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태

 



'''한선태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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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111번'''
전인환
(2017~2018)

'''한선태
(2019~2019.6.25.)
'''

천원석
(2019.8.13.~2020.6.21.)
''''''LG 트윈스''' 등번호 40번'''
김기연
(2017~2018)

'''한선태
(2019.6.26~)
'''

현역


<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No. 40'''
'''한선태
韓善泰 / Sun-Tae Han'''
'''생년월일'''
1994년 6월 14일 (29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image] 경기도 부천시
'''학력'''
부천양지초[1] - 부천동중 - 부천공고 - [image] 세종대학교 미래교육원[2] (중퇴)
'''포지션'''
중간계투
'''투타'''
우사우타
'''체격'''
183cm, 79kg
'''프로입단'''
2019년 2차 10라운드 지명 (전체 95번, LG)
'''소속팀'''
[image]파주 챌린저스 (2017)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3] (2018)
[image] LG 트윈스 (2019~)
'''에이전시'''

'''병역'''
제15보병사단 수색대대 (2014.10.~2016.7.)
'''연봉'''
3,200만 원 (18.5%↑, 2020년)
'''SNS'''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독립리그 시절
2.3.2. 2020 시즌
3. 연도별 성적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clearfix]

1. 개요


LG 트윈스의 투수. '''KBO 리그 최초의 비 선수 출신 드래프트 지명자이자, KBO 리그 최초의 비 선수 출신 1군 출장 기록'''을 남긴 선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중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처음 접했을 정도로 야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9년 WBC를 본 이후로 야구에 관심을 가져 캐치볼을 시작했으며 일반 학생으로 부천공고에 진학했다.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동네야구 실력으로 부천고등학교 야구부를 찾아가서 친구와 기초 테스트를 받았지만, "기술적인 면을 떠나서 체력적으로 훈련을 따라오기 쉽지 않다."는 답과 함께 불합격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부천공고 금형캐드캠과(현 금형디자인과)에 다니던 2012년 3학년 2학기 때 반월공단[4]에 취직했었는데, 이때부터 손기술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기계를 잘 만들어 회사 관계자로부터 "나중에 병역특례 시켜 줄 테니, 계속 회사를 다녀달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팀을 만들어 연식 야구대회 등에도 참가했던 그는 SBS ESPN 트라이아웃, '나는 투수다!'에 출연한 적 있는 서시원과 같은 학교에 동년배라 학교에서 연습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언더핸드 유형의 투수였고 구속은 시속 100~110km 정도에 머물렀다.[5]
반월공단에 다닐 때 고양 원더스 비선출 선수 모집 테스트에 지원했으나 떨어졌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도전했으나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세종대 글로벌지식교육원 체육학과에 등록해서 야구부에도 들어갔었지만 기대했던 방향과 차이가 있어[6][7] 한 학기를 다니고 휴학하고 군 입대를 하여, 제15보병사단 수색대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제대했다.[8]

2.2. 독립리그 시절


[image]
2019년 신인드래프트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모습.
전역하고 나서는 사회인 야구를 하다가 2017년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하고서 기량이 급성장했고,[9] 110㎞/h대였던 구속을 박종대 코치[10]의 지도로 인해, 사이드암으로 투구폼을 바꾼 뒤 144㎞/h까지 올랐다. 그러나 파주 챌린저스가 2017년에 독립야구리그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대학 팀과 퓨쳐스리그와의 교류전 정도만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여를 여기서 뛰었다고.
2017년 11월오사카 일본 독립리그 야구단 팀들의 통합 트라이아웃에 도전했고,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에 입단을 했다. 김무영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11] 여기서 최고 구속을 146㎞/h까지 찍게 된다.
성적은 평균자책점 6.08에 22볼넷 22탈삼진.
챌린저스에 있을 때부터 국가인권위원회에 비선수 출신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했다고 한다. 결국, KBO가 규약을 개정했고, 한선태는 2019 신인 드래프트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수 있었다. 여기서 최고구속 145km/h를 기록해 현장에 있던 스카우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2.3. LG 트윈스 시절


[image]
드래프트 당일 10라운드에서 LG 트윈스에 지명됐다. 이는 2018년 1월 30일 비선출 선수의 KBO 리그 도전이 가능하도록 규약이 개정된 이후 최초로 비선출 선수가 KBO 드래프트 지명을 받은 것이다. 10월 12일 계약금 3천만 원에 정식 계약했다. 야구 규약 107조 2, 3항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적은 금액이기는 하지만 계약금을 정상적으로 받았다.

