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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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允楠
1924년 6월 25일 ~ 2013년 6월 5일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의 어머니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모.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아내였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이기도 했다.
1924년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훗날 조흥은행 전무를 지낸 김신석의 1남1녀 중 외딸로 태어났다. 광주에서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3학년 때인 1943년에 당시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홍진기 전 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과 결혼했다.
부친 김신석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여러 은행에서 경력을 쌓으며 일제시대 유능한 조선인 금융인으로 인정 받았던 인물이다. 현준호가 설립한 호남은행의 전무로 있다가 호남은행이 1942년 일본계 동일은행으로 합병되자 동일은행의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동일은행(1943년 조흥은행으로 합병) 상무로 재직할 당시 경성지방법원 인사조정위원 자격으로 법원 출입이 잦았는데, 그게 홍진기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빼어난 미모와 훤칠한 키의 재원(才媛)이었던 김윤남은 부모에게 “부자보다 자격 있는 사람이 낫다”며 홍진기에 대한 호감을 표했다고 한다. 당시 판사였던 홍진기 역시 김신석의 제안에 따라 즐기던 담배까지 끊어가며 결혼 의지를 밝혔다.[1]
홍진기와 결혼한 후 1945년 장녀 홍라희,[2] 1949년 장남 홍석현을 낳으며 잘 살았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어린 자녀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가는 고초를 겪었다. 그 후 남편 홍진기가 이승만 정권 하에서 법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있다가 1958년 법무부 장관에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4.19 혁명 당시 내무부 장관으로서 경찰 발포를 명한 것 때문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 바람에 약 3년간 사형수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남편이 감옥에 있으며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당시인 1962년에 친정 올케[3] 의 권유로 원불교에 입교하면서 시련을 견뎌냈다. 원불교에 다니면서 남편 홍진기의 석방을 위해 매일 306자로 된 원불교의 ‘심불 일원상 내역급 서원문’을 백번 독송하며 기도를 했고, 그 덕분인지 홍진기는 기적적으로 풀려 나왔다.# 참고로 홍진기의 전임 내무장관이었던 최인규는 홍진기와 마찬가지로 사형선고를 받아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홍진기는 별다른 이유 없이 박정희에 의해 풀려났다.
그 뒤로 독실한 원불교 신자가 되었고, 남편 홍진기와 장녀 홍라희, 장남 홍석현, 차남 홍석조(1953년생), 3남 홍석준(1954년생), 4남 홍석규(1956년생), 차녀 홍라영(1960년생) 등 자식들까지 모두 원불교 신자로 만들었다. 미주 교화 등 원불교 교세 확장에 김윤남이 끼친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워낙 미모가 출중한 데다 머리도 좋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자식들 모두 인물이 좋고 공부를 잘 했다. 네 아들 모두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라인이고,[4] 큰딸이자 첫째인 홍라희도 경기여자고등학교, 서울대 출신이다. 차녀 홍라영은 엄마의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에 불문과 수석으로 입학하여 학위를 마쳤다.
자식들을 모두 대단한 집안 자식들과 결혼시켰다. 첫딸 홍라희는 삼성 이병철의 며느리로 만들었고, 장남 홍석현은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신직수의 사위로, 차남 홍석조는 동양상선 회장이었던 양기식의 사위로 장가를 보냈다. 차녀 홍라영은 전두환 정권에서 안기부장을 지낸 노신영의 며느리로 시집을 보냈다.
