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무로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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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아키히토 덴노의 제1손녀 아키시노노미야 마코 공주의 남자친구. 일본 황실의 정식 약혼식인 납채(納采)[1] 의식을 치르지 않아서 아직 정식 약혼자가 아니다. 마코 공주와 같은 1991년생으로, 생일은 10월 5일이다(33세).
마코 공주와는 국제기독교대학 동창으로, 캠퍼스 커플로 만나 2012년부터 교제했다.
교제 상대인 마코 공주와 더불어 일본 황실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일본 대중의 다수는 황가가 세금으로 안락한 생활을 보내는 만큼, 소위 격조있고 지엄한 모습을 보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틀에서 벗어나 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여 결혼할 자유를 누리려는 모습은 성에 안 찰 수밖에 없다.이 때문에 일본 내부에서는 "아이코 공주를 황태녀로 책봉해 장차 여성 덴노로 세울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 마코 공주와의 약혼
2017년 5월 16일, 아키히토 덴노의 차남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의 장녀 마코 공주가 조만간 코무로 케이와 약혼하여 2018년에 결혼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케이는 도쿄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히토츠바시 대학 대학원에 다니며 경영법무 공부도 하고 있다. 미국 어학연수 경험이 있고 토익이 950점일 정도로 영어도 잘 한다고 한다. 카나가와현에 있는 관광지 쇼난(湘南) 에노시마에서 '바다의 왕자'라는 이름으로 홍보대사 활동을 한 경력도 있어서, 일본 언론에서는 "마코 공주가 '바다의 왕자'와 약혼한다."라고도 보도했다.
케이의 아버지 코무로 토시카츠(小室敏勝)[2] 는 케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2년 3월[3] 에 자살했다.[4] 아버지와 연이어 친할아버지[5] 그리고 친할머니를 연달아서 잃은 이후로 케이는 외할아버지 카쿠다 구니미츠(角田國光), 어머니 코무로 카요(小室佳代)[6] 와 함께 살고 있다.
마코 공주의 아버지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과 어머니 아키시노노미야 키코 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고, 이후 조부모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도 손녀의 결혼을 허락했다. 황실전범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면, 평민 남성과 결혼한 공주는 결혼 후 황족의 신분을 잃고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된다.[7] 마코 공주의 이름도 '아키시노노미야 마코'[8] 에서 '코무로 마코'로 바뀔 것이다.
다만 마코 공주는 시집간 후로도 일본테니스협회 총재 활동은 계속할 예정이다. 현재 황족의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9]
3. 논란
3.1. 황족의 배우자 부적격 논란
상류층 출신이 아닌 코무로 케이를 두고 일본 여론은 처음부터 나빴다. '좋은 가문이거나 부자도 아니고, 게다가 직장도 뚜렷하지 않은 비정규직인데 결혼해도 괜찮을까?' 하는 반응. 또한 케이가 뭔가 수상한 면모가 있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음을 문제 삼았다. 단순히 한부모 가정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 토시카츠가 자살했는데 그 사유가 영 찜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의 공주들도 평민과 결혼하긴 했다. 1947년에 다이쇼 덴노의 직계손들을 제외한 모든 방계 황족들과 화족들이 평민으로 강등당하고(신적강하), 1965년 11월 30일[10] 부터 2006년 9월 6일[11] 까지 황실에서는 줄줄이 공주들만 태어나[12] , 더 이상 황실 내부에서 끼리끼리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주들이 시집간 가문은 말이 평민이지, 다들 뼈대 있고 유복한 가문이었다. 옛 화족 가문이거나, 신관 가문이거나, 대대로 이어지는 유명한 가업이 있는 가문이거나, 시아버지가 고관대작 출신이거나 등등. 그러나 코무로 집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은 코무로 케이의 집안이 평범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아래 내용을 보면 당장 누구와 약혼했더라도 결혼을 망설일만한 조건이다.
코무로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결혼을 한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의 3녀 아야코 공주의 남편이 된 모리야 케이(守谷慧)도 한부모 가정이긴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리야 키미에(守谷季美枝)는 해외에서 NGO 봉사 활동을 하다 풍토병으로 현지에서 사망한 것이고, 사망한 시점도 아들이 성인으로 자라 대기업에 취업한 뒤였다. 키미에는 아들이 아야코 공주와 결혼하기 3년 전인 2015년에 사망했다.
반면 코무로 케이의 아버지 코무로 토시카츠는 한참 젊은 38세에 죽었는데, 사고나 병 때문이라면 그 나이에 죽는 일도 흔하디흔하지만, 사인이 무려 분신자살이다.[13] 게다가 그로부터 1주일 후에 토시카츠의 아버지, 즉 코무로 케이의 할아버지도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코무로 케이의 할머니도 사망했다. 이렇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서 '토시카츠는 자살한 게 아니라 아내 코무로 카요에게 살해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이 정도면 황실은커녕 일반 서민들이라도 결혼을 망설일 만한 뒷배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코무로 집안을 '''문제점이 아주 많은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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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코무로 토시카츠와 카쿠다 카요의 결혼식 사진. 왼쪽의 두 사람은 카요의 아버지 카쿠다 쿠니미츠, 카요의 어머니 카쿠다 야소코(角田八十子).
일본인들이 코무로 집안을 우려하는 것은 마코 공주를 걱정해서라기보다는, 평범 이하인 가정에 시집 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친정(황실)에서 경제적 지원(세금)을 받는 경우를 걱정해서인 듯하다. '일본 황실에서는 어차피 공주가 시집갈 때 지참금 약 1억 엔을 주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으나, 2005년에 결혼한 고모 구로다 사야코의 사례를 보면 1억 엔 정도는 집을 사고 나면 감쪽같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경호 등을 받기에 제법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14] 거기에다가 코무로 케이 본인의 이전 직장과 사생활들에 대해서도 나쁜 이야기들이 많다.
집안 문제를 접어두고 케이 본인의 행적을 따지면, 그는 과거 미쓰비시 UFJ 은행에 입사하여 마루노우치 지점에 배속되었는데, 그곳은 국제기독교대학 정도의 학력으로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평도 있을만큼 나름대로 좋은 직장이다.[15] 그런데 케이는 입사한 후로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결국 얼마 못 가서 퇴사했다고 한다. 당시 직장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케이는 거래처의 중요한 서류를 받아놓고서 실수로 그 서류를 분실[16]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관리부실을 시인하기는커녕 '거래처로부터 그 서류를 받은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며 역으로 거래처에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물론 거래처의 담당직원은 난데없는 책임전가에 분통이 터졌고. 이후 사건은 어떻게 잘 처리되었다고 한다.[17]
은행에서 근무하던 2년여간 코무로 케이는 동료들과 잘 교류하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에 툭하면 멍 때리거나 사소한 실수들을 자주 저질러 동료들 사이에선 평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나마 친하게 지낸 동료에게는 "이러려고 은행에 입사한 게 아닌데."라거나 "나는 조금 더 큰 일을 맡고 싶다." 하고 이야기하면서 불만을 늘어놨다고 한다.
