두고 오전 고쿄 궁중삼전을 참배한 후 자택으로 돌아갔다가 오후 1시경 다시 고쿄로 들어가 상황 부부에게 해외 공무를 보고한 다음[32], 토구고쇼에서 천황 내외에게 보고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당초보다 대화 기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원래 해외 공무 전 면담은 공무 보고 후 천황이 몸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만 하고 끝나는 편이다. 그런데도 길어진 것은 마코 공주가 코무로 케이와 결혼을 하고자 하는 결의를 밝혔기 때문이다.
한편 마사코 황후마코 공주의 결혼을 기쁘게 생각하고, 행복을 기원한다는 의견을 밝혔던 만큼 언론 측에서 마코 공주가 결혼에 장애물을 직면했다[33]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황후가 황실로 시집온 후 국제 친선의 꿈을 접었기 때문에, 국제 변호사를 지망하는 코무로 케이를 따라 해외에서 활약하고 싶은 마코 공주의 좌절에 공감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사실 현 시점에서 코무로 케이 관련 문제는 단순한 모친의 채무 문제뿐 아니라 모친이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과 시부모를 대상으로 자살로 위장한 살인이 의심되고, 수상한 연쇄 죽음 이후 코무로 친가 가족들과 상속금을 두고 다툴 때 야쿠자 출신 인물이 개입한 설, 그리고 코무로 본인이 학생 시절 이지메를 가했다는 설까지 더해진 상황이며, 무엇보다 코무로 케이는 아직까지도 현지 변호사가 될지도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코무로 대변인을 맡아서 하는 변호사가 TV 프로그램에 대놓고 이를 밝혀서 한동안 언론과 세간을 심하게 뒤흔들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마사코 황후가 저런 판단을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이기에[34] 일본 여론은 해당 보도 자체를 코무로와의 결혼을 하게 하려는 후미히토의 수작이 아니냐는 평가를 내고 있다.
7월 9일 페루, 볼리비아 공무를 목적으로 하네다 공항에서 전세기 편으로 이동했다.
7월 10일 페루에서 일본인 이주 120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하고 이후 거의 1~2세대 이주민들[35]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공무가 시작되었다.
7월 12일 페루에 있는 일본인들이 세운 자선병원, 요양시설 그리고 일본 동포 박물관 등을 방문하여 격려하였다. 하지만 120주년 기념 행사 당시 보여준 태도 등에 따라서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은 상태이다.
참고로 볼리비아로 가기 전 마추픽추 방문도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자, 역시 공무는 핑계고 코무로 케이를 만나러 가는 김에 공무 및 관광을 하는 거냐는 등의 매우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거기에 일본-페루 이주 120주년 행사에 참여한 마코 공주를 보고 객석 쪽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자, 마코 공주가 기모노를 입은 채로 환호성이 터진 쪽을 향해 나게키스(손키스)를 하는 행동이 영상에 잡혔는데, 그러한 행동은 그동안 마코 공주의 공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의 반감이 상당히 컸다.
현지 시간 7월 13일 마추픽추에 2시간 동안 방문하고, 그 후 마추픽추 근처에 일본인이 촌장을 했던 마을을 방문[36]한 다음, 현지 시간 7월 14일부터 볼리비아 방문에 돌입했다.
현지 시간 7월 15일 볼리비아 대통령과 영접한 이후 대통령궁 옥상으로 올라가서 대통령궁 주변을 볼리비아 대통령과 함께 내려다보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일본 국민들은 일본 내에서 태도 논란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인데 코무로 케이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풀려서 문제 행동들을 반복하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일본 언론은 "소녀처럼 여전히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는 마코 공주는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고 한 사람과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코무로는 "세상을 적으로 돌리고 안 좋은 말을 들어도 마코 공주를 지키겠다"고 밝혔는데, 그러한 말에 마코 공주는 "그런 코무로를 믿겠다"는 입장이니 당분간 파혼은 무리인 것 같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이에 '그렇다고 포기하면 황실에 코무로 케이가 들어가 일본 국민들의 세금을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있는 코무로 전하를 언론 및 궁내청 등이 만들겠다는 소리냐'면서, 마코 공주 주변에서 일단 마코 공주의 컴퓨터 및 휴대전화라도 압수해서 더 이상 세뇌를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다.
