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

 




'''권혁의 틀'''
[ 펼치기 · 접기 ]


'''권혁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6'''
'''2011'''
'''2012'''
'''2013'''
'''2014'''
'''2019'''

'''올림픽 아구종목 메달'''
'''2008'''


'''2009 KBO 리그 홀드왕'''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7번'''
최재호
(1996~2001)

'''권혁
(2002~2014)
'''

최민구
(2015~2017)
''''''한화 이글스''' 등번호 47번'''
윤근영
(2012~2014)

'''권혁
(2015~2018)
'''

김종민
(2019~2020)
''''''두산 베어스''' 등번호 8번'''
류지혁
(2015~2018)

'''권혁
(2019)
'''

전용훈
(2019)
''''''두산 베어스''' 등번호 19번'''
유재유
(2019)

'''권혁
(2019)
'''

김민규
(2020~)
''''''두산 베어스''' 등번호 47번'''
홍상삼
(2017~2019)

'''권혁
(2020)
'''

곽빈
(2021~)



'''이름'''
권혁(權奕 / Hyuk Kwon)
'''생년월일'''
1983년 11월 6일 (40세)
'''출신지'''
[image] 대구광역시 중구
'''국적'''
[image] 대한민국
'''학력'''
대구수창초 - 성광중 - 포철공고
'''신체'''
192cm, 100kg
'''포지션'''
투수#s-1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2년 1차지명 (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image] [image] '''삼성 라이온즈 (2002~2014)'''
[image] '''한화 이글스 (2015~2018)'''
[image] 두산 베어스 (2019~2020)
'''등장곡'''
DVBBS & Dropgun - Pyramids (ft. Sanjin)[1][2]
'''병역'''
예술체육요원[3]
'''종교'''
불교
'''에이전트'''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2006, 2011~2014, 2019)
홀드 1위 (2009)
1. 개요
3. 투구 스타일
4. 여담
5. 연도별 성적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던 전직 좌완 투수.
삼성 왕조 시절에는 리그 최고의 좌완 불펜투수중 한 명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한화 이적 후 불꽃남자라는 칭호까지 얻으며 승승장구했으나 지나치게 무리한 나머지 부상과 재활등으로 힘든 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2019년 시즌 시작전 한화 이글스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부당한 이유로 제외되자, 한화 이글스 구단에 방출 요청을 한뒤 두산 베어스에 스카웃되어 좌완 원포인트로 활약하다가 2020년에는 에이징 커브로 인해 한계를 느끼고 은퇴하였다.

2. 선수 경력



'''권혁의 선수 경력'''
[ 펼치기 · 접기 ]


3. 투구 스타일


가공할 만한 공 회전력, 평균 구속 150 km/h를 웃도는 공을 가진 좌완에선 보기 힘든 파이어볼러'''였다'''.[4] 서승화와 함께 한국프로야구 좌완 공인 최고 구속('''156km/h''') 기록의 보유자.[5] 기본적으로 상체 중심의 피칭을 위주로 던지는 편이며, 구속은 무난하지만 구종은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로 단조로운 편이다. 쉽게 말하자면 구종이 단조롭다는 단점을 구위와 경험으로 커버하는 스타일.
데뷔 초창기 시절에는 제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대신 빠른 구속과 묵직한 구위로 찍어눌러도 타자들이 맥을 못 췄기에 초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2010년 이후부터는[6] 혹사 누적으로 이전보다 팔스윙이 느려지고 그로 인해 공의 무브먼트나 구위도 저하되며 삼성 철벽 불펜진의 일원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 그나마 삼성 불펜진이 권혁이 빠지더라도 워낙 막강이라 그냥 묻어가는 모양새였다.[7] 다만 권혁 이외에는 쓸만한 삼성 왼손 불펜이 1, 2군 통틀어 전무했으며, 좌완 특성상 좌타자들을 상대할때는 어느 정도 우위 상성을 지녔기 때문에 잊을만하면 마운드에 올라와서 좌타자들을 상대하고 다시 덕아웃으로 내려갔었다. [8][9]
공교롭게도 그가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과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삼성의 본래 팀 컬러와 영 맞지 않았던 모 감독의 재임기와 사퇴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이 때문인지 삼성 팬덤에서는 배영수, 권오준 등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후반 삼성 투수진 혹사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보기도 하고 있다. 이후 한화로 이적했던 2015년 초창기에는 상승한 기량을 바탕으로 커리어 하이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으며 한화의 불펜 에이스로 떠올랐지만, 김성근의 혹사로 인해 구위가 다시 하락하고 말았다. 두산 베어스로 이적한 뒤에는 노장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구위와 안정적인 피칭을 보였지만, 한화 시절 김성근에게 혹사당했던 여파와 노쇠화로 인해 1이닝까지만 구속이 유지되는 동시에[10] 우타자들 상대로는 심한 상성을 타는 모습을 보였다.
박재홍 해설 위원에 따르면 SK 와이번스 분석팀에게 투구폼이 읽혔다고 한다. 그래서 박재홍 위원은 권혁이 나오면 좋아했다고.