참고로 해당 메가뱅크를 퇴사한 이후에 법과 인연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변호사 사무소에서 사무보조를 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상 후미히토 등 황실에 의한 낙하산으로 보는 시각이 기본적인데 그 이유는 코무로를 언론에서는 파라리걸이라고 부르는 데 실제로 하는 업무는 사실상 법률사무소 사무국 소속 직원으로 서류 복사 등 비법률 업무를 보고 있는 데 그걸 언론들이 알면서 의도적으로 파라리걸이라고 말하면서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있다는 이유.[18]
또한 마코 공주와 약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케이가 클럽에서 화려한 복장 등으로 역시 화려한 복장을 한 여자들 사이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의 사진이 찍힌 적도 있다. 대놓고 학창시절에는 여성 아나운서를 노리고 아나운서 스쿨[19] 에서 활동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사적으로도 코무로 케이가 좋은 남자가 아니라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주간지 등을 통해서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자,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을 나쁘게 보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2019년 3월, 카요가 남편 코무로 토시카츠 및 시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코무로 일가족들과 분쟁이 발생하자 폭력단 즉, 야쿠자 출신자를 대리인으로 내세워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이 사건 이후에는 코무로 가문과 카요 부자는 사실상 절연관계라는 의혹이 불거져 일본 여론은 더욱 부정적이 되었다. 하필 이 시기에는 연예계에서 야쿠자와 연관된 스캔들이 퍼지던 시기였기에 더더욱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언론 보도가 하나 더 나왔다. 코무로가 과거 음식점 체인 기업 따님과 교제하던 도중에 마코 공주와 교제를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양다리 의혹이 카요의 전 남자친구 A씨와 코무로의 국제기독교대학 동기 등의 인터뷰로 나왔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서, 순식간에 일본 인터넷 전체에 확산되었다. 거기에 해당 따님이 가지고 있던 카드를 어떻게든 자기가 소지하면서 마구 쓰다가 따님의 아버지에 의하여 강제로 관계가 끝났다는 이야기까지도 있다.
이런 코무로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꺾지 않는 마코 공주에 대한 일본 대중의 여론은 그야말로 최악, 바닥을 치는 중이다.
코무로 케이는 후술할 결혼 연기 이후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몇 번 하고는 침묵하다가 곧바로 미국으로 도망가서 그 이후부터는 언론을 피해다닌다. 문제의 시발점인 어머니 코무로 카요도, 아들이 유학 간 전후로 해결은 하지 않고 그냥 두문불출할 뿐이다. 그래서 코무로 본인이 인간으로서 문제가 많을뿐더러 마코 공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공주의 배경, 즉 황족이라는 권력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막대한 금액을 노렸을 뿐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어 일본 국민들이 더욱 반감을 품었다. 사실을
결혼 연기 발표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의혹이라고 해봐야 카요의 채무 문제뿐이었기에, 코무로가 기자회견이라도 열어서 상대와 협의하여 언제라도 자력으로 갚겠다고 했다면 결혼 연기가 취소되었을지도 모른다. 경제력 부족은 사실 죄는 아니니까, 그걸로 끝이었으면 본인들이 간절히 원하는데 그냥 인정해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냥 입을 닫아버리고 해외로 도망치니, 카요의 보험 살인 논란이나 야쿠자 개입 논란, 코무로 케이의 왕따 가해자 논란 등이 추가로 튀어나와 결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혼 연기 기한인 2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코무로는 줄곧 유학지인 미국에서 침묵을 지키다가 코로나 19의 영향이 미국 전역을 강타하며 큰 문제를 일으키던 2020년 6월 경에 유창한 영어로 발표하는 음성을 공개했고 이와 비슷한 시점에서 한 잡지에 기고하였는 데 이에 대한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기고문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주창하는 사람이 2년 가까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는 게 기가 차서 말도 안 된다는 반응 일색이였고 코로나 19에 묻히던 감이 있던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에 또 다시 불을 지펴버린 꼴이 나버렸다.
3.2. 연기된 결혼
결국 2018년 2월 6일, '원래 2018년 11월 4일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2020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 번 정한 천황 일가의 결혼식 날짜를 미룬 사례는 지진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 국민들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뜻을 보이기 위한 경우[20] 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과연 진실은…
아니나다를까, 일각에서는 케이의 어머니 카요의 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서 마코 공주의 결혼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궁내청은 '카요에 대한 보도가 결혼 연기와 관련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보도된 것과는) 관련이 없다.", "코무로 측 이야기인 만큼 발언을 자제하겠다." 하고 즉답을 피했다.
한편 카요가 예비 사돈인 일본 황실에 금전적 지원을 대놓고 요청한다는 이야기, 코무로 일가가 신흥종교인지 사이비종교인지를 믿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 대인관계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마코 공주가 결혼상대를 잘못 선택했다.'면서 '결혼을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인터넷에 팽배해졌다.
3.3. 어머니 카요의 남자 문제와 돈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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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요는 케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2년 3월 남편 토시카츠와 사별했다. 이후 카요는 홀로 케이를 키워오다가[21] , 한 남성(이하 A씨)을 만나 깊이 사귀었다. 케이가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한 2010년에는 A씨와 재혼할 계획까지 세웠다. 교제하는 중에 A씨는 카요에게 몇 차례씩 돈을 건넸고, 카요는 이 돈을 생활비 및 아들 케이의 학비로 사용했다.
그러나 카요는 A씨와 재혼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2012년에 헤어졌다. 헤어진 후 A씨는 차와 집도 팔 정도로 금전적으로 문제가 생기자 곤궁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 돈은 빌려준 돈이니 갚으라.'고 요구했으나, 카요와 케이는 '그 돈은 빌려준 돈이 아니고 증여받은 돈이니,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를 보고 원조교제라고 표현하는 일본인들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A씨는 '코무로 집안에 금전적인 여유가 없음을 잘 알기에, 내가 카요에게 준 420만 엔 중에서 생활비를 제외한 비용[22] 만 돌려줘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9년 2월에는 '카요에 대한 폭로책을 작성할 것'이라는 소문이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나왔다. 2019년 3월에 들어서 A씨의 대리인으로 변호사가 아니라 프리랜서 기자를 선임[23] 하는 등, 향후 A씨를 둘러싸고 추가의혹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폭로에 따라서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계속 커질 여지가 높다고 한다.
여담으로 남자친구 A씨의 증언에 의하면, 카요와 사귈 당시에 카요가 '나를 수급자로 하는 생명보험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또한 결혼 약속을 파기하고 헤어질 때는 카요로부터 케이를 양자로 들여 달라는 부탁도 받았다고 한다.[24]
이런 정황을 두고 '카요가 남자친구 A씨에게도 보험사기 살인을 해서 보험금을 받으려 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이러한 수법들은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에 전형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기점으로 약혼자 A씨의 대변인 주장으로는 여전히 변호인과 접촉 중이라는 소리만 나오자,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의혹이 더욱 깊어졌다. 특히 A씨의 대변인이 변호사가 아니라 언론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A씨가 해결하고 싶어하는데, 누군가의 압력으로 방해받는 것 아니냐"는 등 뒷말이 나왔다.
