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버 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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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BA의 농구선수. NBA의 저니맨 중 한명이다.
2. NBA 입성전
웨스트 체스터 고등학교 2학년 때, 팀 동료였던 핫산 아담스, 브랜든 히스, 바비 브라운과 함께 뛰어 캘리포니아 주 선수권을 획득했으며, UCLA로 진학해 25경기를 출전하며 11.6득점, 6.5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하였다.
3. NBA 입성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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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NBA 드래프트를 신청해 전체 43순위로 뉴욕 닉스에 지명되어 역사상 최연소 신인 선수가 된 아리자는 첫 시즌 래리 브라운 감독의 지휘 아래, 80경기[2] 를 출전했고[3] 이 중 12경기를 선발로 나갔지만, 이듬 해인 2005년에는 데이비드 리가 드래프트로 지명이 되자 출전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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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1일, 앤퍼니 하더웨이와 함께 스티브 프란시스와의 트레이드 형식으로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을 결정했다. 트레이드 된 후에는 21경기를 나가 평균 4.7개의 득점을 기록했다. 다음 해인 2006-07시즌에는 57경기를 나가 7경기를 선발로 출전해 8.9득점과 4.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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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0일에는 브라이언 쿡, 모리스 에반스와의 트레이드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이적하였다. 다음해 1월에 오른발 골절상을 입었다가 5월에 열린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복귀하였지만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우승하지 못했다. 2008-09시즌에는 팀의 중심선수로 82경기를 모두 출전하기도 했으며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결승 1차전에서 천시 빌럽스의 인바운드 패스 스틸과 3차전에서 1분을 남긴 가운데 카멜로 앤서니에게 패스한 케니언 마틴의 공을 뺏은 등의 활약을 내세우며 파이널 진출에 기여했다. 2009년 파이널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 4차전 때 전반에 6개의 슛이 불발되었지만 3쿼터에서 13득점을 기록하는 등 연장전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다음 5차전에서 히도 터콜루와 치열한 매치업을 벌이다가 서로 이마를 붙인 상태로 말다툼을 일으켜 테크니컬 파울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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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로 풀려나면서 휴스턴 로키츠과 계약했다. 이때의 일화가 필 잭슨의 자서전 Eleven Rings에 소개되었다. 레이커스 프론트는 아리자와 재계약하길 원했지만, 아리자의 에이전트와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단장 미치 컵첵이 메타 월드 피스(당시에는 론 아테스트)와 계약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오가는 중간에 메타 월드 피스가 멋대로 트위터에 레이커스행을 밝혀버렸고, 이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아리자가 휴스턴과 계약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선수의 계약 규모가 $5.8M로 완전히 같았다는 점. 하지만 휴스턴에서 어거지로 많은 공격 부담을 감내하다 야투율이 3할대로 하락했고, 1년만에 뉴올리언스 호네츠로 트레이드된다. 호네츠에서도 수비는 좋았으나 활약은 애매했고, 호네츠가 크리스 폴을 내보내고 리빌딩을 시작하면서 워싱턴 위저즈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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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즈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롤을 맡으며 외곽슛이 눈에 띄게 좋아진 아리자는 FA로이드를 맞은 2014년에 3점슛 성공률이 40%를 넘어가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휴스턴이 발빠르게 손을 써 4년 $32M의 계약을 맺으며 워싱턴-뉴올리언스-휴스턴 삼각딜 과정을 통해 휴스턴에 돌아온다.
휴스턴에서는 넓은 수비범위로 인해 중심적인 선수로 활용되고 있다. 아리자 - 하든 - 터커 라인은 이 시기 굉장히 무서운 조합이었다. 신인 센터 클린트 카펠라의 성장까지 더해지면서 팀은 날개를 단 듯 날아오른다.
2017-18 시즌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상대로 크게 부진하여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17-18 정규시즌 11.7점/4.4리바운드/1.6어시스트로 FG 41.2% (4.0/9.7), 3P 36.8% (2.5/6.9) 의 성적을 보여준 것에 비해,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8.9점/3.6리바운드/1.7어시스트, FG 33.3% (21/63), 3P 20% (7/35) 에 그쳤다. 특히 승부가 결정되는 7차전에서 3점슛 9개를 시도해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패배의 원인으로 골무국, 마이크 댄토니의 극단적인 로테이션 및 라이언 앤더슨 기용 등을 꼽으나, 아리자와 정규시즌 MVP 제임스 하든의 부진 또한 큰 요소였다.