7월 31일 보도에 의하면 마코 공주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코무로 케이와 밀회를 한다'는 보도와 달리 5시간 체류로 인해 코무로와 만나지 않았다. 일단 귀국 도중 일본 기자들이 공항에서부터 호텔 로비에도 대기했었으나 코무로를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호텔 로비가 아닌 방향으로 들어갈 수 있고 로비를 통과하더라도 분장을 하면 그만이기에 많은 일본인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이다.
한편 코무로 케이 측에서 여전히 금전적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그동안 "마코님이 결혼할 수 있다면 자기 돈을 써서 코무로가의 금전 문제를 해결해도 좋다"며 블로그에 400만엔을 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고, 일부 친 후미히토 파벌들 역시도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궁내청 직원들이 "그런 제의는 그만두길 바란다"고 만류했다고 한다.[37]
2019년 10월 보도에 의하면 평상시 사이가 좋은 구로다 사야코가 마코 공주를 만나 설득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말을 마코 공주가 무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으로 봐서는 여전히 코무로와 결혼할 생각인 듯하다.
2019년 10월 29일 마코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 대학원을 휴학하고 있었다는 보도가 올라왔다. 휴학 시기와 이유에 대해 궁내청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황실 출입 기자들은 2017년 12월 ~ 2018년 2월 사이 마코 공주의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면서 코무로 케이와의 결혼 연기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휴학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 다른 보도에서는 큰아버지 나루히토의 즉위식 이후 황족들끼리 가진 모임에서 마코 공주는 어머니 키코 비와 여동생 카코 공주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아키시노노미야 궁저의 관계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키코 비마코 공주가 의사소통 불가'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2019년 11월 말 황실 담담 기자와 궁내청 관계자는 코무로 케이가 유학을 통해 시간끌기를 하고 있는 것은 여성 미야케 창설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이후 마코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면 준황족으로서 공무를 하면서 세금으로 편하게 생활할 수 있고, 빚 문제도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3년간 조용히 할 심산으로 미국 유학을 선택한 것이라고 황실 관계자의 말이 실리기도 했다.
2019년 12월 24일 마코 공주가 마사코 황후에게 해외 생활 등에 관하여 여러 가지 상담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마코 공주는 '결혼 문제에 의한 국민들의 비난'이 심해짐에 따라 심리적으로 지쳐하고 있어 똑같이 국민들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 마사코 황후에게 의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3.2. 2020년


결혼이 연기된 지 딱 2년째인 2020년 2월 6일, 마코 공주는 "100% 결혼합니다. 왜 안 되는 것일까요? 주위만 알아주면 언제 어느 때라도 발표합니다."라고 발표했다.
2020년 7월 경 한 주간지 보도에서 코무로 모자가 강하게 증여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마코 공주가 코무로 모자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별 달리 의심하지 않고 이들을 믿는 것도 있지만, 그뿐 아니라 역으로 이들에게 증여라고 주장하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2020년 7월 30일 메이지 덴노 서거 기념 행사에 마코 공주가 불참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궁내청 측은 별 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후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와 결혼하는 문제를 두고 마코 공주가 부모랑 대판 싸운 뒤 부모에게 항의 차원에서 해당 행사에 불참했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일본 네티즌들은 강하게 비판하면서 빨리 하가하던지 아니면 집안 전체가 황족 자리에서 물러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분노했다.
2020년 7월 말 무렵에는 미야케 회의가 열렸다. 보도에 따르면 회의에서 또다시 노부코 비와 히사코 비가 키코 비에게 '공무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였으나 키코 비가 또 다시 무시했다고 한다. 현재 미야케들의 필두인 아키시노노미야에게 방계황족 미카사노미야와 다카마도노미야가 굉장히 반감을 품었다. 황통을 아키시노노미야로 가지고 오려고 하는 야욕에 찬 키코 비에게 이런 상황은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건 그 만큼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다는 증거가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2020년 8월에 동생 카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화제가 되었을 때 키코 비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카코 공주의 남자친구를 저택으로 초대해서 확인했는데, 마코 공주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인 듯하다.