3.4. 미국 유학
2018년 6월 29일, 케이의 미국 유학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해 여름부터 근무하는 회사의 지원으로 포덤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 3년간 공부할 계획이다. 미국 변호사 자격 취득을 목표로 한다고. 이에 따라 결혼을 더 미룰 수도 있다. 일본 황실과 궁내청은 '두 사람의 결혼 의사는 변함이 없다.'고 공식적으로는 밝혔지만, '말이 많은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서 적당한 파혼 구실을 만들기 위해, 혹은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참고로 케이의 미국 로스쿨 입학이라는 것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변호사 자격 취득을 위한 미국 로스쿨 입학이라면 당연히 LSAT[25] 를 쳐서 합격해야 하는데, 이러한 시험을 쳤다는 소식이 없이 정식으로 결혼 연기가 나오자마자 갑작스럽게 미국 로스쿨에 유학 가겠다는 선언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인 2019년 5월 5일 현재까지도 케이가 이러한 시험을 쳤다는 보도는 일절 없어서, 사실상 로스쿨 유학은 황실을 이용해서 얻어낸 특혜입학이 거의 확실하다.[26]
2018년 8월 4일 오후에는 코무로 케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키시노노미야 궁저를 방문해서, 브라질 순방에서 8월 2일 돌아온 마코 공주를 비롯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27] 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마코 공주는 무려 2주간이나 브라질과 남미 지역 순방을 다녀왔는데, 이를 두고도 '말이 해외순방이지, 사실 파혼하고 머리 식히러 다녀온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동년 동월 7일 케이는 유학을 떠났다.
2019년 2월 15일 <직격 라이브 구티!>라는 방송에 의하면 케이는 별다른 문제 없이 로스쿨 수업에 잘 따라가고, 특히 발표 수업 때는 자신감 넘치고 상당히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도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이미지 세탁 아니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참고로 코무로는 단년 과정을 수료하고 있어서 2019년 5월에 과정이 끝나고, 이후 시험은 2019년 7월에 치른다. 이 2개월 동안은 로스쿨 다닐 때보다 더 빡신 공부를 하고도 외국인은 뉴욕주 사법시험 합격율이 40% 이하일 정도로, 상당히 난이도가 높다고 한다. 2019년 3월 7일자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의 대리 변호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해당 보도에 의하면, 뉴욕주 사법시험을 외국 유학생이 치루기 위해서는 사전심사를 통과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모국에서 법학 과정을 2년 이상 수학하거나, 미국 대학 로스쿨에서 기초 과정을 일정기간 이상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무로는 일본에서는 법학 과정을 들은 적이 없고, 단지 변호사 사무실에서 파트타임으로 사무보조나 하던 사람이다. 결국 미국에서 일정기간 동안 전문교육을 받아야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언론 등을 통해서 '코무로 케이가 올해 7월 미국 뉴욕주 사법시험을 치른다.'는 말이 나왔지만, 케이는 올해 사법시험을 치르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그는 심화과정을 듣고 있고, 이것을 끝낸 다음 기초과정으로 전환해서 수강할 것입니다.
2019년 4월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는 다음 학기에도 상환 없는 학교 장학금을 받는다고 한다. 대변인 측은 코무로가 자발적으로 장학금을 취득했다고 설명했지만, 일본 여론은 '황실을 팔아서 능력도 없는 기둥서방이 또 다시 특혜를 받았다!'고 상당히 분노했다. 보도에 따르면 장학금 이외에도 유학 전 근무하던 변호사 사무소에서도 케이에게 500만 엔 정도를 지원했으므로, 케이는 대략 1,100만 엔가량 돈을 받아 부족함 없이 미국에서 지낸다.
2019년 4월 15일 테레비 아사히 모닝쇼는 코무로 케이의 장학금 수여를 두고 특집방송을 했다. 이 방송에는 야마구치 마유[28] 변호사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케이와는 여러 모로 대조적이었다. 야마구치는 도쿄대 법학부 수석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재무성에서 관료로 일하다가 관료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일하던 중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로스쿨에서 공부한 다음 뉴욕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서 일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정말로 그림 같은 경력의 산 증인이다.[29] 그러나 야마구치는 경력이 이처럼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현지 로스쿨에서 어떠한 장학금을 일절 받지 못했다. 공부하느라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도 없어서,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생활했으나 나중에는 썩기 일보 직전인 야채나 초콜릿 따위로 끼니를 때워야 할 정도로 금전적으로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무로는 2,500엔짜리 도시락을 사는 등 상당히 여유로웠고, 포덤 대학교는 본디 장학금 대상자를 2~3주간 조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정 없이 장학금 신청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코무로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소개하며 방송은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보도 이후 한동안 야후재팬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락내렸으며, 분노한 일본 국민들이 궁내청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포덤 대학교 로스쿨이 자격도 부족한 코무로 케이에게 장학금을 준 이유는, (낮은 대학 순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던) 포덤 대학교가 '황실 관계자' 상태인 코무로를 이용해 학교를 홍보해서 순위를 올리려고 하는 수작이 아닌가??
이 와중에 2019년 5월 7일자로 방영된 후지 TV 계열 <바이킹>이라는 방송도 코무로 케이 관련사항을 보도했다. 코무로 케이가 미국에 간 것은 사실상 도피유학이고, 장래계획이 없이 여전히 미래를 고민하며, 변호사가 될 마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국민들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유례 없이 세금을 낭비하면서 한다는 것이,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나 다름없는, 목적이 불분명한 유학이기 때문이다. 이 보도 이후 '후미히토 일가도 결국 정식으로 파혼을 공표하진 않았으나, 암묵적으로 코무로 일가를 완전한 타인으로 취급한다.'는 투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3.5. 과도한 특혜 논란
코무로 케이가 미국으로 출국하는 과정에서 황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나타나 취재진들을 제지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이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자 '왜 고작 혼약예정자에게 굳이 국민의 세금으로 경호원을 붙여야 하는가?' 하는 반발이 나왔다. 비판은 당연히 이러한 말도 안 되는 특혜[30] 를 베풀었을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정확하게는 키코 비를 향했다. [31]
2018년 8월 8일, 코무로 케이가 미국으로 출국하자마자[32] 일본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키시노미야 부부가 "현 상황에서 납채 의식을 진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면서, 카요와 케이 모자(母子)에게 연기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궁내청 장관 야마모토 신이치로(山本信一郎)는 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궁내청 장관의 해명을 두고 많은 일본인들은 상당히 불만스러워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유독 궁내청 차원에서 제대로 된 의견도 못 내는 주제에, 일개 '약혼할 예정인 남자친구'에겐 과도한 대우를 계속하며 사건을 키웠기 때문.해당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 중입니다. 필요한 지원은 실시할 것이며, 향후 일정은 양가가 대화를 통해서 결정할 것입니다.
코무로 케이와 그 집을 경호/경비하는 데에는 기존의 전례보다 많은 인력들을 투입했다.[33] 비슷한 시기 아야코 공주와 혼약을 발표한 모리야 케이[34] 도 황실로부터 경호를 받긴 했지만, 경호원은 1~2명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간접경호인지 겉으로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반면 코무로 케이는 일본에서만 경호원 최소 4명으로부터 대놓고 경호를 받았고, 유학처 미국에서도 받는다고 확인되었다. 게다가 한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3년 동안, 그의 경호 비용으로 총 약 2억 5천만 엔 이상 거액이 추가적으로 들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일본인들은 불만스러워한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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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으로 8월 13일, 코무로 케이가 포덤 대학교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시설관람 등을 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동안의 비판 여론을 감안해서인지, 보도 영상에는 코무로 케이가 대학 관계자로 보이는 미국인 1명과 함께 걸으며 직원이 열어준 문을 통해 대학 내부로 들어가는 장면만 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해당 대학 주변에는 현지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일본 언론들은 "코무로 케이가 미국 로스쿨 동료들에게 키홀더 같은 소소한 선물을 주었다.", "코무로 케이를 두고 핸섬가이라고 평가했다."라는 보도나 하며, 애써 별 일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워낙 코무로 케이의 이미지가 나빠서 이러한 보도를 두고도 '궁내청이나 후미히토 일가가 여론을 조작하려는 것 아니냐.'는 투로 부정적인 반응들이 대부분.