돈만 생기면 평창동에 여기 5백평, 저기 5백평 하는 식으로 땅을 사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들이 다 평창동에 500평짜리 저택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자식들 재산은 거기 평창동 저택 몇백평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장남 홍석현은 중앙그룹 회장[5] 이고, 차남 홍석조는 BGF 리테일 회장, 3남 홍석준은 보광창업투자 회장, 4남 홍석규는 보광그룹[6] 회장으로 있다. 보광그룹은 편의점 업계에서 가장 많은 가맹점포를 가진 CU를 가지고 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 보광 휘닉스파크 역시 소유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창업투자, 광고대행, 방송장비 제작, 각종 컴퓨터 부품 및 주변기기 제작, LCD, 반도체 제작, 온천과 골프장 개발, 관광 및 휴양사업, 폐기물 수집 운반, 창고, 운수, 주류 중계 사업 등 영위 계열사가 60개가 넘는다. 장녀 홍라희는 만인이 다 아는 삼성그룹의 안주인이고, 차녀 홍라영은 삼성 계열 의류 브랜드 빈폴을 소유하고 있다.
남편의 원불교 법명인 인천(仁天)과 자기 법명인 혜성(慧性)에서 한 글자씩을 딴 ‘인혜장학회’를 만들어 서울대 법대생들을 돕는 등 장학사업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또 남편의 법호인 국산(國山)과 자기 법호인 신타원(信陀圓)에서 한 글자씩을 딴 ‘국신장학회’를 설립해 원불교 인재양성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원불교는 1991년 김윤남에게 출가위(出家位) 법위(法位)와 함께 종사(宗師) 법훈(法勳·원불교 훈장)을 내렸다. 출가위는 현재까지도 원불교 재가 교도가 오른 최고 법위에 해당한다.[7]
2013년 6월 5일 오전 11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열반했다. 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졌고, 김윤남은 출가위로서 열반했기에 원정사의 칭호를 얻었다. 향년 90세.
보다 자세한 가계도는 중앙일보 가문 문서를 참고할 것.
金允楠
1924년 6월 25일 ~ 2013년 6월 5일
1. 개요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의 어머니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모.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아내였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이기도 했다.
2. 생애
1924년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훗날 조흥은행 전무를 지낸 김신석의 1남1녀 중 외딸로 태어났다. 광주에서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3학년 때인 1943년에 당시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홍진기 전 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과 결혼했다.
부친 김신석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여러 은행에서 경력을 쌓으며 일제시대 유능한 조선인 금융인으로 인정 받았던 인물이다. 현준호가 설립한 호남은행의 전무로 있다가 호남은행이 1942년 일본계 동일은행으로 합병되자 동일은행의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동일은행(1943년 조흥은행으로 합병) 상무로 재직할 당시 경성지방법원 인사조정위원 자격으로 법원 출입이 잦았는데, 그게 홍진기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빼어난 미모와 훤칠한 키의 재원(才媛)이었던 김윤남은 부모에게 “부자보다 자격 있는 사람이 낫다”며 홍진기에 대한 호감을 표했다고 한다. 당시 판사였던 홍진기 역시 김신석의 제안에 따라 즐기던 담배까지 끊어가며 결혼 의지를 밝혔다.[1]
홍진기와 결혼한 후 1945년 장녀 홍라희,[2] 1949년 장남 홍석현을 낳으며 잘 살았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어린 자녀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가는 고초를 겪었다. 그 후 남편 홍진기가 이승만 정권 하에서 법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있다가 1958년 법무부 장관에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4.19 혁명 당시 내무부 장관으로서 경찰 발포를 명한 것 때문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 바람에 약 3년간 사형수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남편이 감옥에 있으며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당시인 1962년에 친정 올케[3] 의 권유로 원불교에 입교하면서 시련을 견뎌냈다. 원불교에 다니면서 남편 홍진기의 석방을 위해 매일 306자로 된 원불교의 ‘심불 일원상 내역급 서원문’을 백번 독송하며 기도를 했고, 그 덕분인지 홍진기는 기적적으로 풀려 나왔다.# 참고로 홍진기의 전임 내무장관이었던 최인규는 홍진기와 마찬가지로 사형선고를 받아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홍진기는 별다른 이유 없이 박정희에 의해 풀려났다.
