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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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현대 유니콘스, 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의 외야수이자 NC 다이노스의 코치.
명실상부한 자타공인 대한민국의 최고 중견수 중 한 명이었다. 국가대표 리드오프로서도 이름을 떨쳤던 선수이며 2007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397표 중 350표를 얻으며 '''골든글러브 역대 최고 득표자'''로 남아있다. 2014년 NC로 이적했고 2018년 시즌이 끝나고 NC에서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청소년대표로 발탁되었을 정도로 이름을 날린 유망주였다.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3.1. NC 다이노스
2018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으며, 바로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2019년 코치로서 맡는 첫 보직은 2군 작전/주루코치.
2019년 5월 11일 창원 NC 파크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 은퇴식을 준비할 예정이었지만 이종욱 본인이 자신을 위한 행사보다는 퓨처스 작전/주루코치로서 선수 코칭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혀왔다고 한다.
2019년 8월 27일 기존 1루 주루코치였던 전준호 코치가 부친상을 당하면서 이종욱이 4일 동안 1군에서 1루 주루 코치를 본다.
2020 시즌부터는 1군 주루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2019 시즌 종료 후에는 손시헌의 은퇴 소식과 함께 2020 시즌 중 동반 은퇴식을 연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이어지며 손시헌과의 동반 은퇴식은 무기한 연기된 상태.
2020 시즌 NC가 통합 우승을 하면서 선수 때 끼지 못한 우승반지를 코치로서 획득하게 되었다. 생애 첫 우승인데다 이호준, 손시헌과 함께 NC 창단 초기 주축선수 출신 코치라 그런지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10]
4. 플레이 스타일
4.1. 주루
김경문 감독 시절 육상부로 불리던 두산 베어스 발야구의 선봉장으로 이름을 떨친 만큼 빠른 발과 탁월한 주루 센스를 자랑한다. 홈에서 아웃된 것이 프로 입단 후 몇번 없을 정도로[12] 타구와 상대 수비를 읽고 호시탐탐 한 베이스를 더 노린다.
2010년 10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이 탁월한 주루센스로 6회 때 '''유격수 희생 플라이'''라는 진기록을 세운다.[13] 그런데 사실 이종욱은 2007년 한국시리즈 때도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2루수 희생 플라이'''를 만든 적이 있다.[14]
4.2. 타격
타격에서는 아주 빠른 스윙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투수의 습관이나 승부 패턴을 읽는 눈이 뛰어나 상황에 맞는 타격을 했다. 2006년 이후 기습번트 시도는 확연히 줄었으나 그후로 적극적으로 타구를 외야로 보내는 스윙을 하면서 타격능력은 더 좋아졌다. 해설자에게 욕(?)을 먹기도 했는데, 1번 타자가 테이블 세터로서 공을 길게 보고 뒷 타자들이 노려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하는데 '''너무 잘 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부상으로 무너졌던 2009, 2012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3할을 기록했으며 포스트시즌에서는 기습적으로 3번 타자로 나와 활약하기도 했다[16] . 장타툴을 보면 이용규같은 순 똑딱이들과 비교할 때 이쪽은 최소한의 갭파워 정도는 갖춘 편으로 정규시즌보다는 포스트시즌에서 주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큰 경기에 강한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선수로, 두산 시절에는 준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에서는 시리즈 MVP급으로 날아다니다가, 위로 올라가서 SK만 만나면 버로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팀 프랜차이즈로 떠올랐던 김현수의 이미지에 가려서 보기보다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 이것도 그나마 전성기 때 이야기고 NC 이적 이후에는 포스트시즌만 가면 삽질만 적립하곤 했다. NC가 매년 포스트시즌에서 물먹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NC 이적 이후 포스트시즌 성적은 2014년 '''10타수 무안타''', 2015년 18타수 3안타, 2016년 26타수 6안타, 2017년 10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국가대표에도 꾸준히 차출되었는데 2008년 올림픽에서는 전 경기를 1번으로 출장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찍었으나 2번 타순에서 4할대 타율로 날아다니던 이용규의 맹활약에 묻혔고, 2회 WBC까지 주전 1번으로 뛰다가 2010년 아시안게임 하위 라운드에서 삽질한 후로는 그를 국제전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2009년 4월 11일 역대 14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선수이다. 2루타, 사구, 안타(단타), 2점홈런 기록 후 마지막 타석에서 3루타를 치면서 극적으로 성공했다.