한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코무로 케이가 8월 4일 아키시노노미야 궁저를 방문했을 때, 케이가 궁저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사전에 노출되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기자들은 궁저가 있는 도쿄고쇼를 방문하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타츠미문으로 몰려들었는데, 후미히토는 더 이상의 관심을 피하기 위하여 기자들이 대기하는 타츠미문이 아닌 토구고쇼 정문[36] 을 통해서 케이가 들어오도록 했다. 문제는 이러한 것을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일절 알리지 않고 무단으로 진행[37] 했다는 점.
하지만 이후 '이러한 일을 한 사람은 후미히토가 아니라 마코 공주'라고 보도되었다. 기자들이 타츠미문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코 공주는 도쿄고쇼 정문 경비원에게 사적으로 부탁하여 코무로 케이를 토구고쇼 정문으로 보냈다고 한다. 황태자 내외와 후미히토 내외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침묵하였으나, 할머니 미치코 황후는 우회적으로 맏손녀 마코 공주를 힐난했다고 한다.
후미히토 내외는 궁저를 방문한 코무로 케이와 150여 분 정도 대화했으며, 마코 공주와 결혼하기 위한 조건 2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확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것, 둘째는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채무 문제를 완전한 형태로 청산할 것이었다. 사실 키코 비가 입장을 바꾸어 마코 공주와 케이의 결혼을 반대하게 된 데에도 카요의 채무 문제 탓이 컸다.[38]
후미히토는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하여 연말까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39] 후미히토의 결정에 따라 향후 진행이 달라질 것이다. 일련의 사태 때문에 후미히토 일가는 천황 내외에게 와카[40] 를 제출하는 정례 행사도 빼먹었다.[41]
'이 상태라면 납채 의식을 하지 못한다.'고 코무로 모자에게 언급했다는 보도도, 궁내청이 포덤 대학교에 "코무로 케이는 마코 공주의 피앙세"라는 항목[42] 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것도 모두 키코 비가 결정했다고 한다. 키코 비는 코무로 케이를 사윗감으로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후미히토는 마코 공주의 편을 들어 결혼을 찬성하며 키코 비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래서 키코 비는 남편에 맞서 의견을 관철하기 위하여 언론 등에 이야기를 흘렸다고 한다.
2018년 11월 30일, 후미히토는 자신의 53세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지금 상황에서는 납채 의식을 하지 못하며, 국민들의 환영 없이는 결혼시키지 않겠다." 하고만 밝혔다. 기자회견을 보고 파혼을 원했던 많은 일본 국민들은 후미히토의 결정에 머리를 내저었다.
참고로 미치코 황후[43] 는 '2019년 2월 24일(현 아키히토 덴노 즉위 30주년 기념일) 이전에 사건을 해결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피로한 바 있다.
케이는 2018년 12월 중순부터 2019년 1월 중 연말연초 방학이었기에, 이때에 맞춰 일본으로 돌아와 결혼문제를 논의할 듯 보였다. 그러나 결국 케이는 이 기간에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카나가와현 모처에 있는 카요[44] 의 집에는 지역 경찰관들이 1시간에 1번씩 집 주변을 순회하거나 집 앞에 설치된 폴리스박스에서 대기하다가 나가는 등 행동 이외에는 별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미치코 황후가 원하는 바와 달리, 문제는 결국 헤이세이 시대 안에 해결하지 못했다.
한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후미히토의 생일기념 기자회견 이후, 연락 두절 상태이던 코무로 카요가 갑자기 연락해서 천황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당연히 거부되었다. 카요는 해당 사건을 정면돌파하기 위해서 채무변제 등을 하는 게 아니라 천황과 이야기해서 마코 공주를 어떻게든 며느리로 맞이하려고 하는 듯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코무로 집안을 더욱 나쁘게 볼 뿐만 아니라, 특히 극우들 사이에서는 '황실을 모욕을 하는 꼴을 보니 저치들은 재일'이라는 식으로 망언을 지껄였다.
극우들뿐 아니라 일본 대중들대 대체적으로 '카요의 행동은 황족 후미히토 내외를 무시하는 처사인 동시에, 천황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혹자는 '미치코 황후가 맏손녀의 결혼 문제에 나서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카요의 이런 몰상식한 행동 때문이 아닌가?' 하고 평했다.
거기에 과거 후미히토와 키코 비와의 결혼 과정이 이번 사건과 비슷한 전개[45] 라는 걸 언급하면서, "그 부모의 그 딸"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후 언론 보도에 의하면, 마코 공주 역시도 부모님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국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서라도 결혼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 바 있다.
2019년 6월 21일 6월 말에 예정된 해외 공무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후미히토는 기자들로부터 "작년 11월의 기자 회견에서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해 상응하는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후 그 건에 대해 반 년이 지난 동안 코무로 씨나 마코 공주로부터 무언가 이야기나 연락이 있었는가?"라고 질문을 받았지만, "그 건에 대한 것, 구체적인 것 등은 저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상당히 무책임하게 답변했다. 이 답변은 일본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기자회견 이후 일본 여론은 더욱 후미히토 일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를 막기 위해서 언론들을 동원해서 후미히토 일가에 우호적인 여론을 환기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먹혔다.
3.5.1. 해결되지 않은 어머니의 채무 논란
2019년 1월 21일, 일본 언론은 코무로 케이가 결혼의 가장 큰 문제인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변제 문제를 두고 근시일 내에 발표를 하겠다고 보도했다.
보도 다음날인 22일, 코무로 모자 측의 변호사는 케이가 쓴 A4용지 1장 분량인 문서를 공개했다. 카요의 기존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등,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문서가 공개된 후, 카요의 전 약혼자 A씨는 곧바로 코무로 모자의 주장들을 강하게 반박하였다.
한동안 일본 언론들이 코무로 모자를 보도하지 않아써 잠잠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다시 뜨거워졌다. 발표로부터 불과 하루가 지난 1월 23일 기준으로, 일본야후의 관련 보도 댓글난의 거의 80~90%는 비판의 목소리이다.[46] 황족이라는 인식도 없이 이상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고, 반발을 무시하고 계속 결혼을 강행하려고 고집을 부리는 후미히토와 마코 공주 부녀(父女), 그리고 코무로 케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일본 주류 언론들의 반응 역시, (댓글보다는 다소 완곡하지만) 기본적인 기조는 야후 댓글과 유사한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계속 시간만 끄는 황실을 강하게 탓했다.
애시당초 이를 해결해야 할 장본인인 코무로 카요는 아들이 유학을 간 이후부터 2019년 5월 19일까지 연락두절, 행방불명이다. 코무로 모자는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이 그저 시간을 끌어서 국민들의 관심이 적을 때 기습적으로 마코 공주와 결혼하기를 노리는 듯하다. 그러니 일본인들들 여론은 파혼하지 않는 한 계속 나쁠 것이다.
1월 23일 보도에 의하면, A씨는 코무로 모자의 변호사로부터 만나서 차분하게 변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의향을 문서로 전달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것에 대해서 A씨도 "나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도움을 받아 코무로 모자와 대화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에 카요에게 빌려주었던 돈을 전액 변제받고 싶다." 밝혔다.