4. 여담


  • 힙합보이국민노예에 비해 임팩트가 있는 별명이 오랫동안 없었다. 데뷔 때는 겉으로 보면 한 성깔 할 것 같은 외모, 항상 짧은 헤어스타일, 큰 키와 덩치까지 겹쳐셔 한때 강백호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금방 묻혔고, 다른 권씨 성을 가진 선수인 권오준과 함께 엮여서 '쌍권총'이라고 불리는 것 뿐이었다. 이 외에 별명이라고 할 것이 있다면 허구라가 발음하는 궈낵 정도. 그러던 와중 2012 시즌에 채르노빌, 최형우라늄, 차르 봄바와 함께 하는 원자력 라인에서 을 맡았다.[11] 팀을 옮긴 첫해인 2015년, 윤규진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필요한 순간마다 삼진을 잡아내며 불꽃남자와 그 인기가 대전 구장 내 아이돌급이란 의미인 대전 아이돌이란 별명이 추가되었다.[12]
  • 중학교 재학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키가 작았으며,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이유로 야구를 잠시 그만두고 경상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고교 진학 후 키가 부쩍 자라 포철공고로 전학 가며 계속 야구를 하게 되었다. 참고로 프로필상 키는 187cm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입단 당시의 키. 프로 입단 후에도 키가 커 지금은 190cm 이상이다. 2014년 192cm로 공식 프로필이 수정되었다.
  • 2003년 2월 하와이 전지훈련 때[13] 2.5m 깊이의 물에 빠져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수영이 능숙하지 않음에도 깊은 데로 갔다가 빠진 경우인데,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제대로 빠져서 익사 직전까지 갔다가 인공호흡 및 응급처치로 살아난 케이스. 정황상 권혁은 당시 그곳이 그렇게 깊은 곳인 줄 몰랐던 것 같다. 물놀이 분위기가 고조되어 맥주병 선수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폭포를 왕복하고 있었는데 권혁도 그렇게 하다가 빠진 것. 체격 건장한 운동선수라 물에 빠져도 어떻게든 나올 것 같은데 당시 권혁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았던 걸 보면 역시 물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맞는 듯. 다행히 현장에 있던 배영수이재국 기자[14]가 가까스로 그를 건져내서 응급조치로 살려냈다. 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사진도 있음. 그리고 13년 뒤인 2016년 현재 배영수와 권혁은 나란히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3년뒤, 2019년 또 다시 둘은 두산 베어스에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상술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사건을 겪은 이후로 구속이 150 km/h가 넘었다면서, 한 번 더 빠지면 160 km/h가 넘을 거라고 마해영이 방송에서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권혁은 방송에서 왜 그런 걸 말했냐며 싫어한걸 보면 트라우마가 있는듯하다.[15] 참조 기사