4.3. 수비
빠른 발과 훌륭한 타구판단능력, 좋은 글러브질을 겸비하여 최고 레벨의 중견수 수비를 선보였다. 전성기에는 현역 최고의 외야수로도 곧잘 뽑혔을 정도. 특히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워닝 트랙까지 따라가 잡아내는 모습은 명불허전이었다. 어깨도 준수한 편이지만[18] 두산 시절 외야 동료 임재철, 민병헌이 워낙 송구능력이 좋았던지라 다소 묻힌 감이 있다. 허나 NC 이적 후에는 노쇠화의 여파인지 송구에 특출난 강점이 있다고 평가받기는 어려운 애매한 활약을 펼쳤다.
4.4. 결론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 빠른 발, 파인 플레이 이후의 기합과 삼진이나 땅볼 이후에도 기죽지 않는 이종욱의 성격은 김경문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의 결정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20] 타격에서 김경문 감독이 추구하는 바를 김현수, 김동주, 최준석이 보여주었다면 수비와 주루에서는 이종욱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 FA 때 두산팬들이 (같이 풀린) 손시헌, 최준석은 몰라도 제발 이종욱만은 잡아달라고 했던 것은 그가 두산의 팀 컬러를 상징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 김경문 감독이 있는 NC로 떠나면서, 이래저래 두산 팬들 입장에서는 감정이 복잡한 선수가 되었다.
이 후 NC 다이노스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김경문은 2012년 전력보강선수 지명 때 이종욱과 똑같은 스타일의 외야수로 눈여겨 보았던 김종호를 삼성에서 지명했다. 그리고 김종호는 2013년 도루왕을 차지한다.
NC 이적 후에는 노쇠화인지 위에 언급한 장점들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3할 30도루가 보장되는 리드오프 겸 S급 수비력의 센터라인 외야수로써 50억이라는 거액을 들여 영입했으나 20도루를 한 시즌도 없고, 3할을 넘긴 것도 2016-2017 시즌 두 차례에 불과하다. 정작 영입 당시 덤 취급받던 손시헌이 훨씬 팀 기여도가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2016 시즌엔 반등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미 나이가 많았고, 2017년에도 타율 3할은 넘겼지만 리빌딩 기조로 인해 줄어든 기회로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하며 안타수도 100개를 넘지 못했다. 2017 시즌 이후 얻은 두 번째 FA에서도 1년 5억의 계약을 맺었지만 결국 무릎 부상으로 인해 단 43경기만 뛰고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FA 기간 내내 돈값에 맞는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다는 NC 팬들의 평을 받았다. 즉, NC 입장에서 이종욱의 영입은 후배들에게 경기 내외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고, 또 클래식 스탯만 놓고 보면 나름 제 몫을 했기에 정답이라고 할 수 있지만 50억이라는 가격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5. 말말말
'''우리의 야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후배들에게 '그냥 하자, 하면 끝난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연장 11회말 생애 첫 끝내기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미소지으며
'''야구는 똑같은 것 같다. 누가 빨리 몸을 만들어서 궤도에 오르느냐, 슬럼프가 왔을 때 먼저 극복하느냐. 이 차이에서 갈리는 것 같다.'''
2017년 6월, 연일 맹타와 호수비로 잠실 LG전 스윕을 이끈 뒤 가진 수훈인터뷰에서.
'''영원히 선수 이종욱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2020년 1월 절친 권오준, 손시헌과 함께한 인터뷰에서 은퇴식을 가지긴 싫다고 말하며
'''코치 생활을 시작하고 다른 팀 선수들을 만나면 “너, 선수일 때 정말 싫었다.”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나에겐 최고의 칭찬이다. 이곳은 승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팬에게는 야구를 열심히 했던 선수로, 상대팀 선수에게는 정말 ‘밉상’이고 짜증났던 선수로 남고 싶다.'''
2020년 7월 엔씨소프트 블로그 인터뷰
'''팀플레이도, 개인 플레이도 모두 중요한 것이 야구이다. 수비할 때, 선수들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많은 대화가 이루어진다. 내가 시합 중에 최대한 많이 넘어지고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팀 분위기가 살아나더라. 그래서 더 몸을 사리지 않게 됐다.'''
