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와인스틴

 

'''하비 와인스틴
Harvey Weinstein
'''
[image]
<colbgcolor=#01012b><colcolor=#ffffff> '''국적'''
[image] 미국
'''출생'''
1952년 3월 19일 (72세)
미국 뉴욕
'''신체'''
183cm
'''학력'''
뉴욕주립대 버팔로
'''직업'''
영화 제작자
'''종교'''
유대교
'''가족'''
동생 밥 와인스틴 (1954년생)
이브 칠튼 (1987년 결혼, 2004년 이혼)
조지나 채프먼 (2007년 결혼, 2018년 이혼)
슬하 자녀 5명
1. 소개
2. 활동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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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한때는 명성이 자자했던 유능한 할리우드의 前 영화 제작자.
183cm의 장신이며 골격이 크고 뚱뚱하다. 위압감이 느껴지는 체구와 더러운 인상에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상대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는 평가가 많다.
교도소 복역 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완치되었다.

2. 활동


1952년 출생이며 보석 상인인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1] 어린 시절 프랑소와 트뤼포400번의 구타를 보고 영화의 길을 정했다. 1979년에 동생 밥 와인스틴과 함께 미라맥스를 설립하여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게 되었고, 1990년에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을 수입하여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1992년부터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시작으로 그의 모든 영화 제작 및 배급도 맡게 되었으며, 차기작 펄프 픽션은 미라맥스 영화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이후 굿 윌 헌팅, 셰익스피어 인 러브, 무서운 영화, 스파이 키드, 에비에이터 등이 연이어 1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2002년 시카고는 1억 7000만 달러를 기록하여 미라맥스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동시에 공포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은 자회사 디멘션 필름도 설립한다.
1989년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영화 나의 왼발이 미라맥스 영화 최초로 5개 부문 후보(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다니엘 데이 루이스), 여우주연상(브렌다 프리커, 나홀로 집에 2의 비둘기 아줌마 배우)에 올라 아카데미 시상식에 진출한 이후로, 펄프 픽션과 크라잉 게임 등이 모두 각본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도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법한 다양한 영화들은 물론 아카데미 수상작들의 제작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였으며,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경우에는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리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였다.[2]
1993년부터 월트 디즈니의 계열사로 들어갔지만 디즈니와 갈등을 빚고 2005년 동생과 함께 와인스틴 컴퍼니를 설립하여 독립하였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이유로 20분 분량을 삭제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게 봉준호 감독의 반발로 무산되어 결국 설국열차제한적 상영을 하였다. 2020년이 돼서야 설국열차가 영국에서 상영되는 이유엔 감독판을 지지했던 틸다 스윈튼존 허트에 대한 괘씸함 때문이 아니냔 이야기도 있다.#[3] 이외에도 비영어 영화 외에 영미권 영화조차도 가위질을 하고 개봉해 '''가위손 하비(Harvey The Scissorhand)'''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영화를 함부로 대접하면서도 아카데미상으로 밀어볼 만한 영화들은 억지로 밀어주는 경향이 있었다.
이외에도 여러 갑질과 부당해고, 오만하고 이기적인 성격 등으로 대놓고 평판이 안 좋았던 인물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패러디한 캐릭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워낙 많은 영화를 성공시켰기에 할리우드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런 성격을 가진 와인스틴과 같이 미믹을 찍을 때 매우 불편했다고 했다. # 이것 때문에 델 토로 감독과 절친이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 사실을 알고 와인스틴과 주먹싸움을 할 뻔 했다고 한다.
'''이때까지는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지만 몇년 뒤 대형사고를 저질렀음이 드러났다.'''

3. 성범죄 파문




4. 기타


  • 자녀는 전처 이브 칠튼과의 사이에서 세 명, 두 번째 아내인 조지나 채프먼과의 사이에서 두 명을 두었다.
동생인 밥 와인스틴은 영화 제작보다는 브로드웨이 활동이 많았다. 형과는 처음엔 사이가 좋았지만, 경영권 문제로 완전히 소원해진 사이. 여담으로 이쪽 역시 부인과 이혼하면서 가정 폭력 혐의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현재는 여성 프로듀서 대상으로 성폭력 혐의도 있는 상황이다.
  • 할리우드의 성범죄 파문미투 운동의 발단이 되면서 한국에서도 각종 언론사를 통해 이름이 언급되었는데, 언론 매체마다 그의 이름을 와인스타인, 웨인스타인, 웨인스테인, 바인슈타인 등 오만 가지 발음으로 잘못 표기했다.
본인이 와인스틴으로 불리우길 원하고, 영어권 언론에서는 모두 와인스틴(WINE-steen)으로 발음하고 있으므로 와인스틴이 옳다.
한편 물론 같은 철자의 이름을 가진 사람도 '와인스타인'으로 불리우길 원하는 경우도 있다. 영어권에서는 이렇게 발음 기준이 애매모호한 이름의 발음은 본인 선택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예를 들어 Levine이라는 이름도 Maroon 5의 보컬리스트 Adam Levine 같은 경우는 애덤 르빈으로 발음하지만, 르바인으로 발음하는 사람들도 있는 식.

[1] 애초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이 뒤에 -스타인/스틴/슈타인 등으로 불리면 십중팔구 유대인 조상이 한 명쯤은 있다. 비슷한 경우로는 -버그(-berg)가 있다.[2]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최초의 작품상 수상이란 이야기가 있는데,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프로듀서로 크레딧에 올라가고, 작품상을 수상한 프로듀서는 사울 자엔츠이다. 와인스틴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포함한 대부분 작품상 수상, 후보작에 책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형식으로 이름이 올라가있으며, 아카데미 특성상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이 올라간 사람은 후보로 지명될 수 없다. 와인스틴이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영화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갱스 오브 뉴욕이고, 이 중 수상한 작품이 셰익스피어 인 러브.[3] 사실상 이런 와인스틴의 가위질을 거절하고 살아남은 작품은 봉준호의 설국열차와 미야자키 하야오모노노케 히메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