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국가
Mazurek Dąbrowskiego(마주레크 돔브로프스키에고)
작사: 유제프 비비츠키(Józef Wybicki, 1747~1822)
작곡: 미상
1. 개요
폴란드의 국가. "돔브로프스키의 마주레크(Mazurek Dąbrowskiego)"나 가사 첫소절에서 따온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Jeszcze Polska nie zginęła)"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2. 역사
유래는 다음과 같다. 작사 당시 폴란드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3국에 의해 3차례 분할을 당해 국가 자체가 사라진 상황이었고, 많은 폴란드 애국지사들이 폴란드의 우방국이었던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는데 애국지사이자 시인이었던 유제프 비비츠키(Józef Wybicki)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전쟁으로 폴란드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든 주범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이게 되자 프랑스로 망명한 폴란드 애국지사들은 프랑스의 도움을 얻어 조국을 해방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폴란드군에서 복무하던 장교들과 병사들 역시 대거 프랑스로 망명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에 비비츠키는 폴란드인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새로 편성하여 프랑스군 아래에서 싸우게 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비비츠키는 코시치우슈코 봉기 당시 폴란드군의 주요 지휘관이었던 얀 헨리크 돔브로프스키(Jan Henryk Dąbrowski)를 파리로 초대했고 곧바로 그들은 프랑스를 통치 중이던 총재정부에게 그들이 세운 폴란드 군단 계획을 보여주었다. 총재정부는 폴란드 군단 계획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당시 외국인의 프랑스군 복무를 금지한 프랑스 헌법상 폴란드인들을 프랑스군으로 편성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총재정부는 일단 돔브로프스키를 이탈리아로 원정을 떠나 밀라노에 머물고 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보냈다. 다행히도 나폴레옹 역시 폴란드 군단 계획에 지지를 표했고 이에 폴란드 군단 계획은 탄력을 얻어 1797년 1월 프랑스의 위성국인 치살피나 공화국이 세워짐과 동시에 치살피나 공화국군 산하의 이탈리아 폴란드 군단(Legiony Polskie we Włoszech)이 창설되었다. 그리고 돔브로프스키는 폴란드 군단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렇게 창설된 폴란드 군단은 곧바로 프랑스 측에 가담하여 오스트리아군과 맞서 싸웠고 돔브로프스키와 폴란드 군단은 단순히 오스트리아와 싸우는 것을 넘어 이탈리아에서 폴란드까지 오스트리아를 가로질러 진격해 조국을 해방하기를 바랐다. 1797년 7월 폴란드 군단이 주둔 중이던 레조에밀리아(Reggio Emilia)를 방문한 비비츠키는 조국을 해방한다는 일념아래 싸우는 폴란드 군단의 모습을 보면서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그곳에서 "이탈리아 폴란드 군단의 노래(Pieśń Legionów Polskich we Włoszech)"라는 작품을 썼다. 비록 지금은 나라를 빼앗긴 상태이지만 폴란드인들이 살아있고 그들이 조국의 이름 아래 싸우고 있는 한 폴란드란 나라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비장한 내용의 가사와 민속적인 선율로 인해 곧바로 이 노래는 병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와 이역만리 떨어진 폴란드 본국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1]
몇 년 후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박살내고 폴란드로 진격하면서 드디어 폴란드에게 독립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에 맞서 프랑스군을 지원할 폴란드군의 편성을 위해 돔보로프스키와 비비츠키를 폴란드로 파견했고 그렇게 포즈난에 입성한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비비츠키가 지은 바로 그 노래를 열창하는 시민들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면서 폴란드 땅에는 독립국가인 바르샤바 공국이 수립되었고 이 노래는 폴란드 전역에서 준국가 수준으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 바르샤바 대공국이 수립되고 난 후의 노래는 멜로디는 바뀌지 않고 처음 그대로였지만 가사가 상당히 바뀌었는데 틸지트 조약으로 프랑스와 동맹관계가 된 러시아를 자극하는 내용의 4절이 빠지게 되었고 코시치우슈코에 대해 언급한 6절 역시 나폴레옹을 의심하던 코시치우슈코가 나폴레옹에게 협력하는걸 거부하면서 그 영향으로 인해 삭제되었다.