'''이상적으로는 선수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다 잘하면 경기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투수가 힘들어할 때 타자들이 도와주고 또 타자가 타격감을 놓칠 때는 투수들이 힘을 더 내는 팀, 더그아웃(dugout)의 분위기가 좋고 서로 응원해 주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낸다. 그게 팀플레이의 위력이 아닌가 싶다.'''
2020년 7월 엔씨소프트 블로그 인터뷰
6. 여담
- 대표적인 별명이 태국 영화 '옹박'에서 유래된 종박.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굴이 꼭 태국사람 같다며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밖에도 뽕따이, 불법 체류자, 태국용병 등의 별명도 있었다. 그래서 인천 아시안게임 때 네티즌들이 농담으로 태국 국대팀에 이종욱을 주고 시작해야 된다고 이야기 하기도. 최훈의 야구 카툰에서도 이종욱은 무에타이 선수 복장을 하고 나온다.
- 그래서 봉숭아 학당에서 옹박 역, 사마귀 유치원에서 쌍칼 역을 맡은 코미디언 조지훈과 닮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심지어 1990년대 부산지역 삐삐 광고에 나온 코미디언 홍기훈의 젊었을 때와도 닮았다. 본인은 한때 이 별명이 토니 자의 근육질 몸매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오해했으나,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 까무잡잡한 피부와 얼굴이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결국 사실을 알고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 나중에는 예소애비라는 별명으로도 자주 불렸다. 딸인 예소가 "아빠 안타 쳤어 못 쳤어?"하고 물어본다고 했다. 그 때문에 팬들은 이종욱이 활약하면 "예소야 너희 아빠 안타 쳤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 대학 시절 엄청난 연습량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손승락의 인터뷰에 따르면 연습벌레였던 이종욱이 새벽까지 개인 스윙 연습을 하느라 항상 빨래를 늦게 내놓아서 같은 방을 쓰던 막내였던 손승락이 매일 기다리느라 애를 태웠다고 한다. 손승락도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이종욱의 연습량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고.
- 원래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학교에 축구부가 없었고 대신 동네 친구들과 즐기던 야구에 빠져 야구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 모교에 야구부 코치를 하고있는 동기와 통화를 하다가 야구장비가 많이 부족하단 말을 듣고 3000만원어치의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기증했다.
- 박한이와 박석민처럼 독특한 타격 준비 자세가 있다. 타석에 들어서서 홈플레이트를 건드리는 과정이 독특한데, 보통 선수들은 한 번 툭 치고 말지만 이종욱은 순서와 위치를 정확하게 맞춰서 세 번을 건드린다.영상
- NC 팬덤에서는 확실히 돈값은 못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평가는 좋다. 손시헌과 함께 신생팀 NC의 센터라인 수비를 확실히 안정시켰고, 타격 기록은 나쁠지라도 팀의 주장과 고참으로서 단기간에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 두 번째 FA에서도 팬들이 다 잔류를 원했을 정도다.[21]
-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4번의 준우승을 경험했다(2007년, 2008년, 2013년, 2016년). 두산 시절인 2007~2008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는 2년 연속 MVP를 받았지만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침묵하면서 물을 먹었으며, 2013년에는 삼성한테 3승 1패로 앞서며 1승만 더하면 개인 첫 우승이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지만 팀이 거짓말같이 3연패를 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22] NC 이적 이후에는 2016년 친정팀 두산과 맞불었지만 무기력하게 0승 4패로 스윕패, 또 준우승으로 끝났다. 결국 이종욱은 은퇴할 때까지 현역 선수 시절 동안 우승반지를 하나도 끼지 못했다.[23] 그래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있어서 우승 경력이 아예 없지는 않고, 은퇴 후 NC 주루코치가 된 2020년, 소속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선수 시절 그토록 원했던 우승반지를 코치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받아보게 되었다.