2020년 8월 말 보도에서는 마코 공주가 만일 코무로와의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는 선택도 시야에 두고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이에 대해서 일본 여론은 아버지 후미히토 친왕도 결혼할 때 당시 쇼와 덴노가 반대하자 황적을 이탈해서 살겠다고 강경하게 나왔고, 결국 쇼와 덴노가 붕어하자마자 상중임에도 재빨리 결혼식을 치른 전례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렇게까지 코무로가 좋으면 지금이라도 하가해서 뉴욕으로 가도 아무런 문제 없이 되는데[38] 지금까지 버티는 거 보니 마코 공주는 내심 코무로를 황족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왔을 정도.
2020년 8월 말 보도에서 코무로 카요의 내연남이 작년 여름 대리인 변호사와 만난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내용과 함께 카요에게 준 돈에 대한 청구권이 2020년 11월 자로 소멸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국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관련 소송을 제기할 것을 주장하는 한편, 코무로가 법조인이 되고 싶어 하는데 저렇게 행동함은 법조인이 될 자격이 없다는 증거라는 것은 둘째치고 인간으로서도 최하라고 하면서, 그러한 남자를 결혼 대상자로 선택한 마코 공주도 수준이 그것뿐인 걸 감안하면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는 일반 일본 국민들보다도 더 격식이 낮은 집안인데, 그러한 집안에 고귀한 황통이 넘겨지는 건 반대한다는 등 상당히 날선 반응들도 제법 보인다.
2020년 9월 11일 키코 비의 생일을 맞이한 서면 답변을 통해서 약혼 의식 중단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딸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다는 의견을 표했다. 그동안 주간지 등을 통해서 마코 공주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미지의 키코 비는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이를 우려해서인지 키코 비의 답변이 나오자마자 TV 와이드쇼 등에서는 키코 비의 해당 답변을 칭찬하기 바빴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변호사를 준비한다면서 자신의 법적 문제는 시효 완료로 더 이상 문제 제기 못하도록 시간끌기로 일관하는 코무로 케이가 장기적으로 덴노 가문과 인연이 생기고 최악의 경우 그가 황족의 배우자가 되어 국민들의 세금을 받아 빈둥빈둥 놀 수 있다는 것에 분노했다.
2020년 9월 20일, 마코 공주는 아이코 공주를 통해 마사코 황후에게 자신의 결혼을 지지해 달라는 의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카코 공주는, '아이코랑 황후님을 이 일에 끌어들일 셈이냐.', '아키시노노미야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며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2020년 9월 29일 마코 공주가 컬럼을 통해서 의미심장한 단어를 구사한 것을 두고 사실상 후미히토 부부로부터 코무로와 하는 결혼을 허락받은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와중에 마코 공주가 하가할 때 받는 1억 4천만 원가량은 사실 결혼 축하금이 아니라 하가 후 황족으로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돈으로, 해당 비용은 황실과 상관없는 황실 경제 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이라 후미히토 부부나 마코 공주 본인이 안 받기로 결정해도 어떻게 하기 힘들다는 기사가 나왔다.
일본 국민들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국민들이 코로나 19로 고생하는 가운데 황족이라는 이유로 세금 수억엔 이상을 펑펑쓰고 있는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은 황족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니 전례에도 없는 황사 의식따위는 때려치우고 일가 전체 황족에서 내려오거나 아니면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이 황통을 이을 거면 차라리 황실 자체를 없애버리고 공화제로 가자는 등 종전에는 볼 수 없는 과격한 발언까지 나왔다.
2020년 10월 9일, 한 주간지 보도에서 마코 공주는 코무로와 결혼하고 싶지만 일본에 거주할 경우 국민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을 감안해서 코무로가 거주하는 미국으로 건너갈 각오를 어느 정도 했고, 발표는 일단 아버지 후미히토가 입황사 의식을 치른 다음이라고 추측한다고 밝혔다. 코무로가 한 유학이 표면적으로는 그가 다니던 변호사 사무소에서 미국에 보낸 것인데, '유학 과정에서 들었을 막대한 비용을 회수하려면 해당 사무소에서 일을 해야 할 텐데 그걸 하지 않고 그대로 현지에 눌러살기가 가능한 것인가.'라고 묻는 덧글이 해당 보도에 달린 것들 중 가장 얌전한 축일 정도로 일본인들의 반응이 안 좋다.
