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계

 

廢鷄
영계의 반대 의미.
고기를 먹기 위해 길러지는 육계가 아닌 알을 먹기 위해 키우는 이 늙어서[1] 알을 못 낳게 되면 잡는 닭이다. 이름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늙은 건 아니고, 그냥 알 낳는 게 더딘 폐경기에 가까운 닭. 수탉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는 없어서 늙어서 고자가 된 닭을 뜻하기도 한다.
늙은데다가 식용으로 키워진 닭도 아닌 것답게 엄청나게 질기기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닭이기도 하다. 제대로 조리할 줄 모르고 만들었다가는 이빨이 제대로 안 들어갈 정도. 값도 매우 싸서 한 마리에 단돈 3000원 정도 하기 때문에 군대나 야구장[2]에서 볼 수 있는 그 질긴 닭고기도 폐계닭으로 만드는 경우가 꽤 있다. 다만, 군대의 경우 취사병의 조리 실패도 감안해야 한다.
너무 질긴 탓에 통닭으로는 거의 먹을 수가 없고 오직 간장에 푹 졸이거나 옻닭, 삼계탕, 백숙 등을 해 먹어야 되는데,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익히려면 많은 시간을 푹 고아야 한다.[3] 푹 고으면 아주 쫄깃하고 맛이 좋다. 한 달 혹은 그 이하로 키운 후 출하하는 작은 일반영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맛이 있기에, 이 맛을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작은 영계병아리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닭도리탕처럼 볶음을 해서 먹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닭을 푹 삶는 건 같다. 양념을 넣고 볶느냐 아니냐의 차이.[4] 평택지역의 명물 음식인 폐계닭은 이름만 들으면 갸우뚱할지 몰라도 맛보게 되면 다시 찾게 된다고 하는 마성의 요리라고 한다. 돼지족발과 식감이 제법 비슷하다. 평택 폐계닭 요리는 양계산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1970년대에 생겨났으며, 평택시와 안성시 두 지역의 양계장에서 알을 낳고 늙은 암탉을 요리해서 먹기 위해 생겨났다고 한다.
워낙 질겨서 일반 닭고기를 생각하고 어설프게 조리했다간 상 위에 고무덩어리를 차려놓는 격이지만, 육수 뽑는 데는 최고의 재료. 식객 평양냉면 편에서 어중간한 양식용 보단 차라리 노계(폐계)를 쓰는 게 더 낫다는 대사가 나온다. 닭곰탕의 경우에는 폐계를 써야만 제 맛이 나온다고 할 정도이며 폐계가 아닌 적당한 닭을 쓰면 고기가 흐물흐물해서 거의 씹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찜닭요리인 코코뱅도 늙어서 질기고 비린내나는 폐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썰이 있다. 이쪽은 닭을 넣고 포도주를 두세병 정도 때려박은 뒤에 볶은 야채와 각종 향신료를 넣고 푹 끓이니 닭비린내가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다. 닭의 육질도 엄청 연해지고.
사실 유통가격이 싼 닭인 탓에 평이 나빠서 그렇지 속지만 않고 알고 사서 용도에 맞게만 요리해 먹으면 식품으로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상당히 나쁜 이미지가 덧씌워진 케이스다. 치킨이 작으면 서양에선 안 먹는 어린 닭 쓴다며 욕하고, 그렇다고 큰 닭을 쓰면 폐계라고 욕하고... 마치 돼지고기는 목살과 삼겹살만 쳐주고 쇠고기는 1+등급 이상만 먹을 만 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이 폐계. 쌩쌩한 젊은 닭처럼 보여 폐계라는 설정이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상술했듯 폐계는 늙은 닭(노계)가 아니며, 나이는 2~5년 생을 넘기지 않는다.
소설 완득이에서는 완득이 가족이 가끔 먹는 모습이 나온다. 주인공인 도완득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며, 어머니도 이를 알고 폐계로 백숙을 만들었는데, 이를 담임선생님이 먹어보고는 너무 질기다고 불평이 나온다. 그런데 소설 끝부분에 다른 닭을 사오자 너무 씹는 맛이 없다고 한다.
사람이 먹는 거 외에도 동물원에 납품되기도 한다고 한다. 살아 있는 야생동물을 식량으로 맹수들에게 구해다주기 힘든 동물원 특성상 단가가 저렴하면서도 어쨌든 고기인 이런 녀석들을 먹이로 준다는 듯.[5]

[1] 사실 늙었다고 치기도 뭣한게, 보통 폐계로 취급되는 닭은 겨우 2년 생 정도이기 때문이다. 진짜 노계와는 다르다.[2] 잠실야구장에서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삼성이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이사간 뒤에는 자취를 감춘 상태.[3] 백숙으로 해 먹으면 좋은데, 일반 냄비로는 어림도 없고 압력밥솥에 못해도 두 시간 이상은 푹 고아야 한다. 일반 닭을 이렇게 삶으면 살이 완전히 풀어져 뼈와 살이 저절로 분리되겠지만, 폐계는 들어간 모양 그대로 나온다. 그러고도 영계에 비하면 훨씬 쫄깃한데, 이 정도 삶으면 그래도 질긴 정도는 아니고 알맞게 쫄깃해져서 이거에 익숙해지면 영계는 푸석거려 못 먹는다. 돼지고기에 비유하자면 그냥 구워 뼈(?)까지 오도독 씹어먹는 삼겹살과, 치아가 약한 노인들도 잘 씹을 수 있게 잘 다져져서 부드럽게 만든 산적 같은 관계.[4] 여담이지만, 폐계닭 볶음은 경기도 평택시에서만 먹을 수 있다 카더라. 아는 사람만 아는 몇 안 되는 평택만의 먹을거리.[5] 다만, 살아있는 닭들을 통으로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발+깃털 등을 다 처리한 생닭 상태로 납품해서 맹수들에게 제공해주는 식. 사실 먹는 맹수들 입장에서도 먹는데 방해되는 가죽이나 깃을 일일이 처리할 필요가 없으니 이 편이 더 편할 듯. 다만 가끔씩 산닭을 배급하기도 한다. 살아 있는 동물에게만 나오는 성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산채로 잡아먹는 것을 보기 거북한 만큼 동물원 폐장시간 때만 배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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