2.3.1. 2019 시즌


한선태/2019년 문서로.

2.3.2. 2020 시즌


1차 스프링캠프(호주) 명단에 포함되었다. 골반 통증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지 2차 스프링캠프(오키나와)에서는 제외되었다. 이후 알려진 바로는 허리가 좋지 않다고 했다.
개막 엔트리에 드는 데 실패하였으며, 시즌 개막 후에도 2군에 등판하지 못하다가 6월 6일에 2군에 등록되어 경기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2군에서 3경기 2.1이닝 1홀드 3피안타 3탈삼진 ERA 0으로 표본은 적지만 괜찮은 모습을 보였기에 6월 13일 1군에 콜업되었다. 그러나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한 채 6월 15일 1군에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퓨처스 리그로 다시 내려간 뒤 2경기 2이닝 1홀드 1피안타 3탈삼진 ERA 0을 기록했으며 6월 26일 다시 1군에 합류했다. 전날 타구에 맞은 영향으로 엔트리에서 말소된 송은범의 대체. 오래간만의 1군 복귀전인 6월 26일 문학 SK전에서 1이닝 2실점 2자책을 기록하였다.
다음날인 27일 정찬헌이 1군으로 콜업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13일 다시 1군에 올라왔으나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한 채 7월 18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18일부터 실시되는 확장 엔트리 명단에도 한선태의 이름은 없었다. 비선출이라 몸이 약하고, 2군에서도 1이닝이 최대일 정도로 이닝 소화력이 부족한 단점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했다.
차명석 단장이 유튜브에서 밝힌 바로는 한선태가 프로레벨의 피지컬[12]이 아니라서 몸을 다시 만들고 있다 한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쓸놈쓸이라고 평가하기엔 이를지도 모른다. 당장 작년에 몇경기 나오다 말소된 이유가 위의 내구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시즌 종료 후 마무리 훈련 명단에서도 빠졌다. 차명석 단장이 말하기를 30대에 활약해도 늦지 않으니 지금은 피지컬에 집중할 때라고. 2021년 2월 초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에 직접 출연해 이 점을 다시 강조했다. 이로 미루어 1군에서 다시 보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승률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8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
25
23⅔
6.08
1
0
0
-
1.000
23
1
23
22
17
16
1.8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승률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9
LG
6
7⅓
3.68
0
0
0
0
-
6
0
2
4
3
3
0.96
2020
1
1
18.00
0
0
0
0
-
3
0
2
0
2
2
5.00
<color=#373a3c><colbgcolor=#ffff88> '''일본 독립리그[13] 통산'''
(1시즌)
25
23⅔
6.08
1
0
0
-
1.000
23
1
23
22
17
16
1.86
<color=#373a3c> '''KBO 통산'''
(2시즌)
7
8⅓
5.40
0
0
0
0
-
9
0
4
4
5
5


4. 플레이 스타일


사이드암으로는 드물게 144Km/h 이상의 포심을 던지며 공이 많이 휘는 등의 변화무쌍한 구질이 특징이다. 변화구로는 사이드암이 구사하기 힘든 포크볼을 던지며, 커브와 체인지업도 통계에는 잡혔으나 1군 데뷔전에서 변화구의 릴리스포인트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투구를 보여 아직은 더 다듬을 필요성이 보인다. 2020시즌 추격조로 자주 쓰일 가능성이 높아보였지만 부상과 아직은 부족한 피지컬로 일단 몸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같은 사이드암 후보로는 늦깎이 신인 류원석이 또 다른 후보이다.
상당히 낮은 투구폼을 가지고 있는데 투구시 다리가 많이 구부러지면서 언더핸드와는 다르게 평행하지만 좀 더 낮은 위치에서 공을 뿌린다. 일반적으로 언더핸드의 낮은 위치란 투구시 팔의 각도를 말하는 것으로, 각도가 낮을수록 공을 아래서 퍼올리듯이 던진다는 뜻인데 한선태의 경우 사이드암이라 던지는 궤적과 팔의 각도가 수평이지만 주축이 되는 다리가 많이 구부러져 말 그대로 낮은 위치에서 공을 뿌린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다리가 많이 구부러지는 것에 대해 부상의 위험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선수 출신이라 몸이 약하고[14], 돌발상황 대처가 미흡하다는 코치진의 평가도 있지만, 반대로 다른 선출 투수들과 달리 군필 출신에 혹사를 경험한 적이 없기에 어깨가 매우 싱싱하다는 건 큰 장점이다.[15]