6.1. 손시헌과의 관계
[인터뷰] 손시헌-이종욱, "우리는 사실 엇갈린 사이"
NC 지도자 된 '절친' 손시헌·이종욱
[이영미 人터뷰] 권오준 손시헌 이종욱, 절친 3인방의 야구와 우정
고교시절부터 프로까지 오랜 세월 함께한 둘은 '''소울메이트, 영혼의 동반자'''라고 불리며 야구계 절친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손시헌과 이종욱은 선린인고 동기동창으로 두산 베어스에서 육성선수 신화를 함께 썼고, 2013년 시즌 종료 뒤 함께 FA 자격을 얻어 NC 다이노스에 둥지를 틀었다.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지만 방출당한 이종욱을 위해 손시헌이 두산 베어스 입단 테스트를 주선한 적도 있으며 두산 시절에는 이른바 "화수분 야구"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적 후에는 젊은 팀 NC 다이노스에서 각각 외야와 내야의 사령탑으로서 두산 특유의 끈끈한 야구를 전수하기도 했다.[24]
손시헌은 이종욱을 친구이기 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야수였고, 최고의 1번 타자라고 늘 얘기하고 다닌다. 이종욱이 은퇴하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2019 시즌에는 코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손시헌 "친구 이종욱이 그립네요"
둘의 인연은 선린인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시절, 손시헌은 이종욱이 탄탄한 체격과 빠른 발, 다부진 외모로 어딜가나 눈에 띄어 친해지고 싶은 친구였다고 하며 이종욱은 손시헌이 키도 작고 곱상한 외모라서 야구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팀에서 유일한 홍은중 출신 선수였던 이종욱이 고등학교 야구부 생활에 적응을 못하며 급기야 학교에 가지 않았고, 그때 손시헌이 그와 통화하려고 집으로 전화했다가 모친에게 이종욱의 결석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이종욱의 거짓말이 탄로나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집에서는 이종욱이 야구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그때 손시헌이 이종욱을 붙잡지 않았다면 이종욱은 야구를 포기했을 거라고 술회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가까워지게 되었다.
선린인고를 졸업한 후 이종욱은 영남대로, 손시헌은 뒤늦게 동의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이종욱은 현대 유니콘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손시헌은 지명받지 못했고, 고등학교 시절 인연을 맺었던 김광수 코치가 두산 베어스 코치를 맡게 되면서 손시헌을 끌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3년 손시헌이 신고선수로 입단하게 되고, 그 해 7월부터 정식 선수로 등록되어 1군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다 2005년 이종욱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되자 이를 하소연하려고 손시헌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때가 마침 구단 사무실에서 김태룡 단장을 만나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하려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이종욱의 전화를 받고 손시헌이 김태룡 단장에게 이종욱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어봤고, 이종욱은 두산 베어스에 입단 테스트를 하러 가게 된다. 막상 이종욱이 테스트를 하러 잠실야구장으로 나가 보니 별다른 것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손시헌이 김태룡 단장에게 "저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아낼 선수이니 꼭 잡아달라"고 말했기 때문.[25]
2006년 말 상무 입대 전, 손시헌은 구단과 연봉협상을 하면서 자신의 연봉 인상분을 이종욱에게 주라는 제의를 하기도 했는데[26] , 상무 제대 후 이종욱과 자신의 연봉이 같아진 것을 안 손시헌은 “입대 전에 한 말은 없었던 걸로 해달라”고 해 팬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서로 의견이 안 맞거나 할 때는 원수처럼 싸우기도 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다투고 나면 좋은 방향과 답이 나왔다고.
둘의 우정은 이종욱이 출연한 배지현의 쓰리번트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이종욱이 경기 중 부상을 입어 기도가 막힐 뻔 한 순간 손시헌이 재빠른 응급처치로 목숨을 구해줬다고. "다치는 걸 보고 달려갔는데, (이종욱이) 의식이 없어 놀랐다"며, "목에서 피가 나더라. 응급 처지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의식 중에 피가 흐르는 곳을 막았는데 나중에는 피가 입으로 올라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손시헌이 지압을 하자 입으로 피가 역류했고, 막혀있던 기도가 뚫려 이종욱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시헌은 "이종욱이 병원으로 실려 갔고, 너무 걱정이 돼 경기를 빨리 끝내야 겠다는 마음에 내가 결승타를 쳤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둘은 자녀들의 이름도 돌림자를 쓰고,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출근도 같이 하고, 한 차를 타고 출근한 적도 있다. 비시즌에 동반 가족여행도 함께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이종욱이 선수 생활 은퇴를 한 2019 시즌에는 구단에서 계획한 은퇴식을 거절했지만, 손시헌이 2019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자 2020 시즌 중에 동반 은퇴식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