2020년 11월 13일 오후 3시, 마코 공주는 '양친의 이해를 얻은 후, 우리의 기분을 전한다.'며 성명을 공개했다.
과거 연기 이유로 밝힌, '행사나 결혼 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해 왔다'고 밝혔다. 또한, '결혼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사람도, 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지만 서로가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의지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존재이며, 결혼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소중하게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며 '예정에 대해서는 지금의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가족과도 상담하며 결혼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스 (일본어) / 「필요한 선택」 마코공주 결혼에 대한 “마음” 공표
이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는 일부 마코 공주를 옹호하는 극우들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격노했다. 황족도 인간인 이상 원하는 상대와 결혼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결혼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이나 신적강하시 받는 약 1억 원 역시도 일본 국민들이 코로나 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일하면서 낸 세금이고, 일본 국민들의 총의 하에 존재하는 일본 황실의 구성원이 일본 국민들의 총의를 무시하는 건 언어도단이므로 지금이라도 빨리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전체가 신적강하를 해서 그 좋아하는 자유를 세금이 아닌 자신들의 힘으로 구가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마코 공주의 아버지이자 황위 계승 1순위인 후미히토 황사는 30일 열린 55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마코 공주와 약혼남 코무로 케이의 결혼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결혼을 앞두고 마코가 받게 될 지참금 성격의 '일시금'에 일본 언론이 주목했다. #1 #2 #3

3.3. 2021년


2021년 2월 나루히토 덴노의 61회 생일을 맞이하여 기자회견이 열리는데, 여기서 궁내청 기자단이 나루히토에게 마코 공주의 결혼문제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질문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현 덴노이자 황족의 수장인 나루히토가 어떠한 의견을 내느냐에 따라 마코 공주의 처지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 그러나 나루히토에게 이러한 질문이 이뤄진다는 것에 대해, "이따위 일"에까지 나루히토가 신경쓰게 만든 마코와 고무로 케이에게 일본인들은 더욱 안 좋은 감정을 표출했다. 그만큼 현재 일본인들에게 덴노 일가는 상당한 고평가를 받는 반면,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는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나루히토의 답변이 공개되었는데, 나루히토는 마코의 결혼에 대해 '''"마코 내친왕이 부모님과 잘 상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길 바란다."'''라며 사실상의 '''반대 의사'''를 밝혔다.기자회견 전문 알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은 '''마코와 고무로가 결혼을 안 하는 것'''이기 때문. 물론 고무로 모자가 지난 날의 채무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되겠지만, 이미 그 시기를 크게 놓쳐버려 단순한 채무 설명 정도로 결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의견이다. 또한 2020년 11월 마코 공주가 결혼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밝히면서 했던 "천황, 황후 폐하와 상황, 상황후 폐하께서도 제 의견을 존중하며 묵묵히 지켜봐주고 계신다."라는 말은 사실상 거짓말임이 판명났다.
