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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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앙홀딩스 회장이자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다. 중앙일보와 JTBC 회장을 지냈다.
남양 홍씨(南陽 洪氏) 당홍계(唐洪系) 남양군파(南陽君派)로 잘 알려져 있다[1] .
아버지는 홍진기로 해방이후 이승만 내각에서 법무부,내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중앙일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2. 생애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산업공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세계은행(IBRD) 이코노미스트로, 1985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1986년부터 삼성코닝 상무, 전무, 부사장 역임 후 19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취임해 이듬해 3월, 사장으로 승진했고, 1999년 회장직에 올랐다. 이때부터 중앙일보 한글제호 변경, 가로쓰기 시행, 섹션신문 발행 등 한국 일간지의 혁신을 주도하며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그는 세계신문협회 회장(2002~2005년), 한국신문협회 회장(2003~2005년)을 역임했다. 아시아 지역 출신이 세계신문협회장을 맡은 건 당시 홍 회장이 처음이었다.
2005년 2월부터 주미 대한민국 대사로 재직하다가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된 논란으로 주미대사직을 중도에 사퇴하였다. 그 후 2006년 12월 27일에 중앙일보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하였다. 2011년부터 JTBC 대표이사 회장을 겸임했다. 2014년 JTBC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그 다음해에 중앙일보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2017년 3월, 중앙일보와 JTBC 회장직을 사임했다.
2014년부터 2018년 까지 한국기원 총재를 맡았었다. 이 밖에도 세계문화오픈(WCO) 조직위원회 위원장, 삼극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 아시아 태평양 그룹 부회장, 아시아재단 이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이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고문 등으로 폭넓은 활동을 했다.
2.1. 중앙일보 개혁
19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래 한국 일간지를 혁신하는 행보를 시도했다. 1994년 한국의 일간신문 중 최초로 일반/경제/스포츠 등 섹션을 분리한 신문을 발행했으며 최초로 전문기자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조인스’라는 온라인 뉴스 서비스를[2] 시작하고 2007년 중앙SUNDAY 일요신문을 창간했다. 2009년 중앙일보는 한국 일간지 최초로 판형을 대판에서 베를리너판으로 변경했다.
2.2. 3차례의 세무조사, 그리고 삼성 X파일 사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실시된 언론사 세무조사에서는 홍석현 회장 일가가 아닌 고용인 송필호 사장이 구속되는 선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1999년에 실시된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서는 비리 범죄 혐의가 드러나 2000년 5월 대법원에서 홍 회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최종 선고 받았다. 당시 이 2년동안 있었던 일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대한) 언론탄압과 정치보복이라는 비판도 나왔으나, 7년 전인 94년 언론사 세무조사 실시 결과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인 만큼, 양자의 말을 모두 들어보고 판단해볼 부분이다.
그리고 그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돼 중앙일보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으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주미한국대사로 임명되어, 대미외교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무렵 UN 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국내외에서 출마가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삼성 X파일 사건에 핵심적으로 연루된 것이 드러나[3] 주미대사직에서 5개월만에 사퇴하였고, 결국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UN 사무총장의 기회를 거머쥐게 된다. 2005년 12월 14일 검찰 도청수사팀은 불법도청 및 X파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홍석현에 공소시료 만료로 무혐의 처분하였다.(당시 수사 책임자는 황교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2014년 11월, 1999년과 2001년에 이어 3번째로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중앙일보와 JTBC의 모기업인 중앙미디어네트워크가 타깃이 되었다. 당시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세무조사를 두고 추측이 무성했는데, 오비이락격으로,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JTBC의 보도와 관련, 끈질기게 파헤치는 취재 모습이 뭔가 관련이 있지않겠느냐는 "추정"이 조심스레 제기되는 상황이다.
