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공원

 

[image]
자유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
1. 개요
2. 역사
3. 주변 정보
4. 관광지로서의 자유공원
5. 사건사고
6. 교통편
7. 미디어 등장


1. 개요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일대에 있는 공원.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 근대식 공원'''이기도 하다.[1] 해발 69m의 야트막한 산인 응봉산[2] 일대 전역이 자유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2. 역사


이 공원이 조성된 것은 구한말이자 인천항 개항 초기인 1888년이다. 당시 인천지역[3]에는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외국인 거주자들이 꽤 있었는데[4] 이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원이 필요했다. 그 결과 러시아 출신 토목기사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이 공원을 설계했고 꾸준한 확장 작업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꼽히는 탑골공원보다 조성 시기가 9년이나 앞섰기 때문에 이곳이 '''대한민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자 근대식 공원이 맞다.'''
공원 조성 당시 시민들은 이를 각국공원(各國公園)이라고 불렀고 그 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 각국 거류지의 철폐와 함께 공원 관리권이 인천부로 넘어가면서부터 공원 명칭이 서(西)공원으로 바뀌었다.[5] 1945년 해방 후에는 공원 명칭이 만국공원(萬國公園)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명칭인 '자유공원'으로 바뀐 것은 1957년부터다. 1950년 9월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만들었고 공원 남동쪽 부지에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당시 김정렬 인천시장에 의해 공원 명칭이 '자유공원'으로 명명됐다.
공원 내에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비롯해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석정루나 연오정 등 팔각지붕의 전통 형식의 건물도 있다. 특히 석정루나 자유공원 광장에서 내려다보는 인천항 전경이 꽤 멋있는데 석양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매년 12월 31일에 서구 정서진과 월미도 등과 함께 해넘이 행사가 자유공원 광장에서 진행되곤 한다. 과거에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조품 버전이 자유공원 산기슭에 세워지기도 했으나 인천과 자유의 여신상의 관련성이 전혀 없는데다 지나친 친미 사대주의의 온상으로 비춰진다는 이유로 1990년대 중반 철거됐다. 자유공원 광장에는 대형 비둘기집도 있었는데 비둘기 배설물 등의 문제로 인해 비슷한 시기에 없어졌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축이자 한반도 유일의 임시정부였던 한성 임시정부의 수립을 의결한 곳이 바로 이 공원이기 때문이다. 한성 임시정부1919년 4월 23일 24인의 국민대회 13도 대표자들이 이 공원에서 모여 <국민대회 취지서>를 발표하고 <임시정부 선포문>을 선언함으로써 수립되었다. 자유공원 광장에 임시정부 수립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3. 주변 정보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기상 관측소'''인 인천기상대가 공원 북쪽에 있고 공원의 동쪽에는 인천의 공립 명문 고교로 알려진 제물포고등학교[6]인일여자고등학교[7]가 있다.[8] 공원의 남쪽에는 개신교 계열 미션스쿨인 인성초등학교, 인성여자중학교, 인성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자유공원 입구에서 인성여중고 쪽으로 가는 길에는 '홍예문'이라는 명칭의 큰 돌문이 있다. 이 문은 당시 인천 중앙동과 관동 등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생긴 것으로 이들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산허리를 자르고 세웠다.
공원 바로 아랫편에 1984년까지 옛 인천시청 청사로 쓰였던 중구청 청사가 있고 근방에는 남부교육지원청 청사도 있다.
서쪽에는 차이나타운이 있고, 북쪽에는 동화마을이 있다. 그래서 관광객이나 현장체험학습 온 학생들이 자유공원과 같이 세트로 다니기도 한다.
공원 입구에서 동인천역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인하대학교 후문가와 더불어 인천에서 가성비 최강의 안주를 판매하는 곳으로 알려진 '동인천 삼치거리'도 있다. 웬만한 안주 단품 가격이 1만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들이 자주 찾는다. 최근에는 이곳의 명성이 방송이나 블로거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서울에서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안주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혜자 수준의 가격대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이 골목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특정 금요일을 선정해 인천탁주의 막걸리 소성주와 제휴해서 막걸리 1병당 1000원에 파는 '막걸리 데이'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4. 관광지로서의 자유공원


최근에는 인천 중구에서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관광코스로 유명하다. 자유공원 안쪽 산책로[9] 주변에는 적잖은 규모로 벚꽃이 심어져 있는데 주변의 월미공원과 더불어 매년 봄철이면 벚꽃 풍경을 보기 위한 인파로 붐빈다. 공원 산책로는 평소에도 주변 주민들의 조깅이나 산책을 위한 용도로 쓰이며 주말에는 이 근처를 도보로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매우 많다. 자유공원의 서쪽은 차이나타운으로 연결되고 차이나타운으로 연결되는 길에는 삼국지의 내용을 각 에피소드별로 나눠서 벽화에 그린 '삼국지 벽화거리'도 있다.[10] 북쪽의 송월장로교회 밑으로는 '송월동 동화마을'과 연결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자유공원을 거쳐가게 된다.
개화기에 조성된 공원이자 마을인 만큼 구한말에 세워진 각종 건축물이나 종교시설도 이곳의 근방에 모두 모여 있다. 근대 세계 문화의 교류 현장으로 활용된 옛 제물포 구락부 청사가[11] 자유공원 광장 바로 아래에 있고 과거 인천시장의 공관으로 쓰였던 한옥은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으로 쓰이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구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12]이나 구 일본18은행 인천지점[13], 구 일본58은행 인천지점[14] 등 오래된 일본식 건축물도 공원 바로 밑에 있다.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인 내리교회와 성공회 성당인 대한성공회 내동성당 역시 이 공원 근방에 있다. 인천지역 천주교의 총본산인 답동성당도 근처에 있지만 여기는 자유공원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동전을 넣고 배팅을 할 수 있는 야구 연습장도 있는데 '자유공원 박찬호'(...)라고 불리는 괴랄한 그림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만 이곳의 피칭머신에서 나오는 공의 속도는 박찬호의 명성과 달리 상당히 느리다. 500원을 넣으면 공이 15개 나온다. 인근 월미도 야구 연습장의 1회 이용금액이 1000원인 것을 생각하면 착한 금액이다.