코무로 케이는 어릴 때부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립학교에 다니거나 바이올린 교육 등 각종 도련님용 교육들을 받았고, 대학생 때는 해외유학도 다녀왔다. 여기에는 최소 수억 엔 수준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코무로 카요는 홀어머니이고 빵집 알바와 (의문 가득한 자살을 한) 남편 토시카츠의 유족연금이 주 수익원이라, A씨로부터 돈이 없다면서 주기적으로 생활비조로 돈을 받아 썼다. 코무로 케이 역시도 마코 공주와 약혼을 발표하던 날에도 '기자회견장에 갈 택시비가 없다. 궁내청에서 비용을 지불해달라.'고 징징거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카요가, 과연 무슨 돈으로 아들에게 막대한 학비를 들였을까?? 여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일본 언론들도 그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A씨와의 금전적 분쟁을 어떻게든 해결해도, 언론들에 의하여 카요의 또 다른 채무 문제들이 폭로될 것임은 사실상 확정인 상태다.
2019년 2월 11일, "코무로 카요의 이러한 행위에는 증여세 탈세 혹은 유족연금 부정수급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언론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언론에 등장한 법률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이러하다. A씨가 준 게 채무가 아니라 코무로 모자의 주장처럼 '증여'인 경우, 카요는 수십만 엔을 증여세로 내야 한다. 하지만 카요는 그것에 대한 신고를 일본 국세청에 하지 않았기에, 증여라고 결론이나는 순간 국세청이 증여세 징수 기한인 2020년[47] 으로 얼마 남지 않았기에 빠르게 세무조사에 돌입해서 증여세를 받아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만일 이게 증여가 아니라 채무라고 하더라도, A씨와의 내연 관계를 유지하면서 유족 연금을 수급한 건 사실상 일본 유족 연금 부정수급으로 간주될 수 있어서[48] 그동안 받은 금액을 모조리 토해낼 가능성이 높다고.
즉, 코무로 일가가 어느 것을 선택해도, 코무로 집안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일본 정부에 상당한 액수의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것이 채무라고 하면, A씨에게 받은 돈에 대해서 코무로 카요가 갚아야 하는 기한은 채무 발생으로부터 7년이 지난 2020년까지다. 2021년 이후에는 이게 채무라 하더라도 A씨는 카요로부터 채무를 받아낼 수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A씨가 카요로부터 변제를 위한 법적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하지만 2019년 7월 8일 현재까지도 A씨가 이러한 채무 반환 소송을 하지 않았고 일본 정부도 손을 놓았는 데 이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는 내각 등 당국이 범죄자에 대해서 처벌하고 싶어도 황실 눈치를 보고 있다면서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3.5.2. 계속된 파혼 논란
2019년 1월 영국 타임지의 보도[49] 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가 연말 방학에 일본에 오지 못한 것은, 그가 일본으로 올 경우 그나마 잠잠해져 있던 상황이 다시 폭발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농후해지는 데다가, 그의 경호 문제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에 연초에 아키노노미야 일가로부터 케이에게 '''어떠한 공식 연하장이나 공식 전화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50]
2019년 들어 미치코 황후가 나서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차기 천황 계승을 최대한 차분한 분위기에서 치르길 원하며, 첫 손주인 마코 공주의 불행한 결혼을 막고 앞으로 누군가가 또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황실을 악용할 가능성을 막기 위하여 나섰다고 한다. 2019년 5월 1일까지 문제를 완료하는 것이 목표라고.
해당 보도에선 코무로 케이가 포덤 대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공개되었는데, 여러 가지 대단한 특혜를 받고 있었다. 왕실이 존재한 적 없었던 미국인지라 왕실에 환상도 있고, 코무로 케이의 추문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 듯하다. 포덤 대학교 측에서는 원래대로면 법학과 출신 혹은 현지 변호사 자격 없이 미국 변호사 자격을 목표로 하는 학생인 코무로 케이가 절대로 들을 수 없는 과정[51] 을 케이에게 듣게 하거나, 교수와 맨투맨으로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공부하게 해주는 등의 특혜를 제공한다고 한다.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가 결혼하면 마코 공주는 황족 신분을 잃고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되고, 코무로 본인도 쭉 평민 그대로다. 하지만 포덤 대학교 측은 이러한 일본 황실의 법(황실전범)을 모르고, 막연하게 (유럽 왕실들에서 부마가 되듯) 코무로 케이가 황실의 일원이 되는 줄로 오해한다고 한다. 게다가 코무로 케이는 이를 이용하려는 듯 아무런 설명도 없이 대학 측으로부터 여러 가지 특혜를 당당하게 받는다고 한다.
거기에 일본 트위터 등을 통해서 '마코 공주가 2013년 영국 유학 후 친구와 함께 수천만 엔을 들여서 유럽 여행을 갔는데, 그 친구가 바로 코무로 케이였고, 마코 공주가 일본에 도착하기 수일 전에 궁내청 직원용 ID 카드를 착용한 상태로 VIP 라운지를 빠져나왔다.'는 내용이 유포되었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파장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해당 보도에 대해서는 증거로 제시되는 사진이 공항이 아니라 빅사이트였고, 코무로가 착용한 뱃지는 궁내청 뱃지라고 하기보다는 대학시절 유학[52] 을 갔다온 UCLA 뱃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한 반박 때문인지 해당 의혹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참고로 황실전범에 의하면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남성 황족의 결혼과 달리, 여성 황족은 별 다른 조건 없이 천황에게 허가만 받으면 결혼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마코 공주가 궁내청으로부터 증명서류[53] 를 받은 다음 그대로 황실을 이탈해서 코무로와 결혼해도, 법적인 문제는 일절 없다고 한다.
3.5.3. 코무로 문서 발표
후미히토가 한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기뻐할 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하는 발언이 신경 쓰였는지, 2019년 1월 22일 코무로는 하다하다 대리 변호사를 통해서 A4용지 1장 분량으로 문서를 공개했다. 내용은 이전의 주장과 비슷하게 되풀이하고 사건 수습에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명 '코무로 문서'라는 이 문서 때문에 일본 사회는 2주가 지나도록 소란스러웠다.
해당 문서를 통해서 코무로는 일본 사회를 향해 '나는 이러한 논란이 있지만 마코 공주와 결혼할 것이며, 어느 누구도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게 아니냐 것이 세간의 평가. 그동안 코무로 문제를 집중적으로 밝힌 것으로 유명한 여성 주간지 2개사도 2019년 2월 12일에 동시에 이러한 내용으로 기사를 낸 적이 있다.
3.5.4. 코무로 카요의 의혹
사실 코무로 케이의 결혼 문제를 일으킨 것은 대부분 어머니인 코무로 카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건이 터지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많은 의혹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2019년 1월 22일 코무로 문서 발표로 인해 일본 사회가 뒤흔들린 이후, 주간지 등에 의하여 모친 코무로 카요의 탈세 의혹 혹은 유족 연금 부정수급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사실 카요는 수상한 방식으로 죽은 남편 토시카츠의 유족연금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남성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만일 이러한 관계가 내연관계로 인정받을 경우, 일본 법에 의하면 더 이상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국가를 속여서 그동안 연금으로 받은 돈을 다 반환해야 한다. 만일 유족연금 부정 수급을 회피하기 위하여 A씨와의 관계가 내연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할 경우에는 유족연금 부정수급 혐의는 회피하겠지만, 전 약혼자 A씨에게서 받은 돈을 증여로 볼 수 있기에, 결국 약 400만 엔의 증여세로 15~20만 엔가량을 납부할 필요가 있다.[54]
2019년 3월 일본 언론을 통해 토시카츠와 그의 부모의 연이은 죽음에 대한 추가 보도가 나왔다. 해당 보도에 의하면 토시카츠의 자살 후 2주 전후로 그의 부모가 연달아서 사망했는데, 그 이후 토시카츠의 부모 쪽 유산 상속자들에게 코무로 카요의 대리인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유산 관련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조사 결과, 그 문제를 일으킨 카요의 대리인은 조폭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인물이었다고.