2.3. 중앙일보·JTBC 회장직 사퇴
2017년 3월 18일 중앙일보 및 JTBC 회장직을 사임을 발표했다. 홍 회장은 당시 임직원에게 보낸 고별사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다"면서 "남북관계, 일자리, 사회통합, 교육, 문화 등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풀어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2.4. 언론 외압 폭로
그러던 2017년 4월 16일, '''박근혜로부터 "JTBC의 보도담당 사장 손석희를 갈아치우라"는 직접적인 외압을 두 번 가량 실제로 받았다'''라는 폭탄 발언을 유튜브에 올렸다!! 본인과 아들(홍정도 중앙일보·JTBC·중앙홀딩스 대표이사 사장)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고. 구체적인 외압은 5~6회 가량 있었는데 그 중 두 번은 박근혜에게 받았다고 한다. 홍석현 본인은 "외압을 받아 앵커를 교체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서치 않았다. 시대 착오적인 일이었다.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외압을 버텨냈다." 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기사 및 영상
이에 더불어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소속 고위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2016년 2월 경 독대를 했는데, 대화의 절반이 '''손석희를 갈아치우라'''는 압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통하지 않을 이야기'라며 난색을 표했더니, 박근혜는 '''"그렇다면 JTBC에서 삼성 광고를 빼라"''' 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실제로 JTBC에는 삼성 광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10월 태블릿 PC 보도 당시 항간에 소문처럼 떠돌고 있었는데, 홍석현 전 회장의 발언으로 인해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또 조카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재판 과정에서 한번 더 언급되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홍석현이 이건희의 말을 안 듣는다' 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2018년 11월 21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또 한번 언급됐는데, 교체설이 나올 당시 주변 사업가들이 괴로움을 당했다고 한다. 또 압력에 관한 내용은 아들이나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않고,[4] '''본인이 다 감내'''했다고 한다.
홍석현이 외풍을 감내하는 동안 JTBC는, 홍석현 본인이 공들여 영입한 언론인 손석희 사장의 지휘를 받으며 언론사로서의 위상이 다른 3개 종편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졌으며, 특히 대선이 실시된 2017년과 이듬해에 연속 신뢰도 1위 언론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2016년 하반기부터 정권 향방을 좌우한 정유라 특혜 논란 및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서 결정적인 특종들을 터뜨린 것도 JTBC
2.5. 문재인 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큰 공을 세워 문재인 정부에서 미국에 파견하는 특사로 임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으며 2017년 5월 실제로 임명되었다. 미국 유학 및 주미대사로 재임시절 많은 인맥을 구축했으며, 유력 언론사인 중앙일보와 JTBC를 경영한 데다 중앙일보가 미주에서도 활동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현지의 정치인들과 통할 수 있다는 점,[5]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고 대북정책 관련 문재인 정부의 방향과 통하는 바가 있는 점 등이 고려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외교 분야에서 홍 회장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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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과 함께. 오른쪽은 안호영 주미대사)
5월 20일, 나흘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방문 기간 중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틸러슨 국무장관은 홍석현 특사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체제 보장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
2017년 5월 21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로 발표됐다. 그러나 언론사 회장을 지낸 신분으로 특보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고, 미국 특사 활동을 했던 것처럼 국가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연인으로 돕겠다며 고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청와대도 해촉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특보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는 달리, 홍석현의 경우는 대미 특사 외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공직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고, 이후에도 특보로서의 활동은 사실상 없었던 셈. 때문에 '사의'보다는 '고사'가 더 사실관계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 후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원로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3. 여담
- 남북관계에 관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관심과 공부가 깊었으며, 일가견을 낼 수 있을 만큼 공부 수준이 높다고 한다. 2014년에는 허핑턴 포스트에 이런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의 남북관계 보도는 이념에 휩쓸리는 일을 지양하고 장기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데[8] 의견 일부만 떼놓고 보면, 보수 소장파 정치인인 이재오, 남경필, 원희룡 등[9]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장과 구분이 힘들 정도이다. 적(敵)은 줄이고 우군(友軍)을 늘려가는게 미덕인 기업인이, 그것도 언론사주가 매우 민감한 남북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신을 밝히고 조언하는 보기 드문 모습.
- 2017년 3월 29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한 강연[6] 에서는 남북관계 접근법을 선불교의 파자소암 일화에 비유하며, “세상에는 하나의 원칙이나 계율로 재단해선 안 되는 복잡한 경우가 많이 있고 북한 문제도 이분법적으로만은 접근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문제”라고 설명, 접촉, 다자회담 및 남남합의에 의한 일관된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2018년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특사 파견 이후 남북, 북미간 대화 국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친미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 2017년에는 <한반도 평화만들기>라는 저서를, 2018년 10월에는 그 해 열린 북핵, 북미 간의 치열한 협상 국면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과 북한 변화[7] 의 내부 요인 분석 및 진단, 그리고 미래 청사진을 담은 저서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를 출간하며, 한반도평화만들기 재단 이사장으로서 정력적으로 그 소명을 다하고 있다.