한편 나루히토는 생일 기자회견의 첫머리에서 역대 천황들이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시행했던 업적 등을 나열하고, '''황실이라는 것은 항상 국민의 행복을 기원하며, 국민들과 고락(苦樂)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렇게 국민들을 위했고, 또한 앞으로도 국민들을 위해서 존재해야 할 황실에 고무로 따위가 들어올 수는 없다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1] 일본에서는 4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므로, 코무로 케이는 2002년 4월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것이다.[2] 마코 공주의 증조할아버지 쇼와 덴노(히로히토)와 증조할머니 고준 황후(나가코)는, 1923년 관동대지진 때문에 결혼식을 미루었다.[3] 아키코 공주, 요코 공주, 쓰구코 공주, 아야코 공주, 카코 공주, 아이코 공주. 이 중 아야코 공주는 2018년 10월에 순조롭게 결혼했다.[4] 회사 측의 인터뷰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포덤 대학교 로스쿨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으며, 자신들은 코무로가 공부하는 동안 드는 숙식비 정도만 책임질 것이라고 한다. 코무로의 현지 거처는 뉴욕 외곽의 고급 주택가로, 주택 내에는 엘리베이터와 전담 직원이 있다고 한다.[5] MOL(미츠이), NYK(닛폰유센), K-Line(가와사키)을 통상 일본 3대 해운회사로 본다.[6] 히사코 비가 모리야 가문을 알게 된 것도, 아동복지에 관심이 있던 히사코 비가 '국경 없는 아이들'을 알고 정기적으로 후원과 행사 참여를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야코 공주도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아동 복지에 관심이 많아 해외 연수도 다녀왔고, 보육교사 자격도 취득했다. 모리야 케이도 현재 '국경 없는 아이들'의 이사들 중 하나인데, 한 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대기업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히 활동한다고. 이걸 보면 모리야 케이도 아동 복지 활동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그러니 두 사람이 말이 잘 통하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7] 캄보디아를 방문하다가 갑자기 쓰러졌고, 이후 태국으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8] 오래 전부터 일본인들이 남미, 특히 브라질로 상당히 많이 이민했고, 그 때문에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많다.[9] 미루고 있는 동안 이 인터뷰가 나오자 여론이 더욱 험악해졌다. 심지어 "파혼 소리는 죽어도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는 과격한 댓글도 보일 지경.[10] 2018년 고2 여름방학 중에 영국 이튼스쿨로 단기유학을 다녀온 아이코 공주도, 차기 천황의 유일한 자녀인데도 근접 경호 없이 다녀왔다. 마코 공주의 여동생인 카코 공주도 영국 단기유학 당시(2017년 9월~2018년 6월) 근접 경호를 받지 않았다. 이처럼 황족도 특정 상황이 아니면 받지 않는 해외에서의 근접 경호를, 고작 혼약 예정자인 코무로 케이에게 해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다.[11] 이날은 약혼 예정자인 마코 공주가 보이지 않았다. 돗토리 현에 1박 2일로 공무를 갔기 때문. 이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일정을 이렇게 잡지 않았느냐.'고 의심한다.[12] 천황가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절차. 신랑 쪽에서 사람을 골라 신부의 집으로 보내어 도미 암수 1쌍, 청주 6병, 옷감 등 예물을 전달하면, 신부 측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사이 의식을 치른 후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황실의 약혼자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코무로 케이는 아직 노사이 의식을 치르지 못하고 기자회견만 했으므로, 현 상황에서는 '약혼자'가 아니라 '약혼 예정자' 신분에 불과하다. 실제로 유학처인 포덤 대학교에서 코무로를 '마코 공주의 피앙세(약혼자)'라고 표현하자, 곧바로 궁내청에서 '그는 마코 공주의 피앙세가 아니다.'고 반박하며 해당 표현을 삭제하라고 요구하여 관철한 바 있다.[13] 우리나라 전통 결혼 풍속에도 한자로 똑같이 납채(納采)라고 쓰는 절차가 있지만, 천황가의 노사이와는 좀 다르다. 일본 민간풍속에도 노사이와 비슷한 절차가 있고, 유이노(結納)라고 부른다.[14] 코무로 케이에 대한 경호 및 그의 집에 대한 경비에는 그동안의 다른 전례보다 많은 인력들이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족과 결혼할 사람의 거처에 대한 경비는 황실이 아니라 지역 경찰이 일반적으로 담당한다. 