해당 보도 직후 여론은 상당히 동요했다. 사실상 코무로 토시카츠와 그 부모가 연달아 죽은 이유가 '코무로 카요가 시가의 유산을 노리고 저지른 범행'이라고 확신하고 '만일 코무로와 마코 공주가 결혼한다면, 온갖 범죄들을 태연자약하게 저지른 카요가 이번에는 황실재산을 노리고 마코 공주나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를 위시로 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기에,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결혼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의 장본인 코무로 카요는 자신 때문에 아들의 혼삿길이 막힐지 모르니 적극적으로 나서도 모자를 판국에 아들이 유학 가기가 무섭게 은신했다. 항간에는 궁내청조차도 카요의 자세한 정황을 몰라서, 미치코 황후가 궁내청 직원들에게 한 마디 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3.6. 레이와 시대 이후
2019년 5월, 일본 연호가 레이와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결혼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불만스러워하는 여론이 압도적 다수인 와중에 TV에 출연한 유명인사들 중 일부가 '코무로와 마코 공주를 결혼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표하자, 일본 국민들은 이런 인사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또한 '갑자기 코무로를 옹호하는 보도가 많아진 데엔 후미히토 일가의 의향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말도 나왔다.
2019년 4월 한 언론사가 코무로 케이가 받는 특혜를 보도했을 때 등장해서 화제가 된 변호사 야마구치 마유는 5월 한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로스쿨의 여름방학 기간 중에는 과정수료 후 활동을 위해서 현지 법률 사무소에서 인턴을 해야 한다.[57]코무로 케이가 진짜로 국제 변호사[55]
로서 활동할 생각이 있다면, 로스쿨 과정을 끝내고 2년간 현지근무를 해야 한다. 그런다면 나는 케이가 마코 공주와 결혼하는 것에 찬성한다. 하지만 미국 로스쿨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56] 내가 아는 동료들이 이 과정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지거나 아내와 이혼하는 걸 자주 봤다.
2019년 5월 7일자 후지 테레비계 정보 프로그램 바이킹(バイキング) '코무로 케이 특집'[58] 방영분에 나온, 코무로 케이의 대리인 변호사가 한 발언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해당 방송에 참여했던 패널들은 모두 기겁하였다.[60] 방송 이후 일본 내에서는 "기둥서방 놈의 자아찾기를 하려고 일본 국민들의 세금[61] 이 쓰이는 것이냐?", "변호사가 될 생각이 없다는 사람에게 장학금을 주고 로스쿨에 다니게 하는 포덤 대학교는 대단하네." 하는 등 안 그래도 나쁜 여론이 더욱 나빠졌다. 방송이 나간 뒤 대변인은 방송 측이 잘못 써줬다면서도 "코무로는 변호사 자격(Juris Doctor) 취득을 목표로 한다고 했지 미국 변호사가 되고자 한 게 아니다." 하고 변명했지만, 이 변명에도 일본인들은 납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 J.D.가 있다고 일본에서 신 사법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코무로는 미국 변호사가 되려고 미국으로 온 게 아니다. 언론들이 코무로가 미국에 온 이유를 '변호사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현재 코무로는 러브 플랜[59]
을 짜고 있으며, 아직까지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대리인이 된 변호사는 코무로 케이 문서 때도 그렇고, 고객 코무로를 옹호해야 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말실수로 오히려 공격의 빌미만 주고 말았다. 그래서 '저런 멍청한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 든 비용은 어디에서 나오냐?'는 조롱도 나왔다. 일본 국민들은 이러한 비용을 대주는 곳이 코무로 카요 아니면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이라고 추측하는데,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62]
2019년 5월 1일 이후부터 각 주간지, 신문, 방송사에서 연일 코무로 특집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지메 가해자 문제 등 코무로 관련 새로운 문제들을 계속 보도했다. 그나마 '마코 공주가 본인이 좋아하는 남성과 결혼할 자유' 등을 이유로 다소 중립적 입장이던 사람들조차도 '도대체 이 집안은 얼마나 막장이라 새로운 문제가 계속 쏟아지냐?' 하고 경악하여 결혼 반대파로 돌아섰다.
야후재팬은 코무로의 빚이 더 늘어나리란 기사를 올렸다. 19년 하반기 장학금은 거의 모든 비용을 포함했던 저번 장학금과 달리 적용범위가 학비 한정이라 전 학기 장학금과 달리 절반 가량으로 줄어드는 데다가, 여름방학 3개월 동안은 기숙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코무로가 이를 회피하고자 학교에 남아 하계과정을 듣는다면, 월 18만 엔 남짓한 기숙사 비용과 과정당 약 25만 엔 정도 되는 과정수료비 등을 포함하여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만일 코무로가 하계과정을 듣지 않고 기숙사에서 나온다면 3개월 동안 지낼 대체숙소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가 있는 곳은 뉴욕이기에 대체숙소 비용도 만만치 않다.[63] 대변인은 "코무로는 여름방학 중에 인턴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일본으로 오지도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2019년 5월 16일 테레비 아사히 와이드쇼에서 100명을 대상으로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 찬반 여부를 묻자, 42명 가량이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키코 비 등이 사주한 조작 아니냐"고 부정적으로 보았다.
2019년 5월 20일(현지시각) 포덤 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 코무로의 자리는 있었지만, 정작 코무로 본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아마 일본 언론들이 진을 친 상황이라 피한 듯하다.[64] 해당 보도 이후 TV 와이드쇼들이 지나친 언론취재 열기를 반성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본인들은 이런 '반성'도 누군가의 압박이 있지 않느냐 여겼다.
2019년 6월 21일, 후미히토 부부는 27일부터 떠나는 해외공무 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결혼문제를 두고 어떤 식으로든 의사를 표명하리라 여겨서 주목을 받았는데, 막상 후미히토는 '딸과 대화를 안 해서 잘 모르겠다.'는 헛소리를 했다. 일본에서는 "코무로 케이가 황실의 약점이라도 잡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실이 왜 저러겠느냐는 것.
2019년 7월, 방학이 되어 코무로 케이는 대학기숙사에서 나온 뒤 종적을 감추었다.[65] 7월 21일 공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미국에서 하룻밤을 보낼 마코 공주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
2019년 8월, 코무로의 대리인 변호사가 모처에서 카요의 전 약혼자 및 대리인과 만났지만, 서로간 입장만 확인하고 다음 교섭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채 끝냈다.
2020년 2월 12일 주간문춘은 코무로 케이가 카요의 자금 문제에 대해서 방송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사실 정정요구를 했다는 걸 보고했다. 그 요구의 이유는 바로, 문제가 된 자금은 '빚'이 아니라 '증여'라는 기존의 논리를 다시 한 번 주장하면서 빚 문제가 아니라 증여 문제로 고쳐달라는 건데, 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금쯤이면 변호사 시험이나 그 이후 인턴에 집중해야 할 시기임에도 태연하게 일본 TV 채널들을 돌려볼 여유가 있다는 걸 증명한 건 물론이고, 가뜩이나 아무런 사건 해결도 되지 않았음에도 아베 신조 정권이 의도적으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을 차기 천황 가문을 만들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 데에 대한 반감 등이 뒤섞여서 비난 일색이다.
