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604

 

기아자동차 플래그십 라인업
'''푸조 604'''

머큐리 세이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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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양
당시 신문광고에서는 '뿌조'(...)라고 표기했다[2].
1. 개요
2. 상세
3. 미국 판매
4. 대한민국 생산 및 판매
5. 기타
6. 둘러보기

'''PEUGEOT 604[3] '''

1. 개요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 푸조에서 1975년부터 1985년까지 생산한 앞엔진 후륜구동 대형 세단이다.

2. 상세


1934년부터 1935년 사이에 생산된 601 이후 40년만에 내놓은 푸조의 고급차로, 외관 디자인은 피닌파리나가 담당했고, 1975년 3월에 열린 1975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며, 판매는 그 해 9월부터 시작되었다. 푸조, 르노, 볼보가 공동 개발한 134마력 V6 2.7L PRV(푸조-르노-볼보) SOHC 엔진을 장착했다. 1968년에 나온 504의 승차감을 이어받았고, 문짝 등 일부 부품은 이후(1979년)에 나온 505와 공유했다.
출시 초기에는 604 SL의 단일 사양만 존재했고, 1977년 9월에는 보쉬(Bosch)제 K-Jetronic 연료분사 장치와 5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TI가 라인업에 추가되었으며, 1978년에는 율리에즈(Heuliez)[4] 가 제작한 리무진 버전이 출시되었다. 1979년 2월부터는 직렬 4기통 2.3L PSA XD 계열의 XD2S 터보 디젤엔진을 장착한 604 D 터보 사양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디젤엔진 사양은 4단 또는 5단 수동변속기와 GM에서 가져온 3단 자동변속기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또한 1979년에는 주유구 커버가 원형에서 사각형으로 변경되었고, 미국 시장용 모델에는 2,849cc 엔진이 추가되었다. 1980년에는 보닛의 뱃지를 제거하고 새로운 대시보드 및 기어봉을 적용하는 마이너체인지를 거쳤고, 파워윈도우, 선루프 등의 편의장비를 적용한 "그랜드 컴포트"(Grand Comfort)라는 럭셔리 한정판 사양도 출시되었다.
1981년에는 미쉐린 TRX 타이어와 알로이휠을 적용한 STi 사양이 라인업에 추가되었고, 그 해 1월부터는 자동변속기가 GM제에서 ZF제로 변경되었다. 디젤 라인업은 GRDT와 SRDT 두 개의 트림으로 판매되었고, 미국에서도 디젤엔진을 얹고 다시 판매를 시작했다. 그 외에도 차체 부식 방지 처리도 모든 트림에 적용되었다. 1982년에는 카뷰레터 엔진 사양의 SL이 단종되었고, 1983년에는 디젤 엔진을 XD3형 2.5L로 바꿈과 동시에 TI와 GRD 터보 사양을 단종시켜 STi와 SRD 터보 사양만 남겼다. 1984년에는 2.8L 가솔린 엔진을 얹은 GTi 트림이 기존의 STi를 대체했고, 디젤 라인업은 GTDT 트림을 추가했으며, 율리에즈 리무진이 단종되었다.
1985년 11월에 단종되었고, 총 153,252대가 판매되었는데, 1976년부터 1986년까지 생산된 로버 SD1이 V8 엔진을 갖춘 로버 3500이라는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30만대 넘게 팔린 것과, 1974년부터 1991년까지 생산된 시트로엥 CX가 120만대 가까이 판매된 것을 감안하면, 푸조 604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차종이었다. 604가 나온 시기가 1973년의 오일 쇼크로 대형차를 기피하던 때였기도 하고, 경쟁 차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디자인과 기술적인 혁신의 부족, 그리고 차체 부식 등의 문제가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1976년에 36,000대 넘게 찍어냈지만 1981년에는 불과 7,000대를 찍어낸 것으로 보아, 1979년에 나온 505가 더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V6 엔진을 얹은 604를 팀킬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영국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차종으로, 2017년 1/4분기 기준으로 16대가 등록되어 있다.
604의 단종 후에는 505가 잠시 동안 푸조의 기함을 담당하다가, 1989년에 전륜구동 방식의 605가 투입되었다. 이후 손자뻘인 607까지 이어졌다.

3. 미국 판매


미국 시장에서는 1977년부터 판매가 시작되었다. V6 카뷰레터 엔진과 직사각형 헤드램프를 달고 판매되었고 1980년에 단종되어 잠시 동안 공백기를 갖다가, 1981년에 디젤엔진을 달고 1984년까지 판매되었다.