비슷한 시기 아야코 공주와 혼약을 발표하고 2018년 8월 12일자로 노사이 의식을 거치면서 공식 약혼자가 된 모리야 케이도 분명히 황실로부터 경호를 받긴 하지만, 경호원은 1~2명 수준이고 그마저도 간접 경호인지 경호원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반면 코무로 케이는 일본에서만 최소한 경호원 4명이 붙었고, 이런 특혜가 유학처인 미국에서도 계속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거기에 한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3년 동안 그의 경호 비용으로 총 약 2억 5천만 엔 이상이 추가적으로 들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불만이 상당히 커지고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간과된 것은, 바로 코무로 일가의 거처 경비 관련 비용. 현재 코무로 케이의 집 주변에는 거주지인 가나가와현 경찰 소속 경관 10여명 가량이 근무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들어가는 돈 역시도 세금이다. 그러니 일본 거처 주변 경호에 드는 금액까지 추가하면, 코무로 일가를 보호하는 데 최소 3년간 5억 엔 이상 세금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15] 일본 내 경호 비용만 최근 2년간 1억 5000만엔의 세금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는 현지 보도가 있었다. 국외까지 합치면 + a로 최소 2~3배 이상은 될 텐데, 카나가와 현 경찰 수 명이 365일 매일 코무로 거주지 앞에서 경호 명목으로 전속 대기하고 있고, 코무로가 로펌에 출근하면 도쿄경시청이 이관받아 퇴근 때까지 또 경찰 수 명이 사무실 앞에서 대기한다고 한다. 궁내청의 정식 파혼 통보가 있는 때까지 자신들 입장에서는 황족에 준하는 신분으로 예우하여 경호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또 이와는 별개로 카나가와 현 경찰 기동대까지 수십 명이 상시적으로 코무로 거주지 인근 일정 거리를 경비 목적으로 순찰하기도 한다고 한다.[16]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게, 황태자 일가뿐만 아니라 현존하고 있는 미야케#s-3 궁저들이 동궁고쇼 부지 내에 있기 때문이다.[17] 동궁고쇼 정문을 통해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건 천황 내외나 황태자 내외가 초대했을 때나 가능하다. 이들 이외의 황족이 초대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긴 하지만, 사전에 황태자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후미히토가 허가를 받았다는 소리는 없다. 하지만 이때 당시 황태자 내외는 고시엔 개회식 참석 차 출타했고, 황태자의 유일한 자녀인 아이코 공주영국 단기유학 중이었기에, 허가를 바로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어떤 일간지에서는 '동궁고쇼 정문이 아니라 그 옆에 붙어 있는 사메가하시문을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사메가하시 문은 궁내청 직원 등이 사용하는 문이다. 이후 언론 보도에 의해, 동궁고쇼 정문으로 코무로를 들여보낸 건 후미히토가 아니라 마코 공주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마코 공주가 사적으로 정문 경비원에게 부탁해서 통과하도록 했다는 것. 이에 대해서 후미히토 내외나 황태자 내외는 알고도 침묵했으나, 미치코 황후는 완곡하게 손녀 마코 공주를 힐책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버지 후미히토의 제멋대로 기질을 마코 공주가 제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18] 애시당초 포덤 대학교에서 해당 언급을 넣게 된 것도, 코무로 케이가 입학 원서에다가 자신을 '혼약 내정자'라고 표기한 게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코무로는 부인했지만, 언론들은 그가 입학 원서에 이러한 뉘앙스로 적었음을 확인했다.[19] 이러한 특혜는 일본 황실에 대한 포덤 대학의 이해 부족에서 기인했다. 포덤 대학에서는 단순히 "코무로 케이가 황족인 마코 공주와 결혼하면, 당연히 케이도 황족이 되겠지?"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일본에서 일반인이 황족이 되기 위해서는 오로지 평민 여자가 황족 남자와 결혼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반대로 평민 남자가 황족 여자와 결혼하면, 황족 여자는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된다. 포덤 대학에서는 이것을 잘 모르는 듯하다.[20] 입을 다물어도 입을 열어도 어치피 욕을 먹을 건 뻔하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걸 감안하고 이 문서를 발표했다는 발언.[21] 여성 황족과 달리 남성 황족의 경우에는 의무화된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다.[22] 키코 비궁내청측의 항의로 삭제하였지만, 포덤 대학 내에서는 코무로를 장래에 황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태.[23] 생활비가 부족한 나머지, 썩은 과일초콜릿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고 한다.[24] 주립대냐 사립대냐, 지역이 대도시냐 시골이냐에 따라 살기 약간 빠듯한 정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썩은 과일과 초콜릿으로 끼니를 때울 수준은 절대 아니다.[25] 미국은 의대가 대학원 과정이다.