휴스턴에서 핵심 윙맨으로 4년간 좋은 활약을 펼친 후 2018년 6월 30일 아리자는 피닉스 선즈와 1년 15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현지시각 2018년 12월 15일 피닉스는 켈리 우브레 주니어, 오스틴 리버스를 받는 조건으로 아리자를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를 했다.
워싱턴과 계약이 끝난 후 2019-20 시즌을 앞두고 새크라멘토와 2년 25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시즌 중반 윙 디펜더가 시급했던 포틀랜드가 앤서니 톨리버와 켄트 베이즈모어를 내주며 아리자를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포틀랜드의 바닥난 수비력을 쏠쏠히 메우는 활약을 해 주었으나 올랜도 버블에는 가족사와 관련된 문제로 인해 들어가지 못했다. 기적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모든 기력을 소모한 채 레이커스에게 1라운드에서 무너졌던 포틀랜드의 모습을 보며 아리자를 아쉬워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2020-21시즌 트레이드 시장이 열리자마자 로버트 코빙턴, 2020년 1라운드픽, 2021년 1라운드 보호픽의 반대 급부로 휴스턴으로 넘어갔다. 불과 몇 주전에 휴스턴 생활에 대해 비판했는데...[4] 어차피 휴스턴도 리빌딩을 시작한 지라 이틀 후[5] 2020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 지명권과 함께 디트로이트로 이적하며 휴스턴은 미래 1라운드 지명권을 받는다. 이후, 또 이틀만에 다시 트레이드되어 오클라호마로 이적하였다. 허나 지명권 수집에 집중하는 썬더의 리빌딩 기조 아래 20/21시즌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그가 선수단에 끝까지 남을 지는 모르나, 전 시즌부터 이어졌던 가족사 관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오클라호마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선수단에 합류하지 않은 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헌데 경기에 나오지 않는 동안 브루클린 네츠의 코치인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훈련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때문에 브루클린으로 이적하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정석적인 3&D 스몰포워드'''
'''스스로 폭발력있는 공격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갖추진 팀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3&D의 표본''' [6]
2~4번까지 막을 수 있는 수비 범용성이 장점인 선수다. 데뷔 초부터 수비력은 준수했지만 외곽슛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였다. 데뷔 초 4년동안은 평득 6.9점, 3점슛 29.9%로 그냥 벤치 롤 플레이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위치였다. 하지만 2009-10 시즌부터 휴스턴에 입단했고, 스타팅 멤버로 뛰게 되면서 공격력이 크게 개선되었다. 공격에서 자신감이 생긴 덕분에 많은 슛을 던지기 시작했고 평균 14.9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연차가 쌓임에 따라 영점을 잡은 건지 2012-13 시즌부터는 눈에 띄게 3점 정확도가 향상되었다. 그 때부터 비로소 리그 상위권의 3&D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2013-14 시즌에는 3점슛 성공률이 무려 40.7%를 기록했을 정도다. 2017-18 시즌부터는 돌파 빈도가 높아졌다. 피닉스 입단 후에는 공격을 조립할 선수가 마땅히 없어서 어시스트 비율이 크게 늘었다.[7][8]
5. 여담
팀을 대단히 많이 옮겨다닌 선수로, NBA 저니맨 기록 상 역대 최다인 12개 팀까지 한 곳 남았다. 특이한 점은 아리자의 이적이 대부분 자의가 아닌 트레이드로 성사되었다는 점으로, 20-21 시즌 개막 전의 연속 트레이드로 인하여 아리자는 NBA 역사상 가장 많이 트레이드된 선수(10회)가 되었다.[9]
[1] $1,800,000 방출할 때 오클라호마 부담[2] 그렉 앤서니에 이어 최다출장 2위[3] 하승진의 폭풍 2도움 경기 당시 상대팀 선수로 출장하기도 했다.[4] 휴스턴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인터뷰했었다.[5] NBA 규정상 팀에 입단한 선수는 이틀 후부터 트레이드될 수 있다.[6] 휴스턴에서 그 이상의 롤을 맡았을 때는 신통치 않았다.[7] 휴스턴 시절 하든이 하던 드라이브&킥 전략을 아리자가 맡아야 할 정도다.[8] 데빈 부커외에는 제대로 된 가드 자원이 없고, 부커마저도 리딩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아니다.[9] 기존에는 9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