4. 대한민국 생산 및 판매



기아자동차에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라이선스 생산을 한 적이 있다. 출시 당시 판매가격은 '''약 2,300만 원'''[5]으로 국내 최고가의 승용차였다.[6] 대한민국 사양도 V6 2.7L PRV SOHC 엔진을 갖추었는데,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던 승용차 중에서는 최고의 배기량과 성능이었다.
원래는 기아자동차에서 상공부 6기통 차량 생산제한 조치를 1978년에 해제한것과 동시에, 노후화(당시 신진 크라운을 쓰던 시절)된 장관급 관용차의 교체 수요를 노리고 국내 시장에 내놓았지만, 출시 직전인 1978년 12월부터 오일쇼크로 인하여 정부에서 6기통 엔진이었던 장관급 관용차를 4기통 엔진으로 제한하면서 604의 주문을 취소하고 레코드 로얄을 장관급 관용차로 지정하여 대량 주문하자 비슷한 시기에 장관급 관용차 교체 수요를 노리고 등장한 현대 그라나다(V6 2,000cc)와 함께 제대로 엿을 먹어 버렸고, 여론으로 인하여 다른 부유층들에서도 주문 취소가 줄을 이었다. 그나마 그라나다는 국무총리 관용차로 납품되었지, 푸조 604는 안습(...)
게다가 가격도 매우 비쌌으니 당연히 극소수가 판매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기아자동차 최악의 흑역사인 자동차공업 통합조치 때문에 프랑스 본국보다 4년 먼저인 1981년에 억울하게 강제로 생산이 중지되어 단종되고 말았다. 그나마 단종 직전인 1981년 1월에 재고가 143대나 쌓여 있는 상황에서 장관 관용차의 4기통 제한을 해제하여 4기통 1900cc 레코드 로얄이었던 장관 관용차를 푸조 604로 교체했지만[7], 얼마 안 가서 강제로 단종되었으니, 푸조 604 입장에서는 무용지물 조치였다.(...) 그라나다는 장관급 관용차가 4기통으로 제한된 와중에 4기통 엔진이 달린 버전도 고육지책으로 내놓았고, 1981년에 장관급 관용차의 4기통 제한 해제가 풀린 이후로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의 서슬퍼런 칼날을 피할 수 있어서 1985년까지 계속 살아남았고 후속인 그랜저가 2017년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여러모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에게 제대로 엿을 먹은 차량(...) 이 때문인지 몰라도 레코드 로얄과 비슷한 신세가 되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안타깝게도 현재 현역으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604 차량은 '''없다.''' 일반적으로 공개된 것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원주역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한 대,[8][9] 그리고 제주도 푸조시트로엥 박물관에 한 대로 총 두 대이다. 그 외에 금호상사[10][11]삼성화재교통박물관에도 비공개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튼 동 시기에 판매했던 피아트 132, 그리고 몇 십년 후의 일이지만 기아자동차가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한 독일피터 슈라이어와 함께 기아자동차의 유럽 DNA로 분류된다.
기아자동차가 도입할 당시에는 고위 기술을 흡수하는 시기로 분류되었다. 당시 경쟁차는 현대 그라나다와 GMK(후의 새한자동차) 레코드 로얄. 현대 그라나다가 V형 6기통 2,000cc 포드 쾰른 엔진, 레코드 로얄이 직렬 4기통 1,900cc 오펠 엔진이었으니 푸조 604의 2,700cc 배기량은 경쟁차들을 그냥 압도했다. 하지만 이 6기통 대배기량 엔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이 되었다.

5. 기타


  • 1979년에 배우 노주현이 이 차를 자가용 승용차로 탔다고 한다.
  • 1979년 김형욱이 프랑스 파리에서 이 차를 타고 가다 산속에서 살해되었다는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가 있었다.
  • 좌핸들 차량임에도 와이퍼의 방향이 우핸들 차량처럼 돼 있고, 게다가 2개가 중앙에 몰려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실제 작동시에 중앙의 것은 동반석 측 유리창까지 180도의 반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동안, 운전석 측의 것은 90도만을 그리며 작동한다.

6. 둘러보기





[1] 1~2세대[2] 원어 발음대로 표기하면 '푀조' 내지 뾔조가 맞다.[3] '604' 의 각진 크롬 로고가 본네트 위에 붙어 있었는데, 대시보드 중앙의 송풍구 아래에도 붙여 놓았다.(...) 모습 보기 [4] 1920년부터 2013년까지 활동한 프랑스의 코치빌더로, 푸조 및 시트로엥으로부터 수많은 의뢰와 계약을 받아 특별 차량들을 제작했다. 동명의 버스 회사도 있지만 연관은 없다.[5] 1979년 출시 당시 서울 A급 주거지역의 30평 단독주택 가격과 얼추 비슷하다. 당시 은마아파트의 분양가가 2천만 원이니, 지금으로 따지면 롤스로이스 팬텀에 이르는 가격이라 할 수 있다. [6] 나름 고급차였던 레코드의 저 당시 가격이 400만 원대였다. 604는 그 레코드의 4~5대 가격이니....[7] 당시 장관급 관료 아래 계층인 업체장들 중에서 그라나다나 푸조 604같은 6기통 차량을 타고 다니는 업체장들은 장관 관용차 때문에 엄청 눈치가 보인데다가 장거리 주행에서 성능의 부족도 있었으며, 당시 한참 쌓여있던 푸조 604 재고를 소진시키기 위했던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에너지 낭비라니 사치라니 등등으로 여러가지 말이 많았으며 결국 1984년에 장관급 관용차들은 에너지 절약을 구실로 다시 4기통의 로얄 살롱으로 교체 당했다.[8] 최규하 전 대통령의 관용차였다.[9] 배기구를 막아놓아서 움직일 수 없다. 엔진은 있다.[10] 영화나 미디어 촬영용으로 차량들을 보존, 대여하는 업체로 유명하다.[11] 한 대가 더 있다는 얘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