- 한국기원 총재로 2016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에게 명예 9단증을 수여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5번기에서 4:1로 승리했다. "세계 최강의 실력을 보여준 딥마인드 알파고 개발팀에 경의를 표하고 이에 맞서 초인적인 정신력과 창의성을 보여준 이세돌 9단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인공지능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이번 대회가 단지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 대결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류에 기여할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2016년 2월 한국에서 최초로 태평양세기연구소(PCI)로부터 ‘PCI 빌딩 브릿지스 어워드’ 개인부문 상을 수상했다. PCI는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연안국 간 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을 위해 1990년 설립된 비영리 재단이다. 2000년부터 아·태 지역 국가의 가교 역할을 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한 개인과 단체에게 상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 장관, 해럴드 브라운 전 미국 국방 장관,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로버트 스칼라피노 전 UC버클리 교수,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 대사 등이 상을 받았다.
- 2015년 5월 28일 경희의 대표적인 특별강연 시리즈 중 하나인 <미원렉처>의 ‘새로운 한·중·일 시대와 대한민국의 꿈’이란 특강에서 “현재 한국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개방을 통해 세계의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는 제3의 개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매력국가’ ‘향기가 나는 국가’라는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4. 경력
- (2018년 ~ 현재) 중앙홀딩스 회장[10]
- (2017년 ~ 현재)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 (2017년) 대통령 미국 특사
- (2016년 ~ 2018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
- (2015년 ~ 2017년) 중앙일보 회장
- (2014년 ~ 2017년) JTBC 회장
- (2014년 ~ 2018년) 한국기원 총재
- (2011년 ~ 2016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대표이사 회장
- (2011년 ~ 2014년) JTBC 대표이사 회장
- (2006년 ~ 2015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회장
- (2005년) 주미대사
- (2003년 ~ 2005년) 한국신문협회 회장
- (2002년 ~ 2005년) 세계신문협회(WAN) 회장
- (2003년 ~ 2005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회장 · 발행인 · 인쇄인
- (2002년 ~ 2003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회장 · 발행인
- (1999년 ~ 2002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회장
- (1995년 ~ 1999년) 한국신문협회 부회장
- (1999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 · 발행인 · 인쇄인 · 편집인
- (1997년 ~ 1999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 · 발행인
- (1995년 ~ 1997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 · 발행인 · 인쇄인
- (1994년 ~ 1995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 발행인 · 인쇄인
- (1994년) 한국신문협회 이사
- (1991년 ~ 1994년) 삼성코닝 부사장
- (1989년 ~ 1991년) 삼성코닝 전무
- (1986년 ~ 1989년) 삼성코닝 상무
- (1985년 ~ 1986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 (1977년 ~ 1983년)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5. 가족 관계
보다 자세한 가계도는 중앙일보 가문 문서를 참고할 것.
[1] 이 남양군파는 정치적으로 서인 노론에 속했다. 한때 흥선대원군의 측근이었던 홍순목, 사대당을 제거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홍영식,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자결한 홍만식 등이 바로 남양군파 벌족이었다.[2] 창설 당시부터 2000년까지는 공식 도메인이 www.joongang.co.kr 이었다.[3] 사법고시를 통과한 수재였던 동생 홍석조 검사가 유망한 젊은 법조인들에게 삼성의 뇌물을 뿌리는 창구 역할을 해왔던 사실도 같이 폭로되어 법복을 벗게 되었다.[4] 예외로, 손석희 사장은 교체설에 관해 홍회장에게 직접 들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내용 참고. [5] 일례로 박정희 정부 시절, 박동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함병춘 주미대사를 통해 미국 측에 연락하고자 했으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계속 만남을 거절해, 현지에서 '''언론사를 운영'''하는 통일교의 2 ~ 3번 째 서열 간부(박보희)를 통해 키신저 박사와의 만남을 주선한 적 있다. 박보희가 자기 사무실에서 마치 옆집 사람에게 말하듯 "Hey Kissinger, come here~" 하자, 바로 달려오는 키신저를 보며 우리 관리들이 놀랐다는 후문.[6]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초청[7] 북한이 이제 핵보다는 경제를 택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왔다는 요지[8] 홍석현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이따금 한국경제신문처럼 군 관계자들을 신규 독자로 맞이하고자 노력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일보에 비하여, 햇볕정책 성향의 의견을 다루는 기사에 벼린 비판 강도가 덜하며, 미국측의 동태 및 의향을 관찰하는 특파원 보도 쪽의 공신력은 오히려 전보다 커져, 여전히 남북 문제를 다루는 정보지로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9] 이재오가 차린 늘푸른한국당 강령 중에 이 부분과 유사한 점이 있고, 남경필 역시 바른정당 대선 경선에서 "대화와 제재 투 트랙 전략"과 "개성공단 재개"를 내세운 바 있다.[10] 중앙홀딩스 회장을 맡고 있긴 하지만,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은 아들인 홍정도 대표이사가 거의 전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