그 뒤로 독실한 원불교 신자가 되었고, 남편 홍진기와 장녀 홍라희, 장남 홍석현, 차남 홍석조(1953년생), 3남 홍석준(1954년생), 4남 홍석규(1956년생), 차녀 홍라영(1960년생) 등 자식들까지 모두 원불교 신자로 만들었다. 미주 교화 등 원불교 교세 확장에 김윤남이 끼친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워낙 미모가 출중한 데다 머리도 좋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자식들 모두 인물이 좋고 공부를 잘 했다. 네 아들 모두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라인이고,[4] 큰딸이자 첫째인 홍라희도 경기여자고등학교, 서울대 출신이다. 차녀 홍라영은 엄마의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에 불문과 수석으로 입학하여 학위를 마쳤다.
자식들을 모두 대단한 집안 자식들과 결혼시켰다. 첫딸 홍라희는 삼성 이병철의 며느리로 만들었고, 장남 홍석현은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신직수의 사위로, 차남 홍석조는 동양상선 회장이었던 양기식의 사위로 장가를 보냈다. 차녀 홍라영은 전두환 정권에서 안기부장을 지낸 노신영의 며느리로 시집을 보냈다.
돈만 생기면 평창동에 여기 5백평, 저기 5백평 하는 식으로 땅을 사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들이 다 평창동에 500평짜리 저택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자식들 재산은 거기 평창동 저택 몇백평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장남 홍석현은 중앙그룹 회장[5] 이고, 차남 홍석조는 BGF 리테일 회장, 3남 홍석준은 보광창업투자 회장, 4남 홍석규는 보광그룹[6] 회장으로 있다. 보광그룹은 편의점 업계에서 가장 많은 가맹점포를 가진 CU를 가지고 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 보광 휘닉스파크 역시 소유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창업투자, 광고대행, 방송장비 제작, 각종 컴퓨터 부품 및 주변기기 제작, LCD, 반도체 제작, 온천과 골프장 개발, 관광 및 휴양사업, 폐기물 수집 운반, 창고, 운수, 주류 중계 사업 등 영위 계열사가 60개가 넘는다. 장녀 홍라희는 만인이 다 아는 삼성그룹의 안주인이고, 차녀 홍라영은 삼성 계열 의류 브랜드 빈폴을 소유하고 있다.
남편의 원불교 법명인 인천(仁天)과 자기 법명인 혜성(慧性)에서 한 글자씩을 딴 ‘인혜장학회’를 만들어 서울대 법대생들을 돕는 등 장학사업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또 남편의 법호인 국산(國山)과 자기 법호인 신타원(信陀圓)에서 한 글자씩을 딴 ‘국신장학회’를 설립해 원불교 인재양성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원불교는 1991년 김윤남에게 출가위(出家位) 법위(法位)와 함께 종사(宗師) 법훈(法勳·원불교 훈장)을 내렸다. 출가위는 현재까지도 원불교 재가 교도가 오른 최고 법위에 해당한다.[7]
2013년 6월 5일 오전 11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열반했다. 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졌고, 김윤남은 출가위로서 열반했기에 원정사의 칭호를 얻었다. 향년 90세.
3. 가족 관계
보다 자세한 가계도는 중앙일보 가문 문서를 참고할 것.
[1] 그러나 김윤남은 홍진기 집안에 시집 올 때 가난한 시댁에서 요구하는 게 많아 맘고생이 심했다는 말도 있다.# [2] '전라도의 기쁨'이란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3] 친정 오빠인 김홍준의 아내이다. 김홍준은 한국은행에서 오사카 지점장까지 지냈다.[4] 장남 홍석현은 전자공학과, 차남 홍석조는 법대, 3남 홍석준은 사회학과, 4남 홍석규는 외교학과 출신.[5] 중앙일보를 모태로 한 재벌집단. 보광그룹을 형제들끼리 지분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휘닉스 평창을 챙겼다.[6] 형들과 각자 지분대로 보광그룹을 분할하면서 남은 휘닉스소재와 한국문화진흥 등으로 구성된 중견기업집단.[7] 한 단계 높은 (최상위) 대각여래위는 역사상 6명이 있지만 모두 출가교도들이다.