그 후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빈 회의의 결과 폴란드는 다시 3국에 분할되어 사라졌으나 이 노래는 여전히 폴란드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였다. 그 후 폴란드인이 유럽 전역으로 이주하면서 이 노래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서유럽에서는 나라 잃은 폴란드인들에 대한 동정의 징표였으며 중부유럽(특히 이 일대에 사는 슬라브족)에게는 독립 투쟁 당시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계속해서 불리는 이 노래에 대해 폴란드를 다스리는 3국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고 아예 프로이센과 러시아는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정했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노래의 가사따나 죽지 않고 끈질기게도 살아남았고 1918년 마침내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실질적인 국가 역할을 하다가 1926년 여러 후보곡들과의 경쟁 끝에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다.
가사에 나오는 '보나파르트'는 우리가 아는 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맞다. 상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항목과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항목 참조.
3. 가사
총 6절로 이루어져 있고, 한 절마다 후렴을 2번 반복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식 국가로는 1, 2, 3, 5절만 지정되어있고 4, 6절은 부르지 않는다.
기악 버젼
3.1. 한국어 독음
4. 여담
앞서 언급했듯이 이 노래는 중동유럽의 슬라브인 독립운동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우크라이나의 국가인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가 이 노래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특히 슬라브족이여(Hej, Slováci)[6] 역시 이 노래에서 따왔다. 후렴부의 차이랑 박자, 음정을 조절한 걸 제외하면 두 노래가 완전히 똑같은 선율이라서 2000년대 중반 이전에는 유고슬라비아와 스포츠 경기가 펼쳐질때마다 선수들이나 관중들이 뻘쭘해하는 광경이 펼쳐지곤 했다고.
이탈리아에서 싸우던 폴란드 군단을 위해 지은 노래이기 때문에 보다시피 가사에 이탈리아가 언급되어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탈리아의 국가인 마멜리 찬가에는 역으로 폴란드가 언급되어 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폴란드가 해방되었을 때 흘러나온다.
워게임: 유러피안 에스컬레이션의 두번째 캠페인의 제목은 '다브로스키[7] 의 마주르카', 첫 시나리오 명칭도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로 소련군에 대항하는 폴란드인들을 적절하게 나타내었다. 다만 영어 제목인 Poland is not yet been lost의 경우 폴란드를 아직 잃지 않았다는 의미로, 봉기를 진압하고 폴란드 공산정권을 지켜내야 하는 입장인 플레이어의 상황에 부합하는, 일종의 패러디의 의미가 있다.
TV버젼. 국가 문장 보면 알다시피 공산주의 시절때 나온 영상이다.
5. 관련 문서
[1] 이 과정에서 'nie umarła' 가 'nie zginęła'로, 'do Polski z ziemi włoski'가 'z ziemi włoskiej do Polski'로 바뀌는 등 일부 가사가 바뀌었고 돔브로프스키와 폴란드 군단을 기다리는 폴란드 애국지사들의 시각에서 쓴 4개 절이 새로 추가되었는데 현재는 실전된 상태이다.[2] 대홍수 당시 조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스웨덴군에 맞서 여러 차례의 승리를 거둬 스웨덴군을 몰아낸 폴란드의 영웅이다. 당시 차르니에츠키는 덴마크-스웨덴 전쟁에서 덴마크군에 종군하여 스웨덴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스웨덴군의 침략으로 조국이 위험해지자 배를 타고 발트해를 건너 귀국해 포즈난에 머물고 있던 국왕 얀 2세에게 합류하여 침략자들과 맞서 싸웠다.[3] 우크라이나의 전통 타악기.[4] 병사들이 북소리를 울리며 고향으로 돌아와 조국을 해방시키길 바라는 의미이다.[5] 미국 독립 전쟁에도 참전한 경력이 있으며 귀국 후 폴란드 분할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폴란드를 구하기 위해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맞서 봉기를 일으키지만 봉기는 진압되고 폴란드는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라츠와비체는 코시치우슈코가 이끄는 폴란드군이 전투용 낫으로 무장한 농민군인 코시니에르(kosynier)의 활약에 힘입어 러시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곳이다.[6] 슬로바키아의 시인 사모 토마시크(Samo Tomášik)가 1834년 폴란드 국가를 개사하여 작사한 노래로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과 유고슬라비아의 국가로 쓰이기도 했다.[7] '돔브로프스키'의 오기. 사실 폴란드어를 영어로 쓰기가 곤란한건지 부르기가 힘든건지(...) 보통은 영미식으로 어레인지가 된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추앙되는 카지미에시 푸와스키(Kazimierz Pułaski) 역시 미국에서는 카시미르 풀라스키(Casimir Pulaski)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8] 이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