3.6.1. 이지메 가해자 논란
2019년 5월 11일, 주간문춘에 코무로 케이의 이지메 가해로 피해를 입은 동급생 B씨의 인터뷰와 영상이 공개되었다.#
B씨의 증언에 따르면, B씨는 코무로 케이와 함께 쿠니타치(国立) 음악대학 부속초등학교[66] 에 다닐 때 축구부에서 같이 활동했다. 그러나 케이의 아버지 코무로 토시카츠[67] 의 사망 이후부터, B씨는 케이에게 계속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B씨의 물건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B씨에게 골키퍼를 강제로 맡게 한 다음 케이가 의도적으로 B씨의 몸을 향해 공을 차거나, 다른 급우들이 보는 앞에서 면전에 대놓고 "학교에 오지 마!" 혹은 "기분 나빠!" 하고 소리치는 식으로 괴롭혔다고 한다.[68] 코무로 케이의 사주하에 다른 반 학생들까지 가해에 동참하였고, 다른 반 교사가 만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괴롭힘은 2004년 3월 케이와 B씨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B씨는 쿠니타치 음대 부속중학교로 내부진학을 포기하고 다른 중학교로 진학했고,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B씨는 마코 공주와 케이의 결혼 보도를 보고 케이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오랜만에 케이와 대화했다. 2018년 3월 문자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중, B씨가 "우리 어머니가 기자들과 (너와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대해) 인터뷰했다"고 말하자, 케이는 그때까지의 말투를 뒤엎고 상당히 정중한 어투로 어머니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이에 B씨는 단도직입적으로 케이에게 문자로 물었다.
케이는 이 문자를 읽씹했다. 그리고 B씨는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밝혔다.초등학교 시절에 네가 나에게 저지른 이지메에 대해서 지금 어떻게 생각하냐?
취재팀은 해당 증언을 확인하고자 당시 쿠니타치 음대 부속초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찾아가 취재했다. 그리고 일부로부터 케이가 B씨를 왕따시킨 것은 사실이란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취재팀은 케이의 법률 대리인인 변호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서 B씨의 증언이 사실인지 확인해달라고 정식으로 요구했으나, 방송 시점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만일 이때 코무로가 사과만 했더라면,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그러나 코무로의 반응에 화가 나서 초등학교 시절 그가 나에게 저지른 학교폭력 사실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 여론은 이러한 보도를 두고 당연히 맹렬하게 반응했다.
왜 그동안 코무로가 모친 부채 문제에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왜 여러 가지 문제가 나오자 특혜성 도피를 했는지 비로소 이해된다.
2020년 12월 23일 주간지에서 코무로가 중학생때 한 여학생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데 참여했다는 보도가 나왔는 데 이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는 사실여부를 떠나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태이며 상세보도가 사실이라면 사실상 코무로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본인도 상상 이상의 성격 파탄자라는 게 확실해지는 상황이다.거기에 이지메 가해자는 정황상 성인이 된 이후에 가정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만일 마코 공주와 결혼할 경우 마코 공주의 신변 위험이 가시화되면서 그동안 마코 공주 결혼 찬성파들도 해당 보도를 보고 마코 공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결혼을 반대하겠다고 나서는 판국.다케다(다케다 츠네야스)가 자신의 SNS 계정에서 "코무로는 사이코패스다!"라고 발언한 것을 당시에는 이해 못했는데, 이번 보도를 보고 코무로가 진짜 사이코패스였음을 실감했다. 내가 그 타케다의 의견에 동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3.6.2. 미국 현지 생활
2019년 6월 한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는 대학으로부터 막대한 금액에 상환 의무 없는 장학금 특혜를 받고 가을부터 법무박사 학위를 받는 'JD과정'이라는 수업을 들을 예정인데, 해당 과정은 미리 예습을 하지않으면 못 따라갈 정도라 여유가 없어서 방학 때 귀국은 못한다 하였다.
미국에는 다른 일본인도 많아 여러 의미로 학교 내에서도 유명인인 코무로는, 학교 카페나 자취방에서 눈에 띄지 않게 지냈다. 생활비가 부족한 모양인지 밀가루나 쌀로 스스로 음식을 해 먹거나, 무료 피자를 주는 수업에 참석해서 피자를 먹고 다시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보도가 나오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변인 변호사가 직접 "코무로는 장학금이나 회사 지원금 등으로 충분한 돈을 받기에 굳이 인턴을 하거나 일본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고 발언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해당 보도를 후미히토 일가가 내보낸 페이크 뉴스로 취급했다.
2019년 12월 보도에 따르면 대학 특별강사로 초청된 변호사에게 강의 후 개별질문을 하는 등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강사진으로 참여한 마사코 황후의 제부 이케다 마사히사(池田祐久)[69] 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코무로가 국제변호사 자격증 취득 후 현지에서 도움받을 인맥을 위해 접촉하려는 것 같다"는 추측이 나왔다.
3.7. 코무로 케이의 언행 논란
장모님이 될 키코 비를 두고 케이는 "귀국자녀이셔서 일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키코 비는 1살부터 7살까지 미국에서 살았고, 초등학생 때도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살다가 중학생 때 귀국해서 어릴 때는 일본어가 서툴러 고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생 때부터 58세인 지금까지 줄곧 일본에서 학교도 다니고 살아온 예비 장모를 두고 사위 되겠다는 남자가 '일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운운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한국에서 결혼할 여자의 집에 가서 예비 장모님께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시네요."라고 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자. 그래서 일본에서는 '저렇게 대놓고 무례한 발언들을 쏟아내는 자와 결혼할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식으로 비판이 쏟아졌다.[70]
인터넷에 공개된 코무로 케이의 과거 작문[71] 도 '일본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평가가 공통적으로 나올 정도로 엉망진창인 탓에, 많은 이들이 '누가 누굴 지적하지?' 라며 비꼬았다.
거기에 공개 기자회견에서 황족 마코 공주를 달로, 자기를 태양으로 지칭하면서 스스로를 황족인 마코 공주보다 잘났다고 해석할 수 있을 만한 발언을 했다. (당시 황후였던) 미치코 상황후나 히사코 비 등은 이런 발언에 놀라 코무로를 부정적으로 봤을 정도이니...
코무로의 대리인 변호사도 궁내청 및 후미히토에게 사전 조율 없이 "코무로와 마코 공주는 일반 연인들처럼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고, 마코 공주는 지금도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언론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등, 여러 가지로 변호사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3.8. 추측
이처럼 코무로의 처신이 워낙 상식 이하라 궁내청 내부와 언론, 일본 국민들은 만일 코무로가 마코 공주와 파혼하면 마코 공주와 관련된 폭로 서적을 써서 혼삿길을 막아버리거나, 아니면 일본 황실로부터 엄청난 위자료를 뜯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 술 더 떠 낯 뜨거운 예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코무로 케이가 마코 공주와의 성관계 영상 혹은 사진을 소지했고, 궁내청도 이런 영상이나 사진의 존재를 경호원 등을 통해서 알아냈기 때문에, 코무로 문제를 강제로 해결하고 싶어도 영상이나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될까 우려해서 못 나서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궁내청은 코무로를 이례적으로 대했다. 일본에서 종종 연예인들의 성관계 상대가 연예인과의 잠자리 사진을 언론사에 팔아버려서 특종 보도되는 사건들이 제법 있었으므로, 이러한 주장이 아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2019년 6월 21일 후미히토가 해외 공무 전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도 있고, 이전에 주간지에서 보도한 '전 약혼자 A씨와의 불법 녹취' 등을 엮어, 코무로가 마코 공주의 성관계 사진 혹은 영상을 만들어 궁내청과 후미히토를 협박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퍼졌다.