5. 여담


  • 마운드에서 내려온 후 데뷔전 공을 챙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 1군에 데뷔한 후 한동안 자책점 0의 행진을 벌이자 일각에서 '다른 선수들처럼 정상적인 아마 선수시절을 보냈으면 더 어린 나이에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반응이 있었는데, 한선태의 나이는 군대를 갔다 온 대졸선수의 나이와 같다. 그렇게 늦은 나이가 아니라는 이야기. 참고로 한선태는 국내 대학야구 팀에서 뛴 적이 없으므로 FA 때 대졸 8년 대신 고교 9년을 적용받게 된다.
  • 한선태 이전에 아마추어 야구 선수로 뛰지 않고 KBO 프로선수로 활동한 첫 사례는 서말구다. 롯데에서 대주자로 데려갔으며, 경기에 출장하진 못하고 선수 및 트레이너로 활동하다 방출되었다. 그래서 최초의 비 선수 출신 1군 출장기록을 한선태가 세울 수 있었던 것. 그래도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엔트리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롯데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카메라에도 찍힐 수 있었다. 하지만 서말구는 단지 야구를 해본 적이 없었을 뿐, 고등학교 1학년 때 육상선수로 입문한 엄연한 운동 선수 출신이다.[16]
  •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불명이지만 임창용과 만났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 임창용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 아마도 임창용이 선글라스 사업을 시작하고 잠실에 있는 선수들에게 나눠주러 왔을 때 본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천범박초에서 전학[2] 체육학과 전공. 세종대 야구부가 글로벌지식교육원 소속이기 때문이다.[3] 무라타 슈이치와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독립리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팀. [4] 대부분의 특성화고 학생들이 이즈음에 취직을 해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거나, 수시나 정시로 대학 진학을 한다거나 둘 중 하나다.[5] 그때 서시원은 130km/h 가량 던지는 투수였다.[6] 세종대 야구부는 평생교육원 소속이며 비선출도 입단할 수 있었다. 당시 세종대 야구부는 대학리그 참여를 위해 대학야구연맹 가입을 추진했지만, 1·2부 리그 팀의 반대에 부딪혔다. 평생교육원이 정식대학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고, 이 이유 때문에 대한야구협회에게도 거절당했다. 따라서 실전 경기를 거의 치르기 어려웠던 상황.[7] 다만, 고졸 지명도 받지 못했는데 실력 문제로 대학 입학도 하지 못하거나, 대졸 지명도 받지 못해 실업자가 되는 선출들이 점점 많아지면서,(대부분이 건설현장을 전전한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왔고, 세종대 야구부는 이후 대한체육회, 서울시 야구협회의 승인을 받아내며 서울시 야구협회가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야구가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 체육이 하나로 통합되었고, 2016년에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구 대한야구협회)가 세종대 야구부를 클럽으로 등록시켰다. 세종대 야구부를 포함해서 5개 정도가 클럽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여러 팀이 등록되면, 대학부 소속의 3부 리그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박상근이 감독으로 있는 가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소속의 가천대 야구부도 그 중 하나. 다시 말하면, 대학부 독립리그 개념으로 추진 중.[8] 고등학교 동창 서시원은 트라이아웃에 합격했지만 선수단에 합류하지 못했다. ‘비선수 출신은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9] 월 회비가 90만 원인데,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고 한다. 이 당시 그를 지도했던 파주 챌린저스의 감독이 한때 롯데 감독이었던 양승호였다. 양승호의 말에 의하면, 한선태가 야구에 미쳤다고 한다.[10] 현재 고양 위너스 수석코치.[11] 사실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원래, 구단이 실전용 투수가 아니라며 반대했는데, 김무영이 책임을 지고 키워보겠다며 구단을 설득했다고 한다. 김무영은 2019년 1월 17일 코치직을 그만두었다.[12] 구속, 구위 등이 아닌 내구성. 즉, 한 경기에 던질 수 있는 투구수, 연투 가능 여부 등을 말한다.[13]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14] 2019시즌 준수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몸을 만들기 위해 계속 2군에 있다.[15] 아마 시절에 이름 날렸던 선수 중 혹사를 당하지 않은 선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대은, 배재환 정도가 그나마 예외적인 경우.[16] 간혹 감사용을 일반인 출신 프로야구 선수로 아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인해 생긴 오해. 그는 마산고인천체육전문대에서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했고, 사내 팀 삼미특수강에서 뛰었다. 이후 감사용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멤버였으며, 청보 핀토스를 거쳐 OB 베어스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