    [image]
  • 2009년 9월 6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예정에 없던 구원등판을 하게 되었는데, 유니폼이 없었다. 평소같았으면 다른 선수 유니폼 빌려입고 나갔겠지만 하필 이 날 김응용 사장이 참관하고 있던 터라... 최원제가 권혁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갖고 있던 팬[16]에게 부탁해서 유니폼을 빌려입었는데, 그 사이즈가 너무 작았다. 그나마 너무 작아 겨드랑이를 잘라낸게 저정도라고.
  • 2009년 시즌 후에 2살 연상의 여성[17]결혼했으며, 2010년 12월 15일에 득녀했다.
  • 대구 팔공산#s-1 정상에 올라가면 '삼성 라이온즈 권혁 파이팅!'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권혁이 경기에서 보이지 않던 시절인 것으로 고려해 보아 2012년 5월 초 쯤으로 추정된다.
  • 2015년 시즌 전반기 시점에서 한화의 최고 인기 선수 중 한명. 6월까지 중위권을 유지해 본게 너무 오랜만(...)인 한화인데[18], 그를 위해 박정진, 송창식과 함께 눈물나는 투혼을 보여준 중간계투의 핵이기 때문이다. 대전 구장에서 권혁의 등판 순간 제일 환호가 커지며, 유니폼도 권혁 마킹이 제일 잘나간다. 4종류 유니폼 권혁 마킹이 죄다 동이 나는바람에 예약까지 받는데, 예약조차 몰려서 대기자도 엄청 많다는 구단 프런트의 얘기가 있을 정도. 한화 이글스 갤러리엔 이미 그의 등짝에 하악(...)대는 팬들이 출몰하고 있으며, 한화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불꽃 투혼을 가장 잘 나타내는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 한화 이글스 갤러리의 애칭은 권따. 야민정음이 아니라, 2015년 청주 경기에서 '권혁 따랑해'라는 아재들의 응원 문구가 중계 영상에 잡혔는데, 이 표현이 너무 찰지게 입에 붙은 나머지 권따로 줄여 부른다. 특히 권혁이 불꽃 투구를 펼친 날에는 온갖 짤방움짤이 올라오고 권따 뒤에 하트를 몇개씩 붙인다(...)
  • 상당히 신실한 불자로 추정된다. 모자, 글러브에 불교를 상징하는 ''자가 새겨져 있고,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선수를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라고 굉장히 심오하게 대답하는 등... 나름 열성 신자인 듯. 어떤 인터뷰에서는 부인이 올림픽지리산 절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를 올린 그 마음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하기도 했다.
  • 2015년 저축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였다. 삼성의 도박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서 권혁에 대해서도 헛소문이 나돌았었는데, 국무총리 상으로 그러한 헛소문을 완전히 씻어버렸다. 한화 권혁, 멍든 야구계 빛낸 '국무총리 표창'.
  • 2015 시즌 종료 후 마무리 훈련을 떠나지 않고 대전에 남아서 재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예비군 훈련장에서 "대전의 영웅"이 등장하였다며 깜짝 스타가 되기도 하였다. "대전의 영웅" 권혁, 예비군 훈련장 스타 된 사연. 그런데 한화로 이적하기 전에는 그동안 해외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밀린 예비군 훈련을 몇 년치를 몰아서 하다보니 거의 2주 가까이 훈련장에 모습을 나타내서 나중엔 다들 군대에서 사는줄 알았다고.
  • 팬서비스가 상당히 좋은 선수이다. 올라온 후기들에 "얼굴만 보면 무서운 인상이라서 팬서비스를 잘 안해줄것 같지만 막상 사인을 부탁하면 친절하게 잘 해준다"는 얘기가 대부분 적혀있다. 일화 다만 공이나 종이에 싸인을 해달라면 흔쾌히 해주는 편인데 슈베카 등 자신의 사진이 나온 야구 카드에다가 해달라고 하면 거절한다고 한다. 일종의 징크스인 듯.
  • FA 자격을 얻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기 전인 2014년에 청주야구장에서 정근우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적이 있으며, 이적 후 정근우가 그때의 일로 놀린다고 한다. 그 이전에 2011시즌 가르시아가 한 시즌 끝내기 홈런 2번을 달성했다.
  • 기이하게도 두 번이나 팀을 옮겼는데, 매 시즌마다 배영수와 같은 팀이다.
  • 슬하에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자식들을 무척 사랑하는 좋은 아버지이기도 한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벗어나 KBO FA 제도 외부 영입을 원했던 이유 중 하나가 '큰딸이 TV중계에서 내 모습을 자주 보고 싶어한다. 많이 등판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였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삼성
2
4
0
1
0
0
0.000
13.50
11
2
0
1
6
6
2.75
2003
23
39⅓
3
2
0
2
0.600
5.26
40
5
21
26
26
23
1.55
2004
37
81
3
3
0
3
0.500
4.78
80
12
42
78
44
43
1.46
2005
1군 기록 없음
2006
12
8
0
0
0
2
0.000
4.50
8
1
6
6
4
4
1.75
2007
60
77⅔
7
1