4. 영향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때문에 그동안 황태자 일가에 비해 우호적이던 후미히토 일가에 대한 여론이 매우 나빠졌다.
후미히토는 어려서부터 형 나루히토 황태자와 달리 태도도 너무나도 불량하고 난봉꾼[72] 이었으나, 결혼 후 자진해서 황실로 시집 온 아내 키코 비가 노력하여 본인은 별 다른 노력 없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 원하여 황실에 시집 온 키코 비는 시부모 천황 부부에게 싹싹하게 굴었고, 결혼 후 금방 두 딸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를 낳아 매일같이 황궁(고쿄)을 들락거리며 시부모에게 손녀들의 재롱을 보여주었으며, 황족으로서 공무도 부지런히 하고[73] , 특히 41년 만에 황위 계승자(남자) 히사히토를 낳아, 시부모와 국민들로부터 칭찬받았다. 이는 여러 모로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와 대조되었다. 능력 있고 운까지 따라준 야심가 키코 비 덕분에 남편과 자녀들까지도 '''지금껏 분에 넘치는 고평가를 받은 것이다.'''[74]
그러나 이번 결혼 논란으로 일본 내 여론은 크게 반전되었다. 천황 내외의 첫 손주로 태어나 일본인들로부터 온갖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은 마코 공주, 활달한 성격에 언니와 함께 미인이라 인기가 높던 카코 공주, 늦둥이에 남자아이라서 떠받들리던 히사히토 모두 이런저런 문제점[75] 으로 부정적인 말을 듣는다.
반면 이전까지 여러 가지로 홀대받던 황태자 일가를 두고는 차츰 평가가 상당히 좋아졌다. 나루히토 일가에게 코무로는 그야말로 후미히토 일파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역공을 가할 명분을 준 사람이다. 황태자 부부의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는 가쿠슈인 초등과 저학년 때 학교에서 이지메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공격을 받아 상당히 힘들어했으나, 부모가 적극적인 지원해준 덕에 별 탈없이 넘기는 데 성공했다.[76] 초등과 고학년 때부터 성적이 우수하다고 알려졌거니와, 중학생~고등학생이 되면서 차츰 학교에 적응도 잘 하고, 교우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성적도 과거 자폐설을 없애려는 듯 공개한 이후 단 한 번도 떨어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사촌형제들보다 훨씬 낫다.
오랫동안 적응장애[77] 를 이유로 일본인들의 무수한 공격들을 받으면서도 남편의 철저한 보호 속[78] 에서 칩거하던 마사코 황태자비도 차츰 건강을 회복해서 그동안 못하던 각종 공무에 나섰고,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도 차기 황후가 될 인물로 인정하여 적극적으로 챙겼다.
2019년, 아키히토 덴노가 생전퇴위를 하고 장남 나루히토 황태자가 새 천황으로 즉위했다. 나루히토에게는 아들이 없으므로, 황실회의 등을 통하여 나루히토 다음으로는 남동생 후미히토, 후미히토 다음으로는 후미히토의 아들 히사히토가 천황직을 이어받기로 정했다. 그러나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불거진 뒤, 나루히토의 유일한 자녀인 아이코 공주가 차기 덴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났다.[79] 후미히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8년 11월 30일 자신의 53세 생일기념 기자회견에서 형의 천황 즉위식을 두고 세금낭비, 정교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80] 등등, 반대하는 말만 늘어놓았다. 이러니 후미히토 일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빠질 수밖에...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결혼 문제로 일본 황실의 이미지가 대폭 추락하였으니, 아키히토 덴노 부부도 시간이 지날 수록 차남 후미히토 일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이는 향후 후미히토가 천황을 승계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듯하다. 만일 새로 천황이 된 나루히토가 진짜로 자신의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에게 천황직을 물려주려고 생각한다면, 부모가 남동생 일가를 안 좋게 바라봄을 이용해서 아이코 공주 한정으로 허락을 받고, '은퇴한 상황 부부도 인정했으니 너희들도 인정해라.'는 식으로 일본 정부를 우회적으로 압박해서 아키히토의 생전 퇴위 때와 비슷하게 일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전체를 일본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감안하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으니, 별다른 반대 없이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81]
그동안 일본인들은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 부부의 모범적인 행보 때문에 일본 황실을 두고 상당히 호감이 많았고, 황실을 비난하는 일은 삼가자는 암묵적인 여론이 있었다.[82] 그런데, 이번 사건을 통해서 황실 전체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황실을 대놓고 비난하는 일본인들도 상당히 많아졌다고 한다.
사실 후미히토 일가가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코무로 케이와의 혼약을 파기하고, 천황 부부의 결정을 취소한 것[83] 에 대해서 후미히토가 미야케의 궁주이자 마코 공주의 아버지로서 국민들 앞에서 정식으로 사과하고, 이러한 중대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후미히토가 2019년 5월부터 황태자에 준하는 직책으로서 받게 되는 여러가지 혜택들을 한동안 혹은 영구적으로 반납하고[84] 별 문제가 없는 멀쩡한 남자를 골라 마코 공주와 결혼시키면 그만이다. '멀쩡한 보통 남자' 수준만 되어도 코무로 케이와 비교되어 그 정도만 되어도 괜찮다고 할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실, 정확히는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 두 사람 이외에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람인 후미히토는 '두 사람의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헤어지게 하기를 시간을 계속 끌었다.[85] 황실 문제에 너무나도 질린 나머지, 그동안 아키히토 덴노 부부가 노력한 덕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천황제 무용론 등도 일본 내에서 다시 나왔다.[86]
결국 해당 문제는 2019년 5월 1일 이후 생전퇴위 및 새 천황 즉위로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었음에도 해결될 기미를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코무로 일가를 두고 추가적인 문제들[87] 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러한 영향으로 후미히토 일가에게 천황 승계를 시키지 말고 차라리 아이코 공주를 옹립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또한 일본 여론은 여성 천황 즉위 및 여성 미야케 창설[88] 에 많이 우호적이므로, 문제를 일으켜 아키히토 상황 부부가 30여년 이상 노력해 황실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평판을 크게 훼손한 책임을 물어 후미히토 일가 전체가 신적강하해야 한다는 주장[89] 까지 돌아다닌다.
2020년 11월,마코 공주의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결혼 하겠다는 발표, 금전 문제를 제기한 남자가 금전문제를 포기하는 선언[90] ,11월 30일 후미히토의 사실상 결혼 허용 선언 이후에 각종 주간지들에서 코무로 옹호 기사들을 쏟아내는 가운데 몇몇 주간지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알려졌지만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여러가지 코무로 카요 관련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더더욱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데 남편의 소꿉친구를 운명의 상대라고 부르고 케이에게 쇼난의 파파라고 부르라고 하거나[91] 코무로 케이의 부친 사망에 따라서 케이가 다니던 학교 자치회에서 학비를 제공하자 이걸 갚을 생각조차 안 하고 지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남편 사망하고 나서 시어른을 향해 너희들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등...[92] 아무리 봐도 범죄의 냄새가 대놓고 풍기는 상황임에도 일본 내각은 가만히 지켜볼 뿐이라 일반 국민들의 일본 황실에 대한 혐오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태.[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