5. 사건사고


2018년 반미단체 목사가 맥아더 동상에 방화를 저질렀고, 3개월 뒤에 다시 같은 인물이 맥아더 동상 화형식이라면서 방화했다. 첫 번째 방화 당시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에 불을 질렀기에 공공의 안전이 침해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해서 방화죄가 아니라 집시법 혐의를 받았었고, 경찰 조사 후 풀려났었다. 두 번째도 비슷해서 역시 방화죄보다는 집시법 위반 및 재물손괴로 혐의가 걸렸다고 한다. 기사

6. 교통편


  • 수도권 전철 1호선, 수인·분당선 인천역 - 차이나타운 언덕길을 그대로 직진해서 올라가면 '선린문'이라는 이름의 패루가 나오는데 이 패루 뒤가 자유공원 산책로다.
  • 수도권 전철 1호선 동인천역 - 대한서림 입구에서 계속 직진해서 올라가면 소방서 앞에서 양갈래 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가면 홍예문을 거쳐 신포동 쪽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자유공원으로 연결된다.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앞에서 서술한 '자유공원 박찬호' 그림이 있는 야구 연습장을 만나게 된다.

7. 미디어 등장


맥아더 동상이 위치하고 당시 시대가 시대다보니 대한뉴스에서 자주 등장한 장소 중 하나다.
자유공원이 있는 지역구의 국회의원인 배준영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이 곳에서 선거송을 촬영했다. 하지만 안상수에 밀려 선거에서 떨어지고 4년 뒤 안상수가 지역구를 이동해서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다.

[1] 탑골공원이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자유공원의 조성 연도가 더 빠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 내용 참고.[2] '오포산(午砲山)'이라는 명칭도 있는데 구한말 당시 매일 정오마다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포를 응봉산 정상에서 발사한 연유로 생긴 명칭이다. 정오마다 포를 쏘던 '오포제'는 1925년 폐지됐다.[3] 이 당시 인천은 현재의 중구 전역과 동구 일부 지역으로 한정됐다.[4] 우리나라에서 서양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 인천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개신교가 처음 전파된 곳도 인천이며 야구축구 등 서양 스포츠도 인천에서 시작됐다.[5] 당시 이 공원의 동편에는 일본 신사 등을 세워놓은 '동(東)공원'이 있었다고 한다. 동공원의 반대 방향에 있어서 서공원이 된 것.[6] 인천 최초의 공설운동장으로 불리는 '웃터골'이 바로 이곳이다. 인천 체육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곳이기도 하다. 웃터골 운동장이 숭의동 공설운동장(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옮겨진 뒤 인천중학교가 세워졌고 제물포고등학교가 나중에 생겼다. 그러나 인천중학교는 1970년대 중학교 평준화 정책에 의해 폐교됐고 제물포고등학교만 이 자리에 남게 됐다. 2000년대 초 연수동에 재개교한 인천중학교는 옛 인천중의 역사를 잇고 있다.[7] 인천여자고등학교와 더불어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고등학교. 황신혜가 이 학교 출신으로 유명하다. 소문에 의하면 고교 재학 시절부터 황신혜의 외모가 워낙 출중해서 그녀의 얼굴을 보려던 남학생들의 인파가 인일여고 교문 주변에 자주 몰렸다는 썰이 있다.[8] 한때 이들 학교가 주변 학령 인구의 감소와 교육 환경 악화를 이유로 자유공원 기슭을 떠나 송도국제도시로 교사(校舍) 이전을 검토했지만 지역 여론의 반대로 사실상 백지화됐다.[9] 산책로 한 바퀴의 길이는 약 600m 정도 된다.[10] 삼국지 벽화거리의 뒤편에는 수도권에 딱 두 개인 화교학교가 있다. 한성화교학교보다 학교 규모는 작은 편.[11] 이 건물은 2001년 방송된 SBS 드라마스페셜 '피아노'와도 연관돼 있는데 극중 신혜림(조민수 분)이 운영했던 피아노학원 건물이 바로 이 건물이다. 이 건물 외에도 주변의 신포동과 송현동 등지에서 드라마가 주로 촬영됐다. 드라마의 줄거리 상 피아노학원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12] 현 인천개항박물관[13] 현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14] 현재는 요식업단체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