0
'''19'''
(3위)
0.875
2.79
47
2
42
100
26
24
1.11
2008
43
47⅔
6
0
0
'''15'''
(4위)
1.000
1.32
36
2
23
37
10
7
1.22
2009
63
80⅔
5
7
6
'''21'''
(1위)
0.417
2.90
64
10
46
76
29
26
1.31
2010
60
73⅓
7
1
4
10
0.875
2.09
54
6
21
73
18
17
1.00
2011
58
48⅓
1
3
0
'''19'''
(4위)
0.250
2.79
38
2
24
27
19
15
1.24
2012
64
49⅓
2
3
1
'''18'''
(5위)
0.400
3.10
48
2
21
38
18
17
1.38
2013
52
36⅓
0
1
0
3
0.000
3.96
35
5
17
41
17
16
1.40
2014
38
34⅔
3
2
0
1
0.600
2.86
27
4
11
38
13
11
1.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한화
'''78'''
(2위)
112
9
'''13'''
(1위)
17
6
0.409
4.98
124
15
58
88
68
62
1.58
2016
66
95⅓
6
2
3
13
0.750
3.87
93
5
49
77
45
41
1.42
2017
37
31⅓
1
3
0
11
0.250
6.32
39
6
14
17
23
22
1.53
2018
16
11
1
1
0
3
0.500
4.91
9
2
4
11
6
6
1.1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9
두산
57
36⅔
2
2
1
11
0.500
4.91
36
3
9
21
23
20
1.17
2020
15
7⅔
2
2
0
2
0.500
9.39
11
0
4
7
9
9
1.96
<color=#373a3c> '''KBO 통산'''
(18시즌)
'''781'''
(5위)
874
58
47
32
'''159'''
(2위)
0.552
3.79
800
84
392
762
404
368
1.34
역대 기록(타자)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color=#373a3c>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5
한화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통산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1] 2015시즌엔 마리아노 리베라의 현역시절 등장곡이었던 메탈리카 - Enter Sandman을 사용했다.[2] 삼성 시절엔 터보의 검은 고양이를 썼다.[3]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4] 사실 지금도 140 중후반대의 속구를 던진다. 좌완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빠른편.[5] 2004년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경기에서 기록. 2004년 포스트 시즌에서는 157 km/h를 찍기도 했으나 페넌트레이스 중이 아니라서 시즌 정식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6]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2010년 플레이오프의 보크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7] 특히 2011년에 그런 모습이 확연했었다. 겉보기 성적과 실제 투구내용과의 상당한 갭이 있다.[8] 보충 설명을 하자면 삼성 시절 권혁은 몸이 늦게 풀리는 편이라 마운드위에서 타자를 상대로 던지면서 감을 잡는 스타일이였다. 선동렬 아래에선 구위가 엄청날때는 감을 잡는 동안 구위로 버텼지만, 혹사와 보크 사건 이후인 류중일 아래에선 구위가 떨어지며 감을 잡는 동안 팩질을 하거나 두들겨 맞았다.[9] 물론 몸이 완전히 풀리면 위력적이지만 그때까지 장작을 쌓을 확률이 꽤 높아서 위험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셋업에는 안지만이 있는지라 삼성벤치에서는 굳이 권혁을 올리는 위험한 길을 걸을 필요가 없었다. [10] 물론 구속이 하락하는 타이밍에도 140km 초반대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11] 사실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삼성의 사실상 유일한 좌완 필승조라는 점에서 권혁을 '불펜의 핵'으로 자주 일컬었기 때문. [12] 18.10.13 한화이글스 포스트 시즌 출정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권혁 선수 소개 시 함성이 다른 선수의 3~4배 였다고 한다.[13] 2006년이라고 잘못 기재했었는데, 이건 아마 사진을 2003년에 촬영한 뒤 2006년에 블로그에 업로드한 것으로 추정된다. 블로그를 보면 이승엽틸슨 브리또, 김진웅, 이정호가 삼성에 있었고 손혁차명주두산 베어스 소속인 상태이다. 당시 권혁은 입단 2년 차였다.[14] 당시 스포츠서울 소속. 현재는 스포츠동아로 옮긴 상태이다.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의 주 패널로 잘 알려져 있다.[15] 자칫 목숨을 잃을뻔했던 일을 농담삼아 내뱉으면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16] 아마 여자 팬인 듯. 크기를 보면...[17] 오케스트라 악단에서 일했던 연주자 출신이다.[18] 근데 원래 있던 팀은 오히려 중위권에 위치해있으면 이상한 팀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