[26] 다른 보도에 의하면 이러한 설명을 들은 코무로는 자신에게 생활비를 주는 법률 사무소측에도 다음 학기에도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27] 단, 해당 행사에는 신년 기념 행사 때와 달리 나루히토 덴노와 마사코 황후 내외,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 내외, 마코 공주, 카코 공주만 등장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오전에는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 내외, 요코 공주를 제외한 모든 황족들이 참석했고, 오후에는 신 천황 부부, 후미히토 부부, 마코 공주, 카코 공주만 등장했다.[28] 해당 시기에는 코무로가 여름방학인 시기라서 행동이 자유로워진다는 점을 감안해서 나온 것이다. 다만 코무로의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일본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고, 코무로 보도가 계속해서 높은 시청율을 담보해주는 네타로 확정된 상황에서 코무로가 움직이는 순간 기자들도 분명히 특종을 노리고 움직일 것이 확실한 상태이다.[29] 황족으로서 참석해야 하는 공무 이외의 공무들. 유독 후미히토 일가만 정식 공무 이외의 이런 공무들의 비율이 절반 이상이 넘어가는 데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것으로, 해당 소문에 의하면 후미히토 일가가 이러한 것에 집중하는 이유는 해당 공무에 참석하면 행사 주최측으로부터 차량비 등의 이름으로 수천만 엔 가량을 지급 받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공식 공무 이외의 공무라는 것은 박물관이나 오케스트라, 특정 행사 참가 등을 의미한다.[30] 체포된 용의자는 취조 과정에서 천황제에 대한 반감 및 히사히토 진학 등에 격분했다고 하는데, 전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후자의 경우에는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터지면서 부각된 것이라서 사실상 자신 때문에 남동생이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워낙 이상한 구석이 많아서 일각에서는 후미히토 일가의 비난 여론 환기용 조작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다.[31] 여성 미야케론이 (당시 황태자였던) 나루히토 측이 아니라 후미히토 측에서 나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일본 아베 정권이 검토 중인 내친왕 한정 여성 미야케 허용 역시도 후미히토쪽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그 이유는 미혼 내친왕 3명 중 2명이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에 있기 때문.참고로 미카사노미야/다카마도노미야의 여성 황족들은 내친왕보다 격이 한 단계 낮은 여왕.[32] 원래는 상황 부부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으나 마코 공주가 방문을 요청했다.[33] 결혼 전 마사코 황후는 외할아버지가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칫소 사의 회장이었기 때문에 황태자비 후보에서 제외되어 있었다.[34]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는 일개 내친왕 결혼 문제에서 끝난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여성 천황, 여성 미야케 등과 같은 황실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들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인 만큼, 일본 황실을 남편과 함께 앞으로 이끌어야 하는 입장인 마사코 황후가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모를 리가 없다. 거기에다가 미치코 상황후히사코 비와 같이 개념이 있는 황족들은 오래 전부터 코무로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걸 감안할 때, 마사코 황후 역시도 이들과 가까운 입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참고로 일본 황족들은 대체적으로 황실 관련 큰 사건이 있을 때 시종을 시켜서 그러한 사건이 실린 신문이나 주간지를 받아서 바깥에서 이러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 확인하는 편이지만, 미치코 상황후나 키코 비의 경우에는 이러한 것과 달리 본인이 직접 주간지나 인터넷을 확인하는 편이라고 한다.[35] 참석자들은 100세 이상.[36] 이때 당시 해당 촌장의 후손이 안내를 했는데, 해당 인물이 나고야에 있다가 공무 때문에 급히 페루에 간 게 아니냐는 내용이 일본 인터넷에서 떠돌았다.[37] 400만엔의 빚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의심스러운 과정들과 그런 품행의 사람이 천황가와 엮이는 것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 더군다나 그런 식으로 돈 문제를 해결한다고 마코 공주를 결혼시키면 ‘400만엔이 없어 결혼 반대한 천황가’라고 비웃음이나 살 게 뻔한 수순이니.[38] 여성 황족은 하가하고 싶다고 하면 남성 황족과 달리 황실회의를 거칠 필요도 없